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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대학생들이 학내에서 이슬람 식 스카프(히잡)를 자유롭게 착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정부의 개혁이 또 다시 좌절됐다.
AP 통신과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터키 헌법재판소는 5일 히잡 착용 금지 규정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이 터키 건국 이념 중 하나인 세속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대학 캠퍼스에서 히잡 착용 금지를 유지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터키는 인구의 99%가 이슬람교도이지만 '국부'인 케말 무스타파 아타투르크가 터키 공화국을 세울 때부터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 원칙을 지켜왔다.
친(親) 이슬람 성향의 집권 정의개발당(AKP)은 히잡 착용 금지가 표현과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면서 헌법 개정을 추진, 개정안이 지난 2월 의회를 통과했으나 결국 세속주의의 보루로 불리는 사법부의 벽에 막혀 개정에 실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개정안은 '터키 공화국은 세속주의 국가'라는 조항을 포함, 여러 개의 헌법 조항을 위반하고 있다며 무효를 선언했다. 재판부는 이어 "국가적 세속주의를 대체할 어떤 것도 제기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번 판결은 역시 헌법재판소에서 심사 중인 정의개발당 해산 및 여당 정치인들의 정치 활동 금지 요청 판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통들은 분석했다.
지난 4월 터키 검찰은 정의개발당이 히잡 착용을 허용하려고 시도하는 등 세속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며, 정당 해산과 함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 압둘라 귤 대통령 등 여당 정치인 71명에 대해 정치활동을 5년 간 금지토록 헌재에 심사를 요청한 바 있다.
터키에서 많은 세속주의자들은 히잡이 정치적 이슬람주의의 상징으로, 학내 착용을 허용할 경우 세속주의 원칙을 깨뜨릴 뿐 아니라 모든 여학생들이 이를 착용토록 압력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헌재 판결에 대해 정부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제밀 치첵 부총리는 재판부의 판결 배경을 알아본 뒤 논평하겠다고 밝혔다.
개정안 위헌 소송을 제기했던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의 오누르 오이멘 의원은 "향후 그 누구도 헌법 개정을 시도하지 못할 것"이라고 환영했다.
후사메틴 진도루크 전 국회의장은 이번 판결은 여당이 총선에서 47%의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의 히잡 착용 금지는 1997년 세속주의를 지향하는 군이 이슬람 전통을 따르는 정부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처음 헌법에 규정됐으며, 지금까지 친 이슬람 세력이 여러 번 금지 조항 폐지를 추진했으나 군부와 야당, 사법부를 중심으로 한 세속주의 세력에 막혀 번번이 실패했다.(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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