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에 중동 사역지에서 이슬람급진주의 그룹에 속한 현지인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아직 알카에다가 부상하지 않았었고 다양한 급진주의 그룹이 유럽, 중동 및 서아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그룹이 알카에다 네트워크로 급속 통합된 것은 1991년 이후로 걸프전쟁과 미군의 사우디 아라비아 주둔이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당시 한국중동학회에서 이슬람근본주의 또는 원리주의라는 범주 안에서 이러한 급진주의 세력의 행태가 간간히 소개되고 있던 떄였다.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것은 말 그대로 쿠란의 가르침에 절대 복종하는 그룹으로 이해된다. 매우 교조주의적이며 율법주의자들로 서구의 영향을 받3은 이슬람 근대주의자들에 대해 투쟁하는 사람들이다. 당시 이들은 경직되고 원칙주의적이며 거의 광신자적인 무슬림이라는 이미지로 한국을 포함한 서구사회에서는 이해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만난 이 사람들은 무식하고 광신적이며 교조주의적이지 않았다. 당시 중동에서 최고의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으며 일류 대학에서 전임강사로 가르치는 젊은 교수요원이었다.
또 한가지 당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나는 이 사람들이 이슬람 율법과 쿠란에 대해 말하며 무함마드를 따르라고 말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과 서구 제국을 한결같이 비판하고 비난했다. 25년 전에 내가 경험한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알카에다를 율법주의 및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은 무슬림들이다, 그러나 종교적 율법주의자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오히려 급진 좌파, 즉 국제사회주의 운동의 행동 대원들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들은 세계에 이슬람을 전파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일은 전통적 이슬람 집단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전통적 이슬람 국가들이 수행한다. 엄청난 예산을 쓰며 세계에 이슬람을 포교하는 사우디 아라비아 왕실도 알카에다의 최우선 타도 대상이다..
알카에다는 반서구 반미 글로벌 국제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목표는 프롤레타리아 이슬람 세계를 서구 세력의 지배로부터 해방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좌파 국제운동과 맥락을 같이한다. 알카에다는 사우디 아라비아 와하비 파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글로벌 지하드, 즉 국제운동은 유럽에서 시작하였다. 중동 출신으로 유럽에서 유수의 대학에서 공부한 소위 엘리트 무슬림들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9.11사태가 알카에다 독일 함부르그 그룹에서 감행한 것도 이러한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알카에다는 패권적인 서구문명 세력을 지구촌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9.11 사태 당시 알카에다가 공격한 목표물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뉴욕 WTC와 워싱턴 DC 국방성을 공격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는 서구 물질문명, 즉 자본주의 문명의 상징이며 국방성(펜타콘)은 서구 군사력의 상징이다. 서구문명의 힘의 상징, 즉 경제력과 군사력의 상징을 공격한 것이다. 그들은 이 테러 공격을 통해서 세계에 메시지를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서구문명은 퇴출되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세계 무슬림들은 서구문명의 지배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왜 한국 좌파들이 이슬람에 대해 호의적이며 한국으로 몰려오는 이슬람에 대해 지원세력을 자처하며 이슬람과 모종의 연대를 모색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 무슬림들이 좌파들과 연대하는 것이 아니다. 친북 좌파들이 한국의 이슬람화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불신자를 만나면 알라에게 돌아오라고 초청하라 응하지 않으면 경고하라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현장에서 죽이라!”고 명령한다. 좌파 무신론자는 불신자의 전형이다. 그런데 알카에다 전신 이슬람 급진그룹 아부 니달이 1990년대 중반까지 평양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던 이유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알카에다 같은 급진 이슬람 세력은 세계 프롤레타리아 인민해방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급진좌파 세력과 전략적으로 동맹한다. (다음 계속)
(이기사는 뉴스파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