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聖幕) 의 역사(歷史)
1.최초의 성막
성막은 애굽을 떠난 지 2년째 되던 해 유월절 2주전에 시내산에 세워졌다(출 40:2,17). 모세가 세운 이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동안 광야생활을 할 때 그 중심이 되었다. 성막 위로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려주었다.
2.길갈의 성막
요단강을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건너면서 성막은 여리고 근처인 길갈에 세워졌다(수 4:19).
3.실로의 성막
길갈에서 성막은 에브라임의 실로로 옮겨졌다. 실로는 사람들이 세 번의 연례적인 축제에 참가하러 오기에 편한 곳이었다. 실로에서 성막은 몇몇 영구적인 특성을 취했던 것 같으며 '성전'이라고 불렸다. (삼상 1:9, 3:3)
4.빼앗긴 법궤
엘리 제사장이 있을 때 실로의 성막에 보관되어있던 법궤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빼앗겨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졌다.(삼상 4:17) 따라서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법궤가 없는 상태로 성막이 유명무실하게 존재하던 시기였다.
5.돌아온 법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궤로 인하여 화(禍)를 당하자 법궤를 돌려 주었다. 이 법궤는 기럇여아림에 보관하였다.(삼상 7:1-2) 이때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법궤를 20년 동안을 보관하였다. 그러나 모세가 세운 성막과 같은 형태로 법궤를 모시지는 않았던 것 같다.
6.놉과 기브온의 성막
법궤를 빼앗긴 상태에서 성막은 온전하게 보존되지 못했다. 그리고 성막은 실로에서 놉으로 옮겨진 듯 하고 사울 임금에 의해서 또다시 기브온으로 옮겨졌다.(대상 21:29)
7.다윗의 성막건축
다윗은 임금이 된 후 법궤가 온전히 모셔지지 못하는 것을 매우 가슴아프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에 성막을 짓고 벱궤를 모셔왔다. 그러나 그 운반과정에서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대는 죄를 범하고 즉사(卽死)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그로인하여 법궤는 순조롭게 옮겨지지 못하고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간 임시로 머물게 되었다. (삼하 6:10-11)
그러나 그 후 다윗은 곧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 기브온에는 제단이 있는 성막이 존재하고, 예루살렘에는 법궤가 있는 성막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두 성막은 솔로몬에 의해서 성전으로 대체되었다.
8.솔로몬의 성전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후 성막과 그 모든 기물은 법궤와 더불어 성전으로 이전되었다.(왕상 8:1-4) 이로써 성막의 역사는 성전의 역사로 전환되었다.
성막은 텐트처럼 이동할 수 있었지만 성전은 이제 더 이상 옮길 수 없는 건물로서 지어진 것이었다.
9.이후의 성전 역사
이스라엘은 역사의 구비구비 마다 엄청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패할 때마다 성전은 이방인들의 손에 의해서 부서지고, 무너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선지자나 지도자들에 의해서 성전은 다시 재건되었다. 그 대표적인 성전이 바벨론 포로이후에 재건한 스룹바벨 성전이었다. 그리고 그 성전은 다시 파괴되었다가 헤롯에 의해서 다시 건축되었는데 그 성전을 헤롯성전이라고 부른다. 예수님 시대의 성전은 바로 헤롯성전이었다.
성막(聖幕)의 구조(構造)
성막의 구조를 살펴 보기에 앞서서 그 언어적 의미를 살펴 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1.성막의 어의
구약에 나타난 성막에 대한 히브리어로는 '오헬'과 '미시칸'이 주로 사용되었다.
(1) 오헬
성막에 대한 일상 용어는 오헬이다. 이것은 천막(tent)을 뜻하는 말로 출애굽기 26장 9절에는 성막의 전면에 있는 막을 의미하고, 또 출애굽기 27장 21절에는 회중의 성막을 나타내고 있다. 이상과 같이 두가지 의미를 가진 오헬은 약 130회가 넘게 사용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덮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 미쉬칸
이것은 거처를 의미하는 단어로 학자들에 의하면 이것은 앗수리아어 Maskamu(마스카무)에서 온 단어라고 한다. 이 미쉬칸이란 단어는 출애굽기 25장 9절을 위시하여 약 100회에 나타나 있다. 이 단어는 오헬에 못지 않게 중요하고, 또 많이 사용된 용어이다. 성경에 많이 사용된 이상의 두 용어는 어떤 관계의 의미가 있는가? 출애굽기 26장 7절에는 이상의 두 용어가 같이 나타나 있다. 영역 흠정역 K.J.V은 "covering Upon the Tabernacle"로 미국 개역(Revised Standard Version)은 "For a tent over the Tabernacle"로 되어 있고, 한글개역은 "그 성막을 덮는 막"이라고 번역했다. 출애굽기 36장 14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이나, 출애굽기 26장과 36장에 말씀하고 있는 것을 살펴보면, 미쉬칸은 성막의 전체 구조를 의미할 때가 있다.
2. 성막의 구조
성막의 구조에 대하여 생각하려면 먼저 성막의 재료들의 종류와 그 출처, 그리고 그 재료를 가지고 성막을 제조한 인물들을 알아보고, 끝으로 그 제조한 성막의 구조를 알아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에 관하여 출애굽기 25장과 35장, 36장에 잘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상의 세곳을 중심하여 생각하여 보자.
①성막의 재료들(종류)
성막의 재료들의 종류에 관하여는 출애굽기 25장3-7절과 출애굽기 35장5-9절에 나타나 있다. 출애굽기 25장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것들이요, 출애굽기 35장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여 주고(출 35:1-), 또 이스라엘 백성으로 그 명령대로 성막의 재료들을 하나님께 바치게 한 것이다(출35:20-29). 그리고 그들이 바친 그 재료들을 분류하여 보면 아래외 같다.
a) 귀금속:금,은,놋 등이다(출25:335:5).
b) 유색면사:청색,자색,홍색실과 가는 베실 등이다(출25:435:6).
c) 피혁류 :염소털,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 등이다(출25:4-535:6-7).
d) 재목 :조각목이다(출25:535:7).
e) 향유류: 등유,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 재료들이다(출 25:635:8).
f) 보석류:호마노,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들이다(출 25:735:9).이 보석은 출 39:10-13에 보면 12종류의 보석들이다. 우리가 깊이 생각할 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하여 바쳐진 재료들은 어떤 것들인가 주의하여 보자.
출애굽기 35장 22절에 의하면,
a) 금속류:가슴핀,귀고리,가락지,목걸이와 여러가지 금품과 금 예물을 가져왔다(출 35:22).
b) 유색면사:청색,자색,홍색실과 가는 베실 등이다. 이것들은 이스라엘 부녀자들이 손수 만들어 드린 것들이다(출35:23).
c) 피혁류:염소털,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 등이다(출 35:23). 이것들은 자기들이 광야 생활에서 사용할 것을 사용치 않고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d) 목재류:조각목들이다(출 35:24). 이 조각목은 이스라엘에 백성이 이 광야에서 다시 구하기 어려운 목재들이다. 그것은 보통 목재가 아니고 특수 목재 제품이라 한다.
e) 보석류: 호마노,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들이다(출 35:27) 이것들은 값 비싸고 귀중한 것들이다.
f) 향유류:등유,관유,분향할 향에 소요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다(출 35:28).
그러면 성막은 얼마나 비싼 집일까? 성막의 재료는 14종으로 되어 있다.
a)금(gold): 29달란트 730세겔로 약 1.65톤 정도 된다. 금은 떡상, 등대, 향단, 법궤, 속죄소와 성소의 벽과 기둥에 주로 사용되었다.
b)은(Silver):100달란트 1,775세겔로 약 4.85톤이 사용되었다.
c)놋쇠(Brass Bronz):7달란트 2,400세겔로 약 3.3톤이 사용되었다.
d)청색실
e)자색실
f)홍색실
g)가늘게 꼰 베실
h)염소가죽
i)수양가죽
j)고래가죽
k)조각목:아카시아 나무
l)향품류
m)기름류
n)보석류
이 중에서 금 가격만 계산해도 300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또한 은의 값도 20억원이 넘는다. 그러므로 성막의 내부 평수가 약 18평으로서 지성소가 6평이고 성소가 12평임으로 성막의 평당 가격은 약 18억원 정도 되는 집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천막같이 보잘 것 없지만 그 가격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비싼 집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예수님도 겉으로 보기에는 흠모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존귀하신 분이시다.
3. 재료들의 출처
성막의 모든 재료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드려졌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유하고 있던 재료들이 하나님께 바쳐졌으며 그것들이 성막의 재료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진 그 재료들은 어디서 받은 것인가? 그것들은 애굽에서 얻은 것이다(출11:212:35).즉 하나님의 허락과 명령에 의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때까지 구하여 가지고 나온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위한 것들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볼때에 하나님은 이때를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맡겨 두신 것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업을 위하여 드린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재물에 대하여 청직이이다.
또 애굽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그것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고 허락하여 놓은 재료들로 애굽 사람들이 가공한 것이었다. 고로 그것들의 주인은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맡기여 두셨다가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찾아서 그 사람들을 통하여 거룩한 일을 이루신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바칠때에 하나님이 그것들의 주인인 것을 알아 기꺼이 바치었고, 신앙에 근거하여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넘치게 드린 것이다.
4. 성막을 건조한 인물들
위에 열거한 그 재료들을 가지고 성막을 건조한 인물들은 두가지 종류였다. 즉 유명한 인물들과 무명한 인물들이다.
(1) 유명한 인물
유명한 인물들은 브사렐과 오홀리압이다. 브사렐은 "유다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이다"(출35:30). 호홀리압은 단지파 아히사막의 아들이다(출35:34).그들은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들로 첫째는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어"주었고, 둘째는 "성막에 쓸 모든 일을 할줄 알게 하심"을 받았고, 끝으로는 "여호와의 무릇 명하신 대로 할 자들이다"(출36:1).성경에 의하면 (1) 하나님이 같이 사람이요,(2)재능과 기술이 겸하고, (3)순종의 사람이었다. 이는 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였다. 이상과 같이 고귀한 성품과 자격을 가진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손발이 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서 정성을 다하여 충실하게 거룩한 일을 마친 것이다.
(1) 무명한 인물들
출애굽기 36장 2절에 브사렐과 오홀리암 외에 많은 기능공들이 있었다. 그 증거는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라고 하였다. "성막의 일을 하는데 많은 지혜로운 자"(출 36:48)들이 일을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 그 이름들이 나타나 있지 않는 무명의 많은 사람들이 성막 제조에 참여하여 크게 협조했다. 위에 말한 브사렐과 오홀리압은 임명받은 자들이나, 여기의 무명의 인간물들은 자워ㅗ한 협조자들인 것 같다. 전자들은 설계, 감독,그리고 지도자들이요, 후자들은 그 설계대로 감독과 지도를 받으며, 각 분야에서 자기의 능력대로 헌신 봉사한 자들인것 같다(출 36:8-39:끝).그렇다고 브사렐가 오홀리압이 각각 자기의 재능에 따라 각 분야에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출37:1),자기의 직문에 충성하되 총 책임자로서 감독과 지도를 겸한 것 같다. 그러므로 성막 건조에 유,무명한 인물들이 상합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각각 자기의 직문에 성심성의로 충성하여 은혜롭게 완성한 것이다.
5. 성막의 구조
1) 성막을 담처럼 둘러친 세마포장
세마포장은 성막의 구성요소중 가장 바깥부분이다.
성막은 제일 안쪽에 지성소가 있고, 그 바깥 부분에 성소가 있으며, 그 다음 바깥 부분이 뜰인데, 이 뜰은 모래 벌판위에 기둥을 세워 남쪽으로 10규빗 (46m), 북쪽으로 100규빗(46m), 동쪽으로 50규빗(25m), 서쪽으로 50규빗(25m)의 세마포장을 쳐서 만들었다.
그리고 뜰을 둘러싼 포장은 희고 깨끗한 고운 삼베, 즉 세마포로 만들도록 했는데, 성막의 모든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듯이, 세마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희고 깨끗하고 점이 없고 의로운 성품을 나타내 주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계실 동안 전혀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사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늘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의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의로운데 반해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성경이 말씀하듯이 우리 인간들은 어느 누구도 의롭지 못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이나 광야 생활을 하였지만 그들의 옷이 헤어지지 않았고, 신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이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셔서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고 옷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40년동안 입은 옷은 떨어지지는 않았지만,때가 묻어 더러웠다. 그러나 그들 중 몇 명만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옷이 더러운 줄을 잘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성막에 가까이 와서 희고 깨끗한 세마포로 만든 성막의 바깥담을 보고서야 그들의 옷이 더러운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들은 자기가 얼마나 추하고 악한지를 잘 알지 못한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하루는 사람들이 간음중에 잡힌 여자를 돌로 치려고 예수님 앞에 끌고 왔다. 그 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고 하셨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 나아오기 전까지 그들 자신이 얼마나 추하고 악한지를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마음 속에 죄가 있는가 없는가를 살펴보게 되었는데, 그들 속에 감추어져 있던 추한 죄가 발견되어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돌을 버리고 도망하게 되었다. 그들이 죄를 지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오지 않았다면 죄를 깨달을 수가 없었으며, 그들 자신이 얼마나 추한지를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 앞에 나아와서 자신을 비추어볼 만한 눈이 없기 때문에, 자기와 같이 있는 교인들이나 이웃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고 '그래도 나는 김 집사보다는 양심적이다. 이 집사보다는 깨끗하다.'는 식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는 생각 속에 젖어있다. 그러나 아무리 깨끗한 자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서 자신을 비추어보면 얼마나 형편없고 더러운 자인지를 알게 된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뜨여져야 한다.
2) 휘장(출26:1-6)
휘장은 전체를 10폭으로 만들었다. 그 10폭은 각각 5폭을 연하여 한 막이 되게 하여 두 막이 한 휘장이 된다. 그 각 막은 길이가 28규빗 너비는 4규빗이였고, 그 막 위에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자색,홍색 실로 그룹을 수놓아 만들었다. 그 마지막 폭 가에 청색 고리 50을 만들어 달고, 또 금 갈고리 50을 만들어 달아 서로 연결되어 한 휘장이 되게 했다.
3) 덮은 막(출 26:7-14).
지붕
성막의 지붕은 4겹의 앙장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안쪽에는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수놓아 만든 앙장이었다. 두 번째 앙장은 염소 털로 만들었으며 세 번째 앙장은 수양의 가죽이었고 가장 바깥쪽의 앙장은 해달(돌고래)의 가죽으로 덮었다.
이 4부분 중에서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부분은 외부에 노출된 해달의 가죽과 가장 안쪽의 세마포 앙장뿐이다. 그런데 이 두 부분은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안쪽의 세마포 앙장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반면에 가장 외부의 해달의 가죽은 매우 볼품이 없었다.
이 앙장들이 뜻하는 의미는 가장 내부의 세마포 앙장은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하고, 가장 외부의 해달의 가죽은 예수님의 인성을 나타낸다.
해달과 같은 예수님의 모습을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하였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그러므로 성도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영광스런 구속자로서 알려면 먼저 성막 안에서 그분을 뵈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만이 발견하는 것이다.
염소 털로 만든 두 번째 앙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경에는 이 염소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는 그리스도로 묘사되고 있다. 염소는 정결한 동물이었으므로 번제단에 드리는 제물로 쓰여졌다. 특별히 대속죄일에 하나님께 바쳐진 짐승은 바로 염소 2 마리였다. 그래서 한 마리는 제단에서 잡아서 제단 기초에다 그 피를 뿌렸으니 그것은 예수님께서 희생 제물로 죽으신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또 한 마리의 염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사막으로 끌고가서 멀리 떠나 보냈다. 이 두 마리 염소 중 죽은 염소는 우리의 죄를 지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광야로 보내진 염소는 우리의 죄를 다 감당하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수양의 가죽으로 만든 세 번째 앙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속죄의 제물로 사용된 염소처럼 수양도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었다. 유월절에 수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의 구원을 얻었다. 바로 이 유월절 수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네 번째 앙장은 해달의 가죽이었다. 해달의 가죽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의 인성(人性)이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이 보는 것은 해달의 가죽과 같은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들은 외부에서 주님을 볼 때 아무런 매력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그 성막 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자들은 그 아름다움과 화려함에 놀라게 될 것이다.
4) 널판(출26:15-30).
널판은 조각목으로 만들었고 그리고 순금으로 쌌다. 그 널판의 길이는 10규빗,넓이는 1규빗으로 하고, 각 판에 두 장부(구멍)을 내어 서로 연결되게 하였다.성막 남편을 위하여 20을 만들고, 그 널판 아래 은으로 만든 받침 40을 만들어 각 널판 아래 두 장부를 내어 끼워 바치게 했다. 북편에도 남편과 동일하게 했다. 성막 서편을 위하여 널판 여섯을 만들고, 또 성막 뒷 두 모퉁이를 위하여 널판들을 만들어 아래에서 위까지 각각 두겹 두께로 만들어 윗 고리에 이루게 했다.
그러므로 은 받침은 12개이다. 또 조각목으로 성막 띠를 만들되 금으로 쌀 것이다. 그 성막 이편 널판을 위하여 5개, 성막 저편 널판을 위하여 5개이다. 성막 뒤 서편 널판을 위하여 5개를 만들었다. 성막 가운데 있는 중간 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 그 널판들을 꿸 금 고리를 만들고, 띠를 꿰여 널판을 연결했다(사진8참조).
5)기둥
성막을 둘러싼 담장은 시멘트도 아니고, 철판도 아니고, 세마포장이다
그런데 남쪽으로 100규빗의 포장을 칠 때, 매 5규빗마다 기둥을 세워서 기둥 20개를 세우고, 북쪽에도 역시 100규빗의 포장을 치는데 기둥 20개를 세우고, 서편의 담장은 50규빗의 포장을 치는데 기둥 10개를 세웠다. 동쪽 가운데에 문이 있다.
문 오른쪽에 15규빗의 포장을 치는데 기둥 세 개를 세우고,문 왼쪽에도 기둥 세 개를 세우고 15규빗의 포장을 치며, 문은 기둥 네 개를 세운 뒤 거기에 20규빗의 포장을 쳐서 바깥 담을 만들었다. 성막을 둘러싼 담장의 총길이는 300규빗인데, 매 5규빗마다 기둥이 있음으로 성막에 세워진 기둥은 전부 60개이다.
6) 안 휘장(출26:31-37).
안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별하여 막는 휘장으로 청색, 자색,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만들고 그 위에 그룹을 수놓아 만들게 했다. 그 안 휘장은 조각목으로 만든 네 기둥에 금갈고리에 꿰어 드리우게 했다. 그 네 기둥은 네 은 받침 위에 두게 했다.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씩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백성들의 죄를 속하게 위하여 들어 갔음으로 이 안에 휘장은 1년에 한번씩 그 때에만 대제사장에 의하여 걷히웠다가 다시 닫힌 것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때 그 안 휘장이 위에서 부터 아래까지 찢어지고 갈라져서 지성소와 성소가 통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는 안 휘장이 제거된 것이다.
7) 안 마당(뜰)(출27:9-19).
이것은 성막 안에 있는 마당이다. 성경에 의하면 그 뜰의 남편 길이가 100규빗(46미터)으로 그 길이의 세마포 포장을 치게했다. 그 포장의 기둥이 20이요. 놋 받침이 20이였다.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만들었다. 북편도 남편과 동일하였다. 서편에는 길이가 50규빗의 포장을 치게 하되 기둥이 10이고, 놋 받침도 10이었으며 동편도 마찬가지로 50규빗의 포장이 기둥 셋과 놋받침에 걸쳐 있었고,뜰 문 이편에 15규빗의 포장이 기둥 셋과 놋받침에 걸쳐 있었고, 뜰 문 저편에도 이편과 같이 되어 있었다. 뜰 문을 위해서 청색,자색,홍색과 가는 베실로 수 놓아 짠 휘장으로 길이가 20규빗이고,기둥이 4,놋받침이 4이었다. 모든 기둥의 가름대와 갈고리는 은으로 만들었다.
세마포 포장의 높이는 5규빗이었다. 그리고 이 안 마당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은 다 놋으로 만들어졌다. 이 안 마당은 이스라엘인의 마당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이 마당에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외에는 절대로 출입하지 못하였으며, 또 제물을 가지고 들어와 제사드릴 자도 이스라엘 백성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8) 바깥마당
이곳은 소위 이방인의 마당으로 이 마당은 매우 넓다.성막 밖의 전지역이 이방인의 마당이다. 그 이유는 이방인이 이곳까지는 접근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우상숭배, 살인, 간음,도둑질,여러가지 불의와 악이 행해지는 죄의 처소이다. 사죄의 은총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버린자의 거처요, 장망성이 이방인의 마당이다.
9)문
하나님께 경배하고자 하는 자는 제일 먼저 문을 통과해야 한다. 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성막이 위치한 뜰로 들어설 수가 없다. 이 문은 폭이 9미터, 높이가 2.25미터로 활짝 열려져 있다. 그리고 그 문은 하얀 세마포에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다. 바로 이 문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문은 4가지 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도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흰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의미하며 완전하신 의(義)를 상징한다. 청색은 예수님의 신성을 의미하며 자색은 예수님의 왕권을 표시하며, 홍색은 예수님의 보혈을 의미한다.
이 색들은 왕이신 예수님, 종이신 예수님,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님, 완전한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복음서도 4권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왕이신 예수님을 설명하고 있으며, 마가복음은 종이신 예수님을, 누가복음은 인간이신 예수님을,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설명해 주고 있다.
왜 예수님에 대해서 이런 4가지 측면에서의 설명이 필요했을까?
그 당시의 배경을 살펴보면 4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유대인, 헬라인, 로마인, 기독교인이었다. 유대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복음서가 마태복음이고, 로마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것이 마가복음이고, 헬라인을 대상으로 기록된 복음서가 누가복음이며,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것이 요한복음인 것이다.
복음서가 이처럼 사복음으로 기록된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을 예수님께로 나아오도록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즉 문(門)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 누구나 차별 없이 나아와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10)은 받침
광야에 세워진 성막은 역사상 유일하게 순전히 은(銀)으로만 기초를 놓아 세운 건물이다. 전체 건물이 은받침에 의지하여 세워졌는데 그 은받침의 수효는 100개였다. 그리고 받침 한 개의 무게가 약50Kg 정도였음으로 전체 받침의 중량은 약 5톤이 되었다.
은받침은 성막이 튼튼하게 세워질 수 있도록 장방형으로 배열되었다. 그리고 각 받침에는 구멍이 뚫려있어서 그 구멍에 성막의 벽인 널판을 끼우게 되어 있었다.
성막의 기초에 사용된 은은 엄청난 분량의 것이었는데 이것을 어디서 구했는가? 성경에는 그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너의 정한 값은 이십 세로 육십 세까지는 남자이면 성소의 세겔대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레 27:3)
즉 성막 받침의 은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전으로 모아서 만든 것이었다.
"조사를 받은 자가 이십 세 이상으로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인즉 성소의 세겔대로 매인에게 은 한 베가 곧 반 세겔씩이라 은 일백 달란트로 성소의 판장 받침과 문장 기둥 받침 합 일백을 부어 만들었으니 매 받침에 한 달란트씩 합 일백 달란트요?(출 38:26-27)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인에게 속전으로 거둔 은으로 성막의 기초를 놓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은은 속죄의 값이다. 이 속죄의 값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동일하였다.
?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출 30:15)
즉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얻어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을 믿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성도에게는 '피의 세금'이 의무적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아무런 희생없이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믿음의 성도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며 참여할 때 교회는 튼튼하게 세워지는 것이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 10:38)
성막(聖幕)의 기구(器具)
법 궤 (출 37:1-9)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법궤 재료
조각목, 금
크기
길이 115cm
폭 69cm
높이 69cm
배정위치
지성소
부속품
이동시 양옆에 끼우는 채
내용물
두돌판, 만나항아리,아론의
싹난 지팡이
2)속죄소 재 료
금
크 기
길이 115cm
폭 69cm
설 명
속죄소는 법궤의 뚜껑이다. 바로 이곳에서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일년에 단 한번 자신을 위해서는 수송아지의 피를, 백성을 위해서는 염소의 피를 뿌렸다. 만약 이곳에 뿌리지 않으면 대제사장은 즉시 죽임을 당했다. 죄는 인간의 노력으로 깨끗해 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덮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법궤를 덮는 뚜껑이 속죄소인 것이다.
3)두 그룹(천사) 재료
금
크기
기록에 없음.
위 그림에서 위로 기둥처럼 솟아 있는 것이
두 그룹(천사)입니다.
☞ 규빗이란?
성막의 모든 치수는 규빗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1규빗은 학자에 따라서 그 기준이 다릅니다. 기독교 대백과 사전에서는 45cm로 사용했고, 그랜드 주석에서는 46.5cm 사용했으며, 죤 H. 왈턴은 44.5cm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다른 이유는 구약의 길이 개념은 신체를 기준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즉 1규빗은 성인 남자에 팔꿈치에서부터 손가락까지의 길이입니다. 제 팔을 재어보니 46cm였습니다.
따라서 편의상 46cm를 사용하겠습니다.
향 단
"너는 분향할 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장이 일 규빗, 광이 일 규빗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고는 이 규빗으로 하며, 그 뿔을 그것과 연하게 하고, 단 상면과 전후 좌우면과 뿔을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를지며, 금태 아래 양편에 금고리 둘을 만들되, 곧 그 양편에 만들지니, 이는 단을 메는 채를 꿸 곳이며, 그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 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출 30:1-7)
성소에는 떡상과 등대와 향단이 있다. 향단은 성소의 떡상과 등대를 지나서 다시 지성소를 향하여 들어가는 장 입구에 있다. 이 향단은 장이 일 규빗, 높이는 이 규빗으로, 조각목으로 만든 후에 정금으로 싸게 되어 있다. 출애굽기 30장7절에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아침마다 아론은 그 향단 위에다 향기로운 향을 사르게 되어 있다. 이 향단은 성막에 있는 기구 중에서 가장 작은 규격의 기구 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시는 가까운 쪽에 두어서 항상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을 만족 하게 하는 역할을 하며, 우리의 중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기 때문에 비록 추하고 연약한 우리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시고 계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히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향단은 위와 전후 좌우와 네 뿔을 금으로 싸고,주위에 금테를 둘렀고, 고리 네개를 만들어 채에 꿰게 했다. 그 채는 금으로 싸고 향단에는 관유와 향품을 드렸다.
그 향을 제조하는 법은 출애굽기 30장22-25절에 기록이 되었다.
이 향단은 성소에 있어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와 또 저녁에 등불을 켤때에 향을 사르게 했다.
등 대
촛대는 정금으로 만들었는데 밑판에 줄기가 있었고 그 줄기에는 가지 여섯이 나 있었다. 각 가지 끝에는 꽃 형상이다. 셋은 이편으로 셋은 저편으로 향하여 총 일곱 가지의 촛대였다. 스가랴서 4장2-3절을 보면 등대 좌우에 감람나무가 있어 그 기름을 공급했다. 즉 감람유로 불을 밝히여 비취게 했다.
또 불 집게와 불똥 그릇도 있었는데 다 정금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만드는데 소요된 금은 한달란트였다.
그 촛대에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고 했다(출27:21). 이것은 등불을 황혼부터 아침까지의 어두운 동안 밟힐 것을 말한다. 곧 낮에는 등불을 켜지 않았음을 말한다.
그 등불은 앞을 비추게 하였다(출25:37). 그 앞은 두가지 면으로 볼 수 있는데 성소의 입구를 중심하면 출입구 쪽을 비추이게 한 것이고, 성소 내에서 앞쪽이면 진설병 상 쪽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그 등불이 비취는 방향이 문제가 안되는 것은 성소 내부를 전체 밝혔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5장 31절에 보면, 등대를 만드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금으로 등대를 만들되, '쳐서 만들라'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셨다. 등대는 오홀리압과 브살렐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등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금 한 달란트가 필요했다.
이 정금 한 달란트를 오홀리압과 브살렐이 망치로 쳐서 점점 등대의 모양으로 바꾸게 된다. 결국, 계속 망치로 쳐서 여섯 가지가 나오고, 드디어 일곱 촛대가 세워지며, 그 위의 등잔에 등불이 켜지는, 아름답고 찬란한 빛을 발하는 등대로 변하는 것이다.
등 잔
등대가 아무리 아름답게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등잔을 만들어 등불을 켜지 않는다면 그 등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등대는 성소 안의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어서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주위를 잘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떡 상
떡상은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었으며, 길이는 2규빗(92cm),높이가 1규빗 반(69cm),너비가 1규빗(46cm)이고 순금으로 싸았으며, 그 위에는 항상 12덩어리의 떡이 놓여 있었다. 그 떡, 즉 진설병은 좋은 밀가구로 만들어 구운 것으로, 매 안식일에 새것으로 갈아놓았다. 그 떡은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다(단 누룩과 꿀은 전혀 넣지 않고 반드시 기름과 소금을 넣게 되어 있다).
그 상의 특징을 든다면 사면에 손바닥 넓이 만큼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두르고, 그것을 위하여 금 고리 넷을 만들어 네 모퉁이에 달고, 금으로 싼 조각목 채로 꿰어 메게 했다(출 25:24-28). 또 정금으로 대접, 숟가락, 병과 붓는 잔을 만들었다(출25:29-30).
성막의 기구 가운데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 놋이나 금으로 싼 것이 있는데, 성막에 들어가면 처음으로 보이는 번제단, 성소 안의 떡상과 향단, 지성소에 있는 법궤가 그렇다. 제단에는 사람들이 죄를 씻음받을 때 염소나 양을 잡아 제단뿔에 피를 칠하고, 향단에도 속죄제사를 드릴 때 피를 가지고 그 향단뿔에 바르며, 지성소에 있는 법궤에도 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가서 그 속죄소 위에 뿌린다. 그러나 유일하게 이 떡상에는 피가 전혀 발려지지 않는다.
물두멍
번제단을 거쳐서 지성소를 향해 들어가는 한가운데 물두멍이 놓여있다.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어 회막과 단 사이에 두었던 것으로 전체가 놋일뿐 아니라 밭침과 그릇도 다 놋이었다.
그곳에 물을 담아서 성소 앞에 놓아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이 성소의 지성소를 출입하기 전후에 수족을 씻게 하였다. 만약에 여기서 수족을 씻지 않고 출입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번제단
이 단은 다른 단과 특이하다. 다른 단과 특이한 것은 놋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 명칭을 놋단이라고 한다.그것은 물론 조각목으로 만들었고, 그 위에 놋으로 쌌다. 길이와 너비가 5규빗으로 네모 반듯하고, 높이는 3규빗으로 그 위 네 모퉁이에 각각 뿔이 있다. 또 그 단에 부속된 기구들인 통,부삽,대야,고기 갈구리,불 옮기는 그릇 등을 놋으로 만들었고, 단 중앙에 그물을 만들되 고리 넷을 만들어 불쳐서 채로 꿰게 하였다. 그 채는 조각목을 놋으로 쌌다. 이 단은 제단에 드릴 짐승을 잡아서 제사장에게 주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희생 제단이다.
번제단의 뿔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구약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죄를 지어 두려움 속에 빠졌을 때 그 죄를 사함받기 위하여 제단뿔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가끔 발견할 수 있다.
레위기 4장을 보면, 제사장이 범죄했을 때나 이스라엘 온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향단 뿔에, 족장이 죄를 범했을 때나 평민이 죄를 범했을 때에는 번제단 뿔에 짐승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서 바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막(聖幕) 의 해석(解釋)
성경 해석(解釋)의 다양한 방법(方法).
성막(聖幕)은 그 해석(解釋)에 있어서 성경의 다른 본문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막의 작은 실오라기 하나까지도 영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성막의 존재 자체를 부인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해석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그 이유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몇 가지 방법들을 네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성경을 우화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우화적 해석은 성경에 기록된 문자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그 문자 속에 숨겨져 있는 참된 진리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예를들어서 성경에서 사용된 '예루살렘'은 지리적인 예루살렘의 의미가 아니라 천국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유대의 유명한 랍비였던 필로는 "문자적 의미는 몸이요, 우화적 의미는 영혼"이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우화(알레고리)적 해석을 잘 표현해 주는 정의입니다. 성경을 우화적으로만 해석하면 매우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버나드 램은 "우화적으로 취급 당하는 성경은 주석가의 손안에 놀아 나는 장남감 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성막을 해석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 바로 이 우화적인 해석입니다.
둘째, 예표론(Typology)적인 해석방법입니다.
예표론적인 해석방법은 신약과 구약은 근본적으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해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즉 구약에 나타난 예시는 신약에 나타날 징조를 예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들어서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로 해석하거나, 모세를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성막을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모형으로 해석하는 방법 등입니다.
예표론은 구약의 특정 인물, 사건, 제도가 신약에서 그와 대응하는 인물, 사건, 제도와 연결시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셋째, 문자적 해석방법입니다.
성경의 본문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려는 방법입니다. 즉 성경의 본문이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야 할 특수한 이유가 없는 한 단어와 문장과 문법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서 예루살렘이라는 뜻을 이스라엘에 위치한 예루살렘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화적 해석처럼 예루살렘을 천국의 의미라고 보거나 신약에 나타난 교회로 해석하지 않는 것입니다. 문자적 해석방법은 철저하게 성경이 기록된 배경과, 언어와, 문법과, 상황 등을 중요시 여깁니다.
넷째, 자유주의적 해석방법입니다.
자유주의 해석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리주의'입니다. 합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은 부정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서 동정녀에서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부정합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넜다는 것도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부정합니다. 따라서 홍해를 건넌 것은 갈대 숲을 지나간 것이라고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영감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따라서 자유주의 해석방법은 성경에 나타난 내용들을 해석할 때 문자적인 의미나 영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전해주고자 하는 사상(思想)이나 정신이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합니다. 즉 우리나라의 단군신화가 고려의 승려 일연에 의해서 삼국유사에 기록된 것은 실재로 단군이 존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민족의 우수성과 선민의식을 심어줌으로서 민족의 단결을 의도했듯이,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도 포로와 억압 속에서 고통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선민의식을 고취하여 용기를 갖고 현실을 이기도록 고취하고자 몇몇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러 민족 설화들을 재구성하여 만들어낸 이야기로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막에 대한 해석도 성막이 실재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이 외에도 성경의 해석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이 '성경해석학'에 있는 것이 아님으로 이 정도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막을 해석 할 때 "어떤 해석방법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옳은가?" 하는 문제입니다.
본인은 자유주의 해석방법을 제외하고서는 모두 유익하다고 봅니다.
다만 우화적 해석도 지나치면 해석자의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섞이게 될 것이고,
모형론적 해석방법도 지나치면 끼워 맞추려는 무리한 해석이 있을 수 있으며,
문자적인 해석방법은 성막의 의미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 무미건조하여 성막의 풍성한 의미를 드러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화적, 모형론적, 문자적 해석방법을 고루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화적인 부분은 우화적으로 해석하고, 모형론적 의미가 강한 부분은 모형론적으로 해석하고, 우화적이거나 모형론적 의미가 별로 없는 것에서는 문자적인 의미만 드러내는 해석방법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이단(異端)들 중에서는 성막의 영적 의미를 자신들의 교리에 맞추어서 교묘하게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글들은 성막을 이해하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본인은 성막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연구한 바도 없고,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제 스스로 필요에 의해서 작업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여러 자료를 수집하여 편집하였음으로 읽는 분들이 스스로 우화적 요소가 지나친 것은 정화하고, 모형적 의미가 무리하게 적용된 해석은 분별해서 취하고, 문자적 의미로 해석된 부분은 냉철하게 판단함으로 종합적 해석의 풍성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성막 해석의 개관(槪觀)
사람이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것이 미운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항상 술을 먹으면서 술 주정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자녀는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에게 친절하고 사랑이 많은 아버지와 함께 사는 자녀는 행복할 것입니다. 양보하지 않는 형제와 함께 사는 것은 힘듭니다. 그러나 서로 양보하며 사랑하며 사는 집은 언제나 화평하고 조용할 것입니다.
처녀 총각들은 미래에 함께 살 상대를 잘 만나기 위해서 무척 힘을 씁니다. 30대가 훨씬 지난 한 여인에게 왜 아직도 결혼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은 있는데 왠지 마음이 끌리지 않고, 어떤 사람은 마음은 끌리는데 직장이 튼튼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조건만 보고 결혼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조건을 안보고 결혼할 수도 없습니다. 그만큼 함께 사는 사람을 잘 만난다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서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누구와 함께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육체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이루어진 신령한 존재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짐승의 육체와 다릅니다. 새들의 육체나 물고기의 육체와도 전혀 다릅니다. 인간의 육체는 그 속에 마음이라는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언제나 홀로 존재하지 못하고 항상 영적인 세계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 영적인 세계에는 크게 두 가지 세계로 나뉘어 집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세계이고, 둘째는 마귀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에는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 그리고 수많은 천군과 천사들이 존재합니다. 반대로 마귀의 세계에는 사탄과 그를 추종하는 수많은 마귀들과, 귀신들이 존재합니다. 이 두 세계는 항상 인간들의 영혼에 접근합니다. 그리고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보내셔서 인간들의 마음에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 사람이 믿음으로 성령님을 영접하면 성령님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셔서 함께 동거하며 사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그러므로 성도는 누구나 성전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전은 어떤 모습을 갖고 있습니까?
출애굽기 36장부터 39장에서는 성막을 만드는 상황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0장에서는 그 만든 기구들을 어떻게 봉헌하였는지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어보면 성전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을 알게됩니다. 성막은 곧 성전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 성막의 모습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성막 밖(out)이고 , 둘째는 성막 안(in)입니다.
성막 밖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막 안에는 또다시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 집니다.
성소에는 왼쪽에 등대와 오른쪽에 떡상, 앞쪽에는 분향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분향단 앞에 지성소를 가린 휘장이 있습니다. 그 휘장 안부터는 지성소로 구별됩니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고 그 법궤 위에 시은좌가 있고 그 위에 두 천사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성전의 모습이 바로 성도의 모습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라고 하셨으니 성도의 모습이 바로 성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 성전의 모습과 성도의 모습을 비교해 봅시다.
성전이 성전 밖(外)과 안(內)으로 구별되는 것처럼 성도도 육체와 영혼으로 구별됩니다.
성전 밖에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는 것처럼 성도의 육체에도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습니다. 번제단은 제물을 바치는 기구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번제물을 불사르는 희생의 예식이 거행됩니다. 성도의 삶에서도 희생의 번제단이 있습니다. 믿음의 성도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는 희생의 삶을 삽니다. 자신의 몸을 드려서 예배하고, 찬양하며, 봉사합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드리고, 전도를 하며,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희생합니다. 이 모든 일은 바로 육체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번제단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희생의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들은 번제단이 있어서 바로 그곳에 자기의 몸을 희생물로 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봉사를 드리고, 희생을 드리는 삶은 오직 성도만의 특권인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은 그 육체에 물두멍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두멍은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막을 출입할 때 자기의 몸을 깨끗이 닦는 곳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육체의 죄악을 깨끗이 씻을 수 있습니다. 항상 기도를 통하여 육체의 허물을 회개합니다. 이것도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성도만의 특권입니다.
성막 안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듯이 성도에게도 그 영혼에 성소와 지성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소 안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바로 등대와 떡상과 분향단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성도의 영혼에도 등대와 떡상과 분향단을 가지고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성도의 영혼 안에도 등대와 떡상과 분향단이 존재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등대이고 떡상이며, 분향단입니까? 성도의 지정의(知情意)가 바로 등대이고 떡상이며, 분향단입니다. 왜 그런지 말씀을 통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떡상은 바로 성도의 지성(知性)을 상징합니다. 성소에 있는 떡상에는 항상 누룩 없는 떡을 12개 올려놓아야 합니다. 이 떡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 6:51)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떡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로 말씀입니다.『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러므로 떡상에 올려 놓은 떡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속에 존재하는 지정의(知情意) 중에서 말씀을 담는 그릇은 어디입니까? 감정입니까? 아니면 의지입니까? 아닙니다. 말씀은 바로 지성(知性)에 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심령속에는 말씀을 담는 지성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떡상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말씀을 담아두는 떡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두는 떡상이 있기 때문에 항상 말씀을 모시고, 묵상하며, 의지하며 믿음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것은 떡은 반드시 누룩 없는 떡이어야 합니다. 만약 떡상에 누룩 있는 떡을 올려놓으면 그 제사장은 하나님에게 심판을 받아 생명을 잃게 됩니다. 성도들도 지성에 변질된 말씀을 올려놓아서는 결코 안됩니다. 자기의 지식을 말씀에 섞거나 혹은 자기의 경험을 말씀에 섞으면 그 사람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등대를 생각해 봅시다. 등대는 성도의 감정을 상징합니다. 등대는 빛을 발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즉 등대는 일곱 가지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 일곱 가지마다 등잔을 만들어서 불을 밝혔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밝히는 것은 감성입니다.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것은 감정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입니다. 등잔불이 언제는 밝다가 언제는 어두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기름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등잔 기름이 석유인지, 등유인지, 올리브인지에 따라서 밝기도 다르고, 냄새도 다르고, 연기도 다릅니다. 기름 준비를 잘 못하여 구원받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등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물리치고 밝고 맑은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 5:14)
그러면 이 빛을 어떻게 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참 빛이며, 완전하신 빛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따르면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갈 때 세상에서 봉사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희생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구제와 헌신과 나눔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희생은 이론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감성에 의해서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분향단을 살펴보겠습니다. 분향단은 향을 사르는 곳입니다. 성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분향입니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이 분향단에 잘못 분향하였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 10:1-2)
웃시야는 이 분향단에 와서 함부로 분향하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분향단의 향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성도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성막은 또한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성막은 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지성소까지 연결되어 습니다.
이 구조는 불신자들이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제하는 성막 안뜰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 문을 통과하면 곧 번제단을 만나며 그 번제단 뒤에는 물두멍이 위치해있습니다. 그리고 그 물두멍을 지나 성막으로 들어가면 앞에 향단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향단 뒤에는 지성소를 가리운 휘장이 내려져 있으며 그 휘장 뒤로 법궤가 위치해 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상하 축으로서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이 됩니다. 그리고 성막 안에는 남쪽으로 등대가 있고, 북쪽으로 떡상이 놓여져 있는데 이것도 십자가의 좌우 축으로 성도가 서로 교제하며 빛된 삶을 살아야 할 내용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일곱 개의 중요한 시설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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