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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12장

기쁨조미료25 2009. 8. 28. 16:07

 

민수기12장연구

지금 고찰하고자 하는 민수기 12장은 비록 간단한 장이긴 하나 두개의 명백한 국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첫째는 모형적 또는 섭리적인 국면이고, 그 둘째는 도덕적 또는 실제적인 국면이다.

모세가 "구스 여자"와 결합한 사실에서, 우리는 위대하고도 놀라운 신비에 대한 모형, 즉 교회와 그것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모형을 보게 된다. 이 주제는 출애굽기 연구에서도 나온 바 있었으나, 지금 여기에서는 특별한 시각에서 보게 된다. 즉 그것이 아론과 미리암의 적개심을 유발시키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은혜의 주권적인 활동은 혈연 관계와 혈육의 특권의 기초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반발을 자아낸다.

우리는 이방인에게까지 은혜를 확대시키는 일이 유대인의 지독히 맹렬하고도 무서운 증오심을 유발시켰던 사실을 신약의 가르침을 통해 알고 있는 터이다. 유대인들은 그런 사실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믿지도 않았다. 아니, 그들은 그런 사실에 관해 들으려조차 하지 않았다. 로마서 11장에는 이것에 대한 특별한 시사가 있다. 거기서 사도는 이방인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11:30, 31).

이것이 바로 모세의 역사 가운데서 모형적으로 제시된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모세는 혈육을 따라 형제된 이스라엘에게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불신앙으로 인해 모세를 거절했다. 그들은 모세를 그들에게서 밀어내고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이방인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기회가 되었다. 왜냐하면 모세가 한 이방인 신부와의 신비적인 모형적 연합을 가지게 된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거부를 당하고 있던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연합을 반대해서 미리암과 아론이 불평을 말한 것이 이 12장에 나온다. 그들의 반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했다. 미리암이 문둥병자가 되었다. 불쌍하고 부정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미리암은 자신이 불평스럽게 말하던 대상인 모세의 중보 기도로 말미암아 흘러나오는 긍휼을 받지 않으면 안 될 상태에 이르렀다.

이 모형은 완전하고도 아주 인상적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자비가 내린다는 영광스러운 진리를 믿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철저하게 진노가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방인들이 그러했듯이 단순한 자비에 근거해서 머지않아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오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약속과 민족적 특권의 기초 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하나님의 섭리적인 지혜에서 볼 때에는 영감받은 사도로부터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송영을 이끌어 낼 만한 바로 그런 사상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송영이란 이런 것이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3-36).

이같이 민수기 12장에는 모형적인 의미가 많이 있는데, 이제 그것의 도덕적 실제적인 국면을 한번 고찰해 보기로 하자.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삼인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삼인이 나아가매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서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둥병이 들었는지라"(1-10절)

누구든지 주의 종을 비방하는 것은 지극히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조만간 그 일을 다루실 것을 나는 확신한다. 미리암의 경우, 하나님의 심판은 별안간 엄중하게 내렸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특별히 일으켜 세우시사 거룩한 사명으로 옷입혀 주셨으며, 또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불평하는 바로 그 사건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섭리와 온전히 일치한 행동을 했고, 하나님의 영원한 마음속에 감취어 있던 저 영광스러운 신비,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나타내는 모형이 되었다. 그런 만큼 이러한 인물을 비방하는 것은 슬프게도 잘못된 일이거니와 적극적인 반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하나님의 종 가운데 가장 미약하고 비천한 종이라 해도 그를 비방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이다. 종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잘못된 상태에 있거나, 어떤 일에 실수를 저지를 경우, 하나님께서 친히 그 종을 다루실 것이다. 따라서 동료 종들은 하나님의 종을 자신들이 직접 다루어 미리암처럼 자신들에게 상처를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기 바란다.

때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종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기록하는 모습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리스도의 종들이 그런 비방거리를 만들 수 있다. 그들도 실수를 범한다. 그들도 잘못된 정신과 기질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종들을 비방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무서운 죄를 범하는 행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로, 우리는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는 말을 중대하고도 심각하게 느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무서운 악을 경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에 그토록 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들을 비방함으로써 그리스도에게 범죄가 되는 행동을 삼가도록 각별히 유의하기로 하자. 오직 우리가 올바른 자세로 찾으려고만 한다면 무언가 좋은 장점을 발견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상대방의 장점만을 보려고 하자. 그것만 생각하자. 가능한 한 모든 방법으로 장점을 강화하고 발전시키려고 하자. 그러나 만일 우리가 형제와 동료 종 가운데서 장점을 발견할 수 없다면, 우리의 눈이 오직 구부러진 것만 보게 된다면, 재 가운데서 반짝거리는 불빛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서 주위에 너절하게 널려 있는 지푸라기 가운데서 값진 보석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다만 육에 속한 것을 보기만 한다면, 그런 경우라면 사랑어리고 정교한 손길로 우리 형제 주위에 침묵의 휘장을 드리우자. 다시 말해 입을 닫고 비방하지는 말자. 또는 은혜의 보좌에서만 그에 대해 말하자.

또한 우리가 주의 백성들을 비방하는 사악한 행습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같이 자리를 하게 되었을 때에 성공적으로 그런 대화의 양상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경우에는, 조용히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우리도 하기 싫어한다는 증거를 남겨 놓아야 할 것이다. 뒷전에서 남의 흠이나 뜯고 있는 사람 곁에 같이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은 현재 마귀의 일을 하고 있는 중이며, 명백하게 구별되는 세 사람, 다시 말해, 자기 자신과 눈앞에서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자와, 자기가 신랄하게 욕하고 있는 화제의 주인공에게 노골적인 상처를 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앞에 제시된 장면에서 모세가 처신하는 방법에는 아주 아름다운 것이 있다.

진실로, 모세는 엘닷과 메닷의 사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미리암과 아론의 보다 더 어려운 사건에서도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임을 증거했다. 전자에 대해서 보라. 모세는 자기의 위엄과 책임을 공유하고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질투하지 않고 그들이 하는 일을 함께 기뻐했으며 주의 모든 종들이 동일한 거룩한 특권을 체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했다. 후자에 대해서 보자. 모세는 자기의 형과 누나에게 분개의 감정을 갖지 않고 즉시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다 내 주여 우리가 우매한 일을 하여 죄를 얻었으나 청컨대 그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로 살이 반이나 썩고 죽어서 모태에서 나온 자같이 되게 마옵소서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11-13절)

여기서 모세는 주님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자기를 그토록 혹독하게 말하는 자를 위해 기도한다. 이것이 승리다. 이것이 온유한 사람의 승리다. 은혜의 승리다. 하나님 존전에서 자기의 정당한 위치를 아는 사람은 모든 비방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그런 비방의 말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받는 괴롬은 있겠지만 그런 비방의 말로 고통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해 줄 수 있다.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으며 완고하지 않으며 고집을 피우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어느 누구도 자기를 자기의 위치 이하로 내려 놓을 수는 없을 것을 잘 알고 있다. 누가 자기를 비방하면 그는 자기의 머리를 겸손히 숙이며 지나갈 줄 안다. 자기 자신과 자기의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길 줄 안다.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며 행한 대로 모든 사람에게 틀림없이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참된 위엄이다. 이런 위엄을 좀더 잘 이해하기 바란다. 그리하면 어떤 사람이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행위에 대해 험담을 늘어 놓는다 해도 맞붙어 싸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들과 우리 자신의 영혼에 축복을 안겨다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민수기 12장의 마지막 몇 구절이 우리가 제시하고자 했던 모형적 또는 섭리적 견해를 확증해 주고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비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았을지라도 그가 칠일간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 밖에 친일을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 하시니 이에 미리암이 진 밖에 칠일 동안 갇혔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진행치 아니하다가 그 후에 백성이 하세롯에서 진행하여 바란 광야에 진을 치니라"(14-16절)

이렇게 해서 진 밖으로 추방당한 미리암은 이스라엘 국가의 현재적인 상태의 비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로 말할 것같으면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생각에 앙심 깊은 반대 행위의 결과로 버림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7일"이 다 지나면 이스라엘은 다시 회복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중재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강권적으로 역사하신 자비하심에 근거해서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