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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12장 -미리암과 아론의 부정

기쁨조미료25 2009. 8. 28. 16:33

민수기12장

미리암과 아론의 부정(민수기 12:1-3)

여기에서는 다음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Ⅰ. 아론과 미리암의 주제 넘은 감정. 그들은 "모세를 비방했다" (1절). 그토록 하나님께서 큰 영예를 베풀어 주셨던 그 모세가 인간에게서는 그토록 큰 치욕과 멸시를 당한 것을 생각하면, 이상하고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아닐까? 사람들은 그를 노하게 하고 용기를 잃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누가 감히 모세에게 이런 곤란이 닥쳐오리라고 생각했겠는가?

1. 그를 비방한 자들은 성실하고 선한 사람들이었다. 즉 미리암은 여자 예언자였고 아론은 대제사장이었으니, 그들은 이스라엘을 구원한 일에 모세를 도왔던 협력자들이 아닌가? "내가 네 앞에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었노라" 고 했다(미 6:4).

2. 또 그 비방은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즉 그의 친형과 친누나였고 그의 은혜를 많이 받은 자들이 아니었던가? 이와 같이 그 신부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의 어미의 자식들인 내가 화를 내었도다" (아 1:6). 또한 친척간의 불화는 각별히 괴로운 것이다. "노한 형제는 강한 도성을 얻기보다 더 어려우니라." 그러나 이 사건은 모세의 소명을 확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그의 영달은 순전히 하나님의 호의에 의한 것이며 결코 그의 영달을 질투하던 친족들과의 어떤 계약이나 협상에 의한 것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우리 구주의 친족 중의 많은 사람들도 그를 믿어 주지 않았다(요 7:5). 미리암이 다툼을 시작했고, 70 장로의 선발에 끼어들지 못한 아론은 당시 약간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그도 역시 쉽게 자기 누이의 편을 들게 되고 만 것이다. 아론의 손이 그렇게 많은 범죄에 동참했었다는 것을 알면 슬플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율법이 흠있는 자들로 제사장을 삼았다" 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사탄은 먼저 하와를 설득하고 나서, 그녀를 통해서 아담까지 설득했다. 친척들과의 싸움에 휘말려들지 않도록 각별히 주위하자. 우리는 작은 불티가 얼마나 큰 일을 저지르는가를 알기 때문이다. 아론은 자기가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하나님이 노하셨으며, 그 때 모세가 자기의 편이 되어 주었던 일(신 9:20)을 기억하고, 선을 악으로 갚지는 말았어야 했다. 그들은 두 가지 일로 모세와 싸웠다.

(1) 모세의 결혼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모세가 말년에 구스 또는 아랍 여인과 결혼한 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한 에티오피아 여인 십보라 때문이라고 하며, 그들은 이 여인이 70인 장로의 선정에서 모세에게 지나친 영향을 미쳤다고 빗대어 말했다는 것이다. 아마 십보라와 미리암 사이에 어떤 사적인 말썽이 있었고, 그 때문에 서로 욕을 퍼부었다고, 성미 급한 어느 한 사람이 상대방을 분노로 끌어들였고, 마침내 모세와 아론이 개입되게 된 것이라 본다.

(2) 그의 통치에 대한 불만이다. 실정 때문이 아니라 정권의 독점 때문이었다(2절).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그만이 예언의 영을 받을 자를 뽑을 권한이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 문제에 손을 대면 안 되는가? 모세처럼 우리도 우리가 좋아하는 친구를 뽑으면 어떻단 말인가?" 그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던 것도 역시 분명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모세를 구별하여 세웠지만, 그들이 의도한 것은 그 모세와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최고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은 예수의 제자들도 항상 쉽게 빠지던 죄악이다. 그것은 엄청난 죄악이다. 자기들이 훌륭하게 출세한 자들이라도 남들의 출세를 좀처럼 기뻐하지 않는다. 뛰어난 자들은 시기의 대상이 되기가 일쑤이다.

Ⅱ. 모세는 이러한 성화를 놀랍게 인내했다. "여호와께서 그것을 들으셨다" (2절). 그러나 모세는 그것을 눈여기지 아니했으니, 그것은 그가 매우 온유했기 때문이다(3절). 그는 거기에 대한 분노할 만한 많은 이유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원망을 하여 모세를 크게 격분케 했던 것이 최근인데, 아론과 미리암이 질투하여 다시금 불평을 늘어놓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악한 성질의 소산이요 시기적으로 나쁜 일이었다. 그러나 모세는 "벙어리 같이 듣지 않았다." 금송아지 사건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관련된 일이었을 때에는, 모세처럼 분노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명예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온유했다. 하나님의 명분을 위해서는 사자같이 용맹하고 자신의 명분을 위해서는 어린양같이 유순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겸손한 자들" (습 2:3)이다. 그러나 어떤 자들은 이 은혜에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더욱 탁월하다. 역시 하나님의 일에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그 일에 아주 적합한 인물이었으니, 그는 매우 온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친구들의 불친절이 우리의 원수들의 악의보다도 우리의 겸손에 더 큰 시련을 주는 수가 있다. 그리스도는 당신 자신의 온유를 친히 기록하셨다(마 11:29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온유의 본은 흠없는 것이나, 모세의 본은 그렇지는 못하다.


불평을 들으신 하나님(민수기 12:4-9)

모세는 자기에게 가해진 피해에 대해 분개하거나 하나님께 그것을 원망하지 않았다. 또 호소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 분개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정적으로 하는 모든 말을 들으시며, 우리의 조급한 언동에 대한 신속한 증인이시며, 이것이 왜 우리가 우리의 혀를 제어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우리는 남을 비방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그것은 왜 우리는 남의 말에 인내로써 참아 그것에 유의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되고 한다. 우리의 명분으로 인한 싸움에는 우리가 침묵을 지키면 지킬수록 하나님은 그만큼 더 깊이 개입하시어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무흠한 데도 고소된 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의 변호인이 될 것을 안다면 별로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Ⅰ. 고소가 제기되었으므로, 당사자들은 회막문으로 소환되었다.(4,5절). 모세는 종종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질투심을 발휘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명성을 위해서 질투심을 발휘하신다.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도 영예롭게 하시리라."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연노한 재판관들이 재판을 할 때에는 성문에 앉았었다. 이와 같이 이때에 영광의 구름 속에 하나님의 존엄 세키나가 "회막문에" 나와 섰다. 그리고 아론과 미리암은 이제 범인으로서 회막문의 빗장 쪽으로 불려 나왔다.

Ⅱ. 아론과 미리암은, 자기들이 위대하더라도 결코 모세의 위대함과 동등하다고 가식을 부려서는 안 되며, 모세와 경쟁을 벌여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6-8절). 그들이 여호와의 예언자인가? 그렇다면 그(모세)는 "더욱 그러하다" 고 할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에게 큰 영예를 부여하신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예언자들을 조롱하고 학대하더라도 그들은 하늘의 은총을 입은 자들이요 하늘의 비밀을 아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당신 자신을 알리셨다." 즉 그들이 자고 있을 때에는 꿈을 통해서, 깨어있을 때에는 환상을 통해서 알리셨다. 하나님에게 "당신을 알리신" 자들은 행복하고, 진실로 행복하며 위대하고, 진실로 위대한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옛날처럼 꿈과 환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예언자들과 왕들" 이 보기를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 곧 메시야의 시대에는 "아들과 딸들이 예언을 하리라" 고 기록되어 있다(욜 2:28). 그들이 그 이전의 예언자들보다도 은혜의 나라의 비밀을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히 1:1, 2  참조).

2. 모세가 받은 영예가 훨씬 위대했다. "나의 종 모세는 그렇지 아니하도다" (7절). 즉 그는 그 모든 자들보다 더 뛰어났다. 미리암과 아론이 불러일으킨 치욕을 온유와 인내로 견디어낸 모세를 보상해 주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의 위치를 명백히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찬양해 주었다. 또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영예의 기록을 주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당하는 자들은 모세와 같이 "하늘에서 큰 상급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그들을 시인해 주시리라.

(1) 모세는 지극히 정직하고 충성된 사람이었다.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니라." 이것이 그의 성품 묘사에서 처음에 언급되었다. 그것은 은총이(일반) 은사보다 탁월하고, 사랑이 지식보다 뛰어나며,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성실이 보다 큰 영예를 부여해 주며 "방언을 말하고" 심원한 뜻을 아는 지식보다도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해 준다는 것 때문이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는 모세보다 뛰어나 시다고 말할 때 언급했던 것도 이러한 모세의 성품이었다. 그래서 사도는 그리스도가 가장 위대한 본을 보여 주셨다고 확신했다. 모세는 성실한 "한 종에" 불과했으나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성실했다" (히 3:2, 5, 6).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문제를 모세의 손에 맡기셨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중재로 하여 하나님과 교제했다. 모세는 양편에 신실했다. 모세는 정직한 사람이었으므로 그가 맡은 그 중대한 일에 성실했으며, 오직 하나님의 영예와 이스라엘의 복리만을 추구했다.

(2) 그러므로 다른 어떤 예언자들보다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분명히 기억하시고 그와 더욱 친밀한 친교를 나누심으로써 그를 더욱 영예롭게 하셨다.

[1] 모세는 다른 예언자들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더 많이, 더 분명히 더 뚜렷이 들을 것이다. "사람이 친구에게 말하듯이" "내가 그(모세)와는 입과 입으로" 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였느니라" (출 30:11). 하나님은 모세에게 숨김없이 다정히 말했으며, 아무런 거리낌없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때때로 다른 예언자들은 하나님과 이야기할 때 놀라 당황하기도 했었다. 에스겔이나 요한도 그러했다. 하나님은 다른 예언자들을 통해서는 그 백성에게 선악에 관한 것을 전해 주었으니, 그러한 문제는 비밀스러운 말이나 상징, 유형, 또는 비유로도 능히 전달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세를 통해서는 그 백성에게 율법과 거룩한 규례를 주셨으니, 이것은 결코 비밀 언어로 전달될 수 없는 것이요. 가장 명백하고 알아보기 쉬운 방식으로 전달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2] 그는 다른 예언자들에 비하여 하나님을 더욱 많이 보리라고 했다. 모세는 호렙 산에서 "여호와의 모습을 보았다." 그때 하나님은 거기서 당신의 이름을 그에게 아려 주셨다. 그러나 그는 오직 여호와의 모습만 본 것이다. 반면에 천사들과 영광 받는 성도들은 늘 우리 아버지의 얼굴을 보게 된다. 모세는 특별한 방식으로 예언의 영을 받았다. 그것 때문에도 다른 모든 예언자들보다도 뛰어났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도 그보다 더 크니라." 우리 주님 예수는 모세보다 무한히 월등하시다(히 3:1  이하).

미리암과 아론은 이제 자기들이 비난하고 있는 그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느냐?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려느냐?" 이렇게 흠정역의 난외에는 덧붙여져 있다. "너희가 어떻게 감히 나의 종, 특히 나의 친구요 나의 집의 청지기인 모세와 같은 자를 비방하려는 것인가?" 하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큰 사명을 맡겨 주신 그를 어떻게 그들이 감히 모욕하고 비난한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그 일 때문에 분노하시고, 그 사건을 당신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실 줄은 몰랐단 말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을 비방하는 일을 마땅히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런 일을 저지를 때는 우리의 생명이 위험해진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은 하나님께서 탄원을 들어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일이요, 그들에게 손을 대는 자들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손대는 자로" 여기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작은 자를 실족케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마 18:6). "위에 있는 자들을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야말로 실로 참담한 자들이다(벧후 2:10).

Ⅲ. 이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결점과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주시고 나서는, 당신의 분노를 나타내셨다. "여호와의 분노가 그들을 향하였다" (9절). 아마 이것은 구름의 빛깔이 바뀌었다거나 거기에서 어떤 섬광이 쏟아져 나옴으로써 감각적으로도 알 수 있는 분노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떠나셨다는 것을 알리는 충분한 암시도 되었을 것이요, 하나님은 그들의 변명이나 "생각을 알아보기" 조차-그럴 필요가 없으므로-싫어하신다는 것을 능히 보여 주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당신이 분노하셨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노하셨다는 가장 명백하고 슬픈 증거임을 명심하자. 하나님이 떠나시면 우리에게 화가 미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와 어리석음으로 그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먼저 떠나지 않는다.


문둥병에 걸린 미리암(민수기 12:10-16)

여기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관찰해 볼 수 있다.

Ⅰ. 미리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10절). "구름이 회막" 쪽에서 "떠났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증거요, 곧 미리암은 문둥이가 되었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재앙이 온다. 하나님이 떠나신 곳에서는 아무런 축복도 기대할 수 없다. 문둥병은 하나님께서 특정한 죄에 대하여 직접 내리시는 처벌로 인하여 유발되는 병인 수가 많다. 제사장의 직권을 침해한 웃시야 왕이 그러했었고, 여기의 미리암이 친족을 비방하여 피해를 입힘으로써 그렇게 되었다. 문둥병의 악질이 아마 미리암의 얼굴에 생긴 것 같다. 그래서 그녀를 보는 자는 누구나 그녀가 가장 악질적인 문둥병에 걸렸으며, 그녀의 문둥병이 눈같이 희고, 그 살결은 탄력을 잃어 썩은 것같이 부슬부슬 해졌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홀(Hall)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더러운 혀가 얼굴을 더럽게 한 것은 정당한 벌이라고. 그녀가 모세의 적수가 되려고 했던 것은 어리석음이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모세의 얼굴에는 영광이 있고 그녀의 얼굴에는 문둥병이 발해 있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그의 얼굴에 영광의 광채가 나기 때문에 수건을 써야 했지만 미리암은 부끄럼을 감추기 위해 수건을 써야 했다. 우리의 몸에 난 질병을 우리의 교만에 대한 책망으로 해석하여, 교만을 고치는 기회로 삼아야 하며, 그러한 극진한 섭리에 순응하여 지극히 겸손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육체가 불구되는 것은 마음이 완악한 증거이다. 그러나 육체의 정욕은 그런 속에서도 없어지지 않는다. 미리암에게 주어진 이 악질은 문둥병에 관한 율법(레13:)을 해설해 주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율법을 해설할 때 미리암의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신 24:8, 9).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렸다. 그러나 아론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먼저 그 죄를 범했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은 유혹한 자와 유혹된 자를 차별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이었다. 아론의 직책이 하나님의 분노를 면케 해 주지는 못했지만, 문둥병의 진노에서는 구해 주었다. 하나님은 직책상 잠시 아론에게는 진노를 보류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아론과 그의 두 아들들 외에는 제사장이 없었던 때이므로 그가 병들면 사람이 모자랐던 때이다-문둥병이 걸리면 아론과 그의 직무가 비천해져 버릴 것이고, 그의 가문에도 영원한 오점이 남게 되겠기 때문이다. 제사장으로서의 아론은 문둥병의 판별자가 되어야 하며, 이런 때에는 그가 직무를 수행해야 할 때이다. 그래서 그는 미리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문둥병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이것은 아론에게 벌이되기에 충분한 한 아픔이었다. 아론은 그녀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그는 몸서리치는 전율을 안은 채, 그것이 자기에게도 치욕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문둥병 환자라고 선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미리암에 대한 이 판결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들려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녀가 모세를 비방한 것 때문에 이렇게 응징을 받았다면, 그리스도를 비방하는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Ⅱ. 아론은 이에 순응했다(11,12절). 그는 겸손히 모세에게 나아가 자기의 과오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바로 조금 전에 자기 누이와 함께 비난에 합세하던 그가 이제는 그가 비난하던 자에게 나아가 회개의 말을 하고 그를 최대한으로 존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그는, 모세가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용서하고 치료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성도들과 하나님의 종들을 짓밟던 자들은 어느 날 기꺼이 그들의 하인이 되려는 때가 올 것이다. 더욱이 저 세상에서는,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나눠달라고, 그리고 부자가 거지 나사로에게 물 한 모금만 달라고 하는 그런 때가 온다. 그러나 아마 이 세상에서도 욥의 친구들이 나중에 욥의 기도를 구했듯이, 또 아론이 여기에서 모세에게 기도의 도움을 청하게 될 그런 날이 올 것이다(계 3:9). 그는 순복하는 자세로

1. 자기의 죄와 자기 누이의 죄를 고백했다(11절). 아론은 존경 어린 말로 모세에게 이야기했다. 전에는 우습게 여기던 그를 자기의 주(主)라고 부르면서, 이제는 자기 자신을 비난하게 되었고, 자기의 옛날을 부끄럽게 말했다. "우리는 죄를 지었나이다. 우리가 어리석게 행했나이다." 남을 헐뜯고 비방하며, 특히 선한 사람이나 위에 있는 자를 중상하는 일은 죄를 짓는 일이요, 어리석은 것이다. 회개란 우리가 실수로 한 말을 취소하는 것이다. 그런 말로 우리가 화를 당하기보다는 그것을 취소하는 것이 낫다.

2. 그는 모세의 용서를 구했다. "그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아론은 제단에 그의 예물을 가져가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형제가 자기에게 뭔가 불화한 것이 있음을 알고서, 자기의 예물이 하나님께 열납되게 하기 위하여 용서를 빈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론도 그의 누이처럼 문둥병에 걸리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아론이 이렇게 신속히 순복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아론은 자기 누이의 애처로운 형편을 호소하며 모세의 동정을 구했다(12절). "그녀를 죽은 자같이 되게 버려두지 마소서." 즉 "그녀가 닿는 모든 것은 더러워지며, 죽은 시체처럼 땅까지도 더럽게 만들기 때문에, 모든 친교에서 단절된 상태로 계속 버려두지 마옵소서" 하는 것이다. 그는 그녀의 비극상을 잘 웅변해 주어서, 모세의 동정심을 자아냈다.

Ⅲ. 모세의 중재 기도(13절). 그는 큰 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이 멀리 가버렸기 때문이요, 이 요청에 대한 자신의 열의를 표명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녀를 고치소서. 오 여호와여, 내가 간구하나이다." 이로써 모세는 미리암이 자기에게 가한 피해를 진심으로 용서해 주었고, 그녀의 죄를 하나님께 고발하거나 그녀의 심판을 호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기는커녕, 모세의 영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 미리암의 무례함을 응징하셨을 때 그 심판을 돌이키고자 했던 첫 장본인이었다. 이러한 본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에게 무례히 행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교훈을 듣게 된다. 또한 우리에게 피해를 입힌 자들이 하나님이나 사람에 의해서 지극히 정당한 처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처벌을 기뻐해서는 안 된다. 마비되었던 여로보암의 손은, 그가 악하게 대했던 그 예언자의 기도와 간청이 있을 때 회복되었다(왕상 13:6). 여기 미리암도 모세의 기도가 있자 치료되었다. 그 모세는 바로 그녀가 비방하던 자이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기도가 있자 고쳐졌다(창 20:17). 모세는 뒤편에 물러나서 "그녀는 잘 된 것이야. 다음부터는 혀를 조심하라고 하지 그래" 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심판의 실행을 기도하는 말을 하는 대신에, 그 심판이 물러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것이 모세와 우리 구주가 보여 주신 본이다. 우리는 그것을 배워야 한다.

Ⅳ. 이 문제가 잘 해결되자, 자비와 심판이 서로 조화하게 되었다.

1. 미리암이 치료된 것은 어디까지나 자비의 덕분이다. 모세가 그녀를 용서해 주었고, 그러자 하나님도 그리했다(고후 2:10  참조). 그러나

2. 미리암이 겸손해지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심판이 일어났기 때문이다(14절), "칠일 동안 진 밖에서 벙어리가 되리라." 즉 그녀 자신이 자기의 죄를 깨달아 그것을 회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며, 그래서 그녀의 심판이 보다 공적인 것이 되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다시는 폭동을 일으키지 않을 경고를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선지자 미리암이 모세에 대한, 한 마디 조급한 언사로 그러한 치욕의 표를 받아야 했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푸른 나무가 이러하거늘, 마른나무야 오죽하랴!" 죄로 인하여 사람이 얼마나 비천해지고 권위가 실추되며, 영광을 먹칠하게 되고 그들의 명예를 땅에 묻게 되는지를 깨닫자. 미리암이 하나님을 찬양했을 때에는, 그가 회중의 우두머리였으며, 그 회중의 빛나는 자랑거리였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출 15:20). 그러나 이제 그녀가 하나님과 다투게 되자. 그 회중이 더러워하는 오물처럼 추방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녀가 7일 동안 진밖에 있어야 하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녀가 "그녀의 부정함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녀의 아버지, 곧 육신의 아버지가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기만 했다 하더라도 그 아버지의 분노는 잘 나타나는 것이요, 그것 때문에 그녀는 상심하고 그런 치욕을 받게 된 것을 슬퍼하여 자기 방안에 꼭 틀어박혀서 출입을 끊고 심지어는 가족과도 만나기 싫어하며, 자기의 어리석음과 불행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는가? 육신의 아버지들이 우리를 징계하더라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영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징계하셨다면, 우리는 그만큼 더 스스로 겸손해져야 할 것이다(히 12:9). 우리가 죄로 인한 하나님의 분노를 사고 있다는 표징을 갖게 될 때에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우리 얼굴의 당혹을" 고백해야 한다. 우리의 잘못과 어리석음으로 사람의 조롱과 비난의 대상, 또는 교회의 정당한 징계 및 하나님의 섭리의 책망의 대상이 되었다면,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정당하게 우리의 얼굴에 침을 뱉은 것임을 고백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Ⅴ.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진행에 방해를 주었다. "백성은 미리암이 다시 들어오기까지 머물렀다" (15절). 하나님은 구름을 움직이지 않으셨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진을 옮기지 않았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다.

1. 백성에 대한 책망이다. 그들은 모세에 대해 비방함으로써, 미리암의 범죄의 모양을 본떠 따랐던 자신들의 죄를 알고 있던 자들이다. 이리하여 그들도 그녀의 처벌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즉 그들의 가나안 행진이 늦어진 것이다. 많은 일이 우리를 방해한다. 그러나 죄가 아니고는 아무 것도 하늘가는 우리 길을 막지 못한다.

2. 미리암을 존중했다는 표시이다. 그녀가 징계를 받고 있는 동안도 진이 이동을 했다면, 그녀의 곤혹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를 불쌍히 생각하여 그들은 그녀의 출교 처분이 풀리어 다시 들어오게 되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이것은 아마 문둥병 환자들의 통상적인 결례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죄로 인한 책망과 수치를 당하는 자들은 지극히 큰 동정을 받아야 하며, 그 짐을 지나치게 무겁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받을 만한 수치를 줄 것이요,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아야" (살후 3:15) 함을 잊지 말자. 오히려 그들을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후 2:7). 죄인들은 비판 속에 추방되어야 하나, 회개한 자는 기쁨으로 다시 맞아야 한다. 미리암이 용서되어 재허입 되자, 사람들은 바란 광야로 행하였다. 바란 광야는 가나안 남단의 경계에 접하는 곳이요, 그들이 또다시 자기들의 행로에 장애물을 놓지 않는다면 그 다음에는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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