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콜베 신부가 생각납니다. 다른 이를 위해 목숨을 내준 사람으로 말이지요.
1941년 7월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포로 한 명이 탈출을 했습니다. 친위대가 출동해서 도망친 포로를 찾았지만 행방을 찾지 못했습니다. 수용소 소장은 도망자가 24시간 안에 잡히지 않을 경우 그 사람이 소속된 14동의 수용자 중 다른 열 사람을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수용소 소장은 수용자들 중에서 처형시킬 사람들을 무작위로 골라냈습니다. 열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프란치세크 가조우니첵크가 지목되었을 때 그는 아내와 불쌍한 자식들이 있으니 제발 살려달라며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소장 앞으로 다가가 소장에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 대신 제가 죽게 해주십시오."
그가 바로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였습니다. 콜베 신부의 말은 소장의 마음을 움직였고, 가조우니첵크 대신 콜베 신부가 끌려갔습니다.
콜베 신부를 포함한 10명은 꼼짝없이 굶어서 죽는 지하의 아사감방에 갇히게 됩니다. 콜베 신부는 죽음을 기다리는 다른 수감자들을 끝까지 위로하고 격려하다가 마지막으로 독극물 주사를 맞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1972년 10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15만 명 유럽인들이 함께 모였을 때 그 자리에는 콜베 신부 대신 살아난 가조우니첵크도 있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내 생명만을 갖고 살고 있지 않습니다. 내 안에는 콜베 신부님의 생명도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벌써 한 달이 넘어가고 있는 탈레반 납치 사건은 흘러가는 시간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관심을 끌게 합니다. 두 명 처형, 두 명 석방, 여전히 그들은 세상과 단절된 채 생과 사의 길목에 서 있습니다.
두 명이 석방될 때 있었던 일이 알려지면서 마음이 숙연해졌던 것은 석방 기회를 동료에게 양보를 한 이가 있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극한상황 속에서 동료에게 석방의 기회를 양보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었을까요? 자신의 생명을 걸고 동료를 죽음의 땅에서 먼저 벗어나게 했던 이지영 씨는 부모님께 이렇게 쪽지를 썼습니다.
"건강히 잘 있으니 걱정 마세요. 잘 먹고 편히 있어요. 아프지 마시고 편히 계세요."
풀려날 수 있는 기회를 양보하고 여전히 죽음의 땅에 남은 딸, 그리고는 오히려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보낸 딸의 쪽지를 하염없는 눈물로 읽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 어머니와 딸의 마음이 전해져와 마음이 아릿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그보다 큰 사랑은 없다고 했는데 부디 그들이 꼭 살아 돌아와 이 시대에도 그런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눈물로 확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2007.8.24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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