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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 차이의 존중

기쁨조미료25 2007. 9. 28. 00:50
[서평] 세계화의 문제, 종교의 지혜로 푼다
조너선 색스의 <차이의 존중>을 읽고

   
 
  ▲ <차이의 존중>/ 조너선 색스 지음/ 임재서 옮김/| 말글빛냄 펴냄/ 374쪽/ 1만 5000원   
 
21세기 인류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화두는 단연 세계화다. 자유주의 신념에 따라 세계를 단일 시장의 경제단위로 통합해 인류의 진보를 이룩한다는 세계화의 취지에는 분명히 미래의 기회가 마련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과로는 세계화에 따른 도전 과제들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세계화는 인류에게 고통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이로 인해 세계화에 대한 부정적 저항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에이미 추아가 <불타는 세계>에서 보여주었듯이 세계화는 민족 간의 갈등의 원인만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 분명하다. 진보에 대한 세계화의 궁극적 이상은 문명의 충돌로 인한 갈등과 저항으로 오히려 퇴보되고 있다면 세계화는 이제 새로운 이념으로 대체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런 반성적 성찰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의 흐름이 멈추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적어도 21세기의 정치와 경제는 세계화의 물결을 제어하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150년 전 애덤스미스에 의해 시작된 '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20세기에 일정한 승리를 얻었고, 발전된 자유진영에서 성장한 다국적 기업들의 새로운 자유주의(신자유주의)적 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물질적인 측면만을 놓고 볼 때 신자유주의 체제가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 요소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한 갈등과 저항, 문명 간의 충돌로 인해 나타나는 폐해 역시 너무나도 심각하기 때문에 세계화를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화의 대세와 세계화에 대한 저항 사이에서 지식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현상적으로 볼 때 이 둘 사이에는 대립과 갈등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데올로기상의 좌익(left)과 우익(right)이 대립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스펙트럼의 이면을 살펴보면 두 극단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양 극단에는 신좌익(new left)과 신우익(new right)도 있다. 이 신좌익과 신우익은 이념상 스펙트럼의 중심에서 약간씩 좌우로 나눌 뿐이다. 양극단의 이념을 어느 정도는 수용하면서 사회적 문제와 갈등의 요소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노력의 결실들이다. 그러나 이 신좌우의 대립도 결국에는 새로운 갈등의 두 축일 뿐이다. 세계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이념적 대립과 갈등 말고 세계화의 정면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없을까? 조너선 색스가 이 물음에 대한 한 가지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화의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서의 종교

조너선 색스는 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의 맹점에 대한 통찰력 있는 지적으로부터 세계화의 문제에 대한 이론적 해법을 모색한다. 세계화의 문제는 자유주의나 시장 경제 체제의 이념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시장은 교환의 장소이다. 거래가 이루어지고 가격이 결정되는 곳이다. 시장은 자율성이 기본이 되어 움직여지는 매우 역동적인 공간이다. 이런 점에서 시장과 그 자율적 질서 자체는 매우 소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 이 시장적 질서를 훼손하지 않고 자유롭게 유지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는 것이 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의 기본 신념이자 경제 메커니즘이다. 조너선 색스 역시 이런 점에서 시장체제 자체를 부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장은 도덕과 상관없이 거래가 이루어지는 교환의 장일 뿐이다. 따라서 모든 것을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이 시장에 합리성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견했지만 인류의 역사는 그걸 증명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장은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켰고, 가족과 지역 공동체와 같은 유대 관계를 파괴시켰다. 시장은 또한 도덕적 의무에 대한 담론을 무력화시켰고 공공선에 대한 인간의 의식을 허물었다(71쪽). 오늘날 시장의 원리에 내맡긴 세계화의 폐해가 지구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는 것이 조너선 색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시장의 비도덕적 횡포를 제어할 궁극적 요소는 무엇인가? 이 점에서 조너선 색스가 주목하는 것이 바로 종교다. 그의 통찰력에 따르면 세계화의 물결은 종교의 부활을 가져왔다. 세계화는 시장의 불안정성과 그로 인한 갈등의 심화로 인해 인류에게 불안을 심화시켰다. 그것인 마치 슘페터가 강조한 것처럼 자본주의가 낳은 창조적 파괴의 결과였다. 이런 불안에 위험을 느낀 사람들은 종교로의 회귀를 추구하게 되었다. 세계화의 흐름 앞에서 사람들은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가치에 대한 불안으로 정신적이고 영적인 힘으로부터 위안을 찾기 위해 종교로 돌아섰다. 이런 현상은 종교적 지혜를 통해 세계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화의 문제 해결하는 종교적 지혜들

조너선 색스는 바로 이런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영연방 유대교 최고의 지도자로 런던의 유대인 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그는 자신이 깨달은 종교적 지혜들로부터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세계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시해주고 있다. 본질적으로 그는 세계화의 이념이 종교가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을 품고 충실하게 그 이상을 구현하는 것이 바로 문제 해결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가 떠받드는 시장은 도덕적 기능이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 공간에서 활동하는 도덕적인 인간이 종교의 도덕적 이상을 충실하게 구현함으로써 세계화의 본질인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현실을 무시한 지극히 이상적인 견해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이 책에서 제시한 체계적인 종교의 지혜들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이것이 실천력이 있는 궁극적 해법이라는 사실에 공감하게 된다.

그가 제시한 해법으로서의 종교적 지혜들은 책임의 의무로서의 통제, 경제의 도덕으로서의 공헌, 사회 정의를 위한 자선, 교육의 평등성으로 인한 창조성, 시민사회 제도로서의 협동 및 보존과 화해 등이다. 이러한 개념들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통제는 경제나 정치 발전을 불가피한 과정으로 치부하길 거부하고 스스로 책임을 떠맡는 태도를 뜻한다.…자선은 선진국에게 세계의 가난한 자들의 독립성을 지켜주고 그들에게 빈곤에서 탈피하는 길을 열어주어야 할 진지한 의무를 안고 있다는 뜻이다. 창조성은 이러한 의무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교육 투자가 가장 좋은 방식임을 시사한다. 협동은 시장이 오직 경쟁만을 토대로 해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보존은 우리에게 자연과 미래에 대한 의무를 일깨워준다. 이러한 의무가 없다면 경제 성장의 속도는 다만 우리가 얼마나 빨리 나락으로 향해 가는 지를 나타내는 척도일 뿐이다."(287~288쪽)

조너선 색스가 강조하는 이러한 개념들은 결국 그가 종교적 깨우침을 통해서 발견한 도덕적 이상들이다. 이러한 도덕적 이상들을 가지고 현대사회의 대세인 신자유주의 이념을 이끈다면 세계화는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도덕적 이상이 없다면 인류는 실패할 것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종교적 지혜가 추구하는 궁극적 이상: 차이의 존중

문제는 종교적 지혜가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이 과연 절대적인가 하는 것이다. 현대 다원주의는 근대의 절대성을 허물어 도덕적 상대주의를 낳았다. 사실 보편 윤리에 대한 꿈은 계몽주의 기획의 실패와 더불어서 무너져 내린 것처럼 보인다. 세계화의 중심 이념은 자유주의 체제는 이러한 상대주의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이미 무너져버린 도덕적 이상이 어떻게 세계화의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가?

조너선 색스는 이 책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도 집중한다. 우선 그는 상대주의가 결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의 기반을 확립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상대주의는 결국 민주주의와 관용의 가치마저도 무너뜨린다. 상대주의는 선택한 적만을 겨냥하는 무기가 아니다. 그것은 서양 전통의 절대주의와 독단주의뿐만 아니라 서양 전통이 강조하는 관용과 다양성, 사상의 자유마저 무처별 총격한다. 아무 것도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면, 모든 가치가 문화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라면, 인간 평등이라는 숭고한 원칙마저 구석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326쪽)

도덕적 상대주의는 많은 가치들을 파괴하기 때문에 미래적 허무주의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상대주의가 허문 보편 윤리의 가치에 대한 보존은 인류의 미래 희망을 위해 중요한 선결 요건이 된다. 이 보편 윤리의 가치가 도덕적인 인간에 의해서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면 세계화의 문제는 상당부분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상대주의는 종교적 절대주의의 폐해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 종교적 근본주의 혹은 극단주의에 대한 반명제이다. 상대주의가 종교적 근본주의의 문제를 지적한 것은 옳았지만 그 문제에 대한 대안이 상대주의는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극단일 뿐이다. 이 지점에서 조너선 색스는 매우 통찰력 있는 한 사상을 주장한다. 그것이 바로 차이의 존중이다. 다른 의견, 다른 사상, 다른 신념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 사상은 다른 신념의 존재를 확고하게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상대주의는 다른 신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해체시킨다. 서로 간의 공통점만으로 인정되는 것이 상대주의다. 이에 비해 '차이의 존중'이란 각각의 신념의 독특성(uniqueness)을 인정하는 것이다. 서로의 독특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 독특성들이 지닌 가치는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의 총체가 바로 우주와 이 세계의 가치이다. 우리 세계는 다양성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각각의 다양한 독특성을 존중하는 것이야 말로 세계의 가치를 보전하는 길이라는 것이 조너선 색스의 주장이다. 이런 "차이의 존중"이야 말로 세계화의 시대에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인류가 진정한 진보로 나아갈 수 있는 궁극적 해법이라는 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사상이다.

조너선 색스의 '희망의 언약'

그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세계화로 인한 불화와 상대주의적 해체의 불안 속에서 인류가 창출할 수 있는 진보의 희망을 말하고자 한다. 그 희망의 이론적인 핵심은 '차이의 존중'을 통해서 나타난다. 다양성으로 이루어진 인류 사회가 차이의 존중을 통해 희망의 진보를 이룩할 수 있는 비결은 '언약 공동체를 지향함으로써'라고 그는 결론적으로 말한다. 언약 공동체란 무엇인가?

17세기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 이래로 국가는 계약 공동체로서의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토머스 홉스 이래로 사회계약설은 국가의 체계를 설명하는 이론적 틀이 되었다. 그것은 계약 관계로 형성된 것이다. 계약은 도덕적 관계가 배제된 느슨한 관계이다. 계약을 통해서는 일정한 의무와 권리만이 있다. 그것은 우열의 관계가 형성되며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 그러나 언약은 도덕적인 관계다. 언약관계는 서로의 고결함과 주권을 인정하고 서로 간의 도덕적 헌신으로 이루어진다. 계약 관계에서는 차이가 분쟁의 원인이 되지만 언약 관계에서는 차이가 갈등의 요인이 되지 않는다. 언약 관계에서는 항상 차이의 존엄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인류사회는 도덕적으로 조건 지어진 언약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인류 사회가 계약적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한 그것은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 즉 바다괴물일 뿐이다. 이제 인류는 사회계약설을 넘어서 언약의 공동체로 가는 희망의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은 차이의 존중을 통해서 가능하게 될 것이다.

조너선 색스가 '차이의 존중'을 역설하고자 했던 배경에는 종교의 지혜로 세계화의 문제, 나아가 문명의 충돌을 해결하는 해법을 제시하고자 했던 그의 학문적 의도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 세계는 종교가 갈등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러나 "종교가 갈등의 원천이 아니라 평화를 앞당기는 힘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그의 사상적 물음의 핵심이었다. 그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문명 간의 충돌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 종교가 평화를 앞당기는 힘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차이의 존중"이 해답이다. 이 위대한 사상으로 저자는 세계화의 문제와 나아가 다원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시하고 있다.

'차이의 존중'은 종교인으로서 세계화의 갈등과 다원주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나에게 분명한 깨달음을 제공해주었다. 21세기 다원주의 사회에 종교가 나아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제시해주었다. 아울러 세계화의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이론적 시각과 틀에 매우 중요한 한 방향성을 제공해주었다. 이 문제들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다소 모순적 입장에 서 있는 나의 사상을 통합시키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출하는데 이 책은 큰 기여를 하였다. 이것은 다만 나의 사상적 틀을 확립하는 데만 기여한 것이 아닐 것이다. 조너선 색스의 <차이의 존중>은 21세기의 인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명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해주었다. 이것이 아마도 이 책으로 하여금 종교부문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 상(2004)을 수상하게 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무더운 여름에 이 가치 있는 책을 만나 사상의 안식을 누리게 되어 기쁘다.

이국헌/ 목사·Hope21선교센터 소장·기독교회사(Ph.D.)

 

출처:알마힘의노래

출처 : 도형분석상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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