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Network Quotient : 공존지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이를 잘 꾸려나가는 능력을 말한다. 21세기는 그동안 IQ나 EQ와 같은 낡은 틀에서 벗어나 NQ를 높이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한다. 개인 중심의 성공에 집착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도우며 서로의 성공을 도모해야 한다는 말이다. Copyrightⓒ 2003 by BookCosmos. All Rights Reserved. Summarized with the Permission from Gimm-Young Publisher, Inc. 본 도서정보는 김영사의 인가를 얻어 (주)북코스모스에서 제작하였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무단전재나 무단복제 및 전송을 금하며, 원본 도서의 출판권과 전송권은 김영사에 있습니다. NQ로 살아라 김무곤 지음
NQ로 살아라
김무곤 지음
김영사/2003년 9월/265쪽/10,900원
▣ 저 자 김무곤
그 동안 언론학회와 방송학회 이사, KBS 객원해설위원, MBC <100분 토론> 자문위원, 한국인터넷신문협회와 한국편집기자협회의 자문교수를 지냈고,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한 긴급행동’의 간사로 활동하며 사회참여의 폭을 넓혀왔다. 또 2002년에는 국내 최초로 인터넷과 기존 언론을 통합한 대통령 후보 토론회 <2002 정치 리더와 네티즌의 만남>을 조직하고 직접 사회를 맡기도 하였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동국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Short Summary
NQ(공존지수)는 다른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얼마나 잘 만들고, 잘 꾸려나가는가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그것을 알아보는 지수이다. 갈수록 잘되는 사람들은 스스로 ‘좋은 네트워크’를 구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약한 배경을 불평하지 않는다. 자신의 어려운 환경을 자신을 좋아하고 지지하고 도와주는 환경으로 바꾼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먼저 사람에게 다가서고, 먼저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먼저 자기 것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NQ의 원조 예수, 자신을 낮춰 결국 세계를 정복한 유비, 숨겨진 NQ의 천재 석가모니 등 NQ가 높은 역사적 인물에게서 알아보는 성공 법칙이 담겨 있다.
▣ 차 례
프롤로그
1. 이제 NQ의 시대다
2. NQ를 올려라
3. NQ가 높은 사람들
4. 우리 아이, NQ로 키워라
에필로그
NQ로 살아라
김무곤 지음
김영사/2003년 9월/265쪽/10,900원
1장 이제 NQ의 시대다
이제 당신이 기댈 언덕은 없다
아직도 학연, 지연, 혈연을 찾는가? 아직도 출신 학교, 출신 지역, 가문이 자신의 인생을 든든하게 보장해줄 거라고 믿는가? 우리 나라는 아직도 개각이 발표되면 늘 각 지방별로 각료들을 나눠서 호남이 몇 퍼센트, 영남이 몇 퍼센트를 차지했느니, 혹은 어느 고교, 대학 출신이 득세했느니 하는 하마평이 신문에 실리는 나라이다. 아직 우리 사회가 연줄 중심의 사회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것이 결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모교는 영원하다’고 외치던 동문들이 이제 같은 대학교에 다니면서도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고향만 같으면 ‘형님’, ‘동생’ 하면서 밤새 어울리던 향우회도 갈수록 보기 힘들다. 문중의 전통과 항렬을 찾던 ‘가문의 영광’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요즘에는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시고 나면 형제들도 서로 잘 안 만나는 세상이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별도의 로비스트가 필요 없는 사회였다. 친척이나 동창회가 로비회사이고 광고회사이며 해결사이자 ‘조직’인데, 또 무슨 새로운 사람을 사귈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제 이런 구조가 허물어지고 있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기존의 연줄중심 사회는 무너지고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빽과 줄’이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뻗어나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혈연, 지연, 학연에 기대서 얻어낼 것이 예전보다 훨씬 적어졌기 때문이다.
NQ가 높은 기업, 위기에 강한 기업
A식품은 1961년에 창업하여 1963년에 우리 나라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생산 판매한 회사다. A식품 그룹의 J회장은 우연히 남대문 시장을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것을 보고 우리 나라의 식량 자급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 과거 일본에서 먹어본 라면이 생각이 났고, 이것이야말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하고는 정부를 설득하여 어렵게 5만 달러를 빌려서, 일본의 식품회사로부터 두 대의 기계와 기술을 도입해 1963년 마침내 A라면을 탄생시켰다. 그 후 A식품은 다른 업체들이 라면 생산에 뛰어든 이후에도 시장점유율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업계의 독보적인 리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89년 승승장구하던 A식품은 이른바 ‘우지파동’이라는 직격탄을 맞아 30년 가까이 쌓아온 명성이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4천여 명이던 종업원들 가운데 천여 명이 직장을 떠났고, 65퍼센트를 웃돌던 라면 시장점유율도 6퍼센트대로 곤두박질쳤다. 우지 사건은 수입 우지를 가공원료로 하여 식품을 생산하는 A식품을 비롯한 관련업체 5개사 대표가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 입건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이 때 검찰이 발표한 ‘공업용 우지’라는 용어를 매스컴이 그대로 보도함으로써 A식품의 기업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고, 시장점유율 급락으로 회사가 존폐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사건 발생 12일 만에 보사부장관이 ‘라면 무해 판정’을 내렸지만, 이 사건으로 인하여 A식품은 참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재산의 손실도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J회장으로서는 40년 동안 국민 건강 증진에 노력해온 회사의 명예가 하루아침에 실추된 것이 무엇보다 가슴 아팠다. 사건 발생 이전까지만 해도 ‘A라면’은 국내 라면의 원조로서 국내 품질 인증은 물론, 세계 식품업계로부터 공인된 수출상품으로 각광을 받았는데, 일순간에 불량 식품으로 전락해 수출시장까지 대부분 잃게 됨으로써 수십 년 동안 공들여 쌓은 국제적 명성과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화(禍)는 잇따라 온다고 했던가. 우지 파동으로 위기를 겪는 와중에 1997년 외환위기라는 악재가 겹치자 A식품은 마침내 1998년 1월 부도가 나고 말았다. 결국 도산 위기에 처한 A식품을 포함한 4개 계열사에 대해 법원에 화의신청을 하게 되었다. 우지 파동에 따른 매출 격감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 한파가 밀려왔던 것이다. J회장은 크게 낙담했다.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을 실천해오던 그였다. 공부하고 싶지만 돈 없는 학생들을 위해 장학회를 설립하고, 의료 혜택이 부족한 산간지역에 의료시설을 만들었던 그였다. 이제 A식품의 회생 가능성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일반 국민 사이에서 ‘A식품 살리기’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A식품의 공장이 위치해 있던 부산시 K군 주민들의 도움은 말 그대로 가뭄에 단비였다. 당시의 신문 보도를 보자.
지역 새마을부녀회와 농협주부대학 총동창회 등 6개 여성단체들이 지역 향토기업인 A식품 살리기 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 이들 단체들은 시내 대형 식당 등지에 라면, 식용유, 장류 등 A식품 애용호소문 수백 통을 발송하고 이어 거리 곳곳에 ‘향토기업을 살리자’는 플래카드를 부착하고는 지역 부녀회별로 라면 단체구매와 라면 1가구 1상자 구매, 친척들에게 라면 선물하기 등의 가두캠페인도 벌이기로 했다. A식품 관계자는 “부도 이후 직원들이 눈물겨운 구사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지역 주민들까지 도와주러 나섰다.”며 고마워하고 “회사가 정상화되면 군민들의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겠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 「부산일보」 1998년 3월 10일자
회사를 살리겠다는 사원의 열의와 각계의 지원에 힘입어서일까. 법원은 A식품의 화의를 인가했고, A식품은 이후 비업무용 토지와 계열사의 매각과 함께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뼈를 깎는 자구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자구책과 신제품 개발에 힘입어 시장점유율이 20퍼센트대로 올라갔고, 2002년에는 200억 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낼 수 있었다. 2003년에는 채권단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채무 재조정을 인가하여 경영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것은 국내 화의기업으로는 최초로 있는 일이다. 이 모두가 A식품이 평소에 NQ를 키워온 덕이다. 공장이 소재한 지역 주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또 화의조치 후에는 채권단의 빚을 꼬박꼬박 잘 갚아 신용을 지켰다. 이처럼 NQ가 높은 기업은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2장 NQ를 올려라
NQ를 높이면 싹수가 보인다
‘싸가지’는 싹수의 남도 사투리다. 싹이 막 나오기 시작하는 처음 상태를 싹수라고 한다. 싹수란 보통 어떤 일이나 사람의 앞길이 잘 트일 징조나 낌새의 의미로 쓰인다. 그러니 ‘싹수가 있다’와 ‘싹수가 없다’라는 말은 각각 최고의 칭찬, 최악의 욕이 되는 셈이다. 지금 고생하면서 열심히 사는 것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이다. 지금 노력하면 행복한 앞날이 보장된다는 믿음도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싸가지’는 그만큼 중요하다.
Y는 30대 후반의 건축가다.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7년 근무한 뒤 개인사무소를 열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기대주다. 그는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을 뿐더러 감리인, 현장 인부들과도 격의 없이 지낸다. 그런 Y가 얼마 전 지나가는 말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자기는 친구 하나 없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상담하러 올 정도로 높은 NQ를 가진 지금의 Y를 보면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일이다.
Y는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명문 고등학교를 나왔고 좋은 대학에 수석 입학해서 수석으로 졸업했다. 집안도 넉넉하고 부모님들도 사회 명사였다. Y는 졸업도 하기 전에 이미 대기업에 스카우트된 상태였다. Y의 표현으로는 그 시절 세상에 부러운 게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래가 보장된 유능한 건축가 Y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을 무시했고, 언제나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다. 꼭 필요한 사무적인 이야기 외에는 다른 사람과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Y 자신은 한번도 그런 생활이 불편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언제부터인가 잘될 것 같은 일이 마지막에 틀어지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운이 나빠서려니’라고만 생각했다.
하루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게 되었다. “Y라는 인간 이야기 들어봤어? 그 인간 얼마 못 가겠더라고. 들어보니 정말 싸가지 없는 인간이더구먼.” 자기를 모르는 사람조차도 그런 이야기를 하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평판이야 들어보나 마나 뻔했다. 아찔했다. Y는 그때까지 주위 사람들을 신경 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문득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부터 Y는 스스로를 바꿨다. 먼저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자세를 낮췄다. 그러니 상대방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로 작정하고 실천했다. Y가 NQ를 높이면서 Y에게는 ‘싸가지’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Y를 싹수가 보이는 유망한 건축인이라고 칭찬하기 시작했다. 각종 건축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에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NQ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누구나 맘만 먹으면 높일 수 있다. NQ를 높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NQ가 곧 싹수이기 때문이다. 설혹 지금 싹수가 노랗다고 절망하지 말고, 색깔을 바꾸자. NQ를 높이면 싹수의 색깔은 저절로 바뀐다. 싸가지 없는 실력자는 살아남기 힘들지만, 특출난 능력은 없어도 싸가지 있는 보통 사람은 마음 편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
Win-Win, 남이 잘되어야 나도 잘된다
어제는 인민군이 쳐들어왔었고, 오늘은 국군이 들이닥쳤다. 그렇게 몇 개월이 반복되었다. 온 가족이 잠든 한밤중에 누군가 느닷없이 방안으로 들어와 다짜고짜 “너는 어느 편이냐?”라고 묻는다.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갖다대고 묻는 통에 상대방이 인민군인지 국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죽을 판국이다. 우물쭈물해도 죽기는 마찬가지다. 자, 당신은 어느 쪽이라고 답하겠는가?
윤택림 선생이 쓴 『한 빨갱이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에는 한국전쟁의 일상사가 아주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에서 윤택림 선생은 한국전쟁 때 사람들을 죽이고 살린 것은 좌우 이념이 아니라 ‘마을에서의 평판’이라고 말한다. 평소에 자기 마을에서 쌓아온 공정성과 신뢰감이 한 사람의 생사를 갈랐다는 말이다. 즉, 그들은 자신의 지역 네트워크에서 평소에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왔던 NQ 높은 사람들이었다.
NQ가 높은 사람들은 위기 대응 능력이 뛰어나다. 평소에 형성한 자신의 네트워크가 위기를 최소한으로 막아준다. 그보다 NQ가 더 높은 사람들은 위기 상황 자체를 미리 방지한다. 네트워크 내에서 위험 요소들을 하나씩 줄여가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 한 사람의 평판이 그의 생사를 결정했듯, 그보다 더 복잡하고 치열한 오늘날에는 NQ가 생사를 가른다.
NQ 시대의 생존 전략은 ‘너 죽고 나 죽고’가 아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도 아니다. ‘네가 잘살아야 나도 산다.’는 공존의 법칙이 NQ 시대의 기본 개념이자 최종 목표다. 한 사람이라도 더 밟고 올라서야 성공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서로 잘살 수 있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NQ도 낮고 시대 흐름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호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개인과 기업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이제 공존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NQ 역시 마찬가지다. NQ가 낮은 사람이 기댈 곳은 더 이상 없다. ‘나는 IQ가 높으니 걱정 없다.’는 생각은 천만의 말씀이다. IQ나 IQ를 바탕으로 굳어진 연줄에만 기대고 있다가는 내일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자기 혼자 잘되겠다고 NQ에는 관심도 없다가 자기와 자기 주변 사람들 모두를 쫄딱 망하게 하느냐, 아니면 NQ를 높여 다 함께 잘되는 길을 택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 결과는 모두에게 돌아온다.
No Give No Take,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준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뇌물’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NQ는 결코 ‘대가성 뇌물’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NQ에서 ‘준다’는 개념은 상대방에게 먼저 신뢰를 준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선뜻 준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호의와 관심 없이도 과연 가능할까? 저 사람은 완전히 봉이다 싶을 정도로 잘 주는 사람을 보면 모두 NQ가 높다.
많이 주는 건 좋지만, 주고 나서 생색내는 사람들은 NQ가 별로 높지 않은 사람들이다. 준 다음에 자기가 준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 제일 좋다. 그래야 인간관계에 금이 안 간다. ‘내가 이만큼 준 걸 왜 저 사람은 몰라줄까?’, ‘내가 먼저 주었으니 다음에는 그만큼 돌려받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차라리 안 주는 게 낫다.
태원 영화사의 이태원 사장은 몇 해 전 검찰에 불려간 적이 있었다. 죄목은 극장 입장권 수입에 대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동안의 잘못된 관행으로 대부분의 극장들이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세금 포탈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시선이 곱지 않았고, 그리하여 섣불리 변호하기에도 난처한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자 안성기, 강수연, 오정해 등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배우들이 탄원서를 들고 검찰로 몰려왔다. 그들은 검찰에서 정중하게 “이태원 사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나쁘지만, 그가 한국 영화를 위해 기여한 바가 너무 크다. 그가 구속되어 벌을 받으면 한국 영화산업이 위험해진다. 한 번만 그를 용서해 달라.”라고 빌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일은 한국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전․현직 영화 담당 기자들이 연대 서명을 해서 이태원 사장의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이태원 사장은 경기도 중소 도시의 영화관 사장 출신이다. 공부를 대단히 많이 하지도 않았고 대단한 연줄도 없었다. 영화 만들고 극장에 영화를 상영하는 일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다. 영화 일로 모스크바를 다녀와서 매스컴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지만 그것이 전부다. 가진 돈도 별로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를 위해서 최고의 배우들과 기자들이 검찰에 탄원을 하게 된 것은 모두가 그가 평소 구축한 NQ 덕분이다.
이태원 사장은 주면서 공치사하지 않고 주고 나서도 생색내지 않는다는 것이 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한결 같은 평가이다. 게다가 그는 좋은 영화를 만들든, 성에 차지 않은 영화를 만들든 모든 공을 촬영에 참가한 스태프들에게 돌리고 허물은 자신이 뒤집어쓰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이태원 사장이 NQ를 만든 바탕인 것이다.
아무렇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서 주어야 NQ가 높아진다. 주는 사람이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가 NQ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준다고 어깨를 들썩이면서 받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들 때문에 ‘주고 욕먹는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정성을 들이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남에게 주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NQ는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생길까를 찾는 기술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편안해지고 믿음이 생기는가에 관한 능력이다.
당신이 만약 다섯 끼니를 대접하고 마지막 한 번을 지금껏 접대 받았던 사람이 낸다면 지금까지 투자한 다섯 번 식사의 값어치는 날아갔다고 생각해도 좋다. 마지막 한 번으로 그 사람은 마음속으로 전에 대접받은 모든 것을 상쇄해 버렸기 때문이다. 주려면 확실히 주고, 줄 때는 제대로 줘라. ‘이쯤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한 걸음을 더 내딛어라. 그래야 NQ가 훌쩍 높아진다.
3장 NQ가 높은 사람들
NQ의 원조, 예수
예수는 혈연도 지연도 학연도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더구나 그는 미남도 아니었다고 한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핍박받는 민족 출신이었다. 정규 교육기관에서 공부했거나, 권위 있는 교단에 속해 있지도 않았다. 게다가 ‘있는 집’ 아들도 아니었다. 예수는 돈도 빽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왕이 되었다. 2천 년 이상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남을 만인의 우상이 되었다. 예수는 NQ 하나로 그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승리했다. 그는 NQ를 높이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첫째, 예수는 늘 잔치를 베풀어 사람들을 대접했다. 사실 잔치는 귀찮다. 아무리 정성껏 준비해도 정성들인 티가 나지 않는 반면, 한 가지만 허술해도 바로 불평이 나온다. 하지만 잔치가 베푸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인정이다. 오랫동안 못 보던 사람들이 모여들고, 새로운 사람을 사귈 수 있는 자리가 잔치다. 음식 준비가 아무리 힘들어도 잘 먹어주고 웃음소리가 들리면 잔치를 연 사람은 부자가 된다. 예수는 이렇게 잔치를 통해 NQ를 높였다.
둘째, 예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포도주를 내놓았다. 예수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대접했고, 언제나 아낌없이 주었다. 예수는 다른 사람을 최고로 대접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여갔다.
셋째, 예수는 잔치에서 음식만 대접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누가복음 12장 7절에는 예수가 사람들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두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예수가 자신과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 모두를 기억했다는 말이다.
넷째, 예수는 늘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했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높은 NQ를 보여주는 일이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을 잘되게 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종교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상대방에게 반드시 전달되는 법이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참으로 NQ가 높은 사람이다.
다섯째, 예수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예수는 어부들과 창녀, 도둑, 병든 자, 소경, 앉은뱅이 등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이 여기고 사랑했다. 일류 대학을 나온 교수들 중에 지방대학이나 입시 점수가 좀 낮은 대학에 부임하면 그 대학 학생들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사랑하지 않고, 학생들의 미래를 존중하지도 않았다. 오직 ‘나 같이 똑똑한 사람이 왜 이런 곳에서 썩어야 하나’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사람은 IQ는 높을지 몰라도 NQ는 낮은 사람이다.
여섯째, 예수는 사람을 칭찬했다. 예수는 제자나 주위 사람들을 늘 칭찬했다. 남이 보기에 아무리 최고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현재 정말로 잘하고,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칭찬 받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기업들도 이미 칭찬의 효용을 알아차렸다. 교보생명은 지난 1999년부터 ‘칭찬 코너’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원들이 서로 칭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매달 칭찬 대상자를 선발하고 있다. 우리는 그 동안 칭찬에 너무 인색했다. 오늘부터라도 틈날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자. 칭찬할 사람, 칭찬할 일이 널려 있다.
일곱째, 예수는 네트워크를 넓혔다. 예수는 자기가 태어난 동네에서만 활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일찍 고향을 떠나서 자신의 네트워크를 크게 넓혀나갔다. 네트워크 확장의 중요성을 성경에서는 다양한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다. 이사야는 말한다. “천막 칠 자리를 넓히며, 천막 휘장을 한껏 펴라.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네가 좌우로 퍼져나가리라(이사야 54 : 2).”
소박함이 최대의 무기, 호치민
‘혁명가는 피도 눈물도 없는 무섭고 매정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단 베트남 사람이 아니다. 베트남에는 ‘호 아저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통일 직후 남베트남의 수도는 그의 이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요리사, 청소부, 정원사, 하인, 사진 수정사 등의 직업을 전전했고, 유럽과 중국을 정처 없이 떠돌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청년이 있었다. 그가 유일하게 많이 가진 것은 이름뿐이었다. 죽음을 넘나드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그때그때마다 바꾼 이름이 50여 개에 달했다. 그 외에는 가진 것이 없었다. 최고 권력자인 주석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허름한 옷을 입고, 가진 돈은 없어도, 항상 편안하게 웃으면서 사람을 대했다. 이처럼 호치민은 검소하고 진실했기 때문에 NQ를 높일 수 있었다. 당시 베트남은 국민의 네트워크, 국가의 네트워크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악조건에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악조건이 호치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는 사람의 모든 가치가 사라지는 전쟁 중에도 자신의 NQ를 지킨 지도자였다.
그에게는 도대체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 사람이 소박하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을 뜻한다. 너와 내가 비슷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국민과 함께 국가를 책임지려는 호치민과 같은 주석에게 등을 돌리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호치민은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믿음을 주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네트워크와 국가의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옷을 직접 기워 입고, 직접 농사를 지었으며, 청소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한 노력과 자세가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에 호치민과 베트남의 NQ는 높아졌다.
4장 우리 아이, NQ로 키워라
혼자 노는 백로보다 함께 노는 까마귀가 낫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시조의 한 구절이 있다. 어릴 때 누구나 어머니에게 한 번쯤 들어본 대사다. 너는 백로이니 까마귀 같은 나쁜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말라는 말씀이다. 자기 자식은 어딘가 달라 보이는 게 부모 마음이다. 다른 집 아이들보다 특별하고 귀해서 함부로 밖에 내놓기가 솔직히 겁이 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부모는 자기 아이의 NQ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까마귀 노는 곳으로 과감하게 백로를 보낼 때 비로소 아이의 NQ는 높아지기 시작한다.
“너보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는 같이 놀면 안 된다. 알았지? 너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친구로 지내야지.” 또는 “사람은 친구를 잘 만나야 하는 거야. 그 아이는 영 안 되겠더라.” 등 당신은 혹시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가? 부모에게 이런 말을 들은 아이는 다른 사람의 단점부터 먼저 찾게 된다. 그리고 사람의 단점부터 찾는 그 점이 바로 자신의 단점이 된다.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의 좋은 점을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그 다른 점에서 배우는 아이로 만들 수 있다.
지금 우리 아이보다 공부 못하는 옆집 아이가 대기업 오너가 될지, 메이저리그의 스타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또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어떤가? 우리 아이가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잡아주는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부모가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우리 아이의 평생 친구를 빼앗을 수도 있는 것이다. 부모가 먼저 나서서 아이의 NQ를 떨어뜨리는 일만은 하지 말자. 누구와 친하게 지낼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아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왜 부모는 아이에게 “오늘도 좋은 친구 많이 만나라.”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런 말을 자주 듣는 아이는 자연스럽게 좋은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그리고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먼저 다가선다. 이때부터 아이의 NQ가 높아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아이들에게 자신과 비슷한 친구보다는 자기와 조금이라도 다른 친구를 사귀도록 권하라. 비슷한 사람 둘이 뭉친 팀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나 홀쭉이와 뚱뚱이는 서로 너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무대에 선다는 그 자체로 명콤비가 되었다.
남을 위해 땀 흘리게 하라
봉사활동 많이 한 아이의 NQ는 보나마나 높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몸을 움직여 도와줄수록 아이의 NQ는 높아진다. 사실 심부름보다 봉사활동이 한 단계 더 높다. 심부름은 누군가 시키는 일이고, 봉사활동은 자기가 찾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부름의 마지막 단계가 봉사활동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혹시 봉사활동을 귀찮아하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부모와 함께 봉사활동을 간다면 마다할 아이가 없다.
아이와 어떤 곳에 가서 봉사활동을 할 것인지 먼저 의논하라. 부모가 아이에게 봉사활동 할 수 있는 몇몇 단체를 소개해주고 나서, 아이가 어디에 가고 싶어하는지를 물어본다. 되도록 아이가 가고 싶어하는 단체로 결정하는 것이 좋다. 봉사활동을 갈 때 부모가 아이들을 끌고 다녀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NQ가 높아지기는커녕 아이가 봉사활동을 지겨워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이에게 결정권을 줄 때 아이는 봉사활동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즐겁게 참여한다.
봉사활동은 정기적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 달에 몇 번이라고 정해놓고, 무조건 정해진 날짜에 봉사활동을 가야 한다.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꾸준히 갈 때 아이에게 봉사활동은 생활의 일부가 된다. 그럼으로써 아이는 사람 사이의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된다. 봉사활동은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한 번씩 폼 잡으려고 가는 특별 행사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언제 가겠다는 약속을 정확하게 지키면 봉사활동 장소에서 하나둘 아이의 친구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NQ가 높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항상 베풀면서도 겸손하다. 그리고 더 베풀려고 애쓴다. 남을 베풀고 돕는 일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NQ 높은 사람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 인연을 맺고 도움을 준 사람들과는 관계를 계속 유지해간다. 한 번 도움을 주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NQ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야말로 NQ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책의 바다에 빠뜨려라
책을 읽으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책에는 온갖 종류의 별의별 사람들이 다 등장한다. 누구 하나 같은 사람이 없다.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이 세상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얼굴도, 성격도,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지구상에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아이는 책을 통해 깨닫는다. 그걸 알고 난 아이는 세상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좋은 책을 골라주는 것보다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좋다. 설령 부모가 보기에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책을 사겠다고 해도 아이가 원하는 책을 사줘라. 아이가 사고 싶은 책과 부모가 사주고 싶은 책이 다르다면 십중팔구 부모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시내의 대형서점에 가보면 아이는 만화를 사고 싶은데 부모는 위인전을 사라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을 가끔 본다. 그때는 부모 스스로 생각해 보면 안다. 자신이라면 위인전이 읽고 싶겠는가?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마구 읽다 보면 자기 나름의 ‘독서 목록’이 잡힌다. 스스로 책을 고른다는 것은 아이가 책을 읽을 때 그만큼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라는 말이다. 책 고르는 데 실패해봐야 사람 고르는 데 실패하지 않게 된다. 좋은 책 알아보는 눈을 가지게 된 아이는 좋은 사람도 금방 알아본다. 부모가 사주는 책만 읽는 아이는 ‘안목’도 ‘용기’도 생기지 않는다.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는 자신의 서재를 딸에게 완전히 공개했다. 어린 울프는 맘만 먹으면 성인용 소설까지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가 비행 청소년이 되었는가? 아이가 지금 읽고 싶은 책이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책이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은 책을 한 권만 읽는 사람이다. 책을 읽지 않는 것보다 한 권의 책, 한 분야의 책만 읽고 그걸 세상의 전부로 착각하는 사람이 훨씬 더 위험하다. 독선과 오만으로 똘똘 뭉친 ‘독불장군’ 아이로 키우려면 책 한 권만 읽고 외우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다른 사람 앞에서 쓸데없는 고집을 내세우지 않는다.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NQ의 적을 멀리 하려면 만화책부터 고전까지, 동물 이야기에서 외계인 이야기까지 아이에게 마구 읽혀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저절로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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