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별활동자료]/교회학교·교사·교육자료

[과학자이야기]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이겨 낸 최고의 과학자는? - 스티븐 호킹/돌턴/갈릴레이/에디슨/지렛 버메이 교수 코칭스쿨 / 학습지도

기쁨조미료25 2012. 11. 10. 15:29

[과학자이야기]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이겨 낸 최고의 과학자는? - 스티븐 호킹/돌턴/갈릴레이/에디슨/지렛 버메이 교수  

 

 

새 학기를 시작한지 훌쩍 시간이 지났습니다.
금새 아이들의 방학을 맞이할 듯 한데요.
새 학기 전에 세운 야심차게 계획들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으신가요?
마음만 앞서 '작심 3일'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잠시 느슨해졌을 우리 아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장애를 이겨 낸 과학자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최고의 과학자들을 통해 각오를 새로이 잡아보도록 해요.

 

 

 

 

강한 정신력과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한 스티븐 호킹

 

 ‘아인슈타인의 후계자’, ‘현존하는 금세기 최고의 천재 과학자’, 바로 스티븐 호킹 박사에게 쏟아지는 찬사들이랍니다. 청소년들이 존경하는 인물 조사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과학자, 스티븐 호킹은 젊은 시절 공부 대신 조정 경기에 흥미를 붙일 정도로 건강한 청년이었어요. 우주론에 관심이 많았던 스티븐 호킹은 대학 졸업 이후 케임브리지대학원에 진학해 물리학을 공부했어요. 그러나 이 무렵 그는 별다른 이유 없이 어지러움을 느끼고, 자꾸 넘어졌어요. 이상하게 생각한 스티븐 호킹은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루게릭병이라는 불치의 근육 마비병으로 인해 2년밖에 더 살 수없을 것이란 통보를 받았답니다. 충격을 받은 스티븐 호킹은 절망에 빠져 박사 학위고 뭐고 아무 소용 없다는 생각으로 한동안 방황을 했어요. 하지만 그의 병상 맞은편 침대에서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이름 모를 소년이 그에게 삶의 희망을 찾게 해 주었죠. 호킹은 그 소년을 보며 이 세상에는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만약 자신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가 미루어질 수 있다면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해야 되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답니다. 그의 학문 인생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요. 증상이 악화되어 갈수록, 스티븐 호킹 박사는 더욱 더 강한 정신력으로 연구에 매달렸어요. 스티븐 호킹 박사는 ‘특이점 정리’, ‘블랙홀 이론’, ‘우주의 폭발(빅뱅)과 팽창’ 등 세계가 놀랄 이론을 연달아 발표하며, 세계 물리학계에서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의 뒤를 잇는 사람으로 떠오르며 명성을 얻었답니다.
 
초인적인 의지와 도전 정신으로 장애를 극복하다
'자신의 육체적 장애를 원망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마음의 장애인이 된다.' 바로 스티븐 호킹 박사의 명언입니다. 박사는 루게릭이란
불치명으로 인해 두 손가락과 얼굴 근육 일부분밖에 움직일 수 없었지만, 초인적인 의지와 도전 정신으로 장애를 극복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불가능에 대한 핑계만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삶 그 자체가 교훈이 됩답니다.

 

 

 

  

색맹이라는 장애를 딛고 과학자가 된 돌턴
 
교과서에 원자 이야기가 나올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영국의 과학자 돌턴이지요. 그런 그가 가장 먼저 매달린 것은 화학도,
물리도 아닌 색맹에 대한 연구였어요. 왜냐고요? 바로 자신이 색맹이었기 때문이었죠. 사실 돌턴은 빨강과 초록을 구별 못하는 적록색맹이었거든요. 지금 시대야 색맹이 장애라는 생각이 덜 하지만, 돌턴이 살던 18세기에는 어마어마한 장애라고 여겼어요. 게다가 색을 구별 못하는 과학자라니요! 돌턴은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입고, 왜 다른 사람과 보이는 것이 다른지, 그리고 왜 색을 구별 못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최초로 색맹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답니다. 또한 돌턴은 자기가 죽으면 안구를 기증할테니, 연구용으로 써 달라고 유언을 남길 만큼 색맹 연구에 강한 집념을 보였어요. 이렇게 돌턴의 살신성인 정신을 인정받아 적록색맹을 그의 이름을 빌어 ‘돌터니즘’이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살신성인으로 색맹을 연구하다
색을 구별 못하는 과학자. 돌턴이 자신의 안구를 기증하면서까지 색맹에 대한 연구한 것을 보면, 과학적 호기심이 바로 '내 몸'과 같
이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을 멀고 어렵게만 느낀다면 돌턴처럼 먼저 자신의 주변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보세요.

 

 

  

굳은 신념으로 장애를 극복한 갈릴레이

 

‘근대 과학의 창시자’로 칭송을 받는 갈릴레이. 그의 연구 업적 가운데 가장 탁월한 분야는 바로 천문학이에요. 어떻게 하면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자세히 살펴볼까 연구하다가 천체망원경을 발명하고, 본격적으로 별들을 관찰했답니다. 그러데 그의 눈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달의 표면,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던 중 점점 시력이 나빠진 거죠. 하지만 그의 연구는 계속되었고,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에 확신을 갖게 되지요. 그 후 갈릴레이는 종교 재판을 받고, 평생 집안에 감금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는 천체를 관찰할수록 눈의 시력이 나빠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망원경으로 태양의 흑점, 금성, 토성 등을 관찰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죠. 이렇게 연구를 계속한 갈릴레이는 시력을 잃게 된답니다. 더 이상 망원경을 볼 수 없게 된 거죠. 하지만 갈릴레이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상상력과 제자의 천체 관찰을 바탕으로 연구를 계속했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때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갈릴레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리를 알아내기 위해 주저앉지 않고 연구에 매진하였습니다.
이런 정신이 '근대 과학의 창시자'란 칭송을 얻게 된 밑거름이 되었답니다.

 

 

손과 이를 이용하여 축음기를 발명하다! 청각 장애인 에디슨
 
백열전구, 축음기, 전등, 축전지 등 생활에 밀접한 천 가지 이상의 발명과 특허를 내어 ‘과학의 마술사’라는 칭호를 얻은 세계적인 발
명왕 에디슨! 그의 화려한 연구 성과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에게 청각 장애가 있었다는 걸 모르는 이들이 훨씬 많을 거예요. 에디슨이 귀가 멀게 된 사연은 소년 시절 기차 안에서 실험을 하다가 큰 불을 내고 차장에게 얻어 맞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그러나 사실은 달라요. 에디슨은 선천적으로 귓속 반고리관에 장애가 있었어요. 또 어린 시절, 에디슨은 몸이 약해 여러 번 심한 감기에 걸려 만성적인 기관지염을 앓았죠. 이때 귀에도 나쁜 영향이 미쳐서 점차 귀가 들리지 않게 된 거예요. 이렇게 잘 들리지 않는 귀로 인해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알아듣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니 당연히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답니다. 하지만 귀가 어둡다는 게 꼭 불편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에디슨은 귀가 잘 들리지 않자 발명에 꼭 필요한 집중력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귀에 이상이 있는 에디슨이 어떻게 축음기를 발명했느냐고요? 마치 귀가 어두웠던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한 것처럼 불가사의하게 느껴지지요. 에디슨은 귀가 못 듣는 음을 확실히 구별하기 위해 손과 이를 이용해 진동을 느끼고 음을 구별했다고 해요. 피아노가 연주되고 있을 때에는 피아노에 손과 이를 대면서 말예요. 이 때문에 피아노에는 언제나 에디슨의 잇자국이 나 있었답니다. 정말 지독하다 생각할 정도로 노력이 대단하죠? 이렇게 에디슨은 청각 장애를 끝없는 노력으로 극복하여 인류 최고의 발명왕이 되었답니다.
 
장애를 강한 의지와 노력으로 딛고 일어선 에디슨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자
어린 시절의 에디슨은 허약하고 학교에선 왕따를 당하는 문제아였습니다. 또, 귀도 잘 들이지 않아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그 누구도
발명에 대한 에디슨의 열의는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평생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1,000가지 이상을 발명한 에디슨이야말로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한 진정한 과학자라고 생각합니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감각을 동원해 화석을 연구하는 생물학자, 지렛 버메이 교수

 

현재 미국 진화론 생물학자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지렛 버메이 교수를 소개할게요. 지렛 버메이 교수는 녹내장을 안고 태어나 3세 때 안구를 완전히 제거하는 큰 수술을 하여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과학자예요. 그런 지렛 버메이 교수의 연구실은 지난 40년 동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직접 손으로 일일이 만져 가며 발견한 조가비 화석들로 가득차 있어요. 이런 조가비는 수백만 년 전에 살았던 화석으로 진화론의 열쇠로 불리죠. 보통 사람들은 화석을 눈으로 직접 봐도 어떤 게 화석이고, 그냥 돌맹이인지조차 구별하기 매우 힘들어요. 하지만 그에게 앞을 볼 수 없는 장애는 연구에 있어서 결코 장애물이 되지 않았어요. 눈 대신에 두 손과, 귀, 코로 화석을 연구하면 되니까요. 가끔 화석에 손가락을 넣을 수 없을 땐 작은 핀을 넣어 세심하게 알아보았답니다. 지렛 버메이 교수가 화석을 연구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 조가비가 가진 매력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에요. 어렸을 적부터 점자책을 읽고, 화석을 손으로 만지며, 느낀 점을 타자로 쳐 가며 자신만의 점자 노트를 만들기 시작했죠. 이렇게 그는 볼순 없지만 수많은 역경을 헤쳐 가며 상상력과 호기심을 키워 나갔어요. 교수가 된 뒤에도 시각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수많은 화석을 몸소 느끼고, 연구했답니다.
 

두눈은 없지만, 상상의 날개를 달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앞을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살고 있는 지렛 베메이 교수. 하지만 그에게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고, 세상을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두 손과 코, 귀가 있었습니다. 시작 장애 과학자로 생각하지 않고, 평범한 과학자이길 원하는 지렛 버메이 교수님이야말로 장애를 불굴의 의지로 헤쳐 나가는 과학자가 아닐까요?

 

출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