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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

기쁨조미료25 2008. 8. 20. 11:44

 세례요한 


    오늘은 광야에서 외쳤던 자, 곧 세례 요한에 대해서 공부하려고 해요. 주의 길을 예비한 요한이 어떠한 삶을 살았으며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함께 살펴 보아요. 신약의 네 복음서들은 모두 세례요한의 사역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소개함으로써 예수의 사역에 대한 그들의 글을 시작하지요 (마 3:1-12; 막 1:2-8; 눅 3:1-20; 요 1:6-8, 19-36; 3:23-30).

   사도행전에서 바울과 베드로도, 예수님의 활동을 소개할 때, 요한의 세례를 언급하고 있어요 (행 10:37; 13:24이하).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에서 요한의 위치는 예수님의 "선구자"로서 그가 행한 역할에 기인하고 있지요. 세례요한의 삶은 구약에 나오는 엘리야와 그 입은 옷모양과 먹는 음식까지도 일치하지요. 구약에서 엘리야를 다시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말 4:5), 그것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가르쳐 주셨어요 (마태 11:13; 막 9:9-13).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와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마가복음 1:1-5)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 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태 11:13-14)


   신약 외의 요한에 대한 신빙성 있는 유일한 자료는 요시푸스의 고대사 (Antiquities)에 있는 글이예요. 거기 헤롯 안티파스가 장인 아레타스 4세에 의해 패배당하는 것을 요세퍼스는 세례요한을 죽인 죄에 대한 댓가라고 당시 유대인들이 이해했다고 기술하고 있어요. 누가에 의하면, 요한은 제사장 부부가 그들의 노년에 낳은 "기적의 아이"였어요. 그는 그의 공적 사역을 시작하기 전 여러 해를 "광야에서" 보냈지요 (눅 1:80). 요한이 거주했던 광야는 쿰란에서 별로 멀지 않았지요. 그러나, 요한의 사역은 에쎈파의 규율과 체제와는 동떨어진 것이었어요.

 

그들은 땅의 사람들과 상종을 금했는데, 세례요한이 주로 세례주던 사람들은 바로 창기와 세리같은 그들이 접촉조차 피하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세례 요한의 사역은 특별히 예언자적인 것이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구약 시대 많은 선지자들에게 임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하였"던 것이지요(눅 3:2). 쿰란과 에쎈파처럼 광야를 사역지로 택했으나, 요한이 택한 곳은 유대 광야의 가장 번화한 사해 북쪽 요단의 교차점을 택했어요. 사람들은 이스라엘에서 수세기 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권위를 그의 설교에서 인식했지요. 그래서, 팔레스타인의 모든 지역으로부터 그 말씀을 듣고자 요단 계곡으로 무리지어 모여들었지요. 그리고 그들은 요한이 가르치는 새로운 길을 기꺼이 따랐어요. 이는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겼"기 때문이었지요 (막 11:32). 요한의 설교는 종말론적이었어요. 심판의 날이 임박하였고, 그 심판은 "오실 자"에 의해서 집행될 것이었지요. 요한은 그를 위해서 길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오실 자는 다니엘에서의 "인자 같은 이"(단 7:13)에게 맡겨진 직분을 이루는 것이었죠.

 

   이스라엘을 회개하라고 세례요한은 외치면서, 다가올 심판 앞에서는 선조들의 공로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유대종족의 정체성이 전혀 소용없다는 것을 강조했지요. 신실한 회개 외에는 닥쳐 오는 진노를 돌이킬 길이 없다는 것을 가르쳤어요. 회개가 효력이 있기 위해서는 세례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했지요 (마 3:7-12; 눅 3:7-9, 16이하). 세례 요한의 오실 자에 대한 묘사는 이사야의 야웨의 종과 같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오실 자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임을 강조하였어요. 요한의 세례는 이스라엘에서는 새로운 것이었어요. 요한의 세례는 그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었다는 점과 그것이 종말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해요. 에스겔을 통한 예언의 말씀은, 새로운 시대가 동터올 때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그들의 더러운 것에서 깨끗한 물로 정결케 하며, 그들에게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 곧 그 자신의 영을 주리라고 했지요 (겔 36:25이하절들). 이 약속은 요한복음 3:5에 있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하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는 말씀과 상통하지요. 요한이 외친 회개에의 부름에 경청하여 그에게 세례받은 자들은 종말에 의로운 남은 자들로서 "주를 위하여 예비"된 백성이 (눅 1:17) 될 것이었지요. 요한의 세례를 "죄사함을 위한 회개의 세례"(막 1:4)라고 한 마가의 표현은 가장 요한의 사역을 적확하게 묘사하는 것이지요.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의 표로 요한에게 세례받는 자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했어요 (눅 3:8). 곧 요한이 가르친 "의의 도" (마 21:32)를 좇아 살도록 요구하였죠. 요한이 말하는 의의 도는 구약에서 예언자들을 통해 주신 바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미가서 6:8)과 본질적으로 같지요. 요한은 그의 청중들에게 궁핍한 자들과 음식과 옷을 나누어 가지라고 가르쳤어요. 세리들에게는 정해진 세금 이상 물지 말라고 했죠. 군인들도 정과 급료로 만족하며, 폭력으로 돈을 착취하지 말라고 했고요. 일반 백성들, 세리, 창기들은 요한의 가르침에 크게 감동받아 그에게 세례를 받았어요.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율법 선생들, 그리고 특히 바리새인들은 냉담했지요 (눅 7:29 이하).대부분 요한의 청중들은 집으로 돌아가 오실 자를 기다렸으나, 그 중 일부는 남아서 요한의 제자가 되었어요. 요한의 제자 숫자가 바리새파와 후대 예수의 제자들과 맞먹는 괄목할 만한 공동체를 이룬 것은 확실해요. 요한은 우리가 아는대로,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문과 금식 규례를 가르쳐 주었지요 (눅 11:1; 막 2:18).

 

   요한의 사역의 최고 절정은 그가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것으로, 예수님의 수세 사건은 예수님의 공적 사역의 시작을 뜻하기도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요한의 손으로 세례받기를 원하셨을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요한을 선지자로 인식했고, 그의 세례 사역을 하나님의 일로 인정하셨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또한 자신의 사역을 위한 때가 왔음을 아셨고, 그 사역은 인류의 죄를 지고 가시는 것이었기에 회개하고 세례받는 자에게 죄사함을 약속하는 요한의 세례를 기꺼이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고자 하셨지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자신을 요한의 사역과 관련시키셨어요 (마 3:15  ). 예수님의 확신은 그가 강에서 올라오실 때 경험하셨던 것에 의해서 공표되었지요 (막 1:9  이하절과 병행절들). 요한이 후에 옥중에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눅 7:20  ) 하고 왜 물어보았을까요? 그가 예수님을 오실 그 이로 알지 못해서 일까요? 그렇지 않죠. 요한은 그를 분명히 오실 분으로 인정하였으나, 그의 구금된 상황 하에서 그의 확신을 다시 확증하고 싶어함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입니다.예수님은 요한의 사역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시대인 구약 시대의 종막을 뜻함을 보이셨어요. 누가복음 7:24-28  의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요한의 사역과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이 잘 대조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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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예수가좋다오 / 카페 / (일맥) / 2008.08.20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