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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2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Dushanbe)의 위치한 한 공항의 주차장에는 흥분된 사람들로 붐볐다. 소리지르는 아이들과 분주한 노점상 그리고 뒤엉켜 공회전하는 차들은 마치 대중 음악 콘서트에서 열광하는 관중들과 같았다.
그러나 그 수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한 것은 음악 콘서트가 아니라 종교였다. 주차장에 있는 타직인들(Tajiks)은 하지(hajj)라고 불리는 이슬람 순례를 마치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오는 그들의 가족과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지키스탄이 구(舊)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었을 당시에는 이러한 광경은 거의 목격되지 않았다. 당시 무신론 공산정권 아래에서 종교는 통제되었고, 기도나 순례와 같은 공개적인 종교 활동은 엄격히 제한되었다.
지난 1991년 타지키스탄의 독립과 함께 이슬람의 부활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그러나 그 후 수년 동안 지속된 타지키스탄의 내전은 이슬람 순례와 같은 공개적 신앙 활동을 막는 결과를 초래했다.
신앙 표현의 자유가 꽃핀 지금, 타직인들의 이슬람 순례는 붐을 이루고 있다. 지난 2008년 최소 5,200명의 타직인들이 순례를 위해 메카를 다녀왔다. 타지키스탄 국가 종교 위원회(State Committee on Religion)에 의하면 이 수치는 2000년의 10배가 넘는 규모이다. 이제 종교 지도자들은 타직 사회에서 중요한 인사가 되었으며, 이슬람 정당들도 타지키스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슬람 순례를 다녀오는 이들을 태운 10여대의 비행기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세 자녀를 둔 25세의 여성 마르하보(Marhabo)는 강추위의 날씨 속에서도 40명이 넘는 가족들과 함께 순례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그녀의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무슬림이라고 밝힌 마르하보는, 전에는 타지키스탄에 이슬람 사원이 없었지만 지금은 많다고 말했다.
타지키스탄에서 종교가 다시 부흥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우려와 경고로 다가오고 있다. 경제 위기가 타지키스탄의 무슬림들을 근본주의 또는 무장단체 결성으로 이끌지 모른다는 우려이다.
타지키스탄 인구 중 절반이 하루 생활비가 2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고, 현재 나라의 산업화는 뒷걸음질 하고 있다. 이곳 경제 연구소(the Institute of Economic Studies)의 코자마크마드 우마로브(Khojamakhmad Umarov) 교수는, 1980년대 중반 타지키스탄 인구의 63%가 시골에 살았지만 현재는 시골 인구가 전체 인구의 77%에 이른다고 말했다.
타지키스탄 경제의 최대 기여자는 외국으로 나간 타직인 노동자들인데 현재 이들의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타지키스탄의 한 연구소인 샤크(Sharq)의 무자파르 오리모브(Muzaffar Olimov) 소장이 밝혔다. 현재 타직 사회에서는 종교 지도자들이 과도한 세력을 얻고 있으며 공교육이 거의 붕괴되자 타직인들이 그들의 자녀를 종교 학교에 위탁하고 있다고 오리모브 소장은 말했다. 이슬람 지도자들이 타직 사회를 좌지우지 하고 있으며 이웃 나라인 아프가니스탄의 전철을 따라가고 있다고, 오리모브 소장은 주장했다.
타지키스탄 사회에는 아직 과거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잔재들이 많이 남아있다. 소비에트 시절 당시 나무를 장식하고 선물을 주고 받으며 새해를 맞는 풍습을 여전히 많은 타직 가정들이 지키고 있으며, 심지어는 무슬림 가정들도 그러하다.
무슬림 여성 마르하보는 새해 풍습이 무슬림 절기는 아니지만 이 전통을 지키고 있으며 이 날 자신의 딸이 학교에서 배운 시를 낭송한다고 말했다. 마르하보는 집에 가서 먹을 양 구이 음식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녀는, 타지키스탄 정부가 최근 취한 결혼이나 다른 가족 행사를 위해 과소비를 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출발한 비행기가 두샨베의 공항에 도착하여 순례를 떠났던 가족들이 들어오자 기다리던 사람들은 결혼식 예식 때처럼 사탕을 던졌다. 마침내 하얀색 긴 의복과 전통 모자를 쓴 마르하보의 아버지가 걸어 나오자, 가족들은 환영의 입맞춤으로 그를 반겼다. (출처: The New York Times=한국선교연구원(krim.org) 파발마 6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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