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샘교회자료]/목회자료·교육자료

사데교회(소아시아일곱교회)

기쁨조미료25 2007. 12. 6. 14:24

                  사대교회-현재 :사르트(sardis)


거대한 아테미 신전과 교회유적(왼쪽 벽돌건물)
 
신전 뒷편의 산이 예사롭지 않다.

 

 

 

sade.jpg

sade-3.jpg

아데미 신전 유적

신전유적과 교회의 유적

 

 

                                    성서의 내용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깨어나라.그리고 아직 남아 있지만 막 죽어가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여라.나는 네 행위가 나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는
보자 않는다.그러므로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새겨서, 굳게 지키고, 회개하여라.만일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같이 올 것인데, 어느 때에 내게 네게 올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그러나 사데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 몇이 있다.그들은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인데,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계 3:1-4)

험준한 산을 배경으로 한 난공불락의 요새로, BC 1200년 경에 세워진 도시로, 그후 수세기가 지난 후 산 기슭에 제2의 도시가 형성되어 고대 리디아(Lydia) 왕국의 수도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B.C. 6세기에 전성기를 맞게 되는 크로수스 왕은 서구인들에게 부를 상징하는 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사데는 당시 부유한 상업도시로 직물, 귀금속 생산 및 사금이 유명하였으며 인류 최초로 금화를 만든 곳이기도 했다. '마이다스의 황금의 손' 전설의 근원지이기도 하다.이 곳에는 아시아 지역의 '다산과 풍요의 여신' 아데미신전이 있었으며 부도덕한 제사의식이 거행되곤 하였는데 사데 교회가 경고를 받게 된것은 교회가 매우 번성하고 활동적인 반면 이러한 '밀교'의 부도덕한 영향을 받았으며 외관상의 일만으로는 완성된 일이 아니라고 충고한다.
로마 시대에도 이곳은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활을 하였으며, 1914년 프린스턴 대학 팀이 발굴을 시작하여 지금도 발굴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비잔틴 시대에 교회로 사용되었던 교회의 유적은, 거대한 아데미 신전의 뒷편에 있으며, 아데미 신전은 BC 335년 ALEXANDER 대왕에 의하여 재건 되었는데 이 신전은 희랍 시대에 가장 큰 신전 중의 하나로 크기가 약 100 미터 X 50 미터였다.(퍼온글
)

사대교회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신앙적으로 거의 다 죽어가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와 비슷하게 신랄한(?)책망을 받는다 "살아 있다고 하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그래서 극소수 이지만 순수한 신앙을 지킨 사람들을 통하여 그들이 다시 소생 하도록 깨우쳐 주면서 회개 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사대교회에 대해서 급박한 재림을 강조하여 시대적인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오늘날 어느 교회의 유형일까? 사람들은 하느님 앞에서 자기들의 행위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그리고 스스로 만족한다 그러나 하느님 보시기에는 완전하지 않다. 그러기에 신앙의 가장 큰 덕목은 "겸비" 인 것이다.(빌:2:1-11)

오늘날 사데 교회 유적도 기원도 잘 모른다. 거대한 아테미 신전의 유적 뒤편에 붙여지은  비쟌틴 시대의 조그만 교회 유적지를 살펴 볼 뿐이다. 혹시 거대한 아테미 신전의 유적을 교회유적으로 착각 하는 것은 아니겠지? 왜 교회터를 그렇게 잡아서 지었을까? 어쩌면 아테미 신전 터도 교회의 부분으로 같이 사용햇던 것이 아닐까? 헐어 버리기에는 당시의 기술과 지방교회로서는 상상도 못했을 터이니......
어느 종교이든 신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지은 어마어마한 건축물이 영원 하기를 바랐겟지만  그것은 무너저서 폐허가 되고 말았다. 영원 이라는 역사에서 본다면 그 무너짐은 '순간.이리라. 사람들의 꾀에
신들은 속지 않는다.  주변의(앞 뒤)신비한 산의 모습과 아테네 신전이 잘 어울려 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