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묵상·말씀자료]/칼럼

니골라 당의 행위와 교리

기쁨조미료25 2008. 2. 13. 16:23

교권주의 비판-3 (니골라당과 기독당)
 

니골라 당의 행위와 교리

니골라 당´이라는 말은 성경에 2번 나옵니다(요한계시록 2 :6, 2 :14). 성경을 읽지 않는, 소위 선데이 크리스챤(Sunday Christian)들 중에서는 이 용어가 성경에 나오는지조차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들은 이 용어의 성경적인 의미를 가르치는 것을 꺼려합 니다. 그러나 이 용어의 의미를 올바로 아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하며, 아마 현대의 교회들에게는 치명적이기까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니골라 당'은 그리스어(헬라어)에서 음역된 것입니다. 그리스어로 '정복하다 또는 지배하다'(conquer, overcome)를 뜻하는 '니카오'와 '일반 백성 또는 평범한 사람'을 뜻하는 '라오스'(laity, layman)의 합성어입니다. 이 '라오스'가 성경에서 사용될 때는 "평신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니골라 당'은 곧 "평신도를 지배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도널드 그레이 반하우스 목사는 이것에 대하여 "평신도 위에 군림하는 목사의 높아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라킨 목사도 "이들의 목적은 성직제도를 세워서 평신도들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적 계승'과 성직자를 평신도와 구분 시키려는 교리의 기원을 볼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니골라 당은 구약에서와 같이 하나님 앞에 특별히 부르심 받아 특별한 직분을 받은 성직자(제사장)와 평신도를 구분함으로써, 성직자가 일반 신자들을 지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목회자와 평신도,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단지 은사와 직분적인 의미만 부여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평신도 할 것없이 거듭난 그리스도인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지체"요, "형제"이며, "기름부음을 받은 성직자(제사장-Priest)"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2 :5, 9을 보십시오.
 
"너희도 산 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지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만한 영적인 희생제물들을 드리는 거룩한 성직자(제사장)이 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선택받은 세대요, 왕같은 성직자(제사장)이며..."

말씀에서 떠난 현대의 많은 교회들은 교회의 감독인 목사는 하나님에 의하여 아주 특별한 기름부음을 받아 성직으로 성별된 거룩한 종이지만, 평신도는 일반적으로 교회 다니는 신자들을 총칭하여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물리적으로 그들을 지배하고, 평신도들 위에서 군림하며, 자신들을 섬겨줄 것을 강요합니다. 마치 구약의 성직자들처럼 자신들만이 특별하게 거룩한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평신도들은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절대로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다 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모두 다 한 형제입니다. 주님께서도 이것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 셨습니다(마태복음 23 :8).

단지 구별된 것은 각자가 받은 "은사적 위치"(로마서 12 :1-8; 고린도전서 12장; 에베소서 4 :7-12)와 "지역교회적 직분"(디모데전서 3장; 디도서 1,2장)의 차이일 뿐입니다. 목회자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권위와 힘은 "영적인 권위와 힘" 뿐입니다. 목회자의 영적인 권위와 힘은 어디서 오는 지 아십니까? 그것은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사도 행전 6 :4; 디모데전서 4 :5).

그런데 목회자가 "말씀과 기도" 이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 교회는 십중팔구 타락하고, 부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 여러분, 위로부터 오는 영적 권위를 힘 입으십시오! 영적 권위와 힘은 결코 물리적인 것이나 신분적인 구별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래로부터 오는 인위적인 권위를 힘입는다면, 이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 사실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교회의 직분을 맡은 목회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의 중 장로들(목사들)에게 권면하노니 ...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마지 못하여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기꺼운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의 상속인들 위에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떼들에게 본이 되라"(베드로전서 5 :1-3).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 대해서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너희 젊은이들아, 이와 같이 장로(목사)에게 순복하고, 또 너희가 다 서로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입으라. 이는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심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력한 손 아래서 스스로 겸손하라. 때가 되면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베드로전서 5 :5-6).
 
위의 말씀처럼 서로를 더 낫게 여김으로 섬겨야 할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13 :17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며 스스로 복종하라: 이는 그들이 너희 혼들을 위해 깨어있기를 마치 자기들이 회개해야 할 자들인 것같이 함이니, 그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슬픔으로 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성도들은 인도하는 목자에게 순종하여 성도들로 인하여 낙심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우리 주님께서 일곱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일곱 교회는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는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하던 당시인 A.D. 92년 ~ 95년경 소아시아 지방에 실제로 존재하던 교회들을 말합니다. 영적으로는 교회가 시작한 오순절 성령강림 때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교회역사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 중 니골라 당은 두 곳, 곧 에베소 교회(요한계시록 2 :6)와 퍼가모 교회에 주시는 말씀 가운데 있습니다(요한계시록 2 :14). 에베소 교회는 교회사에서 교회가 시작된 때로부터 A.D. 100년까지를 말하며, 퍼가모는 A.D. 325년~ 500년까지의 교회 기간을 말합니다. '에베소'란 "처음 사랑"이란 뜻이며, 퍼가모란 "숱한 결혼"이란 뜻입니다.

'니골라 당'이 언급된 두 성경구절을 자세히 비교하여 살펴본다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에베소 교회 기간에서는 단순히 "니골라 당의 행위들"이 퍼가모 교회 기간에 가서는 "니골라 당의 교리"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자그마한 씨에 불과하던 것이 뿌리를 완전히 내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초대교회 당시(에베소 교회 기간)에는 "행위들"에 불과했던 '씨'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퍼가모 교회 기간) 교회가 정치권력과 결탁함으로써 "교리"로 그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놀랄만한 일입니다. 콘스탄틴 이후 카톨릭이 그 싹을 트면서 이 "성직 교리"를 자신들의 교리로 정착시켰고, 관료주의적인 성직 계급을 본격화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의 성직 계급제도(신부 - 주교 - 대주교 - 추기경 - 교황)가 바로 이 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직자(제사장)가 되는 이 은혜의 신약시대에 구약에서의 성직자(제사장)들처럼 자신들을 특별한 사제적인 위치로 구별하여 올려놓고, 일반 평신도들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칭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요, 사람들의 죄를 사면할 수 있는 자들이며, 또한 초대교회 사도들의 사도권을 계승한 자들이요, 하나님을 대신하여 대리권을 가진 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God forbid!).

예를 들어, "신부"라는 호칭을 살펴볼 것 같으면, 한자로는 "神父"요, 영어로는 "God-Father"이니, 이를 해석하면, "하나님 아버지", 또는 "하나님의 아버지"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또는 "하나님의 아버지"라고요? 천하에 이렇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 과연 어디 있단 말입니까? 카톨릭의 신부들은 자신들이 "아버지(Father)"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에 대해 마태복음 23 :9에서 이미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 "땅 위에서 사는 사람을 너의 아버지라 칭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니라." 그런데도 그들이 지금도 "아버지"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왜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가서 한 번 물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니골라 당의 행위와 교리를 "미워하신다"(hate)는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2:6,15). 종교개혁 당시 카톨릭에 대해 대항(PROTEST!)했던 개신교, 곧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들이 오늘날 카톨릭의 전통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실로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다시 카톨릭과 손을 잡고, 연합하겠다는 저의는 또 무엇입니까?

카톨릭에 대해 "프로테스트"(protest)했던 개신교가 왜 다시 카톨릭으로 돌아간단 말입니까? 오늘 날 카톨릭의 교리와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니골라 당의 행위와 교리를 그대로 자행하고 있는 교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마지막 날에는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나를 거절하고, 내 말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말한 그 말이 그를 마지막 날에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 :48).

목회자 여러분! 주님께서는 먼저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음에까지 순종하신 것(빌립보서 2 :2-5)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도 지배하려 하지 말고, 먼저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지교회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말씀으로, 그리고 사랑함과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먼저 섬기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그리스도 우리 주님 안에서 누구보다도 여러분을 존경할 것이며, 양식을 요구하지 않아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소리 없이 여러분의 곡간을 채워 줄 것이며, 내세우거나 군림하지 않아도 여러분의 영적 권위를 세워 줄 것이며, 자원하는 영으로 여러분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또한 목자장이신 주님께서 오시면 여러분을 격려하시고, 노고를 치하하시며, 큰 상, 특히 영광의 왕관(면류관)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 중 장로들(목사들)에게 권면하노니 ...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마지 못하여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기꺼운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의 상속인들 위에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떼들에게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너희가 시들지 않는 영광의 왕관(면류관)을 받으리라"(베드로전서 5 :1-4).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께서는 올바른 성경적 가르침을 깨닫기 바라며, 특히 목회자 여러분들께는 성경적인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있길 소원하는 바입니다.


* 출처 :
http://www.blessedhopebaptists.or.kr/

 


 

 니콜라파의 "성직 복장"

요한계시록 2:6과 2:15을 보면, 니콜라파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주석서나 강해서를 살펴보아도 "니콜라파"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니콜라파"란 "Nicolaitans"를 음역한 말이다. "Nicolaitans"란, "Nikao"(지배하다)와 "Laos"(Laity, 평신도)의 합성어이다. 말 그대로 평범한 보통 사람을 누군가가 지배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주목해 보면, 계시록 2:6에서는 니콜라파의 '행위'(deeds)라고 언급되었다가, 계시록 2:15에서는 니콜라파의 '교리'(doctrine)로 바뀐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니콜라파"는 보통 사람들을 어떻게 지배할까 하는 행위(deeds)로 드러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도적 권위를 내세웠고, 자신들만이 특별한 사도들인 양, 또한 자신들만이 특별하다는 듯, 구별된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차츰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오늘날도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행위'가 '교리'로 확립되면서 '성직자 계급'이 형성되었고, 자신들만이 특별한 지위인, 제사장 직분이 되어 평범한 보통 그리스도인들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행위는 교리를 확립하기 위한 전 단계일 뿐이다).

이것은 바빌론 종교가 기독교계에 유입된 전형적인 예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로마 카톨릭이나, 사실 개신교회도 만만치는 않다. 얼마 전 신문에서 개신교 목사들의 '성직복장'(목사복)이 소개되었다. '로만 칼라'(Roman Collar)를 놓고 카톨릭과 개신교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더니, 드디어 개신교 목사들만을 위한 '성직복장'(목사복)이 나온 것이다. 카톨릭 대사전은 로만 칼라에 대해 "성직자가 자신의 공식적인 입장을 표시하기 위해 목에 두르는 칼라"라고 정의하고 있다.

검은색 셔츠 위에 받쳐 입는 흰색 칼라인 '로만 칼라'는 신부들의 전형적인 옷차림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개신교 목사들 중 일부가 이러한 복장을 하여 신부들은 내심 못마땅히 여겨 왔다. "하느님 명령에 복종하는 순명(順命)과 가정을 갖지 않는 독신(獨身)의 상징이 바로 로만 칼라입니다." "누가 신부이고, 누가 목사인지 얼른 구분되지 않으면 곤란하지 않습니까?"(조선일보, '98.10)

이에 목사들은 "87년 민주항쟁 때, 일반인들과 복장이 구분되지 않아, 곤란을 겪었던 개신교 목사들이 보라색 와이셔츠에 하얀 칼라를 했던 것이 효시다."

"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목사들도 로만 칼라를 해 왔다."(어느 외국인가? 그 목사는 배교한 외국교회 목사일뿐이다.)라며 응수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은 98년 12월 '목사복'을 제정하여 발표했다. 그들은 '로만 칼라'란 말 대신 '클레리칼 칼라'(Clerical Collar)란 말을 쓰면서, 베드로복(평상복과 예복 겸용)과 바울과 안드레복(평상복)을 내놓았다(베드로와 바울, 안드레가 들으면 기막혀 할 일이다).

개신교회의 목사들이 '성직복장'(목사복)을 하려는 의도가 무엇일까? 법관에게는 법복이 있고, 의사는 의사 가운이 있어 이런 특별한 복장으로 인해 일반 사람들과 구분되듯이 그처럼 목사도 일반인들과는 구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성직복장'(목사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목사를 직업으로 삼아 밥먹고 살기 위해 하는 사람들에게는 '목사복'이 필요한가 보다(롬 16:18, 빌 3:19).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히려 긴 옷(막 12:38, 눅 20:46)을 입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마 23:27)과 독사의 세대라고 저주하셨다(마 23:33). 베드로, 안드레, 바울 등 사도들 중 어느 누구도, '성직복장'(목사복)을 착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성직 복장'(목사복)을 말하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구약시대의 제사장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제사장에게는 제사장 복장에 대해서 명령하셨다(출 28장).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그 어떤 사도에게도, 심지어는 어떤 목사에게도 '성직복장'(목사복)을 입으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다.

신비의 바빌론 종교 제사장들만이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보통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제사장 복장을 차려입었다(알렉산더 히슬롭의 <두 바빌론> 참조). 로마 카톨릭의 요한 바오로 2세가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차려 입은 교황 복장은, 거처조차 변변치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의 모습(눅 9:58)과 전혀 닮은 구석이 없다(재림 때의 모습과는 더 닮은 점이 없다. 계 1:13-16; 19:11-18).

오늘날 개신교에서 로마 카톨릭처럼 '성직복장'(목사복)을 하려는 의도는, 자신들 성직계급의 교리(니콜라파의 교리)를 정당화하려는 것일 뿐이며 '성직복장'(목사복)을 하는 것은 '니콜라파의 교리'를 확립하기 위한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이제 개신교는 곧 로마 카톨릭을 더 많이 닮은 무언가를 발표할 것이다(성직자가 평신도를 잘 지배하기 위해). 이미 로마 카톨릭과 성공회, 정교회, 루터교, 개신교 내에 '니콜라파의 교리'는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모든 주요 행사가 똑같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부활절 계란, 크리스마스 트리, 세례식, 유아 세례식, 성찬식, 예배 때 목사 가운, 기도문 암송, 성가대의 기도송 등등).

그러나 '니콜라파의 교리'를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성직복장'(목사복)이란 미명하에 드러나는 악한 일(스카랴 11:16,17) 때문이다. 그들 '특별한 성직자'들은 자신들만의 '특별한 복장'을 하고, 그들의 양들을 철저히 속이며, 위에서 지배하려고 한다. 혹 '목사복'을 입으면 더 거룩해 보이고 평신도들보다 더 특별해 보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목사가 참으로 신실하게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지는 '성직복장'(목사복)으로 결코 입증되어지지 않는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임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우매한 목사들이 자신들을 성도들과 특별하게 구별짓기 위해 '성직복장'(목사복)을 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니콜라파의 교리'에 흠뻑 젖어 있는 '니콜라파'란 사실을 스스로 만천하에 알리는 어리석은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출처 : http://www.bsbbc.com/biblesays.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