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CP]/열방소식·기도

미얀마의 내일에 눈물을 뿌려라

기쁨조미료25 2008. 6. 27. 07:54
미얀마의 내일에 눈물을 뿌려라
태풍 나르기스로 고통 받는 미얀마, 군부와 민주화 속에 가려진 실체는 무엇인가?

울고 있는 소리

거대한 태풍(사이클론 나르기스)에 엄청난 피해를 입은 미얀마(버마)가 숨죽여 울고 있다. 13만 명 이상의 미얀마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생명을 잃었다. 250만 명이 넘는 피해민들은 내일을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은 하루살이처럼 오직 오늘만을 생각하며 그 생명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거대한 자연을 피해보려고 어머니는 세 형제의 허리에 끈을 연결해서 나무에 매달아 놓았는가. 눈물을 줄줄 흘려내며 어린 동생을 업어 달래는 아이는 죽은 제 어미의 시체라도 찾았는가. 아무도 없는 누런 강가에서 휑한 눈으로 앉아 있는 것은 사람인가 한 연약한 짐승인가. 가족 8명을 모두 잃어버리고도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진료소를 찾은 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 이제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폭풍이 몰아치는 강을 몇 시간씩 노를 젓는 것도, 아픈 부모를 업은 채 진흙탕과 빗속을 달려야 하는 것은 그래도 그들에게 살아갈 힘이 남아 있는 것인가.

너무 멀리 있는 그들

자연이 주는 재앙은 어느 것 하나 인류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는 것이 없다. 엄청난 천연 자원을 가지고 있는 미얀마는 1950년대 초반만 해도 동남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가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걸면서, 버마 경제는 나락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지난해 “지구상에서 13번째 가난한 나라”로 꼽았을 정도인 미얀마에서는 전체 인구의 약 75%가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때 세계 제1의 쌀 수출국이었던 미얀마였지만 이제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들로 넘쳐난다. 신생아의 20~30%가 저체중으로 태어나고 있으며, 5살 이하 어린이 3명 중 한 명은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는 버마의 의료수준을 세계 191개국 가운데 190위로 꼽았다. 캄보디아와 더불어 동남아에서 에이즈 환자가 가장 많은 버마에서는 50명 중 1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마다 9만 7천여 명이 결핵에 감염되고 있다. 말라리아는 5살 이하 어린이의 최대 사망원인으로 꼽히고 있고, 해마다 3천 명 가량이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다. 가난과 정치적 박해를 피해 국경을 떠돌아다니는 난민만 200만 명을 헤아린다. 그럼에도 군사정권은 전체 예산의 30~50% 가량을 국방비에 쏟아 붓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금까지 국제사회는 미얀마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미뤄왔다. 미얀마 재난의 근본적 원인은 현 군사정권이기 때문에 이 정권을 무너뜨리지 않고는 버마의 비극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권과 민주주의를 묵살해온 미얀마 군부를 겨냥한 각종 제재·봉쇄 조치는 미얀마 국민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수백만 명이 태풍 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이때에도 미얀마는 여전히 국제 원조를 달가워하고 있지 않다. 현재 미얀마 군사정부는 국민들이 굶주림과 병으로 죽어가는 데도 구호보다는 그들의 군사정권 유지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비록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의식한 듯 조금씩 문을 열고는 있지만, 군사정권에 위협이 되는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계산하고 있다.

쇄국의 길을 가게 한 역사의 아픔

1983년 ‘아웅산묘소 폭발사건’과 ‘아웅산 수지여사의 노벨평화상’으로 잘 알려진 미얀마는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가 아니라 여러 민족이 연합하여 형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전체 인구의 70%는 버마족이며, 나머지는 카렌족, 카친족, 친족, 샨족, 몬족 등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소수민족으로 네팔족, 인따족, 화교, 타이족, 힌디족 등이 있다.

인구 5,500만 명의 미얀마는 서기 5세기경, 양곤 근처에 첫 왕국이 세워지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며 11세기 양곤 북쪽 바간에 세워진 바간제국은 남쪽 크메르제국과 경쟁할 만큼 강성한 제국이었다. 그러나 1287년 몽골족의 침략을 받아 찬란했던 바간제국은 뿌리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뒤로 수백 년간 크고 작은 왕국들이 나타나고 사라졌으며 18세기 중엽에야 강력한 버마왕국이 건설되었다. 18세기 말에는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번영을 이루었던 미얀마였지만 인도를 점령한 영국의 중국 진출의 꿈은 막을 수는 없었다.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미얀마는 1886년 영국에 합병이 되어 결국 영국령 미얀마가 되고 말았다. 한편 영국은 지방의 소수민족에게는 자치를 허용해 간접통치를 했지만 국민의 다수인 버마족에게는 직접통치를 시행했다. 영국의 이러한 분할정책(divide and rule)은 미얀마의 버마족과 소수민족 간의 갈등을 더 심화시켰다. 경찰과 군인, 그리고 관료들은 소수민족과 인도인을 이용하여 버마를 통치했다. 이러한 영국의 지배 아래에서 미얀마는 점점 인도의 일개 주(州)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일본에 점령을 당했으며, 1948년 독립할 때까지 다시 영국의 통치를 받았다. 미얀마가 독립 후 지금까지, 60년 이상 빗장을 걸어 잠그고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렇듯 외세와 이웃 국가에 의해서 그들의 역사가 짓밟혀왔기 때문이다.

타오르는 민주화의 열망

“지금 우리 앞에는 총체적 위기에 빠진 조국 버마가 있습니다. 나는 아웅산의 딸로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지난 1988년 8월 26일 버마(현 미얀마)의 당시 수도였던 랑군(현 양곤) 셰다곤 사원 부근. 나이와 계층, 출신 민족을 뛰어넘어 전국에서 몰려든 수십만 군중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지금의 국가적 위기는 사실상 제2의 독립투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국 버마는 우리에게 새로운 독립을 위해 다시 한 번 투쟁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연설이 끝나자 함성은 더욱 커졌고, 그날 이후 그의 이름은 버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신화가 됐다. 15살에 고국을 떠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28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버마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지(Aung San Suu Kyi)가 바로 그이다.

1962년 군사 쿠데타로 수립된 사회주의 미얀마는 정부의 부패와 하룻밤 새 디젤 값을 2배, 천연가스 값을 4배로 인상하는 식의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자원이 풍부함에도 세계에서 매우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전락 했다. 경제적 파탄으로 오랫동안 쌓여온 대중의 불만이 1987∼88년의 광범위한 반(反)정부 폭동으로 터졌으나 군부의 무력 진압으로 실패했다. 이 때 군사정부는 시위대를 무차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러 3천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9년에는 국호를 버마에서 미얀마로, 당시 수도인 랭군을 양곤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지금도 미얀마 군사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서방국가는 버마라는 옛 국호를 쓰고 있다.

그 후 1990년 5월 헌법 개정을 위한 총선에 약 90개의 정당이 참여해 야당인 민주국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NLD)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어 새 의회의 의석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1988년부터 권력을 장악한 군사정부의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tate Law and Order Restoration Council/SLORC)는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당선자 상당수를 투옥시켰다. SLORC가 장악한 국회는 신헌법을 제정했고, NLD의 지도자이며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한 아웅산 수지와 야당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탄압하며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1988년 귀국 후 지금까지 15년 동안 대부분의 기간을 가택연금으로 보낸 아웅산 수지는 군부로부터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평범한 한 여성으로 살았던 아웅산 수지는 자신의 조국에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은 57세의 아웅산 수지는 미얀마 국민들 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정치적 리더십이 갖추어야 할 도덕적, 행동적 자질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아웅산 수지는 미얀마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상징으로, 국제적으로는 인권과 평화의 상징으로 깊게 인식되었다. 88년 민주화 운동 후 약 19년여 세월이 흐른 2007년 9월, 버마는 다시금 민주화 열기로 가득해졌다. 하지만 2003년 5월부터 가택 연금된 아웅산 수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 바리케이드로 둘러쳐진 집 밖으로 나와 시위대를 향해 합장하며 잠시 눈물을 보이는 것뿐이었다.

아웅산 수지가 민주화운동의 유일한 희망인가? 실제로 ‘내가 시위에 참가하여 혹시 구속되거나 다치기라도 한다면 우리 부모가 슬퍼한다’ ‘우리가 아무리 외쳐도 정부에서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미얀마인들도 있다. 민주화를 향한 미얀마 국민의 열망은 정말 존재 하는가?

황금물결 속의 진실

400만개가 넘는 사찰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땅이라 미얀마인들은 그들의 나라를 ‘황금의 미얀마’라고 부른다. 도금한 사원과 추수기의 황금들판이 조화를 이루어 나라 전체를 황금색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노란색 법의를 입은 스님들이 온통 황금색으로 물든 거리를 눈을 지그시 내려감은 채 걷는다. 그 모습은 미얀마가 오랫동안 불교적 전통으로 살아왔음을 나타내준다.

미얀마는 전체인구 중 90%가 불교도다. 불교는 미얀마에서 전통적으로 국교의 위치를 누려왔다. 미얀마의 역대 왕들은 그들의 신성(神性)을 불교적 근원에서 찾았다. 그래서 군주들은 언제나 불교의 보호자요, 후원자들이었다. 또 모든 국민들의 일상생활은 불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국민들의 교육도 대부분 사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8~9세의 어린이는 지방사찰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기초교육을 받는다.

그래서 미얀마의 독립운동에 불교가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단일민족이 아닌 미얀마의 다양한 인종집단(미얀마족ㆍ샨족ㆍ몬족ㆍ아라칸족)을 한데 통합해 준 것이 불교였다. 문맹자 계층에서 엘리트에 이르는 다양한 집단을 연결시킨 것도 불교였다. 식민지배하에서 그들은 종족과 이해관계는 달라도 불교라는 공통점으로 뭉쳐 서구 식민세력에 대항할 수 있었다. ‘미얀마인이 되려면 불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인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미얀마를 비롯하여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 소승불교권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불교가 정치적 정통성을 제공해준다. 그 것은 전통적으로 불교가 정치·사회적으로 지대한 역할을 해왔던 경험 뿐 아니라 불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치사상에서 비롯된다. 즉 인간은 어찌할 수 없는 업보(業報)적 존재로서 자신이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는 정치질서 속에서 살며 모든 인간은 이러한 상황을 견뎌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정치에 대해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저항의식도 관념적으로 허물어버리는 습성이 있다. 또 불교의 승려집단인 상가(sangha)는 불교의 업(業)사상에 입각해서 왕은 전생에서 쌓은 공덕에 의해 현재 왕으로 결정되어진 것이므로 국민들은 그 지배권을 무조건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해방 후 현재까지 진행되었던 두 차례의 문민정권 창출의 노력들이 군사정권의 힘 앞에 번번이 무너진 배경에는 이러한 불교사상이 한 몫을 해 왔다는 것이다.

미얀마의 내일에 눈물을 뿌려라

사이클론 나르기스의 파괴력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피해지역이 버마의 곡창지대인 이라와디(Irrawaddy)강 주변의 삼각주인 만큼 대규모 식량부족 사태가 필연적으로 닥쳐올 것이다. 그리고 계속 더워지는 날씨 속에서 전염병은 미얀마 사람들의 생명마저 앗아갈 것이다. 긴급구호 단계가 지나면 국제사회는 다시 ‘인도적인 지원’ 대 ‘군사정권 교체’로 갈려 손가락질을 해댈지도 모른다. 그리고 ‘햇빛이론’, ‘퍼주기론’, ‘당근과 채찍 이론’ 등 여러 의견들도 나올 것이다.

미얀마의 버마인들은 자국의 소수민족들을 믿지 않는다. 이웃 인도도 태국도 중국도 더더욱 서구 세력은 믿지 않는다. 손을 내밀어도 손을 잡지 않는 이들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울고 있다.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이론으로 구호의 방향을 바꿀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죽어가는 사람은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의 영혼만 귀하고, 내 민족 사람의 영혼만 귀하고, 문명화된 사람들의 영혼만 귀하고, 그리스도인의 영혼만 귀한 것인가.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영혼이 귀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현재 악을 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영혼들을 아낀다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어서 어두움 가운데 태어나서 어두움 가운데 죽어가는 미얀마인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눈물을 뿌려야 할 것이다.

  이사랑  특파원 / (2008-06-10 18:2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