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우스 선교전략과 21세기 UBF선교
말씀/마태복음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사도행전 20:32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라.”
I. 들어가는 말
한국의 선교신학자 전호진 박사는 한국교회가 세계의 어느 선교지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장을 이룩한 데에는 성령의 역사와 외적 요인도 작용하였지만, 네비우스의 3자원리(三自原理, ‘three-self formula’ : 자립(self-supporting), 자전(self-propagating), 자치(self-governing))가 은둔의 나라를 허락의 나라로 바꾸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 장로교 선교사였던 함일돈(Floyd E. Hamilton) 선교사도 1931년 영국 복음주의적 선교잡지 「세계지배」(World Dominion)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교회 성장의 비결은 바로 네비우스 원리의 채택과 적용이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또한 북장로교 선교부의 총무이면서 세계 선교운동가로 크게 활약한 로버트 스피어 박사는 네비우스의 공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네비우스 박사는 개인을 상대로 한 직접전도를 주장한 점에서 세계선교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바로 선교를 가장 단순한 신약의 형태로 환원시킨 대표적인 인물로 꼽힐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분들이 한국의 기독교가 선교 1세기만에 전 인구의 4분의 1이 신자 화될 만큼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데에는 네비우스 선교전략의 공로가 크다는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II. 네비우스의 생애와 신학사상
존 L. 네비우스(John L. Nevius) 는 화란계 후손으로 1829년 3월 4일 미국 뉴저지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오비드 아카데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6세 때에 유니온 대학에 입학하여, 그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1850년에 그는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1853년에 그는 북장로교 해외선교부에 선교사로 지원하였습니다. 그 해 뉴욕 출신의 헬렌 산포드 코아 양과 결혼한 후, 곧 그는 중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선교부는 그를 중국의 닝포 지방에 배치하였는데, 그것은 네비우스의 희망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중국에 도착하여 양자강과 산동성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다가 1893년 10월 19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음으로 40년 간의 선교사 생애를 마감하였습니다. 네비우스 박사의 신앙과 신학은 한 마디로 개혁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신앙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비우스는 사역 초기에 기대하던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는 당시 중국에서 시도했던 선교방법을 후에 그가 실행한 3자 원리에 대조하여 ‘옛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에서 미국 선교사들이 시행했던 옛 방법의 핵심은 선교사가 돈을 주고 원주민 사역자를 고용하여 전도를 하고 선교사는 앉아서 보고만 받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불가피한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파송단체가 성급하게 결과 보고를 요구하고, 선교사들은 언어를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여 실망한 네시우스는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귀국하였는데, 이때 영국의 헨리 벤(Henry Venn)과 미국의 루프스 앤더슨(Rufus Anderson)에 의해 제시되어진 삼자원리를 중심으로 하는 토착교회 설립 전략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헨리 벤과 루프스 앤더슨의 3자 원리가 태어난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윌리엄 케리 이후 개신교의 선교는 주로 선교기지(mission station) 중심의 접근전략을 사용하였습니다. 선교기지에는 선교사들의 숙소와 교회, 서구식 학교, 병원, 때로는 인쇄소 시설까지 갖추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선교기지 내에 모여 살면서 회심자들을 그들의 사회와 문화로부터 벗어나서 이 선교기지 안으로 들어오도록 이끌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회심자들은 선교사들에 의해서 운영되어지는 선교기지 내에서 선교사들에게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었고, 현지 지도력이 개발되어질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면에서는 19세기 초부터 이루어진 중국선교가 당시 중국의 극심한 경제적 피폐 가운데서 물질적 지원을 강조하게 되어서, 마침내는 교회에서 주는 보조금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쌀 신자’(rice Christian)(네비우스의 표현)들을 양산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쌀 신자란 경제적 수입이 있을 때는 신자 노릇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는 기회주의적 신자들을 지칭한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당시의 시대 배경에서 헨리 밴과 루푸스 앤더슨에 의해서 새롭게 토착교회 설립 전략이 제시되었습니다. 토착교회 설립 전략은 이전의 선교기지 식 접근 전략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 접근 전략을 떠나서 현지인들 중심의 교회를 설립하려는 전략이었습니다. 이들은 토착교회의 핵심 개념으로 자립, 자전, 자치의 삼자 원리를 제시하였습니다. 여기서 자립이란 현지교회가 선교사들의 선교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재정적으로 독립되어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자전은 현지인 교회 스스로가 선교사의 도움이 없이도 복음을 전파하고 증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치란 선교사들의 지도력을 벗어나서 현지인 지도력에 의해서 교회가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이 삼자원리는 오늘날 관점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당시 서구인의 가부장적 선교 상황에서는 충격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실제 당시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은 아프리카에 교회를 개척하였지만 현지인을 사제로 안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거룩한 성직을 교육도 못 받고 기독교적 전통도 없는 아프리카인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헨리 밴의 영향력으로 아프리카인 사제들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앤더슨의 영향으로 선교사들이 모든 현지교회의 재정을 다 공급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상황이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삼자원리는 오늘날 모든 토착교회 설립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네비우스는 이 전략에 자신의 사역을 비추어보면서 자신의 사역에서 기대하던 열매들이 나타나지 않는 원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옛 방법’을 강력하게 부정하였고 배격하였습니다. 그는 새로운 비전을 갖고 중국으로 돌아가 산동 지역에서 소위 3자 원리를 핵심으로 하는 ‘새 방법’을 통한 토착교회 설립 전략을 활용하여 사역을 진행시켰습니다. 그 결과 그는 많은 선교의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비우스는 자신의 사역에서 경험하고 발견하는 토착교회 전략을 챠이니스 리코더(Chinese Recorder)라는 선교사들의 잡지에 계속하여 기고하였습니다. 나중에 이 기고문들을 모아서 「선교지 교회의 개척과 발전」(Planting and Development of Missionary Churches)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네비우스 선교전략의 핵심은 자립, 자전, 자치의 3자 원리를 통한 토착교회 설립이며,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철저한 성경공부를 통한 변혁이 일어나야 하며, 선교사들은 이 변혁의 조력자들로서 이를 섬기기 위해 현지 언어습득, 문화이해를 해야 하고(언어훈련 강조), 궁극적인 변혁의 주체들은 현지인 지도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현지인 지도자 세우기, 평신도 운동 강조). 그리고 현지인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서는 토착적인 교육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III. 한국선교에서의 네비우스 전략
1. 네비우스가 한국에 오게 된 경위
네비우스가 자신의 전략을 정립시켜 가던 시기에, 한국에는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 선교사가 미국 장로교 파송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하여 선교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정부의 선교금지령이 거두어지기를 기다리던 선교 초임자인 언더우드는 언어를 배우며 한국 땅을 어떻게 하여야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할 수 있을 지에 대하여 계속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는 네비우스 선교전략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에 매료된 언더우드는 네비우스 선교사에게 한국을 방문해서 그의 선교전략을 가르쳐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한국에 주재하던 선교사들은 대부분 20대의 젊은이들로서, 그들의 새로운 선교 사역을 위하여 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선배의 가르침이 필요하였고, 이 일을 위하여 네비우스 박사를 초청한 것입니다.
1890년 네비우스 박사는 안식년으로 귀국하던 길에 제물포를 통하여 서울로 와서 장로교 선교사들과 열흘을 유하면서 자신의 전략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때 네비우스에 의하여 주어진 전략적 제안들을 언더우드는 다시 한국적 상황에 재적응시켜 1891년에 한국 장로교 선교부의 선교전략으로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2. 한국에서의 네비우스 선교전략의 핵심내용
1) 자립 언더우드는 네비우스의 선교 전략을 네 가지로 요약하였습니다. 첫째, 한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면 그를 떠나지 말고 끝까지 붙들어 그가 개인 전도하는 일꾼이 될 때까지 자기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이웃에게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게 되기까지 인도한다.(일대일 제자양성) 둘째, 교회의 운영과 기구조직을 그 교회 자체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기획 실천하여 발전을 기하도록 하여야 한다.(자치) 셋째, 교회의 전도 사업을 감당할 만한 인물이 나오거나 재정을 지원할 수 있는 유자격자가 생기면 그들을 선임하여 교회의 지도 일꾼으로 세워 육성한다.(자전, 및 현지인 리더 양성) 넷째, 교회당 건축은 가급적 그 교인들 자신의 힘으로 하게 하되, 건축의 구조나 모양은 한국 고유의 양식으로 혹은 지방의 교회답게 건축하도록 유의한다.(자립)
네비우스의 3자 원리를 선교 현장에서 적용하였던 언더우드는 초창기 한국 교회의 양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1890년 봄, 우리들의 두 번째 여행 때에 소래 마을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역의 과정을 설명하고, 예배당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선교부에서 후원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였다. 나는, ‘당신들은 당신 자신의 예배당을 지을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려운 형편을 이야기하였으나, 나는 ‘당신들에게는 여러분들이 사용하기 원한다면 나무, 돌, 짚 등의 건축재료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예배당을 건축한다면 나는 나무를 자르고 기둥을 세우는 일을 기쁘게 돕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한국 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자립 원리’를 따라 전개되었습니다. 백낙준 박사도 “소래와 제물포의 교회들은 한국 그리스도인에 의하여 세워졌다”고 자립 원리의 한 단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교 교회는 교회당 건축에 있어서 외국 돈의 도움이 없이 한국 교인들의 힘으로 건축되었습니다. 1909년도 한국 선교 25주년 기념의 해외 선교보고는 당시 한국교회 총 사역자 1,052명중에서 94%가 한국교회에 의해 전적으로 재정을 지원 받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고, 같은 해에 각 선교 지부 내의 총 800여 교회 건물들 중 20여 개만 선교 기금으로 건축되었고, 나머지 780여 개는 한국 교인들의 헌금으로 세워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립의 원리는 교회 설립 뿐 아니라, 학교 설립, 성경의 배포, 그리고 병원 사업 등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선교부에 의하여 재정적 지원이 있은 것은 20분의 1도 되지 못하였습니다. 백낙준 박사는 초등 교육을 처음부터 한국 교회에 의해서 주도되도록 하였으며, 고등교육도 될 수 있으면 한국인들의 손에 의해서 운영되도록 하는 선교 방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초창기부터 제일 강조된 것 중의 하나는 ‘한국 교회가 자립으로 토착화의 주춧돌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자립은 재정적인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이 신앙의 힘으로 복음을 전하는 복음전도에도 나타났습니다. 네비우스는 중국에서 초기에 월급을 주어 현지인 전도자를 고용하는 방법으로 선교함으로 실패한 경험을 단호히 반대하였으며, 이때 나타난 현상이 ‘쌀 신자’들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2) 자전 한국 교회의 자전은 자립과 연결된 관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조직하고, 이들이 나아가 전도하여 지교회를 세웠는데, 이러한 관계가 자립과 자전의 유대를 보였습니다.
자전하는 방안은 순회설교, 노방전도(전도 피싱), 사랑방 전도(그룹성경공부), 여인숙전도(기숙사 심방), 문서의 배부(강의안 보내기), 부흥회(여름수양회), 사경회(성경학교)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났습니다. 장로교회는 교회 설립, 교육, 의료선교에 있어서 자전하는 교회로 성장하고, 복음 전파에 최대의 역점을 두었습니다. 교회나 기독교 기관이나 모든 교인이 스스로 전도하는 자로서의 위치를 자각하고 노력한 것이 한국교회의 한 특색이었습니다.
3) 자치 자치는 자립과 자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자립과 자전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에서의 자치는 초창기부터 실시되었습니다. 자치에 관한 네비우스의 생각은 지교회에서 현지인 평신도 지도자를 뽑고, 그들이 교회를 이끌어 나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네비우스는 문화권 내에서 실제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현지인 이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지역교회의 지도자를 맡지 않고, 처음부터 한국인이 지도자의 위치를 맡도록 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이 지도자들은 급료를 받지 않는 자원봉사자들(자비량 목자)이었습니다. 후에 교회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서 유급 교역자들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1907년 9월 17일 한국교회사에 일어난 큰 사건은 평양에서 전국장로교 독노회(총회)가 처음으로 결성되었는데, 미국 선교사 38명, 한국인 장로 40명으로 구성되어, 첫 회의부터 한국인 대표자가 과반수를 넘었습니다.
4) 조직적인 성경공부 네비우스는 성경공부를 특별히 강조하였습니다. 당시는 오늘날과는 달리 농경 사회 중심이었으므로 주중의 저녁시간에 성경공부가 많이 이루어졌고, 모든 교인들은 성경을 배우는 것을 의무로 여겼습니다. 때로는 지역별로 연합되어진 사경회가 벌어지기도 하였는데, 당시의 사경회는 설교보다는 성경 강해를 중심으로 한 집중적인 성경공부의 성격을 더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성경학교).
네비우스의 자립의 원리도 재정적 측면보다 성경공부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서 행한 송별 예배의 설교 중에서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라.”한 행 20:32절 말씀을 근거로 하여 자립의 영적 기초를 삼았습니다. 이로써 한국교회는 성경을 읽는 교회의 전통을 확립합니다. 한국교회의 성경강조에 대하여 미국교회 선교운동가인 존 모트(John R. Mott)박사가 아주 흥미 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전쟁이나 엄청난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인쇄된 성경이 다 없어졌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염려할 것 없다. 한국교회의 몇몇 신자들을 불러서 성경을 외우게 하면 다시 복원할 수 있다.”
한국의 초기 선교사들과 교인들은 성경의 영감성과 권위에 대하여 추호의 의심이나 비판이 없었습니다. 이 점에서 한국교회는 자유주의 신학이 처음부터 영향력을 행사한 일본교회나 중국교회와는 달랐습니다. 알렌 클라크 박사는 자립, 자전, 자치의 3자 원리의 성공비결은 성경공부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저자는 한국교회 성공비결은 성경공부의 강조에 있다고 본다. 성경공부만 잘 진행된다면 자립, 자전, 자치에 대한 염려는 할 필요가 없다. 성경이 신자들을 양육할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가 ‘우리가 어떻게 이처럼 성경을 공부하길 원하는 사람들을 얻을 수 있을까?’라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그 대답은 간단하다. ‘잔치를 베풀라. 그러면 양떼들이 몰려올 것이다.” 성경 다음으로 자립원리의 영적 기초는 교회에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네비우스는 바울처럼 선교사들은 어린양들을 주님과 주의 말씀과 성령님께 맡겨야 한다는 단순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는 주님과 그의 성령이 교회에 필요한 여러 종류의 사역자들을 세우시며 보호하신다는 확신을 이렇게 피력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어린 신자들을 그들이 믿는 주님께 맡겨야 한다. 사도 바울은 주저함이 없이 이 방법을 취했으며, 나 역시 우리들이 그 본을 따르지 말아야 할 아무런 이유를 알지 못한다. 우리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고, 영원히 그들과 함께 거할 큰 은혜인 축복된 성령을 보내주시리라고 약속하셨다. 주님은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주셔서 선지자들, 교사들, 능력자들, 돕는 자들과 다스리는 자들을 필요한대로 보내주실 것이다.” 네비우스는 어린 교회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믿었기 때문에 경제적 자립을 외쳤던 것입니다.
네비우스의 자치의 원리도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았습니다. 그는 현지인 사역자를 양성하여 교회를 맡기면 교회가 곧 약화되거나 와해된다고 하는 우려를 과감히 배격하고 바울의 원리를 따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세우고 그곳을 떠날 때 자주 디모데 혹은 실라 혹은 다른 사람들을 남겨두어서 몇 날, 몇 주 동안 그들을 지도하고 세우며 위로하도록 했다. 또한 각 교회에 특별한 사자들을 보내어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악습을 고치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어느 한 사람도 그곳에 거주하는 목사로서 그들과 함께 지내도록 남겨놓은 것을 읽을 수 없다. 이 사도의 본을 따르지 않을 때, 우리는 자주 각 은사의 성장을 저지시키고 자립을 막을 뿐 아니라 교회내의 활동적인 힘을 억제하게 된다. 또한 처음부터 그들을 약하고 무력하며 의존하도록 만든다.”
5) 언어훈련 네비우스 선교전략의 핵심이 성경에서 나왔고, 또 철저한 성경공부를 강조하여 현지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도록 하였으니 필연적으로 현지어 정복과 훈련을 매우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5) 평신도 운동 네비우스는 교회성장에서 성직자 중심의 교회관이 아닌 평신도에 의한 교회의 성장을 처음부터 시도하여 이것을 한국의 젊은 선교사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렇다고 목사의 존재와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혁주의 선교학자 바빙크도 네비우스의 자립원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고용된 사역자가 많은 곳이 아니라, 오히려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전도하는 곳에 교회가 부흥한다는 사실을 한국과 인도를 실례로 들고 있습니다.
이 외에 네비우스 선교전략으로는 성경에 근거한 엄격한 치리, 다른 지역 모임과의 협력, 법적인 문제 불간섭 원칙, 선교사간의 협력 등이 있습니다.
1900년 2월 23일자 선천 지부에서의 휘트모어(N. C. Whittmore) 선교사의 선교보고를 보면, 겨울 성경 공부반의 성과에 대한 감사와 네비우스 선교 방법이 성공적으로 적용되는 데 대한 보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906년도 8월 10일 자 케른(C. A. Kearns) 선교사의 평양 지부에서의 모펫 선교사의 사역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모펫은 네비우스 선교 방법의 실천자로서 이론을 현실화시키는 한국 선교의 위대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김성태 박사는 네비우스 선교 방법이 한국 교회에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은 선교사들의 네비우스 선교 정책에 대한 확신과 헌신, 또한 한국 교인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IV. 네비우스 선교전략과 21세기 UBF 선교 1) 일반적인 고찰 1. 체계적이고도 조직적인 성경공부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네비우스 선교전략을 연구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공동체를 개척조상들을 통하여 처음부터 온 힘을 기울인 성경공부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로 세우시고, 이를 지켜오게 하신 것은 큰 축복임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더욱 굳게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에 덧붙인다면, 앞으로 계속하여 성경 66권이 연구되고 공부됨으로서, 성경의 숲과 나무를 다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데도 마음을 써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으로 일으키신 것도 큰 축복입니다. 이를 끝까지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캠퍼스 제자양성과 전문인 자비량 선교라는 노선을 놓치지 않는다면 지켜갈 수 있습니다.
3. 자립(자급), 자전, 자치의 3자 원리 중에서 자립의 원리가 잘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개척 조상들에게 철저한 성경공부의 토대 위에 자립정신과 주는 정신을 주셔서 이를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받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요 크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립정신은 선교사들의 자립정신 뿐 아니라, 선교지의 양들에게 처음부터 자립정신과 주는 정신을 심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이 자립 정신과 주는 정신은 계속하여 더욱 성장해가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4. 자전과 자치의 원리에 대하여 생각할 때, 자전의 역사도 대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해외 선교 35년을 맞은 우리 UBF가 기도하고 연구할 것은 현지인 리더쉽을 세워 가는 자치의 원리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지인 지도자를 세우는 자치의 원리를 심도 있게 연구하고 이를 실천하지 않으면 선교의 역사는 선교사 1세대로서 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시카고를 비롯한 여러 지구와 독일 쾰른, 본 등지에서 현지인 목자들이 주일 메신저들로 세움을 받은 것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 자치의 원리를 실현하시는 증거들로서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특히 시카고의 란 워드(Ron Ward) 목자는 주일 메신저로뿐 아니라, 책임 목자로 세움을 받은 것은 가장 모범적인 예입니다. 또한 미국의 경우 여러 지역이 현지인 목자 가정들에 의하여 개척되면서 미국 스탭 모임에 미국목자들의 비율이 거의 절반 정도로 많아지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2) UBF 선교에 자치의 원리를 적용하기 위한 제안 : 사례연구 선교 역사가 당대에 그치지 않고 수 백년 진행되기 위해서는 자치의 원리를 과감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UBF 선교현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안합니다.
A 케이스 : 선교사가 키운 현지인 목자에게 목장을 물려주고, 시니어 선교사로서 자신은 동일한 언어와 문화권에서 새로운 지부(캠퍼스)를 개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책임을 물려준 현지인 목자와는 영적인 유대관계를 잘 갖고 있으나 모든 권한과 책임을 넘겨주었습니다. 이 선교사는 시니어로서 이렇게 함으로서 좋은 본이 되고 있습니다. B 지역 : 현지인 목자가 지부책임목자(director)이며, 현지인 목자 두 가정, 한국 선교사 두 가정이 동역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현지인 목자들이 역사에 주인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양을 치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현지인 지부 책임목자가 선교사 보다 신앙연륜이나 영성이 좀 낮음으로 인한 어려움도 있으나, 문제되지 않습니다. 리더는 현장을 통해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형태가 이상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C 지역 : 한국 선교사에 비해 현지인들이 30배 이상 되며, 현지인 목자 가정도 10배정도 됩니다. 계속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유지하려 할 때, 현지인 리더들은 성장을 멈추고 정체현상을 일으킵니다. 현지인 리더를 세우고, 현지인 리더들을 훈련하고 파송하여 다른 지부를 개척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D 지역 : 한국 선교사가 현지인 목자보다 더 수가 많은 경우입니다. 현지인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한인교회의 분위기를 이룰 위험이 큽니다. 현지인 리더를 세워야 할 것이며, 과감하게 선교사들을 내보내어 사도 바울식의 개척역사를 통하여 현지인들이 리더로 성장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 선교사 3가정이 합심 동역했을 때에 선교역사가 가장 왕성하게 일어났으나, 한국 선교사 수가 많아졌을 때 선교역사는 상당히 후퇴하게 된 예가 있습니다. 선교사 수가 적었을 때에는 선교사 대 현지인 비율이 1대 10정도 되었으나, 선교사 수가 많아진 후에는 그 비율이 5.5대 4.5정도가 되었습니다.
F. 현지에서 태어나서 자란 선교사 2세들과 현지 목자들의 관계 문제입니다. 우리는 2세들에게 2세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2세들이 대학생이 되고 목자가 되었을 때에도 계속하여 2세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들의 언어와 문화가 현지인과 동일하다 하더라도 2세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하고, 그들에게는 선교사이면서 동신에 현지 목자도 되는 2중 직분을 허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2세 중에서는 준비가 되면 한 지역을 개척하여 지부장으로도 세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G. 선교의 파워 스테이션이 필요하고, 파워 스테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지구에 많은 선교사들이 모여 함께 선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의 파워 스테이션은 한 나라에 하나 정도이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선교지부가 파워 스테이션을 만들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H. 영국 UBF의 경우(윤모세 선교사 증언)
1. 선교 역사를 감당하면서, 네비우스 원리를 알기 전에, 다음과 같은 이유로 현지 목자들에게 리더십을 넘기는 것의 중요성 깨달았음.
1) 문화차 - 아무리 한국 사람이 영국 문화를 수용하고 이해하려 해도 한계가 있음. 2)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후배들(양들)의 시니어 현지 목자들에 대한 순종심 형성- 이것은 결국 가족과 같은 개념, 또는 같은 쎈타 라는 개념으로 볼 수 있음.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거부감이 존재함. 같은 족속의 리더에게 순종하는 경향이 강함. 선교사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 사람이 와서 자기들을 통제한다는 잠재 의식이 있음. 선교사가 순수하게 복음만을 가르치기가 어렵고 수용하기도 어려움. 복음과 함께 한국 문화가 심어지는데 이 문화 이식에 대한 거부감이 강함. 3) 언어- 아무리 언어를 정복한다 해도 완벽할 수 없음. 4) 스태미너 - 지부장 선교사는 현지 목자에 비해 10-20년 연상으로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약화됨. 개척 역사를 섬기기에 나이가 들고 또 이방 문화에서 받는 문화차 등으로 점점 스태미나가 떨어짐. 오랫동안 왕성하게 일하기 어려움. 현지 목자는 젊고, 자기 나라, 자기 말, 문화이므로 100% 자기 스태미너 발휘. 역량 개발. 5) 주인 의식 - 자기 나라에 대한 심정. 애국심이 있음.
그래서 현지 목자들이 서기 시작하는 1999년부터 분명한 리더 양성의 방향을 잡음 - 즉, 앞으로 우리 역사의 실제적인 주인이 되도록. 그리고 영국 전제를 향한 비전과 국가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갖고 섬기도록. 지부장 선교사는 역사가 커지면 영국 역사는 온전히 현지 목자에게 맡기고, 유럽 및 세계 선교 지원에 힘쓰는 것으로 방향을 잡음.
2. 이러한 방향을 실천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았음.
1) 2001년부터 현지 목자를 요회 목자로 세움. 실제적인 권한을 줌 - 요회 역사내의 결정에 대한 전적인 자율권. 요회 내 그룹 공부 시키기 - 선교사들을 포함, 이런 가운데 전체 역사에 대해 의견의 활발한 개진 수용. 아주 중요한 문제 아니면 거의 다 수용. 모임의 운영, 예배의 진행, 분위기가 영국 교회 식으로 이루어짐. 양들이 와서, 모임을 이끄는 사람, 앞에 나오는 사람이 거의 다 영국 사람. 영국 교회로 느끼는 분위기 형성 됨. 2) 주일 예배 메신저로 세움. 이안 목자 월 2 회, 폴 목자 월 1 회나 2회, 대런 목자 월 1회. 지부장 선교사가 초안을 써 주고 스스로 적용하여 전하도록 함. (지난 4 년간 이와 같은 형태로 진행) 3) 메신저가 전체 말씀 공부 인도. 2 주전에 메시지 초안을 받으면 그것을 연구, 보충하여 공부 자료를 만듬. 목자들 중 그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영국 목자가 형제 선교사 그룹, 자매 선교사 그룹, 현지 목자 그룹 말씀 공부를 섬김. 4) 현지 목자 소감 모임 : 토요일에 하는 현지 형제 목자 소감 모임 (약 8-10 명 참석) 에는 현지 목자들만 모임 참석함. 이안 목자가 진행, 광고, 코멘트. 지부장 선교사도 참석하지 않음. 5) 1 년에 2회 현지 목자 수양회 : 현지 목자 12명 그룹으로 자체 2박 3일간 수양회를 함. (봄, 가을) 이안, 폴 목자가 전체 인도 진행. 선교사는 참석을 하지 않음. 지부장 선교사가 주제 강의 두개 메시지 초안만 써 줌. 현지 목자가 그것을 기초로 전체 진행. (지난 약 4년간 매해 두번씩 함)--> 새 양들이 모임에 commit 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 6) 봄, 가을 전체 수양회 : 전체 주관 - 현지 목자, 앞에 나오는 사회자, 강사 모두 현지 목자, 지부장 선교사는 수양회 마지막 날에만 광고 7) 재정 감독 : 지부장 선교사가 집행하는 것 등 센타 비용 모든 지출에 대해 현지 목자 (이안 목자) 가 실무자로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보고를 받음. 8) 재정권 이양 : 현재 현지 목자가 어느 정도 이하의 금액은 지부장 선교사의 승인 없이 집행. (특별한 것만 지부장 선교사와 상의, 2- 3년내 재정에 대한 전체 권한을 위임할 예정임.) 9) 현지 목자를 공식적으로 부지부장으로 안수하여 임명함- 현지 주재 지부장 역할. (이는 지부장 선교사가 부재하는 런던 UBF 의 특수성으로 인한 것임)
3. 현지화의 결과
1) 현지 목자들의 헌신이 뚜렷하게 증대, 젊기 때문에 주인 의식을 갖고 왕성하게 일함. 2) 현지 목자들과 선교사들간의 사랑의 관계성 증진 (현지 목자들이 선교사들의 순수성 인정. 사랑의 관계성 형성) 3) 제자 양성의 꾸준한 성장 : (지난 3 년간, 런던의 경우, 선교사 20 명이 영국 제자 양성의 열매 총 1 - 2 명을 맺음, 반면 현지 목자들 2-3 명에 의한 제자 열매는 총 7-8 명임) 4) 현지 목자들의 영적 성장. 현지 목자들이 선교사들을 품고 섬기고 선교사들을 가정에 초청하여 공동 생활하는 현상. 5) 복음적이면서 영국화 된 분위기 확립 6) 현지 리더십의 확립으로 영국 양들도 리더로 성장하고자 하는 소원 가짐.
3) 이상의 제언들을 실천하기 위한 준비 이상의 제언들을 실천하기 위한 준비로는 선교사들이 “선교사란 누구인가?”에 대하여 처음부터 분명한 정체성을 세우고 선교역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또한 끊임없는 영적 성숙을 통하여 자신을 비우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선교사들로 성장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공동체에서 개척하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역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선교사들이 마른 땅을 파서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청춘을 다 바쳐 개척역사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지인 지도자를 책임자로 세우고 모든 것을 내어주고자 할 때, 자기 상실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처음부터 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선교사는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겪어야 합니다.
첫째, 부모의 단계입니다. 초기 개척기에 현지인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고, 선교사는 영적 부모의 위치에 있는 상황입니다. 부모란 어린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공급해주는 존재입니다. 피싱하고, 전도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양육하고, 훈련하고, 메시지를 섬기고, 예배를 섬깁니다. 이런 중에도 선교사의 목표는 잠재적 현지인 지도자를 찾아내고 이들을 양육하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현지인 리더를 양성하여 세우고자 하는 그림을 갖고 선교역사를 섬겨야 합니다. 선교지 교회의 지도자는 결국 현지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이런 그림을 가지고 선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그림이 없이 선교를 한다면 그 선교지부는 토착교회로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둘째, 동역자의 단계입니다. 현지인 지도자가 성장하게 되면 적절한 시기에 선교사는 부모의 역할에서 동역자의 역할로 자신의 역할을 바꾸어야 합니다. 동역자의 단계란 현지인 지도자와 선교사가 모든 면에서 대등한 관계에 있는 상황입니다. 사역의 비중에서도 대등하도록 노력하고, 모든 의사결정에서도 서로 동등한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이 시기는 ‘갈등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선교사는 부모의 단계에 있을 때 힘들지만 가장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가 갈등을 두려워하여 계속 부모의 단계에 남아 있고자 한다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선교지에서 일생을 드려서 헌신했는데 현지인 리더나 성도들과 불편한 관계가 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고, 교회에도 덕이 되지 않고, 본인은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선교사는 고통을 겪으면서 현지인 지도자를 세워야 합니다.
셋째, 후원자의 단계입니다. 현지인 지도자의 후원자로 한 걸음 더 물어나는 것입니다. 이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특히 그 시기(timing)를 놓치면 안 됩니다. 선교사는 현지인 지도자를 자신이 키웠기 때문에 그의 영적 성장 과정을 다 알고 있는데, 또 그의 미숙함이 눈에 띄는데, 이제는 자기가 키운 지도자에게 선교사가 순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당한 영적 인격적 성숙과 겸손 없이는 기쁘게 행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선교사의 삶입니다.
선교사는 현지인들이 할 수 있는 사역을 자기의 영향력이나 존재이유를 만들기 위해서 붙잡고 있으면 죄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다 넘겨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점차 물러나서 아직 현지인들이 할 수 없는 분야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상담, 순회심방, 성경가르침, 성경연구, 문서사역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다시 개척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같은 언어권에서 다른 지역을 개척하면 될 것입니다.
바울은 선교사 생활 20여 년의 1-3차 선교 여행과 및 로마 체류 동안 소아시아 전역, 유럽 전역을 개척하여 현지인 리더들을 세우고 그 지역을 떠났습니다. 심지어 로마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복음 전도로 로마 개척의 기초를 놓고 순교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말년에 그의 손에 남은 것은 낡은 성경두루마리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철저히 자비량 하였습니다. 그의 선교의 모델은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까지 아무 조건 없이 죄인들을 위하여 내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일생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고자 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고자 했습니다.
제가 UBF 스탭목자로서 32년을 섬기는 동안 받은 은혜가 많지만, 그 중에 하나는 세 번의 목장이돌을 통한 훈련이었습니다. 목양의 생활이란 목자와 양의 관계성인데, 목자가 목장이동을 하면 목양의 관계성을 맺는데 적어도 5년은 걸립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청춘을 쏟아 부어 한양센터를 개척할 때, 6년이 지나자 복음역사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종로로 가라는 목장이동 명을 받았습니다. 1주일 동안 기도할 때 하나님은 눅11:2절,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말씀을 주셔서 이를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저는 자기 죽음을 체험하였습니다. 11년이 지난 후 50세에 다시 종로에서 광풍이 몰아친 한양센터로 목장이동 명을 받았을 때 다시 자기 죽음을 체험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막10:45절,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말씀을 주셔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하며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야곱과 같은 자로서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치 못한 점이 많았는데, 세 번의 목장이동을 통하여 한 가지 받은 큰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죽음의 영성, 자기 비움의 영성입니다. 우리 UBF 선교사님들은 모두 이런 자세가 있다고 믿습니다.
선교사는 목회자라기보다는 개척자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현지인을 키우고 세워서 사역을 넘겨주고, 자신은 다시 개척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다시 개척하기 전에 국제본부나 한국본부에서 1년 정도 재충전 및 새로운 설계를 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이런 제도도 만들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인생목적이 순수해져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기도제목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일생 첫째 기도제목이 되어야합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소서!”하는 기도제목이 첫째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V. 나가는 말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마더 배리 선교사님의 청춘과 생애를 쓰셔서 이 땅에 UBF라는, 캠퍼스 제자양성과 전문인 자비량 선교를 통한 세계 복음화를 섬길 특수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 이 역사에 무수한 주의 백성들을 일으키시고 우리의 공동체를 세계 구속사에 귀하게 사용하셨고, 사용하고 계십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니, 처음부터 마더 배리 선교사님께서 이사무엘 현지인 목자님을 세우시고 뒤에서 기도와 섬김으로 동역자요 후원자의 역할을 40년간 감당해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을 축복하신 점도 크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로 보건대, 자립, 자전은 물론 자치에 있어서도 우리 공동체의 개척자들은 네비우스 선교 전략을 실천한 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 2041년까지 10만 명 선교사들이 양성되어 세계 233개국 캠퍼스에 파송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캠퍼스 제자양성과 전문인(평신도) 자비량 선교를 통한 세계구원 역사에 우리 UBF를 하나님의 그릇으로 사용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네비우스의 자립, 자전, 자치의 3자 원리와, 철저한 성경공부, 캠퍼스 제자양성과 전문인 평신도 자비량 선교운동을 더욱 힘써 감당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사무엘 목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