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성경탐구40

창세기 족보와 누가복음 예수님 족보의 차이 '가이난'의 비밀

기쁨조미료25 2008. 4. 10. 11:42
창세기 족보와 누가복음 예수님 족보의 차이 '가이난'의 비밀

우리가 성경을 보면 가끔 가다가 족보, 계보가 나옵니다. 성경을 마음먹고 한 번 잘 읽어보기로 결심을 하고 성경을 읽어 내려가다가 이 족보, 계보가 나오면 얼마나 지루한 지 성경을 그냥 덮어 버리기가 일쑤인데, 이 하나님의 계보에도 담겨져 있는 뜻이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이들 계보는 그냥 기록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어떤 하나님의 뜻을 제시하고 있고, 그리고 특별히 성경에 나타난 이 계보들은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의 혈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 경건한 동생을 죽인 가인의 계보보다는 경건했던 셋의 후손들이 이어지는 혈통의 명단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계보가 아닌 경건한 셋의 계보에서 노아가 태어났고, 노아와 그의 세 아들들 중에서 경건한 셈의 후손을 통하여서 아브라함이 태어나게 되고, 아브라함의 아들 중에서 이스마엘이 아닌 경건한 이삭의 아들을 통해서 그 후손에서 다윗이 태어나게 되었고, 다윗의 뿌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됩니다.

성경은 특별히 놀라운 영광스러운 계보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계보는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들의 계보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휩싸이지 아니하고 구별되어서 거룩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백성들이 바로 에녹의 후손이요, 노아, 셈의 후손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던 것입니다.

이 성경의 계보는 창세기와 역대상, 또 신약 성경에 보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까지 걸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창세기 11장의 계보는 노아의 세 아들 중에서 가장 경건한 장자 셈의 후예들의 명단입니다. 이 혈통에서 결국 26절 아브라함이 태어나는 것을 본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창세기 11장의 계보는 하나님 앞에 축복 받은 계보요, 경건한 계보요, 이들은 그 때 당시 하나님을 섬기며 히브리 왕국, 에벨 왕국을 세우고 유일신 하나님만을 섬겼던 경건한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했는데, 11장 10절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 백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이라는 아들이 셈의 아들입니다. 또 12절에 보면 『아르박삿은 삼십 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셀라는 아르박삿의 아들입니다. 또 14절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또 16절 『에벨은 삼십사세에 벨렉을 낳았고』『벨렉은 르우를 낳고, 르우는 스룩을 낳고, 스룩은 나홀을 낳고, 나홀은 데라를 낳고, 데라는 아브라함을 낳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2장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또 창세기 10장에도 셈의 후예들의 계통이 같이 보입니다. 창세기 10장 22절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아르박삿이 셈의 아들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또 24절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이들이 부자 지간으로 계속해서 연결되어 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역대상 1장 17절에 보면 똑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셈의 아들은 아르박삿,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고, 에벨은 벨렉을 낳고, 이렇게 계속해서 연결이 되어서 르우, 스룩, 나홀, 데라, 아브라함까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창세기 10장과 11장, 그리고 역대상 1장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선언해 주는 이 계보, 셈이 아르박삿을 낳고, 아르박삿은 셀라, 셀라가 에벨, 벨렉, 르우, 스룩, 나홀, 데라, 아브라함. 이 순서는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누가복음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3장 34절입니다. 대단히 이상한 점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와 역대상의 기록은 내림차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낳고, 아버지, 아들, 아들, 아들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 누가복음은 예수님으로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름차순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3장 34절『그 이상은 야곱이요 그 이상은 이삭이요 그 이상은 아브라함이요』점점 이제 위로 올라가는 오름차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상은 데라요』 맞습니다. 『그 이상은 나홀이요』똑같습니다. 『그 이상은 스룩이요』이것도 역시 같습니다. 『그 이상은 르우요』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상은 벨렉이요』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상은 헤버요』 그런데 창세기에나 역대상에서는 헤버를 에벨로 되어 있습니다만 똑같은 말입니다. 『그 이상은 살라요』 누가복음에는 살라로 되어 있지만 창세기에는 셀라로 되어 있습니다. 36절,『그 이상은 가이난이요』여기는 틀립니다.. 『그 이상은 아박삿이요』아박삿은 창세기 아르박삿을 말합니다.

분명히 셀라의 아버지가 아르박삿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 누가복음에는 가이난의 아버지가 아르박삿으로 되어 있고, 셀라의 아버지는 가이난으로 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가이난이라는 사람이 끼어 들어서 창세기와 역대상의 부자 지간이 할아버지와 손주 지간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금 성경을 깊이 읽어보신 분들은 "야 이거 틀리다. 성경이 거짓말하는구나" 하고 성경을 덮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아예 성경을 읽어보지 않는 분들은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가이난의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갑자기 가이난이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누가복음에서 보면 셀라와 아르박삿이 부자지간이 아니라 할아버지, 손주 지간이 되었고, 가이난이 아르박삿의 아들이요, 셀라는 아르박삿의 손주가 되고, 셀라는 가이난의 아들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이상은 셈이요』 라고 하며 여기부터는 창세기나 누가복음이나 똑 같습니다. 족보에는 누구를 끼어 넣거나 빼면 안됩니다. 그러면 아버지와 아들이 손주로 변해 버리기 때문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누가가 틀리게 썼을까? 누가는 누가복음 1장 3절에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폈다"고 말합니다. 더군다나 이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의사입니다. 정확하게 의사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근원부터 살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누가복음 38절 보면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하며 이 계보가 하나님까지 올라옵니다. 모든 근원부터 의사 누가는 철저히 살펴서 이것을 기록했는데, "왜 의사 누가는 성경을 기록하며 가이난이라는 사람을 집어넣었느냐? 그리고 창세기10장과 11장에는 가이난이 빠져 있고, 역대상에도 왜 가이난이 빠져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구약이 실수를 했을까요? 실수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가 없는데 끼워 넣었을까요? 그렇다면 어떤 의도가 있어서 창세기에서 또는 역대상에서 그 신앙의 족보에서 그 사람을 빼 버린 것이 아닌가?

우리 나라에도 조선시대에 말썽 부리고 가문의 영광을 가린 불효 막심한 아들을 족보에서 빼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혹시 원래는 가이난이 들어 있었고, 누가는 근원부터 살피면서 옛날 원전부터 다 살펴서 적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 누가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창세기에서 모세가 기록하면서 의도적으로 빼 버렸고, 역대기 기자가 가이난을 싫어서 빼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이 가이난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1940년대에 쿰란 사해 사본이라는 것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잘 몰랐지만 그것은 전 세계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 사해 지방에 에세네파라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아주 이들은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로 히브리 공동체 중에서 경건한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두루 마리에다가 옛날 고대 히브리 원본 성경 모세가 집필한 원본 성경을 그대로 써 놓았습니다. 그 사본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발견되었는가 하면 그 사해 지역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 양을 잃어버려서 저 굴에 혹시 양이 들어갔는가 해서 돌멩이를 집어 던졌더니 양이 맞는 것이 아니라 '쨍그랑'하고 소리가 났답니다. 그래서 올라가 보니 항아리에 무슨 가죽 두루 마리가 많이 들어 있었답니다. 무식한 목동이 그것이 성경 고대 사본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것을 찢어서 신발 끈으로 묶고 다녔는데 성경학자에 의해서 그 신발의가죽끈이 성경의 가죽끈이라는 것을 알고 그 사본이 발견되어서 참으로 성경의 신비가 참으로 많이 풀려지게 되었답니다.

거기에 보면 이 성경의 정경 뿐 아니라 정경에 없는 것에 이렇게 도움을 주는 외경이 있었는데 그 성경에 요엘 서라는 성경이 있었습니다. 성경보다는 조금 권위가 못해서 외경으로 불리해 놓았는데 그것도 경전은 경전입니다.

그 문서에 가이난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르박삿의 아들 가이난은" 그러고 보면 누가복음이 맞습니다. 『아르박삿의 아들 가이난은 성장하여 도시로 나가 점성술사의 가르침을 받고 일월성신의 징조로 점을 쳐서 죄를 범하였다』 라고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 『가이난이 점성술의 가르침을 받고 점을 치고 점쟁이가 되어 버리고 우상 숭배자가 되어 버렸다. 이 가이난은 셀라를 낳았고,』

이런 것을 보면 가이난이라는 인물이 허공의 인물이 아니라 정말로 아르박삿이 가이난을 낳았고, 셀라는 아르박삿의 아들이 아니라 가이난의 아들이라는 것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창세기 문서 족보에 가이난이 빠져 버렸고, 역대상에 가이난이 빠져 버렸느냐?

이 사람은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요, 히브리 민족인데 이 중에서 가이난이라는 못된 아들이 아르박삿의 아들로 태어나더니 점쟁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으면서 그 바벨탑에서 점쟁이들이 모여서 하늘을 보고 점을 치고 "우리가 하늘 끝까지 닿아보자"라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바로 가이난이 거기에 동참하고, 점쟁이가 되어 버리고, 우상 숭배자가 되어 버리자, 아르박삿이 "내 아들 가이난은 내 아들의 족보에서 빼 버린다. 그리고 내 손주 셀라가 내 아들이다."라고 이렇게 선언을 해 버렸다고 추측이 됩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기자 성령께서 이것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만은 의도적으로 창세기와 역대상에서 우상 숭배했던 이 가이난을 의도적으로 족보에서 빼 버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요, 이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라는 것을 이 가이난의 비밀 속에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잘못 된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이 틀렸거나 창세기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아르박삿이 셀라의 손자도 되고, 할아버지도 되고, 아버지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이 계보에서 우상 숭배하는 아들을 빼 버렸습니다. 이것은 순수한 혈통의 족보가 아니라 신앙의 족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상 숭배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를 부부 사이로 표현한 것이 있습니다. 호세아입니다. 호세아가 자기 부인 고멜과 함께 사는데 고멜이 남편을 버리고 자꾸 다른 남자에게로 갑니다. 그러니 호세아가 또 데려다 놓으면 또 가버리고, 또 데려다 놓으면, 또 가버리니, 호세아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호세아야 네가 보았느냐? 네 아내 고멜이 자꾸 다른 남자에게로 갈 때에 네 마음이 어떠냐? 하물며 내가 지금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가 만든 피조물 인간들이, 나를 존경하지 않고 나에게 오지 아니하고, 저 배반한 천사에게로 가서 우상 숭배하고, 그것에 절하고, 그 것을 섬기니 나의 마음이 어떻겠느냐? "

부부 지간에는 다른 것은 다 용납하고 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참 용납하기는 어려운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로 가거나,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로 갈 때 그것은 참을 수 없고, 이내 부부관계가 깨어 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세상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지막 때에 구원받는 자가 누구입니까? 거짓말 안 하고, 뭐 훔치지 않고, 도적질 안 하고, 그래서 하늘 나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하늘 나라 아버지 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오지 아니하고, 우상 숭배하며, 내 주먹을 섬기며, 세상 섬기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오지 못하고 불 못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윗도 범죄 하였습니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라를 쪼개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부강하게 해서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간음죄를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아들 솔로몬을 밧세바와 다윗 사이에 다시 허락해 주셔서 그를 왕으로 세우십니다. 간음죄나 살인죄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나중에 말년에 죄를 범하였는데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귀신을 섬기고 형상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나라를 둘로 쪼개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남북을 쪼개 버렸습니다.

성경을 우리가 조금 더 정신 차리고 살펴보면 하나님은 얼마나 질투하시는 하나님인지 피조물 된 인간들이 우상에게로 넘어가고, 마귀에게로 넘어가고, 사단의 종 되어서 그 벌레 같은 형상에 절하고 복 빌고 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차마 보지 못하시고, 진노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 할 때 하나님은 전쟁을 일으키시고, 진노하십니다. 우상 숭배할 때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진을 일으키셨습니다.

며칠 전 금요일자 국민일보를 보니까 일본인 목사님이신 '요시다'라는 목사님이 이렇게 크게 국민일보에 써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일본 우상 회개하자.』 이런 제목으로 글을 써 놓았습니다.

『지난번에 관서 지방의 대 지진은 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일본인들이 하나님께 우상 숭배라는 죄를 저지른 데 대해서 깊이 회개해야 한다.』 라고 하면서 그 목사님이 아주 강경한 발언을 했습니다. 그의 글을 읽어보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우상들이 판을 치고 있어서 일본 기독인 들도 마음 아파합니다. 본 교회 윤 장로님께서 일본에서 50년을 사셨습니다. 장로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은 회개해야 한다." 기독교 복음 안 받아들이고 세계에서 제일 많이 우상 숭배하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만 천여개의 우상이 있고, 가는 곳마다 신사가 있고, 무슨 일을 할 때는 항상 거기에 절하고 시작합니다.

얼마 전 여러분 텔레비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월 1일인 것 같습니다. 보통 우리 한국 사람들, 기독교인들은 1월1일이 되면 기도원에 가서 3일 금식하면서 새해 첫 날을 맞이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신사에 가서 우상에게다가 절을 하고 돈을 주고 오나 봅니다. 얼마나 신사에 돈이 많이 걷혔는지 제가 잘못 보았다면 용서해주십시오. 은행 직원 100명을 동원해서 3일 밤을 꼬박 새서 그 헌금을 계수를 해야 한답니다. 이런 것들을 보여주면서 나레이터가 말하기를 일본 사람들이 이렇게 우상 숭배하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시편 144편 15절에 보면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닮는 백성이 복이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닮는 나라가 복이 있다는 이 말이 맞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나라가 다 선진국이요, 다 잘 삽니다. 그러나 수천년간 미신 믿고 우상 숭배하는 나라들을 보십시오. 다 못 삽니다. 동남아시아 나라들을 보십시오. 인도를 보십시오. 세계 각 국을 보십시오. 미신 섬기는 아프리카 지역 다 못 살고 기독교 받아들이고 빨리 복음화 된 나라들은 전 세계의 선진국들이 되었고, 인권의 자유의 국가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나라 예외가 있습니다. 일본이 예외입니다.. 일본은 하나님 섬기지 아니하고 일본은 우상 숭배로 세계에서 제일 둘 째 가라하면 서러운 국가인데 일본이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놀랍게 질서의식이 대단합니다. 단결력이 대단합니다. 목사의 눈으로 볼 때에도 놀랍습니다. 왜? 성경 말씀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디가 결국 맞을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결국 성경이 맞습니다. 그러면 일본이 계속 우상 숭배 계속 한다면 결국 일본은 망한다는 것 밖에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하는 강단에서 뭐가 두렵겠습니까? 일본을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오. 거기서도 구원받아야 할 백성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일본은 이번 기회에 회개하고 정신차리고 이번 일로 인해서, 이번 재앙으로 인해서 일본에 종교적 관심이 일어나야 합니다.

요시다 목사님도 이번 재앙으로 인해서 일본 백성들이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지진에 꼼짝 못하는 우상이 아니라 이 땅과 하늘을 뒤흔들 수 있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일본 뿐 아니라 모든 백성들은 우상 숭배하면 반드시 하나님께 망합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진리입니다. 성경에 우상 숭배하는 나라들은 다 망했습니다. 교만한 나라들, 하나님 앞에 하나님 섬기지 않는 나라들은 결국 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진을 일으키신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예수님이 돌아 가시 때 하필 그 시간에 지진이 일어날 것은 또 뭡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치며 몸부림치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이 땅을 흔드신 것입니다.

또 빌립보 감옥에 바울과 실라가 깊은 땅 속에 갇혔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찬송을 부르고 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큰 지진이 일어나서 옥토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려 버렸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지진도 우연히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천 명이 수초만에 깔려 죽는 그 비극, 천하보다 귀한 그 백성들이, 그 인간, 그 생명들이 이렇게 죽는 것이 우연한 일입니까? 아니면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이 땅의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시려고 그 사건을 일으키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종종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계시하십니다. 성경에 나와있는 대로 우상 숭배를 하나님께서는 몹시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이번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20세기의 모든 현대인들에게 주시는 이 교훈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이렇게 하나님께서 경고하시고 재앙으로 치시고, 또 한 가지, 계시록에 보면 천사가 대접을 가지고 와서 진노의 대접을 쏟으면 이 땅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무너지고, 세상에 불이 붙고 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바로 엊그제에 바로 그런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세계 최고의 문명국가요, 부강한 나라 일본이 되었고, 지진에 대해서는 자신 있다는 민족이지만 하나님이 흔들어버리시자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이 말씀들이 정말 사실이며 앞으로 세상 끝 날에 전 세계에 지진이 일어나서 일부러 누가 불붙이지 않아도, 전 세계가 불바다가 되겠구나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일본 어떤 사람도 "정말 우리는 지옥에 떨어진 느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요한 계시록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하튼. 하나님이 이 땅위에 보여주는 사건을 통해서 많은 교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일본 민족의 것으로만 보지 맙시다. 우리에게도 주는 말씀입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제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상 숭배하는 열국을 결국 심판하신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그토록 싫어하신다는 이 사실 속에서 우리는 깊은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여러분 또 특이한 것은 그 일년 전에 미국에 지진이 났을 때 일본 사람들이 아주 교만하게 비웃은 적이 있습니다. "똑같은 지진이 일본에 나면 고속도로 안 무너지고 걱정 없다."라고 큰 소리를 쳤는데 똑같은 강도랍니다. 이 미국과 일본이 틀려서 그렇지 똑같은 강도 그리고 똑같은 1월 17일, 똑같은 요일, 월요일에 그 때 당시 일본은 화요일이었고, 미국은 월요일인데 날짜로 맞추어 보면 똑같은 월요일입니다. 그리고 똑같은 새벽에 어떻게 그렇게 일년만에 일본에 다시 지진이 일어났는지 정말로 신기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떵떵거리던 한신고속도로. 무너지지 않는 다는 고속도로가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혹시 하나님 앞에서 내 기술을 믿고, 내 주먹을 믿고 하나님 섬기지 않고 교만한 그 백성들에게 경고하려고 하나님께서 똑같은 일년, 그 돌아오는 그 시기 그 시각에 같은 강도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것이 아닌가 목사인 저의 눈으로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텔레비전 방송에 잊혀지지 않는 사실은 고베시의 상징이라고 하는 그 일본 사람들의 그 길 그 높은 지붕이 폭삭 내려앉아서 바닥에 깔려 버린 것이 텔레비전에 방영이 되고, 고베시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와서 절하는 국보급 불상의 어깨가 부서져 나가고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희한하게도 텔레비전 화면에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누군가를 섬기면서 살게 되어있습니다. 나를 구원해주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지막 이 세상 진노하시는 심판에서 나를 구원해 주지 못 할 세상의 재물이나 세상의 다른 것에 내 인생을 맡기지 마시고, 천하 만국을 심판하시는 심판 주 하나님, 나의 영혼을 이 환난이 많은 세상에서 구원해내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만 평생을 두고 잘 섬기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주먹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의 과학 기술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보십시오. 순식간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흔들자 불바다가 되어 버리는 것을 보십시오. 우리는 거룩한 아버지의 존재와 거룩한 시온소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 잘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마지막 이 세상 환난과 심판 속에서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잘 섬기고, 우리 주위에 아직도 우상 숭배하는 자들에게 권면하고 기도해서 우리 주님 오실 때에 진노와 말세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들어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가이난의 비밀|작성자 카멜레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