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묵상·말씀자료]/칼럼

웨스트민스터 이야기

기쁨조미료25 2007. 12. 22. 09:16
웨스트민스터 이야기
 
“웨스트민스터 이야기”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담임, 한복협 회장)

“웨스트민스터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의 삶의 여정의 특징 하나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는 1948년 8월 만 11살 때 38선을 혼자 넘어서 서울에 온 사건과 1962년 여름 단돈 100불을 가지고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 간 사건을 비롯하여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 없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앞으로, 앞으로 달려갔다. 필라델피아라는 곳이 미국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미국으로 떠났다. 귀국 후 한국으로 돌아 올 때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그저 돌아왔다. 후암교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돌아와서 후암교회의 교육 목사가 되었고 돌아온 후 김희보 학장에게 내가 돌아왔으니 신학교에 가서 강의해도 되냐고 물었고 된다고 해서 총신에 가서 강사가 되었고 교수도 되었다. 그 후도 마찬가지였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 계획 없이, 주먹구구 식으로, 모험적으로 그저 앞으로, 앞으로 달려간다. 그래서 두려움도 염려도 없다. 여유와 재미가 있을 뿐이다.
1964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훼이스 신학교를 졸업한 후(B.D. 취득) 같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입학하여 1년 반 동안 석사과정(Th. M.)에서 교회사를 전공했다. 한 동안 신약에 취미를 가지고 특히 사도 바울에 대한 취미를 가지고 공부했지만 결국 교회사를 전공하기로 하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갔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노련한 교회사 교수 울리(Woolley) 밑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지식도 많이 얻었다. 「교부연구」 시간에는 매주마다 교부 한 사람에 대해 연구 발표해야 했는데 그 과정을 통해 교부들의 사상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쌓게 되었고 「기독론 연구」에서는 다양한 역사적 상황과 신학조류의 관점에서 초대교회 기독론쟁의 발전과정을 배우고 평가할 수 있었다. 스킬톤 교수의 「교부원강」에서는 교부들의 글을 라틴원문으로 읽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잊지 못할 즐거운 일들 중의 하나는 그곳에서 함께 공부하던 손봉호, 김영익, 전연택 등 총각들이 주일 오후마다 가정을 가진 김의환, 한기범, 한의신 등 선배 목사님들의 가정을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한국 음식을 마음껏 맛있게 얻어 먹은 일이었다. 내가 주동이 되어서 첫 주 주일 오후에는 누구의 집, 둘째 주 주일 오후에는 누구의 집, 셋째 주 주일 오후에는 누구의 집, 넷째 주 주일 오후에는 누구의 집을 방문한다고 통고를 하고 정기적으로 선배 목사님들의 가정을 방문하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사모님들이 무척이나 고생들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총각들이 그런 사정도 모르고 당당하게 우리 주도적으로 그들 가정들을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음식을 얻어 먹곤 한 일이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죄송하게 느껴진다. 그 때 박희천 목사님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서로 머리를 깎아주곤 했는데 내가 박 목사님의 머리를 높이 깎아드리지 않으면 다시 더 높이 깎아달라고 부탁을 하던 일이 생각난다. 내가 탁구를 좋아해서 탁구를 치면 미국에 공부하러 왔지 탁구 치러 왔느냐고 못마땅하게 여기곤 했다. 그런데 박희천 목사님이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한 동안 소화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하고 몇 번 탁구를 친 다음부터 소화가 잘 되어서 그 다음부터는 탁구 치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했다. 그 후에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미국에 와서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탁구를 열심히 쳐야 한다.”
여름 방학 때마다 뉴욕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손봉호, 김영익, 마루야마(후에 동경대학 총장),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뉴욕에 가서 두 해 동안 일본 사람이 경영하는 “선물 파는 상점”에서 판매원의 일을 했다. 손님들의 90%가 여자들이었는데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을 터득하게 되었다. 우선 그 사람의 말로 인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스페인어, 독일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프랑스어 등으로 간단한 인사를 하면 깜짝 놀라면서 관심을 나타낸다. 그러면 손님들은 의례히 가까이 다가와서 무슨 물건을 사면 좋겠느냐고 질문을 한다. 여자들은 누군가의 권면과 추천을 들어야 마음을 정한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그 상점에서 물건을 제일 많이 파는 사람은 나였다. 그래서 주인의 신임도 많이 받았다. 주말이면 자유의 여신상 등 여기 저기 놀러 다니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가졌다. 그 때 우리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관람하면서 얼마나 큰 감동을 받으며 좋아했는지 모른다. 아마 손봉호 친구가 제일 좋아했을 것이다. 그래서 또 관람하고 또 관람했다.
내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쓴 석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신의 도성에 나타난 어거스틴의 역사이론」이었는데 이는 후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전했다. 고대 희랍의 순환사관에 반해 어거스틴은 직선적 발전사관을 내세웠다. 역사는 창조와 함께 시작하여 종말론적 완성의 목표를 향해 발전하는데 모든 역사적 발전과정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역사 안에 나타나서 발전해 나아가는 두 개의 영적 실재인 신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을 구별하여 서술했다. 신의 도성이 현세의 지상에서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는다. 현세는 완성을 향해 움직이는 과도기적 과정에 불과하다. 더욱이 현세의 삶은 죄의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어거스틴의 현세관은 어둡고(gloomy) 부정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도성이 하나님의 현세적 실재임을 어거스틴은 아울러 강조했다. 현세는 바로 신의 도성이 실현되고 완성되어져 가는 마당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역사 안에 나타나는)와 역사의 종말론적 '목적' 안에서 어거스틴은 역사의 의미를 발견한다. 좋은 공부였고 좋은 논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 더 하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수학하는 동안 나는 구약학 교수 E. J. 영(Young) 박사의 인격과 신앙과 학문에 깊은 감화를 받으며 그 분을 흠모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귀중한 것은 학문 자체라기보다는 학문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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