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벧전:3:8-16절 제목: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의원칙 성경: 벧전 3:8-16절
오늘 본문은 순교를 예감한 베드로가 [마지막으로 말합니다]하며 로마제국의 정치적 박해와 부화 뇌동 하는 사람들의 편견에 의하여 핍박 받고 있는 성도들이 살아야 하는 생활 강령에 대하여 나열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이방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즉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회와의 관계 이 두 관계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성도의 신분을 말하면서 성도의 성결한 삶과 성도의 사회적 의무를 말하면서 오늘 본문에 와서는 두 관계에서 갖아야 할 신앙생활의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노 제자 베드로가 유언적 형식으로 우리에게 권면 하는 것을 들어 봅시다. 첫째 성도의 표현은 한마음을 품는 성도의 융합(unity)에 있습니다. 8절에 보면 "너희가 마음을 같이하여"라 하였습니다. "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전에 산에 올라가시어서 기도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라며 자신을 믿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이 유기적으로 하나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바울도 성도는 한마음이요 한 몸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롬12:3-5, 16-17절) "나는 내게 주신 은혜를 힘입어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었고 각 사람은 서로 지체가 됐습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며 오히려 비천한 사람들과 사귀고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마십시오. 아무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힘써 행하십시오."
고전12:12-31절에서는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성도는 예수님의 지체임을 예를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열 분파는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3:3절) 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성도는 한 떡(성찬)에 참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0:17절) 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한 성령안에서 하나된 성도가 융합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안됩니다 두 번째로 성도의 표는 "긍휼(동정,sympathy)과 사랑과 자비"(8절)의 마음을 지니는 것입니다. 롬12:3-15절에는 이것에 대하여 "우는 자와 함께 우는"이라 하였습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감동된 성도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인정하는 감정을 가지고 형제에게 다가가서 사랑으로 감싸고 베풀 수 있는 심정을 말합니다. 이 마음은 자기 희생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사람들이 너희를 내 제자로 알 것이다"(요13:34-35)라는 말씀 속에 사랑이 성도의 표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일3:14절에는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가운데 머물러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성도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아는 성도는 당연히 형제 자매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비는 동정과 약간 다릅니다. 자비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 죄인들에게 살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웃에게 살길을 열어주는 마음이 자비입니다. 사랑의 행위도 동정도 이 자비에 의하여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이 자비를 계속 소유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노력하여야 합니다. 기도와 명상 등을 통하여 계속 된 훈련이 필요합니다.
셋째로 성도의 표는 겸손입니다.(8절) 겸손에는 세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제1은 "나는 피조물이다"라는 자각입니다. 나는 지음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부족하고 제한되고 무엇이나 내 힘으로 다 할 수 없다. 는 자각 없이는 겸손해 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겸손은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연결 되어서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2의 요소는 나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는 자각입니다. 사람은 무엇에 자신을 비교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표준을 찾게 됩니다. 부모에게서 표준을 찾는다든지 스승에게서 혹 목사에게서 아니면 탤런트나 연애인에게서 표준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모두 가까이 가보면 실망 합니다. 우리는 흠없고 죄없으며 자신을 희생하여 사랑을 주는 예수님의 삶에 기준을 두면 이해의 폭이 넓어 지고 안정적인 정신적 철학을 가지고 살수 있습니다.
제3의 겸손요소는 “나는 죄인의 괴수입니다”라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나 같은 죄인의 괴수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끝없이 참아주셨다(딤전1:15-16절)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신앙 고백속에 그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네번쩨로 성도의 표상은 복을 비는 마음입니다. 즉 축복의 전달자가 되라는 이야기 입니다. 9절 보겠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인은 복의 전달자입니다. 성화봉송자의 릴레이 처럼 복을 전달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오직 원수까지를 사랑 할 수 있는 신앙관이 섰을 때 가능합니다. 10-12절은 시편 34:12-15절의 인용구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이것은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는 사람의 생활 방법 입니다. 다섯째로 13절입니다.“뜨거운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뜨거운 마음”이란 헬라어의 “젤로타이”로서 [열심당원]이라는뜻입니다.. 당시 로마의 학정을 이겨 보려고 결사대를 조직하여 싸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생명을 내걸고 나라를 위하여 사우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뜨거운 마음으로 바른 일을 하라”는 뜻은 생명을 내거는 열정으로 바른 일을 하라? 말입니다.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4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팔복에 있는 내용과 같은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5:10-11절)
오늘 베드로가 말한 다섯 가지가 오늘날 현실의 흐름에 반하는 듯 하지만 그러나 이세상에서 성도로서 살아야 하는 표시가 바로 다섯가지의 삶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너는 무엇을 위하여 살았냐?라고 말하면 대답 할 준비가 되어 있으라고 합니다.“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5절) 이 간증은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16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칙있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뉴욕 대학교 국제 경영학 교수인 조지 데이비드 스미스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연구원을 역임한 프레더릭 댈즐이 지은 책입니다. "위대한 기업가들에게 배우는 경영불변의 법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신경제'가 등장하기 100년 전에 산업계의 선구자들은 자신들의 신경제를 건설했는데 최고의 기업에 도달하기까지 그들이 작성한 경영의 원칙들은 100년이 지나도록 모든 사람의 현명한 안내서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경영의 불변의 법칙 4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모험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기업가들은 스스로 모험을 선택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험을 선택하면서 또다른 문제를 만들고 다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면서 변화에 익숙하게 대응할 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적어도 변화에 저항하는 것은 변화를 끌어안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헨리 포드는 "안정성이라는 것은 시냇물에 떠내려가는 죽은 물고기와 같다. 이 나라에서 우리가 아는 유일한 안정성은 변화뿐이다."라는 원칙으로 밀고 나가 불가능하게 보였던 제품을 대량 생산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경쟁을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처절하게 경쟁하는 현장에서 그들은 가야 할 지점을 파악하고 나서 돌진하였다는 것입니다. 카네기 철강과 스탠더드 석유, 포드 자동차 회사를 세운 카네기, 록펠러, 포드 등 새로운 시장을 결단력과 인내로 만들어 갔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관리를 들고 있습니다. 관리가 경쟁력이었다는 것입니다. 시장에서의 치열한 싸움에서 살아남은 후에 위대한 기업가들이 직면한 가장 큰 숙제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능숙하고 노련한 관리 기술을 발휘하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본은 사람인줄 알고 인적 자본(human capital)을 잘 관리하여 중앙 집권이라는 이름의 족쇄에서 탈출해 지식과 정보를 강물처럼 흐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리더십이 시대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 세계에 걸쳐 흩어진 방대한 규모의 사업을 통합하고 육성하기 위해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기업들은 언제나 최고의 인재들을 유치해서 그들을 오래도록 보유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한 시대의 기업을 이끌었던 위대한 기업가들은 자신들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원칙에 입각하여 기업을 이루었습니다.
그 큰 기업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원칙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삶의 원칙을 무엇으로 세우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은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삶의 원칙을 성경적 원리에 의해 세워 보고 싶지 않습니까? 미래가 보장될 것입니다. 삶이 편안해 질 것입니다. 가정에 행복의 웃음이 넘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삶의 원칙을 만들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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