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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부흥 운동의 모습!!

기쁨조미료25 2007. 12. 5. 09:25
평양 대부흥 운동의 모습!!


1907년 평양에서는 이러한 공동체 회복 운동이 뚜렷하게 일어났다. 길선주 장로는 친구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하던 중 당시 100달러 상당의 큰돈을 착복했다고 회개했다. 그는 다음날 아침에 그 돈 전액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얼마 있으면 목사 안수를 받을 평양신학교 출신의 그가 당시 명예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 윤리의 지배를 받고 있던 상황에서, 그것도 1천여 명이 모인 공적인 모임에서 자신의 비열한 과거를 고백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토록 힘든 일이었기에 그의 회개는 사경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큰 감동으로 몰아갔다.

그날 밤 8시에 시작된 예배는 자정을 넘겨 새벽 5시까지 계속되었다. 너도 나도 자신의 죄를 하나씩 고백하고 회개했기 때문이다. 선교사도, 장로도, 일반성도들도 예외 없이 회개했다. 어느 장로는 같은 교회 강 장로와 방위량 선교사를 미워했다고 고백했다. 또 어떤 사람은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딸을 독살했다고 했고, 어느 조사(전도사)는 선교사의 돈을 몰래 착복했다고 했다. 어떤 요리사는 주인을 속여 재산을 갈취했다고 했고, 어떤 교사는 선교사의 부탁을 받아 대지를 구입해 주면서 중간에 선교사를 속여 80달러를 500불로 청구해 나머지 돈을 착복했다고 했다. 본부인을 버리고 둘째 부인을 얻은 어느 남자는 회개하고 본부인과 다시 합했으며, 평소 착실한 성도라고 평가받던 사람도 자선기금 일부를 착복한 사실과 간음죄를 고백했다. 어떤 부인도 같은 죄를 범했다고 고백했고, 곁에 있던 남편은 같이 기도하며 부인을 용서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 여기저기서 심지어는 길거리에서도 서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배상하는 등 교회는 물론 사회적 대변화가 일어났다. 배상할 것은 배상하고 교회에서 죄 고백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을 듣고 일본 경찰이 들이닥치기도 했다. 강도단 두목이 호기심에 교회를 찾았다가 회심하고 경찰에 자수하기도 했다.
평양의 이 놀라운 회심 사건은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교회들은 몰려드는 사람들도 인해 점점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교회가 갑작스럽게 부흥하기 시작했다. 두 달도 못되어 2천명 이상이 회심했다. 그리고 장대현 교회에서 일어난 평양 대부흥운동은 감리교에도 영향을 주었고, 다시 두 교파가 복음화를 위해 협력해 평양에서 더 많은 새로운 신자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사건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평양 대부흥운동은 단순한 영적 강석 운동이 아니었다. 영육에 걸친 혁명적 변화운동이었다. 종교적 회개에 그친 영적인 각성이 아닌 사회적 변화를 가져온 전인적 회개였던 것이다. 다른 성도와 이웃과 관계 회복의 자리에까지 나아갔던 회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운동으로 인해 사랑 안에 서로 회개하고 용서하며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었고 이러한 공동체적 교회의 모습이 참된 교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_권문상 저 부흥 어게인 1907 中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