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의 최후
1941년 7월말, 아우슈비츠 수용소 14동에서 포로중 한명이 탈출했다.
친위대가 출동해서 도망친 포로를 추적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탈출자가 24시간 안에 잡히지 않을 경우 그가 속한 14동의 수용자 중 10명이 죽음을 맞게 된다.
다음 날 아침, 수용소 소장은 일렬로 늘어선 수용자들 중에서 처형시킬 사람들을 무작위로 골라냈다.
"너, 너, 그리고 너!"
그런데 수용소장에게 지목된 한 사람중 전 폴란드군 부사관이었던 프란치세크 가조우니첵크가 울부짖으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오~ 제발 절 살려 주세요. 제겐 아내가 있고 불쌍한 자식들도 있습니다 제발..”
그때 누군가 대열을 벗어나 소장 앞으로 다가와서 소장에게 말했다.
"저 사람 대신 제가 죽게 해주십시오."
"너는 누구지?" 소장이 그에게 물었다.
"16670번 막시밀리안 콜베 가톨릭 신붑니다. 결혼하지 않았기에 아이도 없습니다. 부디 저 사람과 바꿔주십시오."
이 말이 소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좋아 너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사형수 리스트에서 울고 있던 가조우니첵크의 번호와 이름이 지워지고, 대신 콜베 신부의 번호와 이름이 올라갔다.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Maximilian Maria Kolbe 1894~1941)
콜베 신부를 포함한 10명은 죽어야 벗어날 수 있는 악명 높은 지하 아사감방(餓死監房)으로 향했다.
콜베 신부는 죽음을 기다리는 다른 수감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는 아사감방에서 콜베 신부와 함께 있는 죄수들은 누구도 저주하지 않고 비록 힘이 빠진 목소리지만 기도하고 찬송할 뿐이었다.
3일이 지났을 때 처음으로 한 사람이 죽었고, 나머지는 허기와 갈증으로 야위어가며 주말까지 살았다.
2주가 지나자 네 사람이 남았는데, 콜베 신부도 그중 하나였다.
"다음 작업을 위해 감방을 치우도록 해!" 소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치운다는 말은 배설물과 냄새 제거를 의미했지만, 또한 겨우 숨만 붙어 아직 생존해 있는 수감자들을 제거한다는 의미도 된다.
수용소 담당 의사가 감방문을 열었을 때, 9명의 동료를 먼저 보낸 후 혼자 남은 콜베 신부는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리고 준비된 독약주사 앞에 뼈만 남은 팔을 내어 준다.
1941년 8월 14일,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그렇게 최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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