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지스터, 환갑 맞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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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악 미세조정. 프레스퍼 에커트(전면의 노브를 돌리는 남자) 와 존 모클리(가운데) 는 포탄의 궤도를 계산하기 위해 에니악을 설계했다. 에니악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 2월까지 공개되지 않았지만, 컴퓨터 혁명을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12월16일 벨연구소의 과학자 윌리엄 쇼클리와 존 바딘, 월터 브래튼이 세계 최초로 트랜지스터를 구축하면서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 사건의 의미를 연대기순으로 훑어보고자 한다. 1. 전자공학의 여명. 진공관은 전력 소비가 많고 깨지기 쉬웠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은 무게가 28톤으로, 17만와트의 전기를 소비하고 운전자가 여러 명 필요했다. 에니악은 초당 5,000회의 연산을 수행했다. 1930년대부터 벨연구소는 진공관을 전자 스위치로 교체하는 과제를 연구해 왔다. 2. 미치광이 보스의 탄생. 기술적으로 말해서 바딘과 브래튼은 최초의 트랜지스터인 점접촉 트랜지스터를 발명했다. 이 문제를 여러 해 동안 연구해 온 쇼클리는 접합 트랜지스터를 고안했으며, 상용 트랜지스터의 토대가 되었다. 재기가 뛰어나지만 독단적이고 거만했던 쇼클리는 공로의 대부분을 인정받았다(벨연구소 직원이던 존 피어스가 이름을 고안했다). 3. 실리콘 밸리. 칩 디자이너를 위해 최고의 컨퍼런스로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ISSCC 컨퍼런스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컴퓨터 업계(스퍼리를 생각해 보라)는 동부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 스탠포드대학교 교무처장이던 프레드 터먼은 쇼클리 같은 인재를 채용하기 시작했고, 쇼클리는 로버트 노이스나 고든무어, 유진 클라이너 같은 사람들을 산타클라라 카운티로 채용했다. 200만달러짜리 집도 따라 왔다. 4. 예측 가능한 진보. 전자공학에서 주목할 만한 측면은 꾸준하고 예측 가능한 속도로 진보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사물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가격이 인하되고, 속도가 빨라지고, 크기는 줄어든다. 화학업계나 제약업계는 그렇지 않다. 자동차 산업이 10년이나 20년 동안 무어의 법칙을 따랐다면 롤스로이스는 1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그건 그렇고 자동차 크기가 1센티도 안 되기 때문에 타협안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예측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이어졌다. 5. 벤처 캐피탈과 신생기업 시장 발전. 대가를 예상할 수 없는 터무니 없는 일에 20 억달러를 투자하거나 신생연구 기업에 2,000만달러를 투자할 사람은 없다. 전자공학의 예측가능성은 투자자의 위험을 줄였고, 이는 페어차일드 반도체나 인텔같이 " 미치광이" 벤처기업에 마음껏 자금을 제공했다. 예측가능성이 없었다면 필자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상황으로 이어졌다. 6. 상호접속 세계. 휴대전화와 PC, 소셜 네트워크, 인터넷. 트랜지스터가 이런 속도로 빨라지고 저렴해지지 않았다면, 휴대폰 업계는 매년 10억대가 팔리지 않았을 것이다. 몇 년마다 전자공학의 진보를 기록하는 무어의 법칙이 죽었거나 관련이 없다고 선언하려고 노력하는 얼간이들이 간혹 있다. 이들은 주로 서버 가격이 폭락하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검색엔진에 가서 이런 예측을 연구한다. 평면 실리콘에 적용되는 무어의 법칙은 2020년경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만, 신소재나 구조가 발명되어 발전을 이어갈 것이다. 따라서 이번 달에는 잠시 짬을 내서 전화기에 들어 있는 초소형 마이크로 회로 수백 대에 고맙다고 말하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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