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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제복을 입은 119 구조대가 들것에 뭔가를 싣고 급하게 골목길에서 뛰쳐나왔다.뒤에는 가족들의 부축을 받은 50대 여성이 입을 막은 채 오열하며 들것 뒤를 따라나왔다.유족들이 나온 것을 확인한 구조대는 시신을 감싸고 있던 주머니의 지퍼를 내려 시신의 얼굴을 확인시켰다. 남편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는 이내 오열하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린 채 한동안 일어날 줄 몰랐다.
대지진 발생 닷새째인 16일 오후 3시(현지시간) 중국 쓰촨(四川)성의 소도시 �주(綿竹)시. 지진이 났을 때 자신은 외출한 상태였고 남편은 4층짜리 허름한 아파트 집에 머물고 있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그녀는 남편이 나오지 못한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거란 확신을 갖고 여진으로 위험한 이곳을 끝까지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지진 발생 4일째 남편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고 만 것이다.
지진이 휩쓸고간 �주시는 이처럼 처참 그 자체였다. 기자가 찾아간 �주시의 한왕(漢旺) 마을은 원자폭탄의 융단 폭격을 맞은 듯 갈갈이 찢겨져 폐허 그 자체였다. 4-5층짜리 건물들은 두부를 짓이겨놓은 것처렴 허무하게 무너져 있었고, 가로수들은 송두리째 뽑혀져 나뒹굴고 있었다. 주민들의 쉼터가 됐던 정자도 나무기둥이 널부러져 있고 거리 곳곳에는 보도블럭이 흩어져 있어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증명하고 있었다.
�주시는 청두에서 산간 도시 베이촨(北川)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이곳은 진앙지인 원촨(汶川)과 가까워 특히 피해가 컸다. �주시에서는 이날 오전 7시 현재 4천450명이 사망했고 인근 스팡의 사망자 3천65명을 포함하면 �주시가 소속된 더양(德陽)시의 사망자는 7천568명으로 집계됐다. 더양시에서 발생한 부상자는 5만6천75명이고 7천338명이 아직 차디찬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있다.
주택만 파괴된 것이 아니었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동방전기그룹 산하 둥팡치룬(東方汽輪)지사 공장도 작업장과 창고가 휴지조각처럼 산산조각난 상태였다. 이 곳에서만 직원과 부설 학교 소속 학생들을 포함해 378명이 사망했고 160여명이 매몰되는 피해가 났다.
이 공장 선전부의 펑자(彭駕)씨는 "119구조대와 자원봉사자들이 적극 동참해 직원들과 함께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소개하다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참았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정작 직원들을 구조하느라 여념이 없던 그의 가족들은 시내의 건물더미에 갇혀 생사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주시에서도 그래도 삶에 대한 희망은 계속되고 있었다.
멘주시 입구에는 임시로 천막을 친 구조품 집합장소가 만들어져 있었고 이곳에는 무장경찰, 인민해방군, 자원봉사자, 공무원 등 100여명이 나와 시내 곳곳으로 보낼 생수와 옷가지를 싣느라 여념이 없었다. 또 홍콩과 마카오를 비롯해 중국 전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대와 119구조대는 순식간에 이재민이 된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하고 도와주려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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