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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공화국의 성립 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이 된 오스만 제국은 유럽 열강들에게 분할 점령되었으나, 무스타파 케말 장군의 지휘 아래 소아시아를 비롯한 아나톨리아 반도와 트라키아 지역(터키 국토의 3%에 해당하는 유럽쪽 영토) 일부를 수복하여 터키공화국으로 거듭났다. 터키 국민의회로부터 아타투르크(터키인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은 케말 장군은 초대 대통령이 되어 많은 정치개혁을 이루었다. 특히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들 수 있겠다. 그의 사후, 수 차례의 국가적 위기와 근본주의 이슬람의 도전이 있었으나 케말주의와 동일시 되는 세속주의(정교분리)의 수호자인 군부의 개입으로 위기를 넘기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도제목 터키 정부와 군부가 국민을 위하여 공평과 정의를 수행하도록.
터키 정치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 터키의 정치 구조는 우리와는 다르다.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와 3권 분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중요한 정치 핵심 세력은 7년제의 대통령과 5년제의 국회에서 뽑히는 수상과 내각이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세력은 군부와 그 지도자들이다. 터키공화국의 국부로 불리는 아타투르크는 이 나라를 정치인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터키의 최종 수호 세력으로 군부를 두었다. 그래서 국가가 위기에 처하게 되면 군부가 정치에 개입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법으로 보장해 두었다. 또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책을 승인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의 10인 중에서 5명이 군부의 인사이다. 지금도 군부는 아타투르크의 세속주의 원칙을 사수하는 집단으로 터키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들은 성실과 청렴함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
기도제목 이 나라의 정권 담당자인 대통령과 군 사령관과 지도자들, 그리고 수상과 내각의 지도자들을 위해.
현 집권당의 성향 터키 공화국은 주로 세속주의를 기초로 하는 정당의 집권 아래 있었다. 그러나 2002년, 현 집권 여당은 이슬람 개혁주의라는 모토로 타이읍 에르도안 수상을 중심으로 국회의 3분의 2를 석권하며 정권을 차지하였다. 이들은 이슬람 근본주의 내의 개혁세력으로서, 군부의 견제를 의식하고 케말주의자들에 대해 이슬람 정권으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중립적 인상을 심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슬람 정권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 정책과 종교적 요소를 반영하는 법을 서서히 실행해 왔다. 이것은 세속주의 세력과의 정치적 긴장관계를 형성해 왔다. 2007년 선거를 통해 다시금 국민의 더 큰 지지를 받으며 2기 집권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상징적인 군부의 통수권자인 대통령까지 배출하는 정당이 되었다.
기도제목 정부가 법의 제정과 집행에 있어 개방적이고 포용력 있도록
에르게네콘‐ 터키 정계의 시한폭탄 지금 터키 사회는 2008년 10월부터 정치가, 퇴역 고위 장성, 언론인, 노조 간부 등 각계각층 인사 150여 명이 정부 전복 쿠데타 모의 사건의 혐의자로 체포되면서 시작된 에르게네콘 사건으로 아연 긴장되어있다. 에르게네콘(Ergenekon)이라는 단어는 552년 부민 칸이 알타이 산맥 속 깊은 계곡에 게르투르크 왕국을 세운 전설의 장소에서 나온 이름이자 터키의 비밀 극우 결사체 이름이다. 앙카라 근교의 에르게네콘에서 기관단총· 미사일 발사기·소총·권총·수류탄·실탄 등 대규모 무기 은닉처가 발견되면서 이 이름이 붙여졌다. 혐의자 가운데 퇴역 4성 장군, 터키 군부의 최고 안보위원회 사무총장인 툰케르 크르크, 터키 경찰의 대테러부대 총책임자가 키리크가 체포되면서 군부와 정부가 아연 긴장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과 지식인층은 이 사건을 집권당인 국가정의당과 케말리스트 진영 사이의 투쟁으로 보면서 “에르게네콘 사건은 자칫하면 케말주의자들과 이슬람주의자들간의 격렬한 반목을 깊게 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재판 결과를 염려하고 있다.오래 전부터 터키 사회에는 세 가지 금기 사항이 있다. ‘아르메니아 주민 학살’ ‘쿠르드 노동당(PKK)’ ‘세속주의 건국이념’에 관련된 말이다. 이제 ‘에르게네콘’이 추가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에르게네콘 재판은 터키 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방향타다.
기도제목 이번 사건으로 터키 내 민주주의 성숙 및 집권당의 친 이슬람 정책이 저지되도록
해결해야 할 국내의 암초들 회교 종교주의와 민족주의 등과의 마찰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당면한 문제로서 남사이프러스의 승인 문제와 1차 세계대전 당시 아르메니아인 사태에 대해 과오를 인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종교의 자유를 실제적으로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단일 종교와 사회 구조에 익숙했던 터키인들이 유럽연합 가입으로 얻게 될 경제적인 부를 위하여 사회구조를 개방함으로 야기될 사회적 혼란을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그러나 사역자들의 입장에서는, 유럽연합이 터키를 거부함으로써 발생할 수도 있었던 회교 보수사회로의 회귀를 막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으로 터키 정치와 법 그리고 국민들의 개방을 기대해 본다.
기도제목 이러한 내부의 변화가 단지 유럽의 법에 맞추기 위한 형식적인 변화가 아닌 진정한 심령의 변화를 일으키도록.
유럽연합 가입의 길 2004년 12월에 터키는 유럽연합 가입 협상국으로 지정이 되었고, 드디어 2005년 10월 3일부터 협상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프랑스 등의 유럽헌법 부결과 최종 협상에서 오스트리아의 특별회원국 지위 부여 등의 악재를 극복하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10‐15년 간의 길고 긴 가입 협상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에 대해 유럽 연합의 한 담당자가 평가하기를 ‘진짜 협상은 터키와 유럽연합 간이 아니라, 터키 내부에서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터키는 정치개혁, 관세동맹, 농업정책, 경제정책 등과 민주주의, 인권, 종교자유 등에 대해 유럽 연합의 기준에 맞는 법과 자유들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대하는 터키의 민족주의자들과 종교주의자들의 강력한 반발이 사회 여러 분야에서 발생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도제목 이 기간 동안에 외부적인 법의 변화를 통해 국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 되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