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장년설교

나3:8-19 후회 없는 선택

기쁨조미료25 2008. 6. 22. 00:25

나3:8-19 후회 없는 선택

나3:8-19까지의 말씀으로 ‘후회 없는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캐나다에 30살 된 엔드류 브레쉬라고 하는 사람이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죽어 가는 사람을 보게되었습니다.

자기의 목표를 포기하고 그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을 해서

그 사람을 어렵게 몸을 주물러 주고 해서 살려서 내려왔습니다.

그때 그 선택은 어려운 선택이었을 겁니다.

사람을 살리자니 자기의 목표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엔드류 브레쉬는 세계에서 에베레스트를 올라가다가 사람을 살린

75명중에 한사람이 됐습니다.

만약에 자기의 목표를 위해서 그 죽어 가는 사람을 놔두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캐나다 국기를 꽂고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고 하면

일평생 죽어 가는 사람의 얼굴이 계속 남아서 힘들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목표를 두고 희생을 하니까 또 2년 후에 기회가 생겼고

엔드류 브레쉬는 정상을 올라갔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75명안에 이름이 들어갔고

2년 후에 에베르스트산 정상을 정복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여기서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엔드류 브레쉬라고 하는 사람이 선택을 할 때 자기의 목표보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을 선택했더니 2개가 다 이루어 졌습니다.

그런데 만일에 죽어 가는 사람을 놔두고 자기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하면

일평생 힘든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과정도 선택의 연속입니다. 선택은 정말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되는가 내 목적, 내 목표를 이루려는 선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고 또 하나님이 원하는 선택을 하면

나중에 보면 내 목표도 이루어져 있고, 하나님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존경받는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인 나훔서는 요나서를 쓴 이후에 약 100년이 지난 후에 심판이 있는 얘기입니다.

요나 때는 왕을 비롯해서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통회 자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무릎을 꿇는 선택으로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00년 동안 하나님이 또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이후에

여기에 보면 이제는 우상을 선택을 했고 자기가 잘되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오늘 여기에는 무서운 심판의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뭐라고 얘기를 하느냐 앗수르에게 하는 말이 노아몬 봤느냐 합니다.

‘노아몬’은 애굽 남쪽에 있는 성읍입니다.

그곳은 물로 천연요새가 돼서 어느 누구도 점령을 할 수 없는 성읍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노아몬을 과거에 이렇게 심판을 했다는 겁니다.

그것을 너희가 모르느냐는 겁니다.

앗수르 너희들도 심판을 하면 결국 처절한 아픔 속으로 들어 갈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너희들도 도저히 고칠 수 없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상처가 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요나 때와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선택을 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선택을 한 결과가

이런 큰 아픔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게 되면 그 목적이 이루어질 것 같아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목적을 선택을 하게 되면 그때는 잘못간 것 같고 서운하게 느껴지고

아쉽게 느껴져도 어느 땐가 하나님이 그 뜻을 이룰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알고

항상 후회 없는 선택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무슨 후회 없는 선택을 할 것인가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일먼저 나3:8-9

8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그는 강들 사이에 있으므로 물이 둘렸으니 바다가 성루가 되었고 바다가 성벽이 되었으며

9 구스와 애굽이 그 힘이 되어 한이 없었고 붓과 루빔이 그의 돕는 자가 되었으나

우리는 무슨 선택을 해야 될것인가

첫 번째 전에 보았던 것을 교훈 삼는 선택을 해야 됩니다.

지금 여기에 앗수르에 심판을 얘기하면서 노아몬의 과거 심판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노아몬이 물로 천연적인 요새가 돼서 어느 누구도 침범하지 못했습니다.

바다가 성루가 되고 성벽이 되었던 노아몬을 구스와 애굽과 붓과 루빔이

너무나 부러운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 노아몬이 포로로 잡혀가고 어린아이들은 메우침을 당하고 존귀한 자는

제비 뽑혀 나뉘었고 모든 사슬 모든 대인은 사슬에 결박되었다고 하는 과거의 사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모르느냐 라고 하나님이 과거에 이렇게 하셨다고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앗수르 너희들도 노아몬을 멸망시킨 하나님이 과거에 멸망시켜놨는데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는 후회 없는 선택을 해야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된 것 아니냐.

노아몬의 과거를 왜 교훈 삼지 못했느냐고 여기서 지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지난 과거의 삶은 얼마든지 잘못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나 잘못을 통해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교훈을 얻어서 후회 없는 그 다음에는 올바른 선택을 해야지

그때 교훈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원하는 선택을 하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게되면 큰 아픔이 오게 된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에 있었던 모든 것은 나의 선생님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전에 하나님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얼른 깨달아 알아서 나아가야 합니다.

욥36:10을 보시기 바랍니다.

10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아오게 하시나니

엘리후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교훈을 듣게 하시고 죄악에서 명하여 돌아오게 하신다고 하나님이 한 교훈을 잘 받아드리라는 겁니다.

그래야 후회 없는 선택을 해서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다는 것입니다.

므낫세 왕은 처음에는 완전히 우상숭배 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므낫세 왕을 앗수르 쪽으로 잡혀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거기서 돌아와서 하는 말이“이제야 여호와가 하나님인지를 알았다”고

지난 과거의 삶을 교훈 삼아서 받아드리고 나서 그 다음부터 일생동안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귀한 삶을 산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지난 과거에 내 욕심 때문에 잘못 선택했다고 하면

잘못했다고 하면 그것을 가지고 거기서 교훈을 삼아서

현재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므낫세왕을 완전히 신앙개혁을 해서 ‘다윗같이’ 라는 말속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이렇게 지난 어떤 사건, 문제, 사람을 통해서 교훈 받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나3:11-12

11 너도 취한 바 되어 숨으리라. 너도 대적을 인하여 피난처를 찾아보리라.

12 너의 모든 산성은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가 흔들기만 하면 먹는 자의 입에 떨어짐과 같으리라.

후회 없는 선택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두 번째 내게 자랑스러운 것을 내버리는 선택을 해야 됩니다.

지금 여기에는 니느웨에게 하는 말입니다.

니느웨 너도 취한 바 되어 숨게 되리라. 너도 대적 때문에 피난처를 찾아 볼 것이다.

이제는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의 모든 산성은 처음 익은 열매가

조금만 흔들어도 뚝뚝 떨어지는 같이 될 것이다.

장정들은 여인같이 약하게 될 것이고, 성문들은 다 열려버릴 것이고

빗장은 다 불에 타버릴 것이다.

니느웨도 노아몬과 똑 같이 성벽을 자랑했고 또 물을 자랑했고 교만스러워서

어느 누구도 니느웨를 점령해서 멸망시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니느웨의 자랑은 성벽입니다.

니느웨의 자랑은 물, 수로입니다. 그런데 그 자랑스러운 것 때문에 니느웨가 망한 다는 것입니다.

내가 자랑스러운 것이 있다고 자랑스러운 것이 내것으로 돼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는 자랑이 돼야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속에 들어가야

그것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무엇인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갖고 있다고 하면

도리어 나중에 큰 아픔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내가 육신적으로 자랑스러운 것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되지 않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고후10:13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후10:13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바울이 얼마나 자랑스럽겠습니까? 그러나 분량밖에 자랑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자랑은 하나님이 허락해준 분량만큼 자랑했다는 겁니다.

곧 너희에게 이른 것이라는 겁니다.

바울은 자랑할 것 많지만 하나님이 허락한 것만 자랑했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허락해준 것이 나의 자랑이 돼야지

하나님 분량 안에서 자랑이 되어야지 내가 어떤 육신 적인 조건을 자랑한들

그 자랑 때문에 도리어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가 더 컸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목이 잘립니다.

압살롬은 머리털이 얼마나 자랑인지 무게가 많이 나갔는데 결국 머리털이 나무에 걸려 죽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허락해준 안에 자랑이 돼야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육신 적인 자랑은 올무가 돼서 도리어 큰 아픔을 겪는 다른 사실을

우리는 꼭 알고 항상 내게 있는 육신 적인 자랑을 내버리고 찌끼같이 여겨서

후회 없는 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에스더는 왕비가 됐습니다.

자기에게 가장 좋은 조건은 왕비의 자리입니다.

유다인이 다 죽는다고 하니까 그 자리를 버리고 3일을 금식하고 왕 앞에 나아갑니다.

왕이 금홀을 내밀지 않으면 왕비의 위치를 뺏길 뿐 아니라 죽게 됩니다.

그런데 왕비의 자리와 목숨도 내놓고 자기의 자랑스러운 조건을 다 버리고

왕 앞에 나가니 하나님이 왕의 눈을 뽕 가게 만들어서 뭐하러 왔느냐고 금홀을 내밉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어떤 자랑스러운 조건을 만물의 찌끼같이 여겨서

가장 낮아질 때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시고 우리를 높여줄 줄 믿습니다.

그런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선택에 연속입니다.

내 목표를 위해서 목적을 위해서 선택하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택을 해서 후회없 는 선택을 하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도 인정받고 존경받고

하나님에게도 인정받고 가치 있다고 평가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나3:18-19입니다.

18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19 너의 다친 것은 고칠 수 없고 네 상처는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인하여 손뼉을 치나니 이는 네 악행을 늘 받지 않은 자가 없음이 아니냐?

세 번째 남에게 아픔 준 것을 회개하는 선택을 해야 됩니다.

앗수르 왕에게 말합니다.

앗수르 왕아 네 목자가 자고,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진다.

그런데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심판 받아서 다 도망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친 것을 고칠 수도 없고, 그 상처는 얼마나 중한지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너를 인해서 손뼉을 치며 “앗수르 왕 잘 망했다”고 할거다.

왜냐면 네 악행을 받지 않은 자가 없어서 네 소식을 듣고 손바닥을 칠거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못됐다는 소식이 들리면 다른 사람이 “그분은 좀 복을 주시지”하고 안타까워해야지

“잘됐다. 그럴 줄 알았다” 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한 것 다른 사람 가슴에 다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한 것 가슴에 다 있습니다.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혹여라도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준 것이 있다고 하면

회개하는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이 내 일도 잘되게 하실 것이고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후회 없는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고정관념 속에 들어 있어서 내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보고,

내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봐서 아무리 잘못했다고 해도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잘했다고 얘기를 합니다. 왜냐 자기 방식으로 보고 자기 방식으로 생각하니까 그렇습니다.

거기를 뛰어넘는 사람이 복된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앗수르 왕은 19절에 다친 것을 고칠 수 없어요. 상처는 중해요.

그 소식을 듣는 자가 다 앗수르 왕 때문에 손뼉을 친다는 겁니다.

잘 망했다고 손뼉을 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네 악행을 받지 않은 자가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이 전부 박수를 친다는 겁니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항상 선택을 해야 되는데

남에게 아픔을 준 것을 회개하는 선택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시51:17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51:10 보세요.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깨끗한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그 말입니다.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주세요.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세요.

변화시켜 달라고 우리 입술에서 이렇게 나와야 합니다.

남에게 아픔을 준 것만큼 나중에 내가 그 아픔을 당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후회 없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치 있는 선택입니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캐나다 사람 브레쉬라는 사람이

죽어 가는 호주사람, 그 사람도 등산가인데 브레쉬가 안 데리고 내려오면 거기서 죽습니다.

그런데 목표를 바로 앞에 놔두고 내 목적을 이루는 것을 다 포기하고

그 사람을 살려 냈더니 결국 그 사람도 살고 많은 세계 등산가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2년 후에 자기 목표가 이루어 진 것을 우리는 기억하면서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에게 왔어요. 문제가 생겼어요. 요셉이 자꾸 시험을 할 때마다

우리가 우리 동생을 팔아서 이런 일이 왔는가봐 합니다.

그리고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 형들이 얘기하는 소리가 창세기에 여러 군데 나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에게 나쁜 일을 해서 이런 일을 당하는가 보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남에게 마음 아프게 하면 언젠가 내가 마음이 아프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면 그 사람 입을 통해서 영광 받는 것입니다.

브레쉬같이 자기 목표를 희생하고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살렸더니

지금까지 여러 사람 입에 브레쉬라는 이름이 이어져 가잖아요.

너무나 가치 있는 선택을 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내 목적 때문에 눈이 가려서 후회하는 선택을 하지 말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해서 정말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매일이 선택에 연속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선택을 해야 되냐면

첫 번째 전에 만났던 사람이나, 문제나, 사건이나, 일에서 교훈을 찾아내는 선택을 해야 됩니다.

두 번째는 내가 정말로 육신 적인 자랑스러운 것이 있다고 하면

그 자랑을 자랑하려 하지 말고 그 자랑을 내어버리고

하나님을 자랑할 때 정말로 올은 선택이 될 줄 믿습니다.

세 번째는 남에게 아픔을 줬다고 하면 그것을 통회 자복을 하고

내가 정말로 남을 세워주고 남을 위해주고 남을 사랑해 주는 선택을 하므로

회개하는 선택을 하므로 후회 없는 선택을 해서

남에게도 기쁨이 되어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너무나 가슴에 뭉클하고,

그 사람이 잊을 수가 없고 늘 감사가 돼서, 설 때도 추석에도 감사하고 싶고,

생일 때도 감사하고 싶고, 어떤 일을 만나면 그 분이 생각나고,

전에 그 사람 때문에 살았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내 뜻을 이루려고 선택을 하면 후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남을 위하는 선택을 하면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오늘도 내일도 이번 주간에도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http://cafe.daum.net/smbible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설교모음] > 장년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데스다(자비의집)   (0) 2008.11.21
다윗의 장막-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  (0) 2008.06.22
하나님이 준비한 사람  (0) 2008.06.14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0) 2008.06.11
시편 1-41 연구  (0) 2008.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