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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에 대한 중세시대 삽화인간의 역사가 에덴 동산으로 불리는 메소포타미아의 한
장소(창조론자의 주장, 역주)이든지 아니면 아프리카 동쪽의 대초원(진화론자의 주장, 역주)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든,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류는 도시에서 그 삶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초기에 인간의 거주지는
식량을 찾아야 하는 필요에 의해 결정되었다. 약 1만 1천 년 전인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시점까지, 인간은
마을(village)이라고 불리는 것을 형성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인간은 12만년 동안 돌아다니며 살았고,
10만 명 이상의 도시가 만들어지기까지 6천 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렸다.
1800년만해도 세계인구의
오직 3%만이 도시에 살았다. 하지만 2007년이 지나기 전에 세계의 도시 인구는 세계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설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호모 어바너스(Homo urbanus, 도시에 사는 인류라는 뜻의 합성어, 역주)가
되었다.
인간의 역사적인 측면에서 이것은 환영 받을 발전이지만 농촌에서 기인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은 신중하지 못한 말이다. 먼저 바퀴가 농촌에서 발명됐다. 도시 거주자들이 필요로 하는 음식들도 대부분 농촌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언덕과 호수들이 있는 농촌의 풍경은 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어왔다.
하지만
인간의 진보에 농촌이 기여한 것은 도시에 비해 미약하다. 도시의 발전은 곧 인류의 발전이었다. 마을의 시작은 농업과
가축의 사육으로부터 시작됐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냥하거나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지 않고, 함께 모여 살며 각자의
기술들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면서 외부로부터 더욱 안전한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농부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하자, 마을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물건들과 교환을 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2000년, 금속 화폐의 전신인
동전들이 곡물창고에 저장되었던 곡식들의 양을 표시하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필연적으로 도시들도 이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비옥한 초승달 지역(지도 참조)에 도시들이 생겨났고,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
팔레스타인에서 여리고, 우르, 니네베(Nineveh, 성경에서는 ‘니느웨’라고 불림, 역주)와 바빌론과 같은
도시들이 그 다음에 만들어졌다. 다른 도시들이 다른 곳에서도 출현했는데, 인더스(Indus) 계곡의 하라파(Harappa)와
모헨조다로(Mohenjodaro), 이집트의 멤피스(Memphis)와 터베(Thebes), 중국의 은(Yin)과
상(Shang) 왕조의 도시들, 그리스의 미케네(Mycenae), 크레타(Crete)의 크네소스(Knossos),
시리아의 우가리트(Ugarit), 그리고 기원후 3세기의 정점에 있었고 백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던 인류 최초의
거대 도시(metropolis) 로마(Rome)가 있었다.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은 안전을 의미했다.
또한 사람들은 특정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특정한 장소에 모여 살게 되었는데, 강이나 우물이 있는 곳, 식량을 얻을
수 있는 곳, 강의 어귀, 방어하기 용이한 언덕과 반도 지역과 같은 곳이 그런 장소였다. 역사학자들은 인간들의
거주지가 종교적인 목적으로 생기기도 하였다고 주장한다. 무덤과 숲, 동굴들도 사람들의 종교 의식을 위한 특별한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인간은 빵으로만 살지 않았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빵은 중요했다. 사람들은
도시에 단지 예배를 드리러 온 것 만이 아니라 물건들을 거래하기 위해 왔다. 종종 종교 사원이 시장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였는데 사람들이 사고 파는 것은 농산물만이 아니었고 도시의 숙련된 기술자들이 만든 생산품도 있었다.
도시는 물건과 사상의 교역 중심지가 되었으며, 또한 배움과 혁신, 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여러 세기를 걸쳐, 알렉산드리아(지중해 연안의 이집트 도시, 역주),
암스테르담, 캄베이(Cambay, 인도 구자랏 왕국의 도시, 역주), 콘스탄티노플(동로마 제국의 수도, 역주),
런던, 리스본, 테오티와칸(Teotihuacan, 마야 제국의 도시, 역주), 그리고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
아즈텍 왕국의 도시, 역주)에서도 이루어졌다. 도시는 인간이 농경에서 벗어나 기술을 발달시키고, 학문을 진보하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예술을 발달시킨 장소였다.
모든 도시가 동일하지는 않았지만, 도시들은 이러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도시들이 발달하면서, 로마와 같은 도시들은 종교적인 기능을 담당하였고, 콘스탄티노플이나
비자야나가라(Vijayanagara, 인도 비자야나가라 제국의 수도, 역주)은 제국의 중심지로 알려지게 되었고,
베이징은 행정의 중심지, 피렌체(Florence)는 정치 발전의 중심지, 볼로냐(Bologna, 이탈리아의 도시,
역주)와 페즈(Fez, 모로코의 도시, 역주)는 배움의 중심지, 함부르크(Hamburg)는 교역의 중심지, 톨레도(Toledo,
스페인의 도시, 역주)는 특산물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들 도시들 중 몇몇은 번성했고, 몇몇은 쇠퇴했는데,
이 도시들의 운명은 정복, 폭정이나 경제적인 몰락에 의해 결정되었다.
각 도시들의 환경이
어찌되었든지, 도시들의 활기는 기술의 발달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잉여 농산물을 생산하여 정착을 가능하게 했던 농경
발전이 그랬던 것처럼, 교통 수단의 발전이 많은 도시들에게 번영을 가져다 준 교역의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른
기술의 발달도 도시에서 인간들의 거주를 더욱 가능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로마인들은 식수를 그들의 도시로 끌어오기
위해서 수로를 건설했으며, 공중위생을 위해서 하수시설을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기술 발달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부유한 사람들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많은 도시 거주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로마의 많은 시민들도 더러운 환경에서 살다가 죽어갔다. 도시들은 사람들로 가득 찼으며, 더러웠다. 사람들은
잘 먹지 못했고, 질병들은 빠르게 번져갔다. 비록 도시들은 오랜 세월 동안 규모와 거주민 숫자 면에서 성장하였지만,
몰락하고 쇠퇴하기도 하였다. 농경 도구들의 발달과 윤작의 발달로 기원후 1000년에서 1300년 사이 유럽의 도시
인구는 두 배 이상 성장하여 약 7천만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이후 흑사병으로 유럽 도시 인구의 4분의 1이
죽었다. 농촌 사람들도 질병으로 죽었지만, 도시 거주자들은 질병에 특히 더 취약했다. 도시민들의 건강이 깨끗한 물과
위생 시설에 달려 있었지만, 이러한 것들은 도시의 극소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것이었고, 당시 비누와 약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도시에 큰 변화를 준 것은 엔진과 공장 기계의 발명이었다. 산업
혁명은 초기 도시민들의 생활을 편하게 만들지 않았지만,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줬다.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산업화
시대는 완전히 새로운 도시 시대를 탄생하게 하였다. 농촌의 많은 소작민들은 도시에서 살기 위해 떠났으며, 이러한
이주의 물결은 영국의 북쪽에서 시작하여 전 유럽과 북아메리카까지 영향을 미쳤다. 1900년에는 세계 인구의 13%가
도시에 살게 되었다.
1900년 이후 단 107년 동안 도시 인구 비율이 13%에서 50%로 도약하게
된 원동력은 역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었다. 의약과 질병들을 예방할 수 있는 의학의 발달은, 설사와 결핵, 콜레라
및 다른 병에 더 이상 영향을 받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진보는 농촌 사람들의 수명에도 영향을 주어, 농촌 인구의 증가도 불러 왔다. 그러나 인간이 이룩한 과학 기술이 농촌
지역의 부의 창출까지는 이루지 못하였다.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찾기 위해 도시로 이주하였다.
최근의 도시 팽창 규모와 속도의 가파른 상승세는 도시 성장의 역사를 중단시킬만한 어떠한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전례 없이 많은 가난한 이들이 도시로 이주해 와서는 전례가 없는 많은 아이들을 출산하고 있다. 이러한 도시화 현상은
가난한 나라들과 개발 도상국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며, 선진국들은 도시화가 이미 대부분 이루어진
상태이다.
가난한 국가에서 도시화 추세가 계속되고 있는데, 유엔은 현재 32억의 도시인구가
2030년에는 50억으로 늘어나며, 세계인구의 5명중 3명은 도시에 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가난하고
도시화가 가장 덜 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이 현상이 가장 현저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 국가들은
도시화 현상에 대처하는 데 가장 열악한 나라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인 이디오피아, 말라위(Malawi),
우간다에서는 이미 도시인구의 90%가 빈민 슬럼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안에 인구 백만
명이 넘는 도시가 500개 정도 될 것이며, 도시로 이주해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구 5백만이 넘는
대도시(metropolis)에 흡수될 것이다. 또 이주민들의 많은 이들이 인구 천만 명 이상의 거대도시(megacity)에
살게 될 것이다. 1950년에는 오직 뉴욕과 도쿄만이 크다고 할 수 있었지만, 2020년까지 델리, 다카,
자카르타, 라고스(Lagos, 나이지리아의 옛 수도, 역주), 멕시코시티, 뭄바이(Mumbai, 인도의 도시,
역주), 뉴욕, 상파울로, 도쿄를 포함하는 9개의 도시들이 2천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유엔은
전망하고 있다. 도쿄도(都)(Greater Tokyo)는 이미 인구 3천 5백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캐나다 전체
인구보다 많은 수치이다.
고대의 거대 도시 아르카디아(Arcadia)는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Virgil)에
의해 행복과 소박한 전원 생활의 이상향으로 노래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들은 아르카디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인구의 크기로 성공이 결정된다면 오늘날의 도시들은 성공한 도시들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도시들의 대부분은 가난한
나라들에 있으며, 가난한 나라에 있지 않은 경우에는, 도시민들의 대다수가 가난한 지역에 살고 있다.
그와 반대로, 선진국들의 도시들은 다른 변화를 겪고 있다. 산업 혁명과 산업화 시대에 번성했던 많은 도시들은 이제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오랫동안 도시화의 전형이었던 뉴욕조차도 1970년대에 도시 구성원들간의 충돌을 겪어야
했다. 몇몇 선진국의 도시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행정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몇몇 도시들은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무역 중심지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외의 도시들은 간신히 도시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다른 도시들은 고전하고 있다.
인간들의 도시 거주의 전통적 이유였던, 종교 사원의 존재와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이점 등이 이제 사라지고 있다. 도시에서 제공되었던 것들인 교역 장소들(shops)과 공장들이 이제 도시
외곽 지역(suburban)과 개발 도상국들에서 도시의 경쟁자로 등장하고 있는 산업 구역(industrial
park)에서도 제공되고 있다. 안전 문제는 한때 도시 거주의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였지만, 이제는 마약이 판치는
대도시의 거리보다 교외 지방(exurb)이 더 안전하게 되었다. 도시 발전을 촉진했던 과학 기술은 이제 사람들이
교외 지역에서 컴퓨터로 일 할 수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지금 많은 도시들이 번성하기 위해서 개조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번성하고 있던지, 쇠퇴하고 있던지, 거의 모든 선진국의 도시들은 교통, 오염, 에너지,
빈곤 문제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은 수많은 다른 문제를 다시 양산하고 있다. 그렇지만 선진국의
도시들은, 그 문제의 양상이 더 심각하고 활용할 자원들이 제한되어있는 가난한 도시들이 겪고 있는 상황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진국의 부유한 도시들은 비교적 덜한 인구 이동을 겪고 있지만, 가난한 국가들의 도시들은 거대한 이주민들의
물결에 맞서고 있다. 인류의 도시 역사는 지금 분기점에 와있다. <한국선교연구원kr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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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N
GMN뉴스 / (2007-10-13
09:3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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