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혜·좋은자료]/신앙도서 : 좋은책

잔느귀용

기쁨조미료25 2010. 5. 19. 12:00


@서문
  몹시 타락했던 왕정, 부패한 세대 가운데서 태어났던 귀용은 당시 세상만큼이나 타락했던 교회 안에서 자랐다. 귀용의 신앙은 매단계마다 박해로 이어져 있다. 그녀는 바로 이러한 영적 황폐와 무지 속에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았다.
그럼에도 귀용의 영성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헌신은 최고의 정절에 이르렀다. 귀용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 살았고 죽을 때까지 그 교회 안에 머물렀다. 그녀는 교회 안에서 오해와 부당한 대우, 끊임없는 고통과 괴롭힘을 당했고 교회 최고 권위자들에 의해 수년간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다.

귀용에게 죄가 있다면 오직 한가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다.
그녀가 범했던 죄의 근거는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과 지극한 사랑 안에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재산을 요구하였을 때 그녀는 가난을 감수하면서 기꺼이 그들에게 모두 내주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녀의 존재 전체가 온통 그분께 사로잡힌 채 그분을 사랑한 죄 값을 치를 수 없었다. 아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기 때문이다. 귀용이 한 것은 그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당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그 이후 세대에까지 계속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잔느귀용
:잔느귀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간구하는 기도를 들은 귀용은 하나님으로부터 배워 나간다. 그러면서 결혼 생활의 모든 고통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십자가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손길에 철저히 순복한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그녀의 옛 자아를 철저히 못 박고 그녀를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게 하시며 주님과 동행하는 내적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혹독한 핍박 가운데서도 영혼들을 당신에게로 부르시는 귀한 도구로서 귀용 부인을 놀랍게 사용하신다. 그는 국가 중죄인으로 바스티유 감옥에까지 갇힌 그녀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에 더욱 깊이 참여하며 주님과 깊은 연합을 체험한다. 그녀는 출감 후 영적 갈망 때문에 계속 찾아드는 사람들에게 옛 자아의 못 박힘과 성화, 자아 부인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생활, 성령 안에서의 기도와 그리스도의 내적 생명에 대해 가르쳤다. 그녀는 1717년 6월 9일 주님께서 맡기신 지상의 사역을 마치고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70세의 나이로 본향에 돌아갔다.

@귀용 부인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얼마나 선하셨는지, 그러나 나 자신은 그분의 은혜를 얼마나 저버렸는지 그 심도를 선명한 색감으로 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영적 유익함을 주려고 의도하실 때 그것을 받고 안 받고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성화의 계획하심
-하나님은 우리의 성화를 포함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통과 피로와 수고를 통과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습니다.
바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우기 위해 허무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거룩한 성전을 세우시기 위해 먼저 인간의 기술과 힘으로 이룩해 놓고 헛되고 거만한 모든 체계들을 완전히 파괴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참혹한 폐허 위에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새롭게 건축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이 참된 지혜를 깨닫게 되는 것은 오직 모든 것에 대해서 죽고, 모든 것을 잃어 버린 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오직 그분 안에서만 존재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악의 정도에 비례하고 빚을 거저 탕감 받은 양만큼 커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공의로운 사랑과 주신 은사를 가지고 제일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공로로 말미암은 열매가 아니라 그분의 의지의 결과임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기이하게 행하셔서 그분을 섬기는 자들은 세상의 조롱 거리와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른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도구로 만드신 것은 대중의 인기를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움과 모욕의 대상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 어머니의 자녀 교육
㉠하나님은 그분 방식대로 섬김을 받으셔야 합니다.
㉡어머니의 경건 생황은 자녀들이 빗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통제 받아야 합니다.
㉢자녀들을 종으로서가 아니라 형제 자매로서 대해야 합니다.
㉣어린 자녀를 유순하게 잘 길들이려면 그들이 이따금 날개를 사용하여 날 수 있게끔 해 주어야 합니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이런 자유를 누리게 해 주되 그들에게 대하여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들의 부드러운 마음이 삐뚤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기 위해서는 즐겁고도 유용한 환경으로 자연스럽게 인도하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어린이들이 날마다 양서를 조금씩 읽게 하고, 기도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자녀들을 불공평하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3. 귀용 부인의 괴로움
-사랑하는 사람들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직접 고통 당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설사 천국과 지옥이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괴로움은 항상 남아 있었습니다. 제가 실수했을 때도 주님께서는 자비를 베풀어 용서하시며 제 영혼을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이 사랑이 매보다도 저를 천배나 더욱 견디기 어렵게 하였음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4. 귀용 부인의 헌신
-하인들조차도 하려 하지 않고 아버지도 전혀 기대하지 않는 궂은 일까지 했던 이유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을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경의를 표하기 위한 고행의 뜻도 있었습니다.

5. 귀용 부인의 기도
-나의 영이 기도를 양분으로 섭취하지 못하면 나는 하나님에 대해 냉랭해져 과거의 나쁜 습관들이 되살아났고 지독한 교만까지 덧 붙여졌습니다. 자아에 대한 애착이 내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소멸시켰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구원을 위한 기도의 필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1)하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기도이다.
=절대 선을 사랑하고 악은 다 미워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진실로 지혜로워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십시오.
=사랑 자체이신 분을 사랑하는 데 이유를 찾으려 하지 말고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기도의 영은 기도를 방해하는 것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고 더욱 성장해 나갔습니다. 오직 내 마음을 사로잡으며 내가 가장 사랑했던 유일한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에서도 만족이나 기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기도가 늘어갈수록 고난에 동참하고자 하는 열망 역시 강해졌고 모든 방면에서 무거운 십자가가 내 위로 덮쳐 왔습니다.

2)기도에 대한 사탄의 방해
-사탄은 박사들과 당대의 현인들에게 기도하게 위해서는 먼저 완전히 회심해야 한다는 그릇된 확신을 심어주려고 한다는 것을 아십시오. 사단은 기도하는 사람들에 대해 매우 무자비합니다. 기도야말로 자기 먹이를 빼앗는 무기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고행은 하게 내버려둡니다. 고행을 즐기는 사람이나 실행하는 사람들을 전혀 박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 기도 생활을 실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즉시 십자가를 짊어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형태의 핍박과 경멸은 바로 이런 생활을 위해 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6.환경에 대한 태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무거운 십자가도 내를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해 주십니다.

7.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태도
-우리가 받은 은총과 은사를 주신 분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지 은총과 은사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은사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려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시도록 제 시선을 고정시키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결하고 무조건적인 사랑, 오직 하나님의 관심을 위해서만 전진하려는 강렬한 마음을 제 안에 심어 놓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고난도 기꺼이 받고자 하는 강렬한 갈망을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짊어졌던 십자가는 이제 저의 기쁨이 되었고 제 기쁨의 특별한 대상이 되었습니다.

8.내적 욕구에 대한 하나님의 일하심
-내적인 욕구, 육체적인 힘, 이해력, 자아 의지를 남은 부분들을 뿌리 뽑지 않고 그냥 둔다면 우리는 이미 죽은 생명 안에서 그것들을 지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정결케 하려는 영혼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결점일지라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마음이 괴롭고 슬프고 어두울 때 우리는 하나님과 동역 해야 합니다.
고통을 없애거나 더하려고 하지 말고 그 고통이 다할 때까지 견뎌야 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하나님을 진정시켜 드리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고통을 견디십시오. 그렇게 머물러 있기란 매우 어렵고 상당히 확고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조급하게 성장하려고 애쓰거나 위로의 수단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실패할 것입니다.

9. 귀용 부인의 연약함
-앞으로 끊기 어려운 친밀한 관계를 그 누구와도 맺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새롭게 얻은 자유를 기뻐했습니다.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해 그 사람이 비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비난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과 그의 편에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고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처럼 다른 사람들의 미덕을 존경함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십자가는 얼마나 위대한 지요/ 다른 것은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10. 주님에 대한 귀용 부인의 사랑
-그분께서는 내게 그토록 큰 은혜를 베푸셨건만 나는 그 은혜에 충분히 감사 드리지 못했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저를 받아들이지 않으신다 해도, 저는 힘을 다하여 주님께 충실했다는 사실에서 작은 위로라도 받을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기쁨을 누리고 싶은 갈망을 갖지 못하고 다만 주님을 거스르지 않기만을 바랐습니다. 살아갈수록 더욱 죄를 짓는 것이 무거웠기에 계속 죄를 짓느니 차라리 지옥을 택한 것이 낫다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싫어하시는 것이 그토록 크게 느껴졌음에도 그분에 대한 신뢰는 더욱 커졌습니다. 마치 부족했던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소유한 것 같습니다.

11. 귀용 부인의 고통
-위대한 성도들에게서 비난받는 것은 내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고 큰 고통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린 것과 내가 저지른 모든 잘못 때문에 더 큰 고통을 느꼈습니다. 나는 메마름과 상실감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차라리 그러한 상태가 풍족한 상태보다 더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 하나님의 은사까지도 내려놓는 내적인 영혼의 본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때 나는 나의 영과 감각은 나를 무자비하게 부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으로 인하여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갈수록 내게는 모든 것이 죄처럼 보였습니다. 십자가조차도 더 이상 십자가가 아니라 나의 실제 허물로 보였습니다. 그 십자가는 모두 나의 부주의한 행동과 말 때문에 짊어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나는 오직 주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주님 아닌 다른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다는 것입니다.

12. 고통의 극복
-덕을 실천하기 위해 굴복하는 것도 강제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악의는 사라졌습니다. 그토록 허망함을 느끼기만 했던 나는 이제 가난과 보잘 것 없음과 겸손을 사랑합니다. 전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나 자신을 더 좋아했지만 이제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웃을 사랑으로 얻기 위해 나는 그들의 결점과 약점을 감당했습니다. 전에는 이러한 것을 억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늑대의 분노는 어린양의 온유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참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되어 이제는 더 이상 비참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최소한이라도 하나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통도 주님이 원하시니 능히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나를 강권한 것입니다.

13. 영혼에 대한 견해
-영혼 그 자체로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람들에 의해서 인도 되도록 스스로 남아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 그러한 영혼은 매우 평범합니다만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맡겨진 상태입니다. 모든 것이 정반대이고 절망적이어서 인간의 감각적 괴로움과 고통이 커질수록 거기에는 더 큰 평안히 있습니다. 곧 새로운 생명이 구름과 방해물을 뚫고 솟아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자기의 근원인 하나님께 완전히 넘겨질 때 영혼 안에서는 더 이상 분리나 갈등이 생기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자아를 추구하는 인간적 행동과 파수꾼에 의해 걸러지지 않는 말과 어떤 미지근한 감정에서 오는 불순물이 없습니다. 그러한 불순물은 없앨 처방책도 없어서 스스로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고 해롭기까지 하여 영혼을 더욱 더럽힐 뿐입니다.
다만 의의 태양이신 분이 그런 안개를 흩뜨리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업습니다. 모든 성화 작업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옵니다. 그 후에는 자연스런 인도하심이 있고 그 때 영혼은 거룩한 선지자처럼 찬양할 수 있습니다. 사방에서 공격해 올지라도 영혼은 바위처럼 굳건합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귀하든지 천하든지 위대하든지 작든지 달든지 쓰든지 명예와 부와 생명에 반대되는 것이든지 아니든지 그분의 명령만을 수행하려는 영혼을 무엇으로 흔들어 그 평안을 뺏을 수 있겠습니다. 우리 자아의 본선은 너무도 교활하여 모든 것을 스스로 갉아먹고, 그 이 기적은 눈길은 등지러미 도마뱀의 눈길같이 파괴적입니다. 시련은 빛이나 은사나 황홀경에서 오는 것이든지 또는 얼음처럼 차가운 벌거벗은 길에서 자아의 전직인 파괴로부터 오는 것이든지 영혼에게 필요합니다.
시련의 초기 단계에서는 시련이 오래 지속되는 동안 자아의 본성이 자리를 찾으려도 발버둥칩니다. 그때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자아의 본성을 허락지 않으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상태의 순전함에 이를 때까지 충실하게 본성을 거부해야 합니다. 영혼이 순전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는 자아의 본성이 섞임으로써 하나님의 작업을 더럽힙니다.
반면 진정으로 고통을 겪고 자아를 부인하는 영혼은 스스로 선택한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기보다는 아무리 바보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와 질서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 영혼은 오직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사람만 보고 이야기하기를 갈망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를 원하는 태도는 바로 영혼의 소생함을 주는 것입니다.

14. 귀용 부인이 선택한 하루
-내 의향으로 선택한 사람들과 한 시간을 같이 지내는 것보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가장 악한 사람들과 하루 종일 있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명령과 뜻을 따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자리에서 이탈된 때부터 제자리에 회복될 때까지 고통은 계속됩니다. 사람 가운데 있는 많은 고통들은 영혼이 제 자리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질서에 만족하지 않는 데서 옵니다. 고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순간 축적됩니다. 사람들이 이 비밀을 바르게 깨닫는다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자기의 위치에 만족할 것입니다.

15. 귀용 부인의 감당할 능력
-귀용 부인은 기도 없이는 자신의 십자가와 가난을 감당할 수 없고 기도하지 않고 살았을 때는 자신이 아주 사악했지만 기도한 이후에는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기도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구원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그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어떤 일도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되고 하나님께 모든 관심을 쏟지 못하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이해시켜 주었습니다. 아무리 끔찍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중심의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시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 안에서 정화시키시고 은혜로 받아들이십니다. 무한한 자비를 지니신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을 정화시키시기 위해 사랑과 정의의 대야, 참으로 고통스런 대야를 공급하십니다. 그 고통은 더럽혀진 정도에 비례합니다. 그 근거가 완전히 제거되었을 때 고통은 완전히 멈춥니다. 죄의 근거가 제거되자마자 그 영혼은 은혜 가운데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그런 영혼들은 죄의 모든 효력들이 다 씻겨질 때까지는 주님께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16. 하나님을 향한 귀용 부인의 사랑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잃는 것이 내게는 오히려 최선의 것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모든 것을 얻었다 해도 하나님이 제외된 것이라면 그것은 내게 가장 끔찍한 상실입니다. 비록 이 시기에 나에 대한 반대 외침이 거세졌지만 하나님께서는 많은 영혼들을 얻으시려고 나를 사용하시는 데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핍박이 더욱 심해지고 거세질 수록 주님은 내게 더 많은 자녀들을 맡기셨고 그들에게 더 큰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에 대해서 그들의 적들이 하는 말이나 아무런 근거 없이 비방을 듣고 하나님의 종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종들을 위해서도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을 닮게 하시려고 고통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그 아들과 닮는다는 것은 너무도 희귀한 일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이 아닌 그분의 생각에 따라 처신하며 자신 전체를 포기하여 하나님의 뜻과 하나 되는 데서 겪는 고통 속에서만 이루어집니다. 모든 완전함이란 인간들이 높이 평가하는 것을 추구함으로써가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영 안에서 하나님과 참된 친구가 된 사람들에게서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습과 성품을 지니고 계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