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노래]/영화

미묘한 균열의 블럭버스터 [나는 전설이다]

기쁨조미료25 2007. 12. 31. 20:05

미묘한 균열의 블럭버스터 [나는 전설이다]


사전 정보 없이 감상한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는 보고 나면 리처드 매드슨의 원작소설
리메이크된 영화 2편 ([지상 최후의 사나이](1964), [오메가 맨](1971))과 어떤 차이점을 보이는지 궁금
해진다. 더욱 중반부까지 절대적으로 윌 스미스의 연기력에 의존하는 이 심리 스릴러는 꽤 흥미진진하다.
문제는 엔딩처리인데 재난 영화의 선배격인 M. 나이트 샤말란의 [싸인](2002)이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
(2005)을 연상케 한다.
오리지널과 리메이크 영화를 접하지 못한 나와 같은 관객들은 [나는 전설이다]에서 무엇을 보고 봐야
하는지 다소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개봉전 심심찮게 들려왔던 좀비무비의 계보에 속하는 또 한편의
값비싼 블럭버스터라는 소문과 달리 실제 [나는 전설이다]의 변종 인간들은 흡혈귀에 가깝고 올 여름
감상한 닐 마샬의 [디센트](2005)의 동굴 속 변종 인간들과 가깝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바이러스로 인해
괴물로 변한 이 변종 인간들의 시점에서 지구와 인류의 이야기를 접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바이러스로 동물같은 본능만 남은 이 변종 인간들이 단순한 괴물로만 타자화시키는 과정이 원작과
상관없이 참으로 단조롭기 그지없다.

영화가 시작하면 바로 암을 정복하는 백신이 개발되었고 뉴스를 볼 수 있다. 이때 티비화면으로 흐르는
여성 백신개발자가 엠마 톰슨과 유사하게 생겼는데 IMDB를 찾아와서 명단이 보이지 않는다. 잘못 본 것
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엠마 톰슨이 나오는 줄 알고 호들갑스럽게 반응하자마자 곧바로 3년후라는 자막이
뜬다. 폐허로 변한 뉴욕 타임스퀘어 거리를 보고 있자니 을씨년스럽다는 반응보다는 이상야릇한 미묘한
감정이 생겨났다. 참으로 인상적인 풍경들이 연이어 펼쳐진다.
윌 스미스가 맡은 주인공 로버트 네빌로 들어가기전 영화 속 배경을 설명하는 도입부 시퀀스는 단연
이 영화의 백미이다. 나는 이런 전조가 너무 좋다. 전면으로 펼쳐진 폐허가 된 도시 앞에 자란 무성한
풀들. 거기에 헌터처럼 차려입은 흑인 남자와 사냥개. 이들은 무엇을 쫓고 있는 것인가. 단지 그 어떤
나레이션도 없이 이미지만으로 설명되어지는 이 시퀀스는 흥미롭기 이를 데 없다. 나는 그런 것이 좋다.

[식스 핏 언더]에서 네이든(피터 크라우스)의 병문안을 찾아온 리코(프레디 로드리게즈)에게 해준 말이
있다. ‘에코톤 - 두 생태계가 겹치는 지대, 즉 야생과 문명의 중간 지대’라는 말이 기억났고 이 도입부
시퀀스야말로 ‘에코톤’을 명쾌하게 설명해준다고 기뻐했다. 그리고나서 연상했던 것이 이 대립된 문명과
야생의 세계가 어떻게 지구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했던 것 같다. 백신을 개발하는 과학자라고
보기에에는 실제로 너무 튼튼한 근육의 소유자인 윌 스미스라는 배우가 풍기는 것은 문명이 낳은 문제들을
반대하는 21세기 히피 쯤으로 보였고 도시의 생존자인 문명을 찬성하는 이들과 전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
했다.

그러나 매끈하게 빠진 스테이왜건이 폐허가 된 도시의 거리를 질주하고 멈춰 섰을 때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한 무리의 순록이고 그것들을 잡아먹기 위해 또다른 생태계의 동물들과 대치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일
뿐이다. 윌 스미스가 뒤쳐진 한 마리의 순록에 다가갈 때 저편 어디에선가 동물 소리가 들려오고 재빨리
순록의 빼앗는 암사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주변에 수컷과 새끼들이 천천히 다가온다. 순록을 빼앗긴
인간과 폐허가 된 뉴욕이라는 도시. 2012년의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라고 단정짓기에는 현실에서 도저히
불가능한 도심에서 순록 사냥이라는 짜릿한 쾌감이 드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미지의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멸망되었고 유일하게 고전적인 인간의 방식으로 살아남은 백신 과학자인
로버트 네빌 박사는 다른 종으로 변한 또는 그 시기에 맞게 진화한 인류에 맞서 외롭게 살아갈 뿐이다.
만약 영화와 같이 인류가 멸명하고 또다른 시기가 찾아왔을 때 지금과 같이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태양을 피하고, 같은 인간을 잡아먹는 신인류가 단지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변한 것
이라면 그들의 사고체계는 없고 단지 동물적인 육체성만 남아있는 것인가. 또는 백신으로 인해 바이러스를
제거한 후 다시 본래의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인간들은 3년이라는 공백의 시간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윌 스미스의 목숨보다 백신의 성공으로 본래의 인간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기억과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는지 더 나아가 인류와 지구에서 문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더 궁금 했을 뿐이다. 그런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다면 이런 가상의 이야기들은 그저 흥미
거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절정 부분 변종 인간들이 로버트 네빌 박사의 집을 공격하고 실험실로 찾아왔을 때 그들 무리의
여성 변종자가 서서히 본래의 인간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 때 로버트 네빌 박사는 그들에게 최소한 이성이
남아 있기를 바라고 그 여성 변종자를 봐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변종 인간들의 리더는 그저 방탄유리를
깨기에 바쁘다. 그렇다면 이 리더는 단순히 로버트 네빌을 죽이기 위해 머리를 써서 그의 집을 스토킹한
것인가. 그들에게 인간 본래의 지성이 남아있지 않다면 이런 공격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리더와 로버트 네빌에게 붙잡힌 실험 대상의 여성 변종자의 관계는 연인일까. 또는 로버트 네빌의 친구인
마네킹을 유인해서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유인전을 펼치는 이 리더의 작전은 어떻게 봐야 옳은 것인가.
변종 인간들의 삶의 목적은 단순히 인간 생존자들을 위협하는 것밖에 지나지 않는가.

[나는 전설이다]에 깊게 자리잡은 기독교 세계관에 비춰본다면 이 변종 인간들은 심판의 날 이후 구원받지
못한 악마의 자식들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빛을 무서워하고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나
좀비의 형태로 남아있을 뿐이다. 로버트 네빌 박사의 냉장고에 그를 모델로 한 타임지 커버의 문구에는
SAVIOR(구세주, 그리스도)라고 단어가 적혀있다. 그는 흡사 그리스도와 같은 인류를 구원할 존재이다.
영화의 결말이 영웅주의로 흘러가는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타당하다. 바이러스의 면역력을 가진
자신의 피가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그리스도 그 자체이다.

그런데 자꾸 나는 리더에게 어깨를 물린 로버트 네빌 박사가 마지막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변종
인간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자신들을 위협할 로버트 네빌 박사를 공격하는 이 변종
인간들의 생존력은 문명과 야생의 결합으로 빚어진 대단히 강력한 파워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40.5도의 열이 36.5로 떨어지기만 한다면 본래의 인간으로 돌아간다는 이 설정인데 그 온도로 3년
이상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이들은 모두 상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죽은 시체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이 움직일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전설이다]는 기독교
세계관에서 벗어나면 말도 안되는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하다.

영화 속 로버트 네빌의 딸로 나오는 소녀는 실제 일곱살인 윌 스미스의 딸 윌로우 스미스다.
[행복을 찾아서](2006)에서는 아들 제이슨 스미스를 출연시키기도 했는데 둘 다 영락없이 윌 스미스를 꼭
빼닮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는 전설이다]는 윌 스미스의 영화이고 [행복을 찾아서]에 이어 그의 연기력
에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중반부까지 그렇게 실감나게 영화에 이끌 갈 수 있었을까 싶다.

금연 캠페인 영화라고 봐도 무방한 오컬트무비 [콘스탄틴](2005)의 감독 프랜시스 로렌스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재닛 잭슨, 제니퍼 로페즈,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전적이 있었다. 상당히 좋아
했던 뮤직비디오를 만든 사람이라 [콘스탄틴]과 [나는 전설이다]의 완성도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거대한 자본이 투입된 블럭버스터 감독들은 확실히 영화를 만드는 기본적인 재능은
있을지 모르지만 작품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비전은 없다는 결론이 선다.
자본의 영화란 것은 결국 실현불가능한 판타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나는 전설이다]의 미묘한 균열들. 도입부의 압도적인 배경 시퀀스와 [우주전쟁]과 유사한 고전적 방식의
플롯과 리듬감 그리고 일인극이라 불릴만한 중반부까지의 윌 스미시의 호연. 조금 더 극단적으로 영화의
성질에 대해서 실험해봤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