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숙
스티브 샴브린 지음
예수전도단 / 2007년 7월/ 193쪽
1장 첫 번째 단계 - 갓난아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영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기가 됩니다. 거기가 바로 우리가 영적 성숙의 여정을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기일 때, 하나님은 믿음이 충분히 자랄 만한 겨를이 없었다는 사실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하나님이 놀랍고 분명한 방법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아기이기 때문에 그런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의 특징을 몇 가지 살펴봅시다. 첫 번째로, 여느 신생아와 마찬가지로 갓난아이들은 자라면서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지릅니다. 이것은 갓난아이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잘못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기가 자라지 않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갓난아기와 같이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이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그 무엇보다 ‘갈망’하는 것입니다. 아기가 자라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 번째 특징은 에베소서 4장 14-15절에서 볼 수 있는 ‘불안정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아기들은 아직 견고한 기초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인 젖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그들을 한 가지에 헌신하게 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는 교회 안에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이들은 영적 정체성이 부족하여 ‘영적 거장’이라고 믿는 사람을 본받으려고 애쓰면서 맹목적으로 이를 모방합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마귀를 꾸짖는 식으로 자신의 영적인 용맹을 증명하려고 하며, 자신의 성숙도보다 앞서 나아가기도 합니다.
이제 이 여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두 가지 함정을 살펴봅시다. 아이들은 이 땅에 살면서 볼거리, 홍역, 수두를 앓습니다. 영적인 세계에도 유사한 장애물이 있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기들이라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영적 질병 두 가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중 하나는 ‘경쟁’의 영이요, 두 번째는 율법주의입니다. 우리는 경쟁하도록 만들어진 세계에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겨야만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는다는 생각에 찌들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경쟁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가족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 것은 자기 부인과 함께, 받기보다 주는 것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업적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집니다. 이 생소한 세계에 얼마나 충격이 큰지요! 이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생활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시는 만큼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요한복음 17장 23절을 봅시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이성과 논리를 총동원해도 이 한 가지 사실을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만큼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우리 머릿속이 아닌 마음속에 견고하게 세우기 전에는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업적과 선행, 율법주의로 분투하는 모습을 계속 보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12-1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이미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를 남들에게서 배워야 할 처지에 다시금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물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젖을 먹고사는 사람은 누구나 다 어린 아기이므로, 옳은 가르침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야 한다는 권고를 받습니다. ‘선생’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활 가운데 드러난 모습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삶에는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아기처럼 젖이나 빨면서, 의로운 일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성장하고 있습니까? 정체되어 있습니까?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을 주님께 내어드렸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을 변화시키지 못하도록 거부하면서 삶의 일부를 붙잡고 있습니까?
이제 히브리서 6장 1-3절로 넘어가서, 그리스도의 기본 가르침을 말한 6가지 개념에 대해 살펴봅시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개념은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조이 도우슨이 하나님께 죽은 행실(죄)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조이에게 한 가지 환상을 보여 주셨다고 합니다. 아주 화창하고 아름다운 오후에 한 소녀가 경치를 즐기며 산허리를 오르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잠시 발길을 멈추고 자리에 누워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거미가 나타났습니다. 거미는 소녀에게 다가와서는 몸을 타고 올라 얼굴에 내려앉았습니다. 거미가 소녀를 쏘아 죽이는 동안에도, 그 소녀는 거미에게 입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조이 도우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내가 보는 죄의 모습이란다.”
두 번째로 언급된 개념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을 보면 예수님의 피가 일부가 아닌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을 보면, 우리는 행실이 아닌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당신의 믿음을 하나님께 두고서 이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 외의 다른 것을 선택했다면 당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즉 오락가락하는 기분에 따라 구원의 안팎을 오가며 계속 요동하겠지요. 자신의 행위대로 구원을 확증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말입니다.
세 번째로 언급된 개념은 세례(혹은 침례)입니다. 세례라는 말씀이 복수로 기록된 것은 말씀이 언급하는 세례가 한 종류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물세례는 죄 씻음을 상징하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마 3:) 또한 요한복음 17장 20-23절과 갈라디아서 3장 27절은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 삶 가운데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세례가 나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3장 11절과 누가복음 11장 13절은 원수의 일을 허무는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전능하신 그분의 능력 안에서 살게 하는 성령의 세례를 말합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과 3장 10절에는 이 세상의 체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뒤따라 살아가는 동안 당하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세례가 나옵니다.
네 번째 개념은 안수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별없이 아무에게나 안수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안수를 함으로써 그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필요에 개입하시고 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섯 번째 개념은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하셨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음이 더 이상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기에, 우리가 죽으면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지막 개념은 영원한 형벌, 혹은 심판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 값을 완전히 치렀다는 개념입니다. 우리 자신이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끝없는 고뇌를 면하게 하신 예수님께 감사함으로 심판의 날을 과감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 여섯 가지 개념을 깊이 묵상한다면 여러분의 믿음을 반석같이 세우는 강력한 기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초가 제대로 놓여지기 전의 영적 갓난아기들은 매우 자기중심적이므로 질투와 논쟁의 모습이 보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동일한 일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 즉 이 사람 혹은 저 사람의 가르침을 붙들겠다는 태도는 다시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 됨을 무너뜨리면서까지 그리스도의 가르침보다 사람의 가르침을 우선하는 행동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행동을 한마디로 ‘영적이지 못한 행동’이라고 분명하게 지칭했습니다.
미성숙을 드러내는 여러 가지 특성을 살펴보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포기할 것을 기꺼이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절을 보면 주님은 우리가 기꺼이 다루어야만 하는 영역, 즉 다루지 않으면 결코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없는 영역을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악독은 증오와 쓴 뿌리로부터 나오는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악독의 치명적인 맹독에 주의하십시오! 궤휼이란 보통 조종과 거짓말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영역에 묶여 있으면,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온전히 우리를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외식이란 거절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면을 쓰고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가장하는 기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투명한 삶을 사셨으며, 그분 앞에서 살아갈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유하게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시기는 이기심에서 나옵니다.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려는 성숙하지 못한 욕망으로, 당신이 받아야 마땅한 것을 다른 사람이 받고 있다는 생각이 시기를 자아냅니다. 시기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비방입니다. 비방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확신하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때로 자기 마음이 풀릴 때까지 다른 사람을 비방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방이 성품 전체를 사로잡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 시점에서 하나님 앞에 홀로 나아가 앞의 다섯 가지 부분을 살펴보고, 주님이 당신의 성품 가운데 다루기 원하시는 다른 부분도 점검하기를 권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여주실 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방법이며, 우리가 잘못하고 있을 때 그 사실을 알려줄 만큼 우리를 아끼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홀로 대면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이실 뿐만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인내, 은혜와 훈계 사이의 균형을 정확하게 조절하십니다.
궁극적으로 갓난아기가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개념은, 하늘 아버지와 그분의 놀라운 공급이 그리스도를 통해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아기들에게, 그저 새로운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알아 가고, 예수님을 통해 그들에게 주어진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장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풀려나는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02 두 번째 단계 - 어린아이
요한일서 1장 7절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서 살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3장 6-8절의 경고에도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마다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그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고, 그를 알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어린 자녀 여러분, 아무에게도 미혹을 당하지 마십시오.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서 생겨났습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입니다.”
영적인 어린아이가 성장을 위해 훈련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사랑과 신뢰의 관계로 견고하게 다져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이기는 자유와 승리를 만끽하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면, 이는 하나님과 그의 거룩하심보다 죄를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알아 가십시오. 주님을 인정하고 그와 관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돈독해지면, 우리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요한일서 2장 20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또 다른 방법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분에게서 성령으로 기름부으심을 받고 모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2장 27절은 다시 말합니다. “여러분으로 말하면, 그가 기름부어 주신 것이 여러분 안에 머물러 있으니, 여러분은 아무에게서도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기름부어 주신 것이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참이요, 거짓이 아닙니다.”
여기서 기름부음이란 단어는 ‘성령의 능력’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어린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자신이 이미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하나님께 기름을 부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할 때는 훗날의 일을 감당하도록 기름부음의 모습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어린아이가 된 여러분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그로부터 다른 모든 은사가 흘러나옵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오. 그것은, 그가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담대함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며, 그가 오실 때에, 그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요일 2:28).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임재 안에 머물고 쉼을 누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시험과 어려움과 도전을 극복하는 대신, 그러한 어려움에 압도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 어떻게 머물 것인지가 주요 과제가 되겠지요. 다윗이 말했듯이 계속해서 그분 앞에 나아가 엎드리고 그분을 묵상하는 법을 배워서 그분의 임재 가운데 머물기를 연습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 가장 처음 깨닫는 사실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주님 앞에서 잠잠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시 잠잠해지지는 않겠지만 끊임없이 주님 앞에 나아가고 자신을 드려 그분을 기다릴 때, 우리의 생각은 성령에 복종하도록 단련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분 안에 머무는 법과 그분의 음성 듣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머무는 법을 배우라는 명령은 그다지 쉽게 이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를 훈련하는 사람은 풍성한 결과를 얻습니다.
우리가 어린아이로서 사랑의 실체를 만나기까지,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기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사랑의 진정한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희생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선택과 헌신이라는 단어도 떠오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진리 가운데 살아갈 때 정직하고 진실한 감정과 느낌이 피어나며, 이것은 당신의 삶을 메마르게 하는 대신 축복을 더해 줍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 여러분, 우리는 말로나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섬기면 19절에서 말하는 대로 보상을 받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서 났음을 우리는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쉼을 누리는 축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원리를 슬쩍 피하면서, 하나님이 먼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시면 행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매다는 것으로 그 사랑을 보이시고 증명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이에 대한 믿음은 선택이 아니고 명령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서로 사랑하라”(요일 3:23-24).
하늘 아버지께서는 예수 이름에 우리의 확고한 믿음을 두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 원하십니다. 중보 기도와 영적 전쟁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첫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마귀를 두려워하고서는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들로서 우리는 확신 있고 안정된 기반을 세워야 합니다. 중보 기도와 영적 전쟁을 배워나가는 동안 우리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받고 용납받는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이름에 대한 믿음을 훈련하는 것 외에도, 성경이 말하는 세 가지 다른 영역의 훈련이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는 우리가 믿는 분이 누군지 알아 가고, 그분과 교제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영역은 우리의 기업과 권위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알고 여기에 확신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영역은 하늘 아버지께 확신을 두고 믿음 안에서 자라 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권위를 사용하고 원수의 일을 멸하기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강건해지려면, 지속해서 믿음을 단련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여러분이 중보 기도와 영적 전쟁을 배워나가기를 권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성장할 때, 우리를 가로막는 거짓을 극복하기 위한 필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3장 세 번째 단계 - 청년
요한일서 2장 14절을 봅시다.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여기서 젊은 청년들은 ‘강한 자’라는 특징을 보입니다. 청년들이 강한 자로 언급되는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마침내 영적으로 성숙한 증표가 실제의 모습으로 드러날 때가 임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견고히 머물러 그의 이름으로 힘있고 강건하며 강력하게 행동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계속해서 헌신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계속해서 열매를 맺으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제 청년이 악한 자를 이겼다는 의미를 살펴봅시다. 원수를 이기기 위해서는 세 가지 실제적인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첫 번째 행동 원리로, 청년들은 원수의 일을 분별하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하는데, 물론 이는 영적인 민감성을 현실적이고 실제적으로 개발시켜야 가능합니다. 그래야 더 이상 원수의 조종을 받거나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행동 원리는, 전투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공격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공격을 실행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는 원수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사용해야 한다는 세 번째 원리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개념과 원칙은 면밀히 뒤얽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린아이로 있는 동안에 예수 이름에 믿음을 두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믿음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전쟁에서 제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청년의 개념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려면,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인 바울이 주 안에서 아직 젊은 청년인 제자 디모데에게 권면한 중요한 원칙들에 주목하게 됩니다. “아무도 그대가 젊다고 해서 그대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십시오. 도리어 그대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순결에서 믿는 이들의 본이 되십시오”(딤 4:12). 즉,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성장하기를 거듭할 때에,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고는 디모데에게 사람의 기대감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가는 일에 제한받지 말라는 말입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는 자들의 본이 되라고 권고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청년인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무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13절에서 바울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단순한 원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가 갈 때까지 성경을 회중 앞에서 낭독하는 일과 권면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십시오.” 여기서 경고하는 사항은 비전과 미래에 너무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바로 앞에 주어진 것들을 지속해서 실행하기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은 명확하지 않은 커다란 미래의 그림을 찾는 동안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합니다.
또한 14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대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들의 모임에서 그대가 안수를 받을 때에 예언으로 그대에게 주신 그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 흥미로운 개념은 우리 안에 있는 은사를 휘저어 일으키는 것을 말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우리를 힘겹게 만드는 사람들과의 문제, 대결 상황, 환경을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시간들을 피하면, 성장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포기하는 셈입니다. 진심으로 ‘당신 안에 있는 은사’를 일으키려는 갈망이 있을 때, 주님이 당신을 힘겨운 상황 가운데 두실 수 있으나, 그 상황에서 주님은 당신을 사용하시고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은사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새로운 환경과 상황을 설정하시도록 우리를 내어드려야 하는데, 하나님의 인도 없이 자기 스스로 그러한 상황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 주의하십시오!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15-16절에서 디모데에게 당부합니다. “이 일들을 실천하고, 그것에 전심전력을 다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대가 발전하는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게 하십시오. 그대와 그대의 가르침을 살피십시오. 이런 일을 계속하십시오. 이렇게 함으로써, 그대는 그대뿐만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도 구원할 것입니다.” 또한 5장 1-2절에서는 실제적인 사역에서 필요한 조언을 합니다. “나이 많은 남자를 나무라지 말고, 아버지를 대하듯이 권면하십시오. 젊은 남자는 형제를 대하듯이 권면하십시오. 나이 많은 여자는 어머니를 대하듯이 권면하고, 젊은 여자는 자매를 대하듯이, 아주 순결한 마음으로 권면하십시오.”
그리고 6장 11-12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 악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십시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영원한 생명을 얻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그대를 부르셨고, 또 그대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청년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야 하고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인격을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의 결점을 다루시도록 하나님께 우리를 내어드리지 않는 것은 영적 성장에 장애가 되며, 겸손한 사람만이 자신의 삶 속에 예수님의 성품을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면, 우리는 책임을 감당할 능력을 얻고 영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됩니다.
이제 바울이 디모데전서 6장 20절에서 제시하는 또 다른 원리를 살펴보겠습니다. “디모데여,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많은 것을 맡기셨습니다. 그것을 잘 간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을 멀리하십시오. 진리에 대해 변론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지식을 참된 지식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결코 지식이 아닙니다. 변론을 피하시오.”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자신이 맡은 것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향한 주님의 소망과 갈망은,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이 원리를 우리가 깨닫기까지 보류됩니다. 진리에 대해 변론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지식을 참된 지식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결코 지식이 아닙니다. 지식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 대신 ‘머릿속 지식’에서 안정을 찾는 위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깨닫고, 감사하고 겸손하도록 기도하며 믿음을 연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힘이 되고 하늘 아버지에 대한 진정한 지식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은 바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2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대는 젊음의 정욕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좇으십시오.” ‘정욕’이란 단어는 ‘금지된 것을 열망함’이라는 의미로서 우리 마음을 빼앗고 있는 갈망이나 야망을 말합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청년들이 쉽사리 흥분에 들뜨게 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기서의 원칙은 자신이 혹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라는 것이 아니라, 그분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빼앗아가는 그 어떤 것도 허용하지 말고 주님 앞에서 겸손하게 그분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 혹은 비전을 실제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선교 현장에서 일하던 초기 몇 년 동안, 사람들이 찾아와 하나님 안에서 품은 제 비전이 무엇인지 물어보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선교 현장에서 일하던 첫 3년 동안 나는 3개월 이상의 계획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도받는 모습은 때로 영적이지 못한 것으로 비쳐졌지만, 제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생의 비전을 구하는 일에 부주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나님은 제가 감당할 만할 때에 필요한 것을 정확히 주시리라는 사실에서만 평안을 얻어야 했습니다. 오로지 제가 주님 앞에 충성되고 그분을 신뢰하며 순종으로 발을 내딛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확신하는 단계로 인도함을 받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은 일단 정해진 기한이 없는 부르심의 기간으로 들어가면, 주님의 ‘때’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주님의 ‘때’는 보통 수년간 지속됩니다. 그런 후에는 주님이 그 문을 닫으시고 전혀 다른 것에 중점을 둔 새로운 문을 열어 주십니다. 이 과정에서 유혹에 넘어지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모든 선한 것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 놓으신 목표와 비전들은 대체로 이전보다 규모가 점점 더 커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숙해 도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께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내 능력 밖의 일인 듯이 보이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습니다!
4장 네 번째 단계 - 아비
요한일서 2장 13-15절을 보겠습니다. “아버지이신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태초부터 계신 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안에 아버지의 사랑이 없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핵심 사항은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머릿속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친밀하고 마음으로 느끼는 지식, 즉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의 의미를 아는 지식입니다. 성숙한 사람들은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기 때문에 인생을 향한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안정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숙한 사람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의 때가 닥쳤을 때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평안 속에서 어려움을 뚫고 나갑니다.
성숙한 사람들에게는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세상 것에 유혹받지 않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풍부하거나 빈곤하거나 모두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우리 역시 성장하는 과정에서 세상이 주는 것에 유혹을 받지 않고 대신 영적 성숙의 각 단계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만족하기를 배운다는 것은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분을 따르는 대신 세상 것과 유혹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부르심을 특권으로 받아들이고 특정한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겸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을 기다리며 찾는 방법을 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특징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선택받았음을 깨닫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그 열매가 변하거나 부르심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동행하면서 그들에게 영적 성숙을 깨닫도록 종과 친구의 차이점을 그 예로 드셨습니다. 여기서 종과 친구라는 말은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차이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는 개념을 사용했을 때, 예수님은 그분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제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원리는 단 하나입니다. 제자들이 충성스럽게 예수님과 동행했을 때 더욱 깊은 관계로 불러주셨습니다. 아버지께 들은 바를 모두 알려주겠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 자리로 가깝게 부르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자 열망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놀라운지요! 그곳은 책임과 능력을 갖춘 장엄한 성숙의 자리였습니다!
한 나라 전체가 크게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행사를 경험하는 것은 성숙한 한 남자, 한 여자가 하나님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역대상 12장 32절에는 “잇사갈 지파에서 그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이스라엘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고 있었던 족장 200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구절에 진정한 지도자, 성숙한 사람이 갖추어야 할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시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숙한 사람이 시대를 이해한다는 말은 텔레비전의 저녁 뉴스 내용에 박식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서 얻는 지식과 성령으로 얻는 지혜가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하나님이 보시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시대를 분별하는 것이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정말 중요합니다.
두 번째 원리는 지도자가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바를 아는’ 것입니다. 양떼가 가야 할 길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양떼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방향, 그리고 교회를 부르신 사명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숙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적절히 돌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 사역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 결과 하나님은 진정한 목자인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기름부음으로 사람들을 섬기도록 허락하십니다. 먼저 주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섬기면, 당신의 순종 때문에 주님의 긍휼과 신실하심이 사람들의 필요를 채웁니다. 하나님의 이 단순한 진리가 언제나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요!
끝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고난이 성숙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봅시다. 하나님의 성숙한 사람은 고난에 익숙하며 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받는 것을 특권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고, 우리도 주를 섬기다가 때로는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현실을 직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선택’이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기로 스스로 결정했고, 그 결과 많은 고난을 겪었으며,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에서 나온 선택된 고난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했습니까? 여러분의 직업, 가족, 모든 일상에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성숙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실제로 찾아왔을 때 드러날 것입니다. 고난을 겪으면서도 제자들의 태도가 “나는 이를 기쁨으로 여긴다”는 바울의 한마디로 요약된다는 점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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