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살인이 자주 발생하는 나라에서는 대부분 여성에 대한 살해는 가족 내부의 문제로 간주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외부인 혹은 법원이 이 사건에 개입하여 살해자를 처벌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게 되고, 그 결과 문제는 문제의 해결이 더욱 어렵게 된다.
중동과 서남아시아 지역에는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을 살해하는 관습이 있다. 일명 ''명예 살인‘(Honor Killing)이라고 불리 우는 이 관습은 특히 정조를 잃거나 간통을 범한 여성들을 상대로 자행되어 왔다. 이와 같은 악습이 아직도 빈번히 행해지는 이유는 가족이나 부족과 같은 집단의 명예를 개인의 생명보다 우선시하는 가부장적인 사회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집안의 여자가 부정한 행위를 할 경우, 그들은 이를 가장 심각한 명예의 실추로 여긴다. 명예 살인은 주로 요르단,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터키 등 주로 중동, 아랍, 이슬람 문화권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파키스탄은 ‘카로카리’(Karokari)란 이름으로 명예 살인이 빈번히 발생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명예 살인이란 무엇인가?
인권 감시 민간단체인 ‘휴먼 라이츠 왓치’(Human Rights Watch)는 ‘명예 살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명예 살인이란 남성 가족 구성원이 여성을 상대로 행하는 폭력으로서, 종종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주로 여성이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간주될 때 명예살인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여성이 부모가 결정한 중매혼을 거부하거나,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거나, 이혼을 요구하거나, 간통을 할 때, 명예 살인의 표적이 된다. 여성이 가족에게 불명예를 안겼다는 행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러한 일이 자행되는 것이다.”
명예 살인이 자주 발생하는 나라에서는 대부분 여성에 대한 살해는 가족 내부의 문제로 간주된다. 이와 관련하여 레바논 출신의 여성 인류학자 S. 하마디는 “여성은 기본적으로 가족의 남성 구성원에게 종속되며, 여성의 과오는 집안의 아버지, 남자 형제, 남편의 명예를 더럽힌다는 생각은 아랍인 사이에 대단히 강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외부인 혹은 법원이 이 사건에 개입하여 살해자를 처벌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와 같은 사건들은 가족 내부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데다가 정부의 무관심이 겹쳐지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알기 힘들다. 그러나 최근 유엔인구활동기금(UNPFA)은 매년 전 세계에서 무려 5,000명에 달하는 여성이 명예 살인에 의해 희생되고 있다고 밝혀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명예 살인이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지역은 파키스탄과 그 인근 지역이다. 지난 2002년 파키스탄에서는 461명의 여성이 명예 살인으로 희생당했다. 아랍 지역의 경우에도 상당수의 여성들이 명예 살인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지난 95년 요르단 정부가 발표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국가 전체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가운데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25건이 명예 살인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됐다. 이집트의 경우 95년 전체 살인 사건 8백 19건 가운데 52건이 그리고 예멘에서는 97년 한 해 동안 400 여 건의 살인이 명예살인에 의해 발생했다.
남성과 여성을 막론하고 자행되는 명예 살인
명예 살인은 대부부분 농촌지역이나 저소득층 사이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도시인들에 비해 그들은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고 가부장제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2004년 12월 요르단의 한 20세 남성이 25세 누나를 살해한 사건은 이러한 명예 살인의 전형적인 예를 잘 보여준다. 살해된 여성은 남편이 수감 중인 상태에서 시동생과 혼외정사를 범해 아기를 낳았다. 요르단 사회에서는 여자가 부정을 저지르면, 인근 마을 주민과 친척들로부터 ''간음한 여인의 가족''이라며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다. 살인을 저지른 남동생은 "더럽혀진 가족의 명예를 깨끗이 하기 위해서"라고 살해 동기를 밝혔다.
명예 살인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지만 남성도 희생의 제물이 되는 경우가 있다. 2004년 11월 영국에서는 한 젊은 남성이 무려 46차례나 칼에 찔린 채 변사체로 발견되는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아라쉬’라는 이름을 가진 이란 출신의 옥스퍼드 대학생으로 밝혀졌다. 그는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던 방글라데시 출신의 ‘만나’라는 여학생과 열애 중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딸의 혼처를 정해 놓은 상태였다. 딸은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몰래 남자 친구와 사랑을 나누었고 급기야 임신까지 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집안의 명예가 먹칠 당했다고 분개했고, 결국 아들 두 명을 시켜 딸의 애인을 살해하라고 명령했다. 19세와 16세 밖에 안된 어린 두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여동생의 애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만 것이다.
명예 살인을 부추기는 현행제도가 가장 큰 문제
명예 살인이 중동, 서남아시아, 아랍 사회에서 끊임없이 자행되는 가장 큰 이유는 현행 법 관행 때문이다. 그들은 명예살인이 일반 살인사건과 다르다고 본다. 일반 살인 사건의 경우, 무기 징역 혹은 사형의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명예 살인이었음이 입증되면, 경미한 처벌로 그치는 것이 다반사다. 요르단 타임즈의 최근 기사는 이 문제를 꼬집은 바 있다. 지난 2001년 한 요르단 청년이 불륜을 이유로 20세 누이동생을 30여 차례 칼로 난도질해 살해했다. 1심에서 그는 사형을 언도 받았다. 법원의 결정에 그의 가족은 항의했고, 그 결과 2심에서 그는 징역 10년으로 감형됐다. 마지막 3심에서, 법원은 그의 행동이 ''고의적 살인''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요르단 형법 98조는 "상대의 불법행위가 분노를 일으켜 살인을 저지를 경우 감형을 허락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을 근거로 그 청년은 징역 6개월 만 치루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명예 살인의 대부분이 이슬람 문화권에서 자행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 것을 종교로부터 유래한 전통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슬람 학자나 지도자들은 명예 살인은 종교 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한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카메네이(Khamenei)는 명예살인은 이슬람의 정신에 위배되며, 만일 간음과 같은 죄를 저지르더라도 관대한 처벌에 그쳐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이집트 아즈하르 대학교 신학자 셰이크 아티야 사끄르(Sheikh Atiyyah Saqr)는 “이른바 명예 살인라고 불리는 행태는 도덕과 법을 무시한 무지의 소치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행은 일벌백계로 다스리지 않으면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질책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만일 정부나 종교 단체가 적극적인 의지만 갖고 있다면 명예 살인이란 악습은 근절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정부나 정치인들은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방관하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9월 요르단 국회에서는 명예 살인에 대해 엄격한 형사 처벌을 부과하자는 법안이 제기되었지만, 보수파 의원들의 압도적 반대로 거부되고 말았다. 올해 3월 파키스탄에서도 명예 살인을 금지하자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기각되고 말았다.
김 정 명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교수
모로코 무함마드 5세 대학 철학 박사
<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국제지역정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