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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 춤추시는 하나님

기쁨조미료25 2007. 10. 5. 00:40
 춤추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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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헨리 나우웬 (Henri Nouwen) 저 윤종석 역 "춤추시는 하나님 (Turn My Mourning into Dancing) - 두란노출판사 -"에 대한 서평입니다.

내면 세계의 표출 춤 !

춤 !

우리의 문화, 특히 한국에 전해진 기독교 문화에 있어서 춤이란 타락 그 자체입니다. 춤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기쁨과 슬픔에 관한 기본적인 반응입니다. 기쁨을 춤으로 표현하고 슬프면 그 슬픔을 또한 춤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시인의 내면세계를 시로 표현하는 것처럼
음악인의 내면 세계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화가의 내면 세계를 화폭에 담아내는 것처럼
춤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내면적 표현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반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춤이란
다듬어지지 않은 내면적 자아의 원석을 외부로 표출해 내는 방편인 것입니다. 인간이 절대자를 만나게 되면 춤을 추게 됩니다. 굳이 춤이라고 표현할 순 없지만 자신도 모르게 육체는 흐느적거리며 흔들리게 됩니다.

이 글을 쓰는 제 자신도 주님의 임재를 경험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뻣뻣한 육체를 움직여 덩실덩실 춤을 추었던 황홀한 경험이 있습니다.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덩실덩실 자신의 체통을 무시한 채 춤을 추었습니다. 요즘 말하면 소위 막춤일 것입니다. 어떤 형태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을 만큼의 황홀경 그 자체의 춤이었습니다. 완벽한 자아가 있는 자아 초월의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삭개오의 잔치 광경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위해 마련된 잔치...그냥 음식만 먹고 예수님은 설교만 하셨겠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잔치였습니다. 설교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내적 자아를 춤과 요란스런 몸놀림으로
한 바탕 시작의 종을 울렸습니다.

베드로는 어부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어부 춤을 요한과 더불어 추었습니다. 예를 들면 강원도에는 멸치 털이 춤이 있는데 저는 그것을 보고 며칠 간을 웃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베드로도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뒤를 이어 삭개오가 벌떡 일어나 자신의 등에 작은 쿠션을 하나 집어넣어서 코믹한 꼽추 춤을 주었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거지들도 그 날은 삭개오의 집에서 벌어지는 춤판에 참석하였습니다. 잔치는 밤이 맞도록 잔치는 계속되었습니다.

잔치가 무르익어 갈 무렵 삭개오는 춤을 멈추고 자신의 내적 변화에 대하여 공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삭개오는 개인 비서관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모든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습니다.
내가 만약 백성들의 세금을 과다하게 부과하였다면
그것에 4배를 보상해 주겠습니다."

주변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 졌습니다.
삭개오는 다시 강한 어조로 이야기합니다.

" 비서관 너는 이 일을 지금 이후로 즉시 시행하라 !"

그동안의 삭개오를 향한 오해와 모함들이 벗어지는 순간에
주변은 박수와 풍악과 다시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주님은 소란스런 춤판을 잔잔케 하신 후
삭개오를 향하여 손을 내밀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삭개오 ! 넌 이제 죄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다"

예수님의 선포가 끝이 나자 팡파르가 울리고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피어놓은 모닥불 주변에 몰려들어 원을 그리며 서로 어깨에 손을 얹고 빙글빙글 돌기도하고
뛰기도 하고 그렇게 축제의 밤이 깊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몸이 부드러워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경험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교권적인 사람이 되면 거만한 사람이 되면 몸이 굳어집니다. 찬송부를 때 손뼉 치며 부르자는 것도 사실상 힘이 듭니다. 복음성가를 율동에 맞추어 부르면 그것이 불 경건한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헨리 나우웬 Henri Nouwen

그는 카톨릭 신부로서 이미 작고하신 분입니다.
몸이 굳어진 사람들에겐 목사가 신부의 글을 소개하는 자체가 불경건일 것입니다.

헨리나우웬은 제게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스승이십니다.
이 글을 읽는 지체들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약점은 복받기 위한 신앙생활에 관함입니다.

그러기에 감기만 걸려도 몸이 굳어지고 아들이 대학에 떨어지기만 하여도 저주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성숙한 신앙입니다.
쉬운 말로 하면 어린아이 신앙이 아니라 어른신앙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크고 작은 고난을 쉴새 없이 당하게 됩니다.
성숙한 신앙은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관념 중에 하나는
고난은 저주다 라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고난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피하지 않고 통과하는 법을 배우면
고난을 다르게 맞이할 수 있다
고난을 통해 배우려는 마음이 생긴다
하나님이 더 큰 목표를 위해 고난을 사용하실 수
있다는 차원까지 이르는 것이다.
고난은 사력을 다해 피해야 할
불청객이나 저주가 아니라
더 깊은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길이 된다"
참으로 공감하는 말입니다.

헨리 신부는 이 책을 통하여 인생을 통찰하는 다섯 가지의 지혜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1. 작은 자아에서 더 넓은 은혜로
2. 움켜쥠에서 내려놓음으로
3. 운명론에서 희망으로
4. 감정의 조정에서 순전한 사랑으로
5. 두려운 죽음에서 환희의 삶으로

이 작은 책을 통하여 지체들의 고난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마을 청지기 박심원 목사
http://www.jvcc.org

출처 : 도형분석상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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