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리더에게
불가능한 도전과 거대한 목표 앞에서도 결코 위축되거나 물러섬이 없는 사자의 심장을 주신다.
올바른 리더상을 갈망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뿌리 내린 용기 있는 리더십을 제시한다.
“이 시대는 용기 있는 리더를 필요로 한다!”라는 주제로 리더십 베스트셀러 저자 한홍 목사가 성경이 말하는 리더십을 재조명했다. 특별히 여호수아서에서 펼쳐진 여호수아의 리더십 원리를 뽑아낸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후계자로서 막중한 부담과 두려움을 안고 리더로 세움 받은 여호수아. 그런 그가 노예 출신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이라는 거대한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발휘한 그의 리더십 파워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무모한 모험도, 경험에서 나온 전략도 아니었다. 바로 하나님 말씀을 따라 행한 순종이며 용기 있는 도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리더에게 불가능한 도전과 거대한 목표 앞에서도 결코 위축되거나 물러섬이 없는 사자의 심장을 주신다. 올바른 리더상을 갈망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뿌리 내린 용기 있는 리더십을 제시한다.
순종하는 리더
하나님 말씀을 들으라
1945년 4월 12일,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미국인들은 믿기 어려운 뉴스를 듣고 심한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제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누구보다 충격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그의 뒤를 이어 33대 대통령으로 취임해야 했던 부통령 해리 트루먼이었다. 하루아침에 거인 루스벨트의 공백을 메워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된 미주리 주 시골 출신 트루먼의 부담이 얼마나 컸겠는가? 트루먼은 당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늘의 달과 별들과 모든 행성들이 나에게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만약 일생에 한 번이라도 기도한다면, 지금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너무나 위대했던 전임자의 뒤를 잇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심적 스트레스임에 틀림없다. 이런 일은 리더의 삶 속에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성경에도 그런 지도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전무후무한 지도자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다.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면서 2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모세의 리더십 하나에 의지했다. 모세가 바위를 치면 물이 쏟아져 나왔고, 다른 민족과 싸울 때는 그가 지팡이만 들고 있어도 백전백승했다.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선 지도자, 그가 바로 모세였다. 그런데 광야에서의 40년 방황 생활이 끝나고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 전설의 지도자 모세가 죽은 것이다. 후계자로 등장하여 그 막중한 책임을 감당하게 된 여호수아의 심정이 어땠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고, 반드시 그 인생의 끝이 온다. 이 한계를 아는 것이 리더십의 첫 단계다. 무대에 올라갈 때는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바뀌어도 비전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모세는 죽었지만,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졌던 비전, 곧 노예의 땅 애굽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그 땅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꿈은 계속되었다.
다만 역사의 큰 그림을 놓고 볼 때, 큰 비전의 흐름은 같아도 그 비전을 이루는 단계나 그것을 감당할 사람은 다를 수 있다. 각 리더의 성격과 환경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는 맡겨진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서로 다른 모습을 비교하거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준비하는 리더가 있으면 정복하는 리더가 있고, 그 후에 그것을 지키는 리더가 있는 법이다. 획일화에 물들어 있는 시대에는 다양화하는 리더가 있고, 그 다음에는 다시 차별화하는 리더가 있게 마련이다.
하나님은 결코 아무나 지도자로 세우시지 않는다. 지도자는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에 따라 미리 훈련받고 준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법을 안다. 즉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내적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대로 행동하는 법을 익힌 사람이다.
그런데 이 천하의 여호수아도 막상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죽음으로써 졸지에 그 공백을 메워야 하는 자리에 섰을 때, 정신이 아찔하고 두려움이 먹장같이 몰려왔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하나님이 이 말씀을 여러 절에 걸쳐 중복하여 강조하신 것으로 보아, 당시 여호수아는 심한 스트레스와 상당한 두려움에 눌려 있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여호수아는 결코 겁쟁이가 아니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함께 갔던 다른 10명의 동료들은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세가 살아 있을 때의 얘기다. 아마 당시의 여호수아는 지도자 모세를 믿고 그렇게 용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세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이 없어진 상태에서 과연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 모든 것은 모세가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리더십이란 결국 하나님이 이미 주신 축복의 열매를 따먹는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대부분의 리더는 “내가 무언가 이루었다”, “내가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하며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고 싶어한다. 그러나 성숙한 리더십은 다르다. 나의 지혜, 동업자, 돈, 조직, 노하우를 비롯한 그 외의 모든 것이 다 선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리더는 늘 감사하고 겸손할 줄 아는 것이다. 삶이 경박한 것은 묵상이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A. W. 토저는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바로 그 사람의 말을 들으라.”
남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무렵,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무참히 죽어 갔다. 양측의 운명이 걸린 대전투를 앞둔 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깊은 번민 속에 빠졌다. 그 모습을 본 참모들이 링컨 대통령에게 이렇게 위로했다. “각하, 염려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십니다.” 그러자 링컨은 말했다. “그것은 적군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중요한 것은 과연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지.”
팔로워십에서 시작하라
성경에는 정작 ‘리더십’이라는 단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리더십을 말해야 할 부분에서 오히려 ‘팔로워십’ 혹은 ‘서번트십’을 얘기하고 있다. 리더십 훈련 과정의 기초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따르고 섬기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따르는 법을 모른 채 리더 자리에 오를 때 미치는 영향력은 다른 사람들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파멸로 이끌고 갈 수 있다. 이 점을 명확히 아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권위를 허락해 주실 것이며 그 권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힘이 있다.
모세의 권위 밑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세의 모습을 보아온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스라엘의 모든 리더를 소집한다. 두려움이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지체 없이 순종한다. 제때에 결단하고 행동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인물도 리더가 될 수 없다. 완벽한 작전 계획은 없다. 전문화되고 고급화된 오늘날의 문화에 길들여진 탓인지 너무나 많은 지도자들이 영적인 야성을 잃어버렸다. 많은 리더들이 앉아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거나 안전과 명예를 따지고 있다. 그러나 파워는 행동하는 리더십을 통해 폭발한다. 확신이 서면,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지체말고 움직여라.
여호수아는 3일 동안 양식을 예비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 후 중요한 작전 한 가지를 지시한다. 갓, 르우벤, 므낫세 지파를 가나안 상륙 작전의 최선봉 부대로 지명한 것이다. 이 세 지파에게는 지켜야 할 오래 전의 약속이 있었다. 광야 시절 미디안 광야에서 사나운 부족들과 큰 전쟁을 치러 혁혁한 전과를 세운 이들 지파들에게 모세는 많은 가축을 하사했었다. 그런데 많아진 가축으로 요단강을 건너기가 어려워진 이들은 요단강 동편의 땅에 그냥 머물기를 원했다. 그러자 모세는 크게 화를 냈고, 세 지파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자기 지파의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정착시켜 놓고 다른 지파들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하여, 전쟁이 완결된 뒤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이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다. 특권층은 많이 누리는 만큼 그에 따르는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여호수아는 이 세 지파에게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다. 또한 여호수아가 이 세 지파를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최선봉 부대로 세운 것은 그들이 가진 전문성 때문이었다. 이 세 지파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용맹한 사람들을 뽑을 때 항상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지파들이었다.
본래 팔로워들은 리더가 시키는 대로 로봇처럼 따라하는 무능력한 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어쩌면 리더도 지니지 못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기에,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그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탁월한 리더는 각자의 전문성을 따져 적절한 팔로워들에게 일을 배분한다. 리더십이 전체 그림을 보고 큰 목표를 향해 팔로워들을 이끌고 격려하는 일이라면, 팔로워십은 각자 독특한 전문 기술을 가지고 그 리더십에 협력함으로써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는 일이다. 역할의 차이이지 지위의 차이가 아니다. 이러한 인식이 분명할 때 리더는 교만하거나 무례하지 않으며, 팔로워는 비굴하거나 방관자적인 자세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세 지파의 리더들이 기꺼이 신참 지도자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했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 우리가 가리이다”. 리더십이 검증되지도 않은 신참 지도자의 명령을 따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자리로 기꺼이 나아가는 이 전격적인 순종은 감동과 교훈을 주는 팔로워의 모습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여호수아의 위대함에 압도된 것이 아니라 그를 리더로 세우신 하나님의 섭리를 본 것이다. 카리스마를 지닌 많은 리더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추종자들인 가신 그룹을 만들려는 함정에 쉽게 빠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는 궁극적으로 실패한다. 부족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세워 주신 권위임을 느낄 때 팔로워는 순종하게 된다.
최선봉 부대로 뽑힌 이 세 지파들은 기쁘게 순종하는 것에 한 수 더 떠서,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힘을 내라고 격려까지 한다. 성경 본문에는 리더와 그 뒤를 따르는 백성들 간의 끈끈한 사랑과 사명을 다하겠다는 헌신의 모습이 나온다. 자기들 가운데 불복종하는 자는 죽여도 좋다고 말함으로써 순종의 굳은 의지를 보여 준다. 리더와 팔로워들 간의 이 감동적인 팀워크는 결국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가나안 정복을 이뤄내고 만다.
한 걸음씩 내딛으라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고 했다. 이것은 지도자로서 그의 성실함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지도자들은 항상 새벽을 깨우는 삶을 살았다. 여호수아는 싯딤에 진을 치고 여리고로 정탐군을 보냈다. 3일 후 돌아온 그들은 여리고 성 사람들이 이미 하나님의 군대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식에 공포에 떨고 있다고 보고했다.
여호수아의 첫 번째 명령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제일 앞에 서서 행진하고, 백성들은 거리를 두고 그 언약궤를 따라가라는 것이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궤’라고도 불리는 직사각형 상자로서, 그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했므로 언약궤를 따르라는 말은 곧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라는 말이다. 두 번째 명령은 백성들에게 “스스로 성결케 하라”는 것이었다. 문제가 있을 때 리더를 탓하기 전에, 따르는 사람들도 회개하고 바로잡아야 할 점들이 많이 있다.
2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까지 이동하는 데 하루는 족히 걸렸을 것이다. 마침내 요단강 가에 도착한 백성들은 거기서 진을 치고 또 3일을 보냈다. 분명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공격개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 눈앞에는 요단강이 당장이라도 삼킬 듯이 넘실대며 흐르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당장 강물 속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신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은 먼저 강물을 멈추게 해 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에 순종하여 뛰어들면 상황이 반전될 것이라는 믿음만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지만, 그 기적의 파워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순종과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마침내 역사적인 요단강 도하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2백만 백성의 역사적인 대이동이자 기적 그 자체였다. 평소보다 수심이 3-4m 이상 깊어지고, 물살도 빨라져 시속 16km 이상의 급류가 흐르는 우기였다. 어려운 일은 우리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노력하거나 인맥을 동원하면 웬만큼 돌파구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우리 능력 밖이다. 리더에게는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가 언젠가는 찾아온다. 도무지 인간의 상식과 경험으로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 이것을 어떻게 넘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흐르는 강물 속으로 용감하게 발을 들여놓자마자 믿기 어려운 기적이 벌어졌다. 그 엄청난 요단강물이 갈라지면서 순식간에 거대한 벽이 되어 양쪽으로 쌓인 것이다. 2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수많은 가축들이 짐차를 끌면서 요단강을 건너는 데는 반나절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제사장들은 그 긴 시간 동안 결코 가볍지 않은 언약궤를 메고 계속 서 있어야 했다. 하나님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하나님과 함께 서 있으면 요단강과 같은 무서운 장애물로부터 백성들이 보호받는다. 뼈가 꺾어지고 등이 휠 것같이 괴롭고 아프더라도 조금만 더 버텨라. 당신이 이끌고 있는 공동체가 당신의 그 인내와 고통을 발판 삼아 요단강을 건너게 될 것이다.
거룩한 패기로 새 역사를 창조하라
백성들이 요단강을 다 건넜을 무렵,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뜻밖의 명령을 내리셨다. 각 지파의 12 대표들에게 갈라진 요단강 한복판, 아직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들고 서 있는 그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각자 큰 바위를 한 개씩 찾아서 들고 나와 기념비를 세우라는 것이었다. 요단 강물이 언제 덮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은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즉시 그 명령에 순종하여 지체하지 않고 움직였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제일 먼저 앞장섰기 때문일 것이다.
요단강 한복판에 도착했을 때 여호수아는 의아스러운 일을 한 가지 더 행한다. 12명의 대표들이 큰 돌을 하나씩 파내어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여호수아 자신은 강 중앙,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서 있는 바로 그 발 앞에 12개의 돌을 원형으로 세워 놓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일은 그 순간 여호수아 자신이 감격에 겨워 자발적으로 한 행동인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홍수로 범람하는 요단강을 갈라 주신 사건을 기념하기 원했던 것이다.
강 한가운데서 언약궤를 메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제사장들과 여호수아가 존경스럽다. 그들은 백성들이 강을 무사히 건널 때까지 거의 온종일 언약궤를 메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어야 했다. 여호수아는 가장 마지막에 육지로 올라왔다. 진정한 리더란 이렇게 가장 먼저 진격하고 가장 늦게 퇴각한다. 리더의 자리는 불가능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사자 같은 용기와 더불어 무쇠 같은 인내와 책임감을 요구받는 자리다.
모든 사람이 육지에 닿자 나뉘었던 강물은 성난 물결로 순식간에 합쳐져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인생의 힘들고 어려운 장애물 앞에 서 있을 때는 한없이 막막해도 하나님과 함께 지나면 순식간에 꿈같이 그 장애물을 뒤로하고 서 있게 되는 법이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에 진을 치고 각 지파의 대표들이 운반해 온 12개의 돌을 기념비로 세웠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완전한 새 사람, 새 민족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상기시키시기 위해서였다. 또한 이것은 바로 다음 세대의 신앙 교육을 위해서였다. 이제 광야를 벗어나 물질적으로 풍성하고 평안한 때에 태어날 다음 세대는 그만큼 타락할 위험이 클 것이기에 부모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녀에게 영적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도전하는 리더
영적 리더십을 견고히 세우라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발을 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첫 번째 명령은 할례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그 축복을 감당할 만한 그릇으로 우리를 빚으신다. 여리고 성을 코앞에 둔 거리에서 이스라엘 남자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믿음의 테스트이기도 했다.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적군 앞에서 완전히 무장 해제되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무모한 행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전쟁은 이스라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초자연적인 승리와 기적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도 확연히 드러났다.
두 번째 명령은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유월절은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나올 때 문설주에 발라 놓은 어린양의 피 때문에 죽음의 천사가 넘어갔다는 것을 기억해 지키던 절기였다. 생명을 지켜 준 것은 바로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어린양의 피였다. 전쟁을 눈앞에 둔 이 긴박한 시점에 유월절을 다시금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그들이 애굽을 탈출할 수 있었고, 수 없는 고비를 넘기면서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폐부에 새기라는 의미이다. 이 즈음 만나가 그치게 되는데, 이것은 늘 받아먹기만 하는 어린아이의 믿음에서 벗어나 땀 흘려 일하는 성숙한 백성으로서의 책임을 가지라는 의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서 성결케 하고 있을 때, 홀로 여리고 성을 정찰하던 여호수아는 홀연히 나타나 자기 앞을 가로막는 한 사람과 맞닥뜨린다. 그는 칼을 뽑아들고 서 있었다. 군대의 서열상 이스라엘에서 감히 총지휘관인 여호수아 앞에서 칼을 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로 코앞에 여리고 성을 둔 곳이었으므로 더욱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대담하게 물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이것이 보통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보는 시각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더 적합하고 합리적인 것인지에 대한 관심보다 과연 내 편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은 우리와 다르다.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그 한마디로 그가 뿜어내는 엄청난 위엄에 여호수아는 자기 앞에 서 있는 이가 바로 하나님임을 알아본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이것은 모세가 처음 지도자가 될 때 하나님을 만난 장면과 아주 흡사하다. 하나님의 리더는 항상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네 편, 내 편을 따지는 우리의 편협한 마인드를 깨뜨리기 원하신다. 우리가 눈을 들어 하나님을 알아보기를 원하신다. 우리 편에 하나님을 끌어들이려고 하지말고,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길 원하신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자신을 돕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을 대신하여 지휘관이 되려고 오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자신의 무기력함을 인정하고, 대의를 위해서 자신보다 탁월한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가 리더의 가장 위대한 순간이다. 여호수아는 지휘권 이양과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책임도 넘겨 드림으로써 자유함과 평안함, 기쁨과 자신감을 누릴 수 있었다. 인간의 불행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려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주를 다스리시고 하늘의 군대를 마음껏 움직이시는 그분의 손에 지휘권을 내어 드리라.
믿음으로 전진하라
더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는 구체적인 명령을 내리기 전에 일단 결론부터 말씀하시며 확신을 주신다.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하나님은 이미 “너는 이겼다!”라는 확실한 자신감을 여호수아에게 주신 것이다. 그 다음, 하나님은 구체적인 여리고 공격 작전을 브리핑해 주신다. 그런데 그 작전이란 것이 어이없게도 “성 주위를 돌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군사들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만 행렬을 지어 하루에 한번씩, 엿새를 돌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칠 일째 되는 날에는 여섯 바퀴를 돌고 일곱 바퀴 째에 크게 나팔을 불며 소리치면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니, 그때 일시에 달려들어 성을 취하라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명령이었다.
인생에서 행동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참고 기다리는 일일 것이다. 어떨 때는 “하라”는 명령보다 “하지 말라”는 명령을 지키기가 더 어렵다. 혈기가 넘쳐흐르는 젊은 군사들이 적을 코앞에 두고 하루에 한 번, 고작 몇 십 분 행군하는 일이 다였으니 오죽 갑갑했을까? 아예 성을 공격하라는 명령이 더 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더군다나 행군하는 동안 절대 침묵하라는 명령은 더더욱 참기 어려웠으리라. 때로는 우리의 상식과는 맞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잠잠히 기다리라고 하실 때가 있다. 항변할 말이 없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보복할 힘이 없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믿고 인내하는 것이다.
끝까지 침묵하고 인내하면 처음에는 조롱하던 적의 비웃음이 차츰 두려움으로 변한다. 여리고 성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능력이 넘친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그들은, 힘이 있으면서도 침묵하며 인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더욱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여리고 성은 서서히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7일 째 성을 일곱 바퀴 도는 그 순간까지도 전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증거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러나 믿기 어려운 일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다. 가나안에서 가장 견고하다는 여리고 성벽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 바퀴만 덜 돌았어도 여리고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얼마나 많은 위대한 일들이 마지막 몇 분을 버티지 못하고 포기함으로 무산되고 말았던가? 믿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은 전리품으로 그 어떤 것도 노획하지 않고 사람에서 가축까지 철저하게 파괴시켰다. 사랑의 하나님이 왜 여리고에 대해서 이토록 잔혹한 명령을 내리셨을까? 사실 여기에는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여리고는 달의 여신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성이었다. 여리고뿐 아니라 가나안 사람들은 모두 여러 잡신들을 섬겼는데, 그 때문에 이들은 성적으로 음란하여 성병이 창궐했고 잔인하며 폭력적인 민족들이 되었다. 하나님과 대립되는 죄의 집약체와도 같았다. 그대로 놓아둔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염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하나님은 죄만큼은 철저히 다스리는 분이다. 그러나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과 그 식구들처럼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는 사람들은 용서하신다.
패배를 패배시켜라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군은 승세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서쪽에 위치한 아이 성 공략에 나섰다. 아이 성은 여리고 성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약한 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얏보고 1만 2천 명의 군사 중 3천 명만 데리고 출전한 이스라엘 군대는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아이 성 군사들에게 공격당해 일부는 죽고 나머지는 간신히 도망쳐 나왔다. 여리고 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그들에게는 이 패배의 충격이 너무나 컸다. 여호수아는 실패 후 곧바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원인을 구한다.
이유 없는 실패는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패배의 핵심 원인은 성공의 한복판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스라엘 군 지도자들 가운데 하나님이 완전히 파괴해 버리라고 하신 여리고 성의 보물들을 욕심내어 훔쳐 간직해 둔 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놀랍게도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서 최고 명문 가문인 유다 지파의 아간이라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큰 배도 작은 구멍 하나 때문에 침몰할 수 있다. 한 명의 탁월한 리더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공동체의 한 사람 한 사람이다.
또 하나의 원인으로, 여호수아에게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자만과 방심도 컸다. 하나님을 직접 독대해 지시를 들었던 그가 아이 성 전투 때는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는 얘기가 없다. 리더의 삶에 있어서 기도는 호흡과 같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통로다. 우리가 자만하게 될 때 스스로에 대해서는 과대 평가하게 되고, 적은 과소 평가하게 되어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패배에 젖어 좌절하고 있는 것을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패배를 통해 우리를 다듬으신 후, 우리가 패배를 패배시키기를 원하신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저녁때까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 이러한 영혼의 몸부림을 통해서 아름다운 영성을 가진 리더가 되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통곡하며 엎드려 있는 여호수아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신다. “죄를 찾아내서 처리하라! 백성을 정결케 하라!” 여호수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선 모든 백성들을 집결시켰다. 제비뽑기를 통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범인을 찾아냈다. 결국 아간의 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아간을 처형하는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정말 무서운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안에 있음을 철저히 깨닫는다. 그리고 공동체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공과 실패가 전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음을 절감한다.
하나님은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는 격려의 말씀을 다시 주시며 실패로 인한 아픔과 상처를 싸매어 주신다.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정탐꾼들은 기고만장하여 3천 명만 보내면 된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모든 병력을 다 투입하라고 하신다. 여호수아는 이미 승리를 보장받고서도 모든 병력과 지혜를 총동원해 철저히 준비하여 매복작전으로 아이성을 순식간에 점령해 버린다.
아이 성 공략은 여리고 성 공격 작전과는 전혀 달랐다. 여리고 성 공격 때는 공공연하게 행군하는 것이었지만 아이 성 공격 때는 매복 작전이었다. 여리고 성 공격 때는 하나님이 직접 성벽을 무너뜨리셨지만, 아이 성 공격 때는 그런 초자연적인 기적 없이 이스라엘군의 치밀하고 빠른 군사 작전을 통해 함락시켰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 케케묵은 과거의 습관과 경험만으로 앞에 놓인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라.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패배의 골짜기를 지나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승리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신참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아이 성의 패배와 회복은 아마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 실수를 바탕으로 여호수아는 이후 이스라엘을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는 무적의 군대로 만들어 낸다.
하프 타임을 가지라
대단히 잘 나가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였던 밥 버포드가 수년 전에 <하프 타임>이란 책을 썼다. 대부분의 운동 경기에 하프 타임이 꼭 필요하듯이, 인생에도 하프 타임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 책의 메시지다. 게임의 승패는 전반전 스코어가 아니라 후반전 스코어로 가름되기 때문에, 성공적인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하프 타임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 성 싸움의 패배를 극복하고 다시 대반격에 성공한 여호수아는 북쪽 에발 산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갔다. 속전속결이 생명인 전쟁터에서 승기를 잡은 이스라엘이 할 일은 계속해서 정복전쟁을 수행하는 일이겠으나 여호수아는 이대로 바로 후반전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것 같다. 그는 전 민족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숨을 돌리고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는 하프 타임을 선포했다.
에발산에 오른 여호수아는 그곳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뒤, 율법의 말씀을 돌 위에 새기고 백성들 앞에서 낭독했다. 하루 종일 말씀을 새기고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우리 인생의 진정한 우선순위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나라와 개인 모두에게 있어서 전쟁만큼 절박한 상황은 없다. 이스라엘이 바로 이런 절박한 전쟁 상황에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최상의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C. S. 루이스는 “인간 최대의 존엄성은 주도권이 아니라 반응에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듣는다. 그분이 두드리시면 우리는 연다. 또한 그분이 씨를 뿌리시면 우리는 열매를 맺는다. 전반전에서 지치고 피곤한 선수들을 하프 타임의 신호와 함께 맞아 주는 감독처럼,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하프 타임을 선언하시고 초대하시는 때가 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질 공간, 하나님이 우리의 지친 영혼을 만지실 수 있는 공간, 그것이 바로 하프 타임이며 지금 당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성공을 경영하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한 서방의 연합국들은 독일과 일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 소련의 스탈린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은 잔인한 숙청과 인권 유린으로 유명한 독재자였다. 그러나 루스벨트 대통령은 말했다. “이 다리를 건널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 그만큼 당시 상황은 급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위험한 동거였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손을 잡지 말아야 할 상대와 손을 잡았다가 후에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상황이 어렵다는 이유로, 혹은 상대의 위장에 속아서 시작한 위험한 동거로 인해 나중에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된다. 지혜와 능력을 겸비한 탁월한 지도자 여호수아, 그 역시 그런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아이 성 싸움 실패에 이어 두 번째 저지르게 된 그의 실수는 바로 기브온 부족과의 화친이었다. 가나안의 다른 성읍들과는 달리, 기브온 사람들은 그들의 연합 세력에 가담하지 않고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고자 했다. 기브온은 강한 힘을 갖고 있었지만, 동시에 현실 파악 능력도 정확했다. 강자가 강자를 알아보는 법이다. 기브온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무적의 이스라엘을 상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리더에게 있어서 무모한 낙천주의는 금물이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의 부족들과는 일체 화친하지도 말고 완전히 멸망시킬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나 가나안 땅 밖의 먼 나라와 성읍들에 한해서는 화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기브온 사람들은 이 법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고 이것을 이용했다. 마치 먼 곳에서 온 여행자들처럼 변장을 시켜 몇 사람을 이스라엘군 총사령부로 보내 먼 곳에서 온 부족이니 자신들과 평화 조약을 맺자고 간청했던 것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리더들도 처음에는 경계심을 가졌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경계심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그만 기브온 사람들의 말에 속아 화친 조약을 맺고 만다.
여호수아는 이 정도는 자신의 지혜와 상식만으로 판단해도 될 만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경에는 기브온 족속에게 속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순간,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여호수아를 포함한 지도자들을 원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도자의 존경과 인기는 이처럼 하루아침에 뒤바뀔 수 있다. 단 한 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리더십 권위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리더인 내가 하나님의 말을 안 들으면, 사람들도 내 말을 잘 안 듣는다. 그러므로 리더는 그분의 목소리를 청종함으로써 리더십의 권위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 여호수아는 리더로서 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아무리 속아서 맺은 것이라 해도 약속은 약속이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기브온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 줬다. 최선책은 아니라도 차선책을 택해서 상황을 수습한 것이다. 너무 오래 과거에 매여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실수를 박차고 일어나 의연히 앞으로 나가야 한다. 물론 그 실수에 대한 책임 또한 의연히 져야 하겠지만.
비전을 완성하는 리더십
열정적으로 현장에 뛰어들라
가나안 땅 남부의 가장 거대한 성 가운데 하나였던 기브온이 이스라엘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은 그 지역의 다른 왕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이었다. 예루살렘 왕을 중심으로 한 남부의 다섯 왕들은 시급히 연합군을 결성하여 배신한 기브온 성을 향해 칼을 들고 몰려왔다. 다급하게 된 기브온은 여호수아에게 사자를 보내 지원을 요청한다. 화친 조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려들어야 했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어차피 치러야 할 가나안 정복 전쟁이었다. 기브온은 해발 1,800m가 넘는 험한 산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결코 쉬운 행군이 아니었을 것이다. 밤새 행군한 이스라엘군은 피로에 지쳤고, 앞에는 적의 막강한 연합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호수아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준비 태세를 갖췄으며, 치밀하고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적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감행했다. 주어진 일에 열정을 가지고 매진하는 리더에게 하나님은 그 길을 인도하신다. 열정이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풀면 “하나님이 그 상황 속에 함께 계신다(God In)"라는 뜻이다. 열정이 식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문제가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확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열정은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는 리더의 가슴에서 폭발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리더에게는 초자연적인 기적이 따른다. 패주하는 가나안 남부 연합군을 추격하는 여호수아의 기도에 하나님은 태양을 하루 가까이 멈추시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당시는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과학 상식을 갖고 있었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일 뿐, 실은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이다. 많은 무신론자들은 이것이 신화적인 사건이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였다.
미 우주항공국(NASA)에서 일하는 헤롤드 힐(Harold Hill)이란 과학자가 하나님을 믿게 된 배경에는 기가 막힌 스토리가 있다. NASA의 슈퍼컴퓨터가 우주 천체의 시간으로 지구 역사를 추적해 나가던 중, 희한하게도 시간이 사라져 버린 적이 두 번 있는 것이 발견됐다. 한 번은 23시간 30분, 또 한 번은 40분 정도의 시간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시간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만큼 지구가 자전을 감속했다는 얘기다. 도저히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모두들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미스터리로 남겨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헤롤드 힐이 우연히 성경책을 읽다가 여호수아 10장 12-13절에서 그만 온몸이 얼어붙어 버렸다. 바로 지구가 하루 가까이 자전을 멈춘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곧바로 그 전쟁이 일어났던 연대를 찾아서 슈퍼컴퓨터가 잡아낸 사라진 시간의 타이밍과 맞춰 보았다. 그랬더니, 기가 막힐 정도로 거의 일치했다. 그 순간 무신론자였던 헤롤드 힐은 바닥에 엎어지면서 고백했다고 한다. “나의 하나님, 당신은 정말 계셨군요!”
태양을 멈추게 하면서까지 도주하는 적군을 섬멸한 여호수아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그들의 본거지인 성읍들까지 확실하게 파괴시킨다. 이후로도 여호수아가 이 정복 전쟁을 끝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의 추측으로는 대략 7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승리는 쉽게, 빨리 오지 않았다. 리더여, 아직 떠오르지 않은 태양을 기대하며 인고의 세월을 열심히 헤쳐 나가라.
사람을 키우라
도무지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가나안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지도자 여호수아에게도 한계의 시간이 왔다. 밑으로 모래가 다 흘러 버린 모래시계처럼 자신의 때가 다 되어 감을 알게 된 여호수아는 이제 자신에게 남은 가장 중요한 과제, 곧 하나님이 그에게 원하시는 마지막 과제를 실행해야 했다. 그것은 자신과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목숨을 걸고 7년 동안 싸워 얻은 가나안 땅을 12지파에게 골고루 분배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분배하라고 명하신 땅의 상당 부분은 아직 이스라엘이 정복하지 못한 땅이었다. 아직 정복하지도 않은 땅까지 기업으로 미리 분배하게 했다는 것은 상당히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그것은 곧 그 땅마저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라는 믿음의 요구였다. 여호수아는 그 약속을 믿고 모두 분배했다. 각 지파의 인구 분포에 따라, 가장 인구가 많은 유다 지파는 가장 넓은 영토를 분배받았다. 땅 분배 과정에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유다 지파가 받은 거대한 땅 중에서 일부를 떼어 가장 숫자가 적은 시므온 지파에게 주게 했다는 사실이다. 큰 자가 작은 자를 돌봐 주라는 하나님의 뜻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구체적으로 어느 곳을 배분 받을 것인가에 관해서는 제비뽑기를 통해 확정하라고 하셨다. 분쟁, 불만의 요소를 미리 없애기 위함이었다.
땅 분배의 명령을 잘 살펴보면,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통일성이 꾸준히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는 각 지파의 특성에 따라 최적지의 땅을 분배하지만 모두가 끊임없이 서로의 영역을 배려하고 존중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정복할 힘이 있어도 다른 지파에게 이미 배분된 땅은 피해서 다른 곳에 개척하라는 명령이 여러 번 나온다. 같은 민족끼리 과잉 경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배려하지 않고 서로 경쟁에 치우치면 서로를 무너뜨리게 된다.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모든 땅이 분배된 후에야 총지도자 여호수아에게 기업이 주어진다. 여호수아가 맨 나중에 기업을 분배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 원래 가장 계급이 높은 어른, 가장 공로가 많은 장군이 가장 먼저 전리품을 취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데, 여호수아는 그 특권을 포기한 것이다. 진정한 리더십의 권위는 쟁취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포기하는 데 있다.
또한 여호수아가 요구한 땅은 참 특이한 곳이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속한 에브라임 지파의 땅 중에서도 ‘딤낫세라’라는 산지를 원했는데, 이곳은 여호수아가 요구하기 전까지는 그 존재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 없는 성읍이었다. 당시 사람이 거주할 수 없을 정도로 황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노구를 이끌고 많은 수고를 해야 했던 곳이다. 이를 통해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평생 어떤 자세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끝까지 모범으로 보여 주었다. 진정한 리더는 가장 험하고 힘든 곳을 솔선 수범하여 개척하고 돌파구를 뚫는 사람이다.
비전을 보여주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땅을 분배받기는 했는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그 축복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유다 지파는 하나님이 반드시 쫓아내라고 하신 가나안 7대 부족 가운데 하나인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성경은 말한다. 에브라임 지파도 게셀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고 조공을 받으며 종으로 부렸다. 인간적인 편의와 유익을 얻어 보겠다는 계산에서였다. 세상적인 유익과 편의를 위해 죄와 타협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세상을 조종하는 어둠의 권세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 족속들은 낮은 포복으로 살아남아 후에 사사 시대를 지나면서 이스라엘의 정신 문화를 타락시키고, 게릴라전으로 끊임없이 괴로움을 주는 암적인 세력이 된다.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는 땅이 너무 작다고 불만을 토로한 유일한 지파들이었다. 이들에게 여호수아는 간단히 대답한다. “좁다면 네가 스스로 가나안 족속들의 산으로 올라가서 개척하여 땅을 넓혀라!” 하나님의 리더십은 좁은 현실에서 자리다툼하며 싸우지 않는다. 끝없이 새로운 분야를 찾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모범을 보이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당신과 당신 공동체의 운명은 내리막길을 향하게 될 것이다.
여호수아 18-19장을 보면 더 답답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직까지 땅을 얻지 못한 일곱 지파들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다른 지파들과 같이 땅을 분배받기는 했지만, 그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게으르고 소극적이어서 형제 지파들의 땅에 그냥 머물러 있었다. 여호수아는 이들을 엄하게 꾸짖었다. 여호수아가 탁월한 지도자임을 보여 주는 것은 그가 문제의 원인만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해결책까지 제시했다는 데 있다.
여호수아는 일곱 지파의 리더들을 소집해 놓고, 각 지파당 3명씩 대표를 뽑아 총 21명으로 구성된 토지 탐사반을 만들게 했다. 그들의 임무는 아직 분배되지 않은 땅을 탐사하여 일곱 지파에 대한 분배를 염두에 두고 성읍이나 우물의 수 그리고 지형의 특성이나 자연적인 경계 구획 등을 그려 오는 일이었다. 이 토지 탐사반은 자신들이 취할 땅을 직접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기업에 대한 소망을 고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가 앞에 놓였을 때 정면으로 부딪치면 뜻밖에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무작정 대책 없이 기다리는 것과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준비 작업을 진행하면서 기다리는 것은 천지 차이다. 지도자는 바로 이런 ‘이유 있는 기다림’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는 대안 없이 질책만 하는 사람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일에 관련된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가 참여하여 그 과정을 통해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훌륭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미 85세가 넘은 갈렙과 그 자손들의 개척기는 충격 그 자체다. 갈렙은 총지도자 여호수아와 함께 가장 혁혁한 전공을 세운 원로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좋은 땅을 택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천혜의 산지에 위치한 난공불락의 요새 헤브론, 즉 가나안 최고의 거인족인 아낙 자손들이 지키고 있는 땅을 스스로 택하여 적들을 깨끗이 격퇴시키고 헤브론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리고 그토록 힘들게 점령한 땅을 동족에게 내주고 자신은 초라한 거처로 가서 여생을 마친다. 또한 갈렙의 후계자 옷니엘도 용맹했다. 헤브론 이상으로 막강한 적들이 지키던 드빌 성을 앞장서서 무너뜨리고 갈렙의 사위가 된 그는 그 후로도 40년 동안 외적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내는 용감한 지도자로 살았다. 이들의 모습에서 훌륭한 리더의 리더십은 전염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갈렙의 용감한 개척 정신은 다음 세대에게 백 마디 연설보다 나은 모범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생각들을 열어 보라. 축복은 개척하는 자의 것이다.
칭찬하고 격려하라
정복 전쟁이 끝나고 땅 분배가 다 끝나자, 여호수아는 과거의 약속을 지켜 7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전쟁의 최선봉에 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세 지파를 불렀다. 그는 가장 먼저 이 의리의 세 지파에게 칭찬과 함께 상을 주어 부모 형제가 기다리고 있는 요단강 동편 땅으로 돌려보냈다. 리더의 중요한 사명 가운데 하나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위대한 면을 발견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 세 지파가 모세와 여호수아 2대에 걸친 하나님의 리더들을 잘 순종해 준 것을 칭찬한다. 또한 8년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변치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인내한 것을 칭찬한다. 그리고 단순히 인내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완벽하게 마무리한 것을 칭찬한다.
그러나 칭찬과 더불어 중요한 권면도 잊지 않았다. 수많은 전쟁과 인생의 위기를 넘기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기에 여호수아는 우선 하나님을 사랑할 것과 하나님의 길을 걸어갈 것을 부탁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물 속에도 길이 있고, 공중에도 길이 있다고 한다. 물고기들과 새들에게는 따로 길이 없어 보이지만, 각자 자기들의 길을 따라 이동한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길을 존중하고, 오직 그 길로만 걸어가는 것, 즉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존중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이 하나님의 길이 아니라면 가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감수해야 하는 외로움이요, 고통이다.
여호수아는 오랫동안 충실하게 자신의 리더십을 따른 의리의 세 가문들에게 앞으로도 계속 자기에게 충성하라고 하지 않았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만을 지키고 살 것을 당부할 뿐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내 사람’이 늘어나면 나의 적들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사람들을 내게 충성을 바치도록 만들면 만들수록 나를 배신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늘어난다. 사람들에게 내 말만 들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언젠가 드러날 나의 불완전함을 공동체 안에 전염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리더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보게 해 주는 사람이요, 자신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이다. 이 사실을 여호수아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여호수아는 세 지파를 떠나보내기 전에 그들에게 두 가지 중요한 선물을 주었다. 진정한 사랑을 표현하는 법이다. 그가 준 가장 중요한 선물은 축복 기도와 격려의 말이었다. 리더의 중요한 사명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팔로워들을 축복하는 일이다. 또한 ‘심히 많은’이라는 표현으로 짐작컨대 여호수아는 돌아가는 세 지파에게 예상치도 못한 풍성한 전리품을 선물로 준 듯하다. 여호수아는 아낌없이 나눠주었고, 또 그들에게도 선물을 가져가서 그들의 형제들과 나눌 것을 당부했다. 하나님의 리더십은 풍성한 나눔을 실천하는 리더십이다.
경험과 지혜를 전수하라
이제 위대한 리더 여호수아의 시대도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할 준비를 한다. 그는 마지막 역시 아름답게 맺는다. 그는 두 번에 걸친 유언을 남겼는데 첫 번째는 지도자들에게, 그 다음에는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마지막 당부를 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모든 영적 지혜를 모아 천근의 무게를 담은 유언을 남긴다. 지도자들을 향해서는 “겸손하라”, “순종하라”, “하나님만 섬기라”는 당부를 한다.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접근 방식을 달리해서 상당히 긴 부분을 이스라엘의 지난 역사 속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상기시키는 데 할애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이라는 틀 밖에서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거인 여호수아의 기나긴 유언의 피날레는 민족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는 백성들에게 “나와 내 집안은 평생 하나님만 섬기고 헌신할 텐데, 너희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하고 단호하게 물었다. 여호수아는 민족의 미래를 논하는 데 있어서, 그 당시 급변하고 있는 국제 정세나 어려운 경제 상황 같은 외적인 요소들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현실은 언제나 어렵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주위 나라들은 사납고 강하고 교활하며, 경제는 언제나 어렵다. 그러나 당면한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을 꽉 잡고 있으면 언제나 길이 열렸다. 항상 승리하고, 풍성하게 누리며, 주변 국가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마음이 겸손하고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무너지면 축복의 땅은 저주의 땅으로 변하게 될 것임을 그는 엄중히 경고했다.
▣ 저자 한홍
UC버클리 대학을 졸업하고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풀러신학대학원에서 미국 교회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온누리 교회 양재성전(횃불회관) 수석 목사이며, 국제부 본부장이다. 한동대와 숙명여대에서 리더십과 스피치, 미국 역사를 가르친 바 있다. 그는 14살에 미국으로 이민간 1.5세로서 진정한 글로벌 리더십의 길을 제시하려는 비전을 품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교계에서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세미나의 주 강사일 뿐 아니라, 연대세브란스병원, 국제산업디자인대학원의 최고 경영자, 아태재단 국제지도자 모임 등 영향력 있는 리더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특강을 하고 있다. 또한 시대를 읽는 예리한 눈과 독특한 글쓰기로 「조선일보」에?한홍의 리더십 강좌?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탁월한 커뮤니케이터이자 리더인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실력과 영성을 갈고 닦는 데 주저하지 않으며, 영향력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탁월함을 펼치고 있다. 베스트셀러로 『거인들의 발자국』『칼과 칼집』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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