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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은 아랍어로 기록된 이슬람의 경전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코란의 구절들은 그렇게 심한 은유로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내용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의미를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다. 즉 해석에 심한 논란이 있는 내용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코란의 각 구절을 통해 상당히 호전적인 구절이 있는 반면, 아주 평화주의적인 내용도 있음을 쉽게 알게 된다. 자선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구절이 있는가하면 폭력을 강력히 옹호하고 장려하는 구절도 있다. 사랑을 설파하는가 하면, 증오를 주장하는 구절도 있다. 그러므로 코란을 통해 폭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과 관점에 따라 폭력 속에서 자신들의 의도한 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기우는 것이다.
반면 코란을 근거로 폭력을 배격하고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바와 그러한 구절들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쪽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각자가 추구하고 목적하는 바에 따라 그 목적에 합당한 내용은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고 그렇지 않은 구절은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이슬람 안에서도 다양한 파벌이 생겨나게 된다.
와하비즘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부 코란의 구절에 근거하고는 있지만, 코란만으로는 와하비즘을 구성하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와하비즘은 극단적인 종교학자들이나 이슬람 그룹들이 약간의 코란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코란을 뛰어 넘는 사고체계로 발전시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완강한 와하비즘이 철회되거나 내용의 큰 변화가 없는 한 사우디의 교육과정의 개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와하비즘이 코란의 근거가 박약한 종교이념임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에서 누리고 있는 절대적인 지위를 이용해, 와하비즘만이 순수하고 바른 이슬람 이념이며 코란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해석임을 국민들에게 일방적이고 반복적으로 주입시키고 있는 한 일부의 교과 내용만 조금 바꾸는 식의 피상적인 교육개혁은 어떤 의미도 없는 것이다. 이는 앞서서 보여준 일부 교과 내용의 사례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06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교과과정 개혁을 공개적으로 약속했었다. 그리고 그 기간은 약 1-2년이면 충분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 약속대로라면 이미 3년이 훨씬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사우디의 교육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어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방안에 있는 치워버려야 할 낡은 가재도구를 치워버리는 대신 방의 다른 한 켠으로 옮겨 놓은 정도라고나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증오를 배우는 곳은 학교에서만은 아니다. 그들은 의무적인 순니 와하비즘 신자로서 코란을 배우는 모스크의 교육시간이나 여름 신앙캠프 등 이슬람과 관련된 모든 시간과 장소를 통해서 증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슬람 모스크에 의해서 진행되는 교육은 사우디 정부가 약속한 교육개혁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설사 교육과정이 상당히 개혁되고 순화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사우디 학생들은 증오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교육을 과도하게 받게 된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사우디에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과정을 졸업하고 정상적으로 모스크를 출입한 청소년들은 평생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력적 심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우디에서는 이러한 폭력적 심성을 갖는 것을 심리적 정신적 병리현상으로 여기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혹시 있다해도 치료의 기회를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우디의 어린아이들이 과거에도 배웠고 지금도 배우는 것은 ‘알라의 기쁨을 위해 적들을 증오하고 척결하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알라와 좀 더 가까워지고, 알라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적들을 마음껏 증오해야 한다고 배운다. 알라를 기쁘게하고 알라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알라에 맞서는 자들을 증오하는 것은 신앙의 가장 큰 기둥이라고 그들은 배운다.
지금은 사우디를 떠나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우디 출신의 한 언론인은 사우디의 교육과정이 자신의 심성을 얼마나 피폐하게 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 온지 4개월쯤 후에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도 사우디 출신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모스크에 간 적이 있다. 마침 그날 따라 그 곳에 모인 사우디 출신 학생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마침 라마단 기간이었는데 미국인 학생 하나가 이슬람으로 개종했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기쁨에 넘친 표정으로 “이 (미국인) 친구는 오랜 정신적 방황과 진리에 대한 탐구 끝에 드디어 진정한 종교를 발견한 거야”라며 즐거워했다.
이에 그는 반문했다고 한다. “축하할 만한 일이군. 그런데 그렇다면 왜 우리 이슬람 친구들은 얼마 전에 기독교로 개종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친구를 죽이려고 했지 그 여기 오랜 방황 끝에 나름대로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되는 길과 종교를 발견한 것이니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지만 그의 결정을 존중해 줘야 하는거 아닐까 ”
그러자 그 친구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는 죽어야 해. 그는 잘못된 생각으로 진리를 저버린 자야. 죽음은 이슬람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합당한 징벌이라고 샤리아법은 밝혀주고 있어” 이에 그는 또다시 반문했다. “그렇지만 그 역시 오랜 기간 동안 나름대로 진리를 찾아서 헤멘 것은 마찬가지지. 지금 막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 미국인처럼 말이야.” 그러자 그는 응수했다. “이슬람을 버리고 이교도가 된 자는 죽어야 해.”(출처:매일선교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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