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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치유에서 성숙으로

기쁨조미료25 2007. 11. 7. 01:26

본  문 : 엡4:15

제  목 : 치유에서 성숙으로


이제 오늘로 내적치유시리즈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시간입니다. 이 시리즈설교를 통하여 많은 분들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내면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치유에서 성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변화된다는 것에 대해서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모습을 보아도 그렇고 내 배우자나 자녀들을 보아도 아무리 몸부림쳐도 도대체 변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하고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나는 본래 이렇게 생겨먹었어” “나는 본래 성격이 이러니까 네가 이해해야 돼” “나는 본래 소심하기 때문에 안 돼”등등 수많은 이유들을 가지고 변화하지 못하는 자신을 합리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남들도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네가 변화될 수 있겠어” “저러다가 말겠지”라는 식으로 비웃습니다. 마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려고 할 때 원수들이 그 성벽이 다시 지어진들 며칠이나 버티겠느냐고 하며 조롱하고 비웃듯이 말입니다. 물론 수십 년 동안 무너져있던 마음의 성벽이 하루아침에 다시 재건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화될 수 있는 존재는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인간은 변화될 수 있고 그리고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변화는 어떤 일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이루어야 할 작업이기에 변화되려고 아무리 몸부림 쳐도 변화되는 것 같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마찬가지로 배우자나 자녀가 원하는 모습대로 바로 변화되지 않는다고 해서 다그치거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화될 수 있는 존재라면 구태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실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모습대로 빨리 변화되지 않는다고 자신을 다그치거나 주위 사람들을 다그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하려는 시도를 했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한 번 들여 놓은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들 마다 습관이라는 것이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의 시간동안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나의 힘으로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상당한 결심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깊이 남아있는 상처도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치유도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성령님께서 친히 주관하시므로 반드시 변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변화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주관적으로 하시되 내가 협력하는 것이지 내가 주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 변화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반드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위해서 어떻게 성령님에게 협조해 드릴 수 있는가를 몇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무엇보다 생각의 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생각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우리의 인생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삶이 변화되고 인생이 변화되고 인격이 변화되려면 무엇보다도 생각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생각이란 것은 그냥 생각나고 떠오르고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면 그 부분이 패여서 길이 되듯이 생각에도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이 잘못 만들어져 있으면 항상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이 생각의 길을 새롭게 만들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협조를 구하시는 것입니다.

생각이란 처음에는 하늘에 새가 날아다니듯이 우리 위를 지나갑니다마는 그 생각이 내 안에 자리를 잡게 하는 것은 바로 나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새는 머리 위를 날아다닐 수 있지만 머리 위에 집을 지을 수는 없다”라고 종교개혁가인 마틴 루터는 말하였습니다. 이는 바깥에서 생각을 내 안에 집어넣을 수는 있지만 그 생각이 내 안에 집을 짓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자리를 잡은 생각은 비슷한 생각들을 끌어 모으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 한쪽에 길을 만듭니다. 그리고 생각의 길이 만들어지면 어떤 일이나 사건에 부딪힐 때 그 생각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그 사건과 상대방을 해석하게 되며, 이 해석의 여하에 따라 감정이 만들어지고 행동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겪어도 어떤 사람은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잘못된 생각의 길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것이지 다른 사람이나 환경의 탓이 결코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치유하시는 목적은 이같이 그릇된 생각을 내어놓고 바른 생각을 붙잡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의 상처란 거짓되고 악한 생각을 만드는 원흉입니다. 잘못된 생각의 길은 사람의 깊은 마음 판에 새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궁극적으로는 자기의 마음 판에 새겨진 생각의 길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미 우리 안에 새겨진 생각의 길을 고쳐서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의 마음 판에 새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생각의 길이 바르게 고쳐진다면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생각의 길을 새롭게 만들고 마음 판에 바른 진리를 세워갈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잘못된 생각의 길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명철하고 지혜로우며 자신의 이성은 매우 건강해서 모든 것을 바르게 판단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가장 미련한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잘 보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권면을 해도 듣지를 않고 오히려 자신을 위해 권면한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가 오랜 세월동안 잘못된 길을 모른 채 걸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잘못된 생각의 길을 가고 있음을 먼저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환자가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치료가 되겠습니까? 먼저 내가 잘못된 생각의 길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잘못된 생각들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거듭났지만 머리가 공백상태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안에는 거짓 교훈과 악한 지식들로 저장된 생각들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속사람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그러면 거짓된 진리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신뢰할 수 없는 분이다’ ‘성경은 내 문제의 해결과는 상관이 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 없다’ ‘친밀한 관계는 고통을 가져다 줄 뿐이다’ ‘내 판단과 생각은 전혀 오류가 없다’ ‘내 모습을 정직하게 드러내면 모두가 나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는 항상 느낌이 수반 된다’ ‘모든 사람들과 갈등이 없이 잘 지내야만 나는 행복하게 될 것이다’ ‘나는 모든 일을 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무가치한 존재이다’ 이런 생각들이 바로 거짓된 진리입니다.

이러한 거짓된 진리는 우리에게 잘못된 생각의 길을 만들어줍니다. 예를 들어서 ‘나는 모든 일을 잘 해야 한다’라는 생각은 다 잘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는 잘 하지 못한다’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이 생각은 다시 ‘나는 그렇기 때문에 무가치한 존재이다’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다시 이 생각은 ‘이렇게 느끼는 것은 내가 어떤 일을 잘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나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을 잘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불어넣어 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게 되고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을 완전히 진멸하듯이 이런 거짓 교훈과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리는 악한 지식들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이런 생각들을 그대로 두면 그것은 늘 쓴 뿌리가 되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데 사용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잘못된 생각들을 드러나게 할 수 있을까요?

먼저 대화를 통해서 잘못된 생각을 찾아낼 수 있고 드러날 수 있습니다. 상담이나 셀 모임에서의 교제는 대화를 통해서 잘못된 생각을 드러내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상담자가 되시며 늘 우리 곁에서 우리의 음성을 들으시는 성령님과  대화함으로 악한 생각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성령님과의 대화는 기도인데 이 기도를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로서 해야 합니다. 즉 내가 성령님께 말하고 나면 반드시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내가 구할 것을 다 아뢰었다고 기도의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말고 성령님께서 기도에 대한 응답을 주실 것을 사모하며 그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생각들을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다가 유의해야 할 점이 잘못된 생각을 마치 성령님의 음성인양 착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무엇보다도 말씀 앞에 비추어 보고 분별해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볼 때 옳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평소에 말씀을 늘 가까이해야 만이 미혹되지 않고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생각이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에는 그 생각을 심어주는 악한 세력에 대하여 대적을 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한다. 내가 모든 것을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나는 실패자라는 생각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거짓이다. 나는 더 이상 이 생각에 따르지 않는다.” 이렇게 대적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사실 쓰레기를 치우듯이 치워야 할 생각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대적의 과정을 통하여 쓰레기 같은 잘못된 생각들을 다 치워버리고 그 안에 주님의 진리로 가득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각의 길을 바꾸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바른 생각을 붙잡을 때 성령께서 내가 붙잡은 바른 생각에 힘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나의 역할은 바른 생각을 붙잡는 것이고 그것을 바로 잡아 주시는 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악은 불신앙의 죄인데, 불신앙이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믿지 않고 잘못된 진리를 택해서 그것을 진리인양 믿는 것을 말합니다. 이 불신앙은 결국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인류 최초로 이 불신앙을 가졌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네 바로 하와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분명이 “네가 나의 말에 순종하면 영생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뱀의  “네가 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라고 하는 거짓된 말을 믿기로 선택하였고 그 결과로 그의 삶이 영생에서 영원한 멸망으로 바꾸어지게 된 것입니다. 선택은 이와 같이 늘 그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고 그 선택에 따라 결과를 책임지도록 하셨습니다. 올바른 선택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만 그릇된 선택은 영원한 심판에 이르도록 합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뱀이 말하는 거짓된 진리를 붙잡은 연유로 인하여 결국 멸망에 이르는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비단 하와만이 아니라 그의 후손된 우리 모두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고 미혹에 빠져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은 다른 생각을 진리인 양 붙잡고 그것에 매여 그릇된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치유는 감정적으로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치유는 반드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어 있습니다. 감정이란 생각의 뒤를 따라오는 결과물일 뿐입니다. 바른 생각을 하면 바른 감정이 만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울기만 하고 생각에 변화가 없다면 그 치유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당장에 눈물을 흘림으로 인한 잠깐의 만족감은 있을지 모르나 결국 다시 그릇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고 맙니다. 생각을 바꾸십시오. 당장에 감정의 만족에 그치지 마십시오. 생각의 변화가 결국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새로운 감정이 생깁니다. 우울한 생각을 하면 우울한 감정이 생기고 감사의 생각을 품으면 감사할 일들이 계속 생깁니다. 표정도 밝아지고 행복감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속에 어떤 생각을 갖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나모리 가즈오라는 일본 학자는 ‘좋은 것을 생각하고 좋은 것을 행하면 운명의 흐름도 좋은 방향으로 바뀐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링컨은 “할 수 있다. 잘 될 것이다”라고 마음으로 먼저 결심한 뒤 해결방법을 찾으라고 권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잠23:7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생각을 바꾸는 일을 우선하십시오. 감정에 속지 마십시오. 감정은 결국 생각의 종속물에 불과한 것임을 깊이 새겨서 감정에 끌려 다니는 우매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을 바꿈으로 삶이 변화되는 놀라운 체험을 하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위해 우리가 행해야 할 그 두 번째는 하나님과 대화할 때 감정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표현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가려서 하고 가장 추하고 근본적인 감정은 뒤로 숨기고 하게 됩니다. 그러나 감정을 감추는 기도는 하나님께 올려지는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의 마음 전체를, 감정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 드려야 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처럼 자식을 갖지 못해 겪고 있는 자신의 괴로움을 토하며 자신의 아픈 감정을 원망하지 않으면서도 솔직히 하나님께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이때에는 의사에게 증상을 말하듯이 자신의 아픈 감정이나 솔직한 감정을 다 말씀드려야만 합니다. 내가 분노할 때에도 분노라는 감정을 가진 것 자체에 대해서 나쁘다는 정죄를 하게 되면 죄책감에 눌려 하나님께 솔직한 기도를 드리지 못합니다. 주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 함께 계시는 것이지 기도의 내용을 정죄하기 위해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어떤 감정일지라도 솔직히 말씀 드릴 때 성령의 빛이 여러분의 아픔을 치유하고 깨끗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셋째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작은 사랑의 행동들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여야 합니다.

사랑의 행동실천은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 때 우리 안에 기쁨이 생기고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사랑은 결코 한 번에 크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한 번에 한 사람에게 작은 일들을 적극적으로 행할 때 치유 받은 사건들은 계속해서 진리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진리는 머리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배웁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리고 그 원인을 주님에게 못 들었다면 우선 여러분처럼 우울해하는 사람에게 작은 인사라도 나누어 보십시오. 여러분의 우울함이 해소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는 교회공동체 안에 들어가 치유를 경험하십시오.

갈6:2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약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교회는 약한 지체를 도울 수 있는 치유공동체입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약한 부분과 죄 된 부분을 드러내고 서로 기도할 때 주님이 그 가운데 계셔서 그 공동체의 사람들을 치유하고 강건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하셨던 치유사역을 교회가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함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장모임이 중요한 것입니다. 목장모임은 교제만 나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제를 통하여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치유 받는 모임이 되어야만 합니다. 만약에 현재 속해 있는 목장모임이 그런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면 그것을 탓만 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여러분 스스로 만들어나가십시오. 한 사람이 그러한 노력을 시작할 때 그를 통하여 그러한 공동체가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공동체가 치유의 공동체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창조적인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언어를 주님의 언어로 바꿔야 합니다. 이 언어는 서로 용납하고 반응하며 따듯함이 오가는 언어입니다. 우리 언어가 바뀔 때 우리는 모두 공동체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또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중요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또 격려를 받으면서, 상처 받은 영혼들에게 두려움 없이 다가설 수 있는 공동체가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체가 우리에게 언제나 기쁨을 주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공동체 구성원 때문에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공동체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그리스도 공동체는 용서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용서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의 영적 성숙을 위한 배려도 필요합니다. 개인이 영적으로 성숙해야 공동체도 건강하게 자라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은사를 인정하고 서로 격려하는 하나님의 공동체가 세워져야 압니다. 이러한 공동체를 세움으로 성령님의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공동체가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다섯째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계속 배우고 알아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성경을 읽는 시간과 읽은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직면한 모든 문제에 대해 성경을 통해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들어있는 참으로 놀라운 책입니다. 심지어 심리적인 문제와 그 해결책까지도 성경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내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자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은 살아 운동력이 있는 말씀으로써 나의 내면의 상처까지도 치유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상처가 치유될 때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게 될까요?

첫째,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각하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그에게는 변화도 성장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치유는 나를 오랫동안 고통 속에 몰아넣은 실체를 발견하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내가 지금까지 어두움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음을 자각하게 합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은 사람들은 예전과는 다른 측면에서 사람들을 보기 시작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전에는 무조건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미워했는데 그도 어쩔 수 없는 과거의 상처로 인하여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이제는 미워하거나 분노의 마음을 가지기 보다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셋째는 가정이 살아납니다.

상처는 대부분 성장기의 가정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배우자나 자녀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국 자식들에게 대물림이 됩니다. 이제 우리 자신의 상처가 치유됨으로 인하여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되어 가정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넷째는 마음의 상처 치유로 건강한 영성을 선물로 얻게 됩니다.

분노하는 마음에는 주님이 들어오실 공간이 없습니다. 마음의 분노가 가라앉으면서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고 상대적으로 사랑이 증대됩니다. 치유는 바로 주님이 들어와 역사하시는 공간을 마련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정신의 건강과 육신의 건강을 얻게 됩니다.

상처가 치유되면 정신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영과 육이 하나이기 때문에 영혼이 건강하게 되면 육신의 건강도 자연적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1997년 미국의 타임지에 “믿음과 치유”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는 마음의 치유능력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한 아주 흥미로운 내용을 실었는데 내용은 신체는 영에 지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기도를 열심히 하면 기도할 때 체내에서는 모르핀 호르몬이 쏟아져 나와 통증을 잊게 할 뿐만 아니라 병을 이기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은 사람은 자신이 치유자가 됩니다.

치유 받은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고 과거 자신의 아픔을 동일하게 체감합니다. 그리고 그를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며 그들을 도와주는 치유자로 변화되어 가게 됩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고 새 삶을 맛본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도구로서 치유자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다섯 번에 걸쳐서 내적치유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내 안에 누구나 할 것 없이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쓴 뿌리가 있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와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상처를 어떻게 하면 치유함을 받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지도 배웠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깨달은 진리를 삶에 적용하는 것이 남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지식을 배운다고 할지라도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하나씩 실천해 나갈 때 여러분의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고 하나님과의 관계와 대인관계에서 회복이 일어나며 가정이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또한 치유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나와 같이 마음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인하여 고통 받는 사람을 치유하는데 쓰임 받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도형분석상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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