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및역사자료]/선교,역사 자료·그림·동영상

선교환경 변화에 따른 선교 전략적 조망

기쁨조미료25 2009. 6. 20. 22:35

선교환경 변화에 따른 선교 전략적 조망...최바울 선교사 (인터콥)

출처; http://www.kjfmission.com/

 

 

 

<현장상황을 고려한 한국의 선교 미래>


    선교환경 변화에 따른 선교 전략적 조망

          - 글로벌 콘텍스트와 전략적 조망

 

 

    최바울 선교사 (인터콥)



I. 신속한 세계복음화_전방개척선교

 

예수님의 오심과 죽으심,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는 선교라는 절대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이제 역사는 모든 민족을 향한 ‘선교’의 사명을 성취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 사역이 완성될 때 마감될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며 종말을 향해 달리는 이른바 종말론적 구속사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교는 여러 사역 가운데 하나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경영의 중심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사를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history makers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한편 하나님의 세계경영의 단위는 언어문화 종족이다. 성경은 지구촌 복음화의 <접근단위>가 개인 혹은 국가가 아니라 종족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구원은 각 개인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취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접근 단위는 개인이나 인종 또는 국가가 아니라 종족이다. 모든 민족을 가야 한다. 한 민족이라도 복음이 증거되지 않으면 역사는 완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교회의 선교사역은 복음이 증거되지 않는 민족과 종족을 향해서 집요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비록 선교사가 특정 국가 정부로부터 비자를 받고 입국하여 사역을 하지만 선교사의 사역대상은 개별 언어문화를 단위로 하는 종족이야 한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다민족 국가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하나의 지배민족과 다수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처럼 단일민족이 한 국가를 이루고 있는 나라도 예외적이지만, 또한 미국처럼 이민해온 여러 민족이 엉키고 섞여서(melting pot) 하나의 국가를 이룬 경우 역시 매우 예외적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지배민족 하에 각자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지역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소수민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국가에서는 신속한 세계복음화 차원에서 거시적 및 장기적으로 볼 때 원칙적으로 한 민족 내 교회개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특별한 경우라면 초대교회 안디옥교회처럼 다민족교회를 통해 열방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당시 안디옥 도시는 지중해권 5대 도시로서 로마제국 내 주요 관문도시였다. 이러한 전략적 관문도시에서의 선교사역은 다민족교회가 여러 주변 민족 가운데 폭발적인 선교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최전방 프론티어 미션이 사역의 기조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종족(민족)이 복음화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종족의 몇 %가 복음화될 때 종족복음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주제는 별개의 것이며 사실상 정확히 정의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 사역과 성경의 증언으로 볼 때 지금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5장에서 고린도 교회에서는 더 이상 일할 곳이 없어서 오래 전부터 서바나로 가려고 했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고린도 지방의 복음화율이 몇 퍼센트였기에 그는 “일할 곳이 없다” 이제 다 됐다고 말하는가? 고증을 하지 않더라도 당시 정황을 고려할 때 우리는 당시 크리스천이 인구의 1%도 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바울 사도는 끝없이 땅끝을 향해서 전진하였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한 민족의 복음화율이 20%가 넘으면 민족 교회는 급속히 세속화하기 시작하여 쇠퇴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의 중심축은 새로운 변방으로 이동하였다. 이것이 지난 2천년 교회사와 세계사의 증언이다. 어떤 크리스천은 “나는 우리민족이 100% 주님을 영접할 때까지 목숨 바쳐 사역하겠다!”고 다짐한다. 그 각오는 가상하고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약속을 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 복음이 “증거(증언)”되기를 원하셨다. 따라서 교회의 선교정책 기조는 복음을 받지 않는 전방개척 지역 미전도종족을 향해야 한다.

한편 사역은 전도와 제자를 삼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영혼 구원과 제자양육에 집중되어야 한다. 통변적 선교 및 총체적 선교라는 기술적 접근을 과도하게 강조하다 보면 선교 본질은 망각하고 도구의 목적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기술적 접근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12제자 양성에 집중하셨고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으로 “모든 족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아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죄의 회개와 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없는 선교는 공간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례와 사역원리에 비추어 볼 때 성숙한 하나님의 선교라 할 수 없다.

 

 

II. 선교환경과 선교접근 _ 사역기조

 

1.글로벌 선교환경과 선교접근

지금 세계교회는 그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다. 중세교회 시대를 암흑시대로 규정하고 출범한 계몽주의 시대 이후 세계교회는 양적 성장은 지속했으나 서구의 세계화와 이에 따른 글로벌 세속화의 영향으로 질적 타락은 계속되어 왔다. 계몽주의자들은 빛은 성경이 아니라 이성에서 온다고 주장하였다. 이성에 의한 인권신장과 과학의 발달로 민주주의를 확산하고 경제적 번영을 구가함으로써 이 땅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바야흐로 위대한 인간이성의 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를 400년 전에 영국 사상가 베이컨은 “지식은 힘이다!”라고 선포했다. 지식권력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식을 가진 자가 사회권력, 경제권력, 종교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4백 년 세계교회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서슬 퍼런 지식권력은 교회를 무참히 짓밟았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성령의 권능으로 사역하는 사역자는 고도의 신학적 지식을 가진 자들에 의해 교회 변두리로 밀려나게 되었다. 사회권력 및 경제권력을 가진 자들이 장로가 되어 교회의 당회를 장악하고 교회의 사역기조를 지속적으로 변질시켜 왔다. 결국 교회는 세속화되어 갔고 무력해져갔다. 경제권력, 사회권력, 종교권력을 앞세워 광야의 예수님께 도전한 마귀의 권세가 마침내 교회를 장악하게 된 것이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의 경계를 넘어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자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신약시대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세상권력이 교회의 지배권력으로 등장하면서 교회의 사역기조는 교묘하고 집요하게 변질되어 왔다. 성령의 사역은 지식권력에 의해 제어되거나 매도되어 왔다. 기적과 이적을 통해 치유하고 회복하는 말씀의 권세는 성찰과 도덕의 종교적 메시지로 전락하였으며 병든 자를 고치고 마귀의 세력을 제어하는 성령의 권능과 역사는 무식한 기독교인들의 행태로 각인되어 왔다.

한편 아프리카 교회는 지난 30년간 놀라운 양적 성장을 구가하고 있으나 천박한 기복주의와 뿌리 깊은 타자 의존성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영적 리더십을 회복하지 못한 채 자기 한계에 갇혀 있다. 남미교회는 최근 살았다 하나 죽어 버린 가톨릭의 종교적 권위와 전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부흥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춤추며 예배하나 복음의 능력과 십자가의 헌신과 철저한 소명의식이 없는 천박한 감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교회는 복음화율이 4%로 전락하여 5%로 급속히 성장한 이슬람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으며 미국교회는 아메리카니즘과 기독교정신을 혼동하여 ‘하나님의 나라’ 미국을 추구하다가 청교도 정신을 강탈당하고 자본주의 및 자유주의 이념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제 세계교회의 새로운 리더십은 아시아교회, 특히 한국교회와 중국교회로 이전되고 있다. 지난 반세기 이상 공산주의 체제의 잔인한 핍박을 이겨내고 일어나 1억 5천만 중국교회는 머지않아 미래 세계교회의 영적 리더십을 가지고 시온을 향한 왕의 대로를 구축하며 신속한 복음화를 이루어 갈 것이다.

한국교회는 1988년 이후 급속히 세속화되어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나 일제 핍박 시기와 6.25동란 그리고 60-70년대 가난과 사회적 불안정 속에서 복음운동, 기도운동, 성령운동에 헌신하며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어온 1세대가 아직도 살아있으며 그 영적 유산이 한국교회에 잠재력을 지닌 강력한 에너지로 남아있다. 1990년대 들어와서 지식권력을 기반으로 한국교회 내 개혁을 외쳐온 기독교 지성주의자들이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세상과 화친조약을 촉구하며 한국교회의 세속화를 부추겨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아직도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진정한 복음주의자들과 오직 성령의 권능을 사모하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나라에 절대 헌신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수많은 무리를 이루고 살아있다. 이들 신실한 복음주의 크리스천들은 좌경화된 기독교 지성주의자들이 그럴싸하게 포장한 화려한 음녀의 유혹을 거부하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기를 결심한 주님의 제자들이다.

 

 

2.선교현장 선교환경과 선교접근

세계교회가 마지막 선교대상으로 하는 미전도 종족의 약 90%는 이슬람 종교권에 속해 있다. 변방개척 선교의 주요 대상이 이슬람권 종족인 것이다. 지난 200여 년 동안 영국교회 및 미국교회를 위시한 서구교회는 세계선교를 주도해 왔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비서구권과 이슬람권에 인권의식이 강화되면서 근대 서구 식민지배 세력에 대한 저항의식이 보편화 되면서 서구 선교는 급속히 위축되어 왔다. 그러나 서구 선교계는 상황화 전락을 통해 통변적 선교holistic mission를 추구하였으나 비서구권, 특히 이슬람권의 뿌리 깊은 반서구 감정은 그러한 전략을 무색하게 무력화시켜 왔다. 선교는 십자군 전쟁의 원죄와 근래 미국의 일방적 글로벌 패권주의로 인해 서구교회 선교사들은 이슬람권 및 미전도종족 개척선교 지역에서 사역적 리더십을 급속히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9.11 테러 이후 세계선교환경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알카에다의 글로벌 지하드와 국제운동에 자극된 세계 무슬림 청년들이 국제적 심리적 연대를 형성하며 소위 기독교제국 미국에 사실상 봉기함으로써 세계에 종교문명의 갈등구도는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의 갈등의 주체가 이념에서 종교로 전환된 것이다.

이러한 세계환경의 급변 속에서 세계선교의 리더십은 자연스럽게 태평양을 건너 한국교회로 넘어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선교계 일부에서는 ‘한국교회의 세계선교 리더십’ 또는 ‘한국적’ 선교전략 등을 논하는 것에 대해 “고작 몇 십 년의 선교경험을 가지고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서구선교의 경험과 노하우를 무시하는 건방진 태도”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렇게 주장하는 측은 단선적으로 사고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경험과 노하우도 중요하지만 ‘환경’은 더욱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위한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서 경험과 노하우는 하나의 종속변수에 불가하나 환경은 절대변수이기 때문이다. 육상(陸上) 전투에 능한 군사가 갑자기 수상(水上) 전투에 투입된다면 그의 오랜 경험과 전략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Ⅲ. 한국교회 미래 선교전망 _ 한국교회 선교 리더십 제고

 

1.한국교회 선교 리더십

한국교회는 한국의 역사적 및 사회문화적 변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교회는 한민족 공동체의 역사적 및 문화적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1세기 동안 한민족 공동체에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셨으며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가 놀랄 정도로 급성장을 이루어 왔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6.25 전쟁을 겪으며 남북 분단의 대결 구도 속에 고통 받아온 한국의 국가발전은 현대 비서구권, 즉 아프리카, 남미, 아세아 등 비서구권에서 그 사례가 없을 정도로 놀랍고 특별한 것이다. 단군 이래 전혀 변화되지 않고 가난과 어둠 속에서 수천 년을 지내온 우리 민족이 지난 1세기 동안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는가? 우리 민족이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 세계 12대 경제대국을 이룩하며 OECD회원국으로 또 G12의장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는가는 하나님의 은혜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역경과 극복의 과정 속에서 한국 국민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성도들 역시 역량과 리더십을 강화시켜 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 한국교회를 사용하시기 위해 한국교회를 훈련하셨고 또 역량을 강화시켜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지난 근대 우리 민족사와 교회사의 경험과 교훈에서 ‘한국적’ 선교리더십과 ‘한국적’ 선교전략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난 역사적 콘텍스트에서 출발하여 고찰한다면 보다 분명해진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준거로 다음과 같이 한국교회 선교를 평가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먼저 원론적으로 볼 때, 우리의 당면 과제인 2/3세계 미전도종족에 대한 한국인 선교사의 선교접근은 서구선교사의 선교접근보다 문화적 장벽이 높지 않기 때문에 훨씬 더 효율적인 것이 될 수 있고 사실 또 그러하다. 한국인 선교사의 2/3세계 선교접근은 타문화권 접근이라기보다는 유사문화권의 선교접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선교접근 전략은 과거 서구교회 혹은 서구선교계의 선교접근 전략과 달라야 한다. 서구선교사들이 서구교회의 좋은 영적 유산을 비서구권 선교 지역에 흘러 보냈다면 우리 한국교회 역시 한국교회 부흥의 원천이 되었던 영적 유산을 적극적으로 선교지에 전수해 주어야 한다. 특히 고난과 핍박 속에 성장한 한국교회의 영적 유산은 유사한 처지에 있는 전방 개척선교 지역에 변혁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인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부어주신 영적 은사들을 교회개척의 전략들을 계발하여 선교 전략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 선교사 훈련과정에 한국교회사에 대한 전략적 평가와 선교전략적 적용 과정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한국교회는 가난과 내우외환의 고난 속에서 약소국의 서러움을 극복하고 성장해 왔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환경에 처해 고통받는 민족들을 넉넉히 섬길 수 있다. 우리가 감당하며 섬겨야 할 민족들 대부분은 오랜 동안 가난과 전쟁 및 분쟁 속에서 극도의 사회적 불안정에 처해 있다. 선교접근에 있어서 동일한 어려움과 고난을 경험한 한국교회가 세계 대국 미국이나 중국 교회보다 훨씬 깊이 있고 진정성 있는 동일화(identification)와 상황화(contextualization)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한국인과 한국인 사역자 가운데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은 속도와 추진력 및 돌파력이다. 한국인 선교사는 매우 헌신적이며 도전적이다. 물론 부작용도 적지 않다. 그러나 추진력과 속도에 있어서는 세계적이며 하나님께서 이러한 특성을 사용하신다. 한국인 선교사들은 현장에서 오래 동안 정체되어 있던 선교 역사를 빠른 속도로 진전시키는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소련 해체 이후 지난 18년 동안 중앙아시아와 몽골에서 한국인 선교사들의 활약은 가히 눈부시다 할 수 있다. 물론 유사문화권-알타이문화권-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있었지만, 그러나 한국인 선교사들의 상황 돌파력과 추진력은 과거 어느 선교역사에서 보기 드문 놀라운 부흥을 주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이슬람권 중앙아시아에서의 한국인 선교사들의 사역은 과거 이슬람 선교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성과를 이룩했다.

한편 한국인 선교사들은 투지와 추진력이 있기 때문에 대개 홀로 단독사역을 한다. 이러한 단독사역 경향은 아마도 국내에서는 목회자가 헌신하여 단독 교회개척을 통해 사역을 하기 때문에 그 전통을 선교지에서 이어가는 면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인 선교사는 매우 헌신적으로 단독사역을 잘 감당한다.

단독사역을 선호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팀으로 사역하면서 관계의 갈등으로 인해 소모적일 수 있는 요인을 아예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방 개척지역에서 다양한 은사가 결합된 팀사역은 최선의 전략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령께서 각 사역자에게 주신 영적 및 직능적 은사들이 조직, 네트워킹 또는 코디네이팅 될 때 단독사역의 한계가 극복되며 사역의 시너지는 강력하다. 이런 이유로 인터콥선교회는 단독 사역을 금지하고 있으며 반드시 팀사역을 하도록 하고 있다. 하나님은 공동체(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팀사역이 성경적이다.

그 동안 서구선교계의 전통에서는 인성교육 차원의 관계훈련을 강조해 왔다. 지금 한국교회는 KWMA 리더십 하에 불확실성이 높은 미지의 전방개척지역 선교를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선교사 교육과정도 이제 관계훈련의 소극적 인성교육의 패러다임을 넘어서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팀사역으로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개편되어야 한다.

세계선교의 리더십이 한국교회로 이전되고 있다.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의 리더십을 적극 발휘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선교사들은 팀사역을 주도적으로 다국적 팀사역으로까지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과거 서구선교는 그들의 리더십 하에 다양한 국가 출신 선교사들이 연합하여 사역하였다. 그러나 대개 한국인 선교사들의 경우 단독사역 혹은 한국인들만의 팀사역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최전방 개척선교지, 특히 이슬람권에서 다국적 교회개척팀 사역은 매우 효율적일 수 있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 선교사들의 다국적 팀사역은 현지 교회개척 사역의 접근성과 역동성을 강화해 줄 것이다. 특히 아시아 및 북부아프리카 선교지의 경우 이들 국가들이 중국과의 관계가 전통적으로 매우 좋다. 한국선교사가 중국 한족 선교사들과 함께 팀으로 사역할 때 사역의 시너지는 극대화될 것이다.

넷째, 한국형 선교전략을 논할 때 세계교회 속에서 한국교회의 역할을 언급하지 아니할 수 없다. 1990년대 이전에는 한국교회 선교사들 대부분이 서구선교 기관을 통해서 서구선교단체의 전략적 필요를 채우는 방향으로 배치되고 사역을 수행하였다. 그러다 보니 전방개척선교 지역보다는 서구 백인선교사들이 사역하는 지역으로 자연스레 배치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 미전도종족 전방개척선교운동이 한국교회 내에 일어나면서 선교사 재배치 논의가 활발해지고 전방 프론티어 선교의 필요성이 인식되면서 지금은 구도가 예전에 비해 많이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한국인 선교사들이 여전히 이미 복음화율이 높은 지역에 나가 있다.

비교적 교회가 많이 있는 아프리카나 남미, 태평양 지역 국가들에 선교사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선교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지역은 리더십 양성의 전문성을 가진 선교사들을 필요로 한다. 전도와 교회개척은 현지인 교회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들은 신학공부 등 리더십 훈련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역에는 한국형 영적 은사와 리더십을 전수한다는 면에서 한국인 선교사들이 일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 리더십 영역은 서구선교사들이 여전히 잘 감당할 수 있는 분야이다.

따라서 한국인 선교사들은 서구 백인 선교사들이 문화적 및 정치적 이유로 잘 감당할 수 없는, 예를 들어 이슬람권, 전방 프론티어 선교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서구교회와 아시아 교회 서구교회와 한국교회의 역할분담이다. 이러한 전략적 역할분담이 오히려 신속한 세계복음화를 가능케 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세계교회 역할분담은 선교전략의 차별화로 견인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는 최근 기독교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약 1억 5천명이 되었다. 중국교회는 신학공부, 선교교육, 예배사역, 어린이 사역 등 다양한 사역분야의 리더십 양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선교사도 은사와 자질에 따라 차별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선교교육, 예배, 중보기도, 신학교육 등 사역적 전문성 및 목회적 리더십이 있는 선교사는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등 리더십 사역의 필요성이 많은 지역으로 파송하고, 의료, IT, 사회교육 등 NGO사역과 같이 선교접근 전략적 역량이 있는 선교사나 또는 전도 및 일대일 제자양육 등 초기 교회개척의 역량이 있는 선교사는 전방개척 지역으로 배치하는 방법이다.

 

 

2.한국교회 선교 미래전망

지금 세계교회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금처럼 세계교회가 연약한 적이 많지 않을 것이다. 유사종교 이슬람이 지구를 흔들고 있는 것이 반증이다. 세계교회의 영적 리더십이 쇠퇴하다 보니 지금 이슬람이 포효하며 흥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세계선교의 주도적 리더십을 발휘해온 미국교회는 이슬람의 글로벌 지하드의 도전 앞에 극도로 위축되고 있으며 특히 전방 프론티어에서 그 역할이 갈수록 축소되고 쇠퇴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아직 세계선교에 있어서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할 정도로 성숙하지 못하다고 하지만 세계교회가 더 어렵다 보니 한국교회가 대체 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직시하고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역사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역사적 사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할 것이다.

국내적으로 좌파들의 안티기독교 운동은 국민운동으로 확산되어 극에 달해 있으며 기독교 좌파들과 일부 기독교 지성주의자들은 한국교회를 폄하하고 공격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일부 기독교 지성주의자들이 국내 안티기독교 운동에 부화뇌동하여 한국교회의 성숙의 문제를 집중 부각시키고 해외 기독교봉사에 대해서는 적극 지지하면서도 해외선교, 특히 이슬람선교에 대해서는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이는 이 시대 세계교회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결여에서 나온 것이며, 지상명령, 즉 선교적 소명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다.

 

9.11 이슬람테러 이후 세계선교 리더십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교회로 이전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100년 전 미국교회가 감당해온 바로 그 전방개척선교를 감당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역사의 막힌 벽을 뚫고 하나님의 역사를 진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최전방 개척선교가 새로운 글로벌 미션 리더십을 가진 한국교회의 사명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인 선교사를 과감하게 전진 배치해야 한다.

앞으로 10-15년 후에는 중국교회가 세계교회 리더십을 이어받아 세계선교 주도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영국교회는 지난 200여 년 동안, 미국교회 지난 100년 동안 세계선교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에 대한 거시적 및 전략적 이해의 결여로 인해 과도한 자체 비판으로 좌충우돌하는 동안 글로벌 리더십은 중국교회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역사는 무서운 속도로 전진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한반도민족은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반세기 동안 가난과 전쟁, 분단의 아픔 속에서 한국교회 성장을 주도했던 대부분의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여전히 민족의 아픔과 민족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시대적 요청에 따라 민족공동체 비전을 넘어 과감하게 글로벌 리더십으로 한국교회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정서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를 제사장의 나라로 세우실 것이다. 세계선교에 헌신하며 뜨겁게 일어나는 한국 기독청년들을 보라!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전진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최전방 프론티어 선교의 역사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