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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과 페이스북의 전쟁, 그리고 목회자

기쁨조미료25 2011. 3. 8. 14:23

 

이번 1월 27일에 삼성경제 연구소에서 [구글과 페이스북의 인재전쟁]이라는 소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주요한 내용은 구글은 시간이 지나면서 창조적 아이디어는 점점 줄어들고 창의성 면에서 페이북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가이며, 관료적으로 변질되어가는 구조 때문에 대거 페이스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죠. 인재전쟁에서 구글이는 현재 패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이 이기고 있다는 것이죠. 인재들이 페이스북으로 이동하는 이유를 세가지로 정리합니다. 
하나는 자율성과 창의성
두번째는 비전을 제시하는 창업주,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높은 보수와 성장의 기회 즉 아메리칸드림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결국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일하기 편하고 돈 많이 주고, 미래가 보장된 기업이라는 점에서 페이스북이 좋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구글의 핵심 인재들의 이동이유와 보직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동한 인재들의 이름을 보면 한결같이 구글의 핵심멤버들입니다. 심지어는 셰릴 샌드버그는 광고판매 부사장으로 있었으며, 그렉바드로스는 수석 엔지니어 디렉터였습니다. 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인재들이 페이스북으로 이동했고, 이동할 것 같습니다. 


보고서는 이들이 이직하는 이유에 대해 세가지로 정리하고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일하기 편하고 미래가 보장된 직장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제2의 마크 주커버그가 될 수 있는 드림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금전적인 이유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문제도 역시 존재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신이 기계의 부속품처럼 의미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왜 이곳에서 일해야 하고, 어떻게 일해야 하는 가에 대하 피드백자체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죠. 화석화되는 기업 체제에 점점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죠. 점점 관료화되어가는 기업, 답답하고 소통의 부재가 심해지는 기업, 열심히 일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기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라는 존재를 구글이라는 회사 속에서 더이상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올려도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좋은 대우는 더더욱 없어지고, 화석화된 조직 속에서 부속품처럼 일만 하는 것이죠.


교회는 어떤가?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맞아야 한다.

먼저 카리스마있는 담임목사이다. 교회성장의 여러 이유가 있지만 담임목사의 존재는 거의 절대적이다. 교회의 크기(공간과 숫자만이 아닌)는 전적으로 담임목사에의해 결정된다. 담임목사의 비전과 조직관리 능력 등은 절대필요조건이다. 이젠 담임목사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는 시대는 지났다. 교회가 성장하고 전문화 되면서 담임목사는 어떤 면에서 전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일 말고는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담임목사는 전체적인 교회 분위기를 만들며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과 비전을 제시해야 만한다.

두번째는 부교역자들이다.
잘 알려진 교회들을 가보자. 수영로교회, 사랑의 교회, 호산나 교회 등은 능력있는 인재를 뽑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검증되고 실력이 어느 정도 검증된 교역자들을 청빙한다. 이러한 대형교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유학은 기본이고, 기존교회에서 성장의 경험이라는 스펙을 제시해야 한다. 교회는 담임목사 혼자서 목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조하는 부교역자들의 실력이 형편 없다면 담임목사는 원하는 목회를 할 수 없다. 호산나교회 최홍준 목사님은 인재경영에 있어서 탁월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심지어 한 명의 여전도사를 구하기 위해서 직접 사역하는 교회에 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례면에있어서도 부목사와 동일한 수준으로 책정하며 대우는 그렇게 해준다. 즉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소통이다.
어떤 교회는 교역자들이 해 년마다 바뀐다. 심지어는 6개월이 지나기 전에 바뀌는 곳도있다. 교역자가 교회를 쉽게 옮기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옮기는 자신에게도 결코 좋은 이력으로 남지 않는다. 그럼에도 옮기는 이유는 뭘까? 교역자들 이동이 빈번한 교회의 한결 같은 특징은 '소통의 부재'이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간의 소통의 부재, 교역자와 교인들 간의 소통의 부재 때문이다. 나는 단지 소통의 부재라고만 말해지만 소통의 부재 속에는 교역자로서 대우 받아할 부분들이 결여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하다.
소통의 의미 속에는 서로를 위한 배려와 존중이 포함되어있다. 어떤 교회는 부교역자들은 목회자로 인정하지도 않는 절대 담임목사 체제가 있다. 절대복종이라는 암울한 강요만 존재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목회자들이 서로 존중하지 않고 서로 배려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좋은 사역을 할 수 있을까!

연말 제직회 때나 정책 당회가 있을 때 거의 모든 교회는 현장에서 사역하는 부교역자들은 일체 참가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내년의 정책과 재정들이 계획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부디 다음해를 계획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시기에는 현장 사역자들을 불러 함께 의논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어야 한다. 담임목사는 당회에 들어가 전에 먼저 그들과 의논함으로 올바른 계획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결론적으로 좋은 교회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소통하는 교회이다. 남고 싶은 교회 일하고 싶은 교회는 각 개인이 주체가 되는 교회다. 손님처럼, 떠돌이 처럼 교회에 있어서 진정한 섬김도 헌신도 일어나지 않는다. 

 

원문:  http://392766.tistory.com/670 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