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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예수 이해

기쁨조미료25 2007. 11. 25. 18:15
이슬람의 예수 이해

권지윤 (횃불트리니티한국이슬람연구소 연구원)

이슬람과 기독교는 모두 유일신론적 신론 안에서 그들의 신앙과 신학을 형성하여왔다. 그러나 기독교와 이슬람의 이러한 유일신론적 신론 안에서 형성해온 그들의 신학과 신앙은 분명한 차이점을 가진다. , 유일신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계신한 방법에 있어 명확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유일신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했다고 믿고 있다. 결국 이러한 계시는 유일신 하나님이 무함마드에게 꾸란을 계시했음을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유일신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계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의 포기할 수 없는 신앙고백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와 이슬람은 같은 유일신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계시하는 개념에 있어 명확한 차이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학과 신앙에서 끊임없이 표현되고 논쟁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명확한 차이는 기독교의 기독론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이슬람에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점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 타우히드(Tawhid) 와 삼위일체론

누구든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하마드는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la ilaha illa Allah; Muhammad rasul Allah) 라는 샤하다(신앙고백)를 고백한 사람은 무슬림으로 받아들여진다. 샤하다는 무슬림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중요한 고백이다. 샤하다를 고백하는 순간 그들은 진정한 무슬림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무함마드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며, 그들 자신이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를 명확히 보여주게 된다. 이러한 샤하다의 앞부분 즉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la ilaha illa Allah;) 라는 타우히드(Tawhid)는 하나님의 유일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중심적인 교리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신앙은 무함마드 당시의 아랍 사회 즉, 메카의 다신론적인 신관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메카는 카바를 중심으로 다신론적인 신관과 맞물려 상업적 번영을 누렸던 사회였다. 흔히 이슬람에서 자힐리야라 부르는 이 당시 사회는 이슬람학자들에 의하면, 종교적, 도덕적으로 신뢰할 만한 규범이나 가치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당시 무함마드의 유일신론에 대한 계시는 당시 사회에 대해 높은 종교성과 도덕률을 요구하였다고 주장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안에서 무슬림의 신앙과 신학의 중심을 이루는 타우히드 즉,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신앙이 형성되었고, 이것은 수세기를 지나면서 그들 신학과 신앙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타우히드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타우히드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즉 유일한 신적 존재는 하나님뿐 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은 한분으로서 다른 어떤 누구도 그의 신성을 나누거나, 다른 신적 존재의 부분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타우히드의 신앙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정면으로 부인할 수밖에 없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 무함마드는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접할 수 없었기에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왜곡된 정보 즉, 기독교 이단 종파에 대한 접촉 또는 기독교에 대한 문서적 접촉이 아닌 구전된 정보에 대해 접촉하였다고 생각된다. 결국 무슬림들에게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은 삼신론(하나님, 마리아, 예수)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꾸란5:73 “하나님이 셋 중의 하나라 말하는 그들은 분명 불신자라 하나님 한분 외에는 신이 없거늘 만일 그들이 말한 것을 단념치 않는다면 그들 불신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벌이 가해지리라” 의 표현은 이러한 무슬림들의 개념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초기 무슬림들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삼신론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다신론적인 아랍사회에 대항하여 유일신론을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거부하였다. 그러나 수세기를 거치면서 무슬림들의 이러한 태도는 기독교 이슬람간의 신학적 논쟁 가운데 결국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에 반대하는 것으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고백하는 것은 삼신론적 개념으로써 무슬림들의 유일신론 안에서 받아들여 질 수 없는 것이다.

 

■ 예수의 신성에 대한 이해

앞서 언급했듯이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수세기를 거친 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중요한 이슈 가운데 가장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예수에 대한 두 종교 간의 이해가 될 것이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심적인 신앙고백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계시한 것으로 이해되고 고백되는 것과 달리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신성을 소유하지 않은 한 사람의 선지자로 구분하고 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슬람의 많은 선지자 가운데 예수는 무함마드처럼 경전을 계시 받은 선지자로 표현되고 있다. , 유대인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경전을 계시 받은 한 선지자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이슬람의 예수 이해는 기독교와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슬림들이 예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주요한 이슈는 크게 두 가지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예수의 생애와 관련하여 설명될 수 있는데, 과연 예수가 신성을 가졌는가?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의 삶을 살았는가, 즉 이 세상에서 다른 하나님의 선지자와 달리 특별한 신성을 가진 자로서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첫 번째 이슈보다 더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예수의 수난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두 가지 이슈는 모두 유일신 하나님의 신론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설명되어지고 이해되는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1. 예수의 생애

예수(Isa)에 관한 이야기는 꾸란 여러 절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사(Isa)라는 명칭으로 25, 메시아(Al-Masih)라는 단어로 11회 그리고 마리아의 아들(son of Maryam)이라는 어휘로는 23회 총 59회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호칭들에 대하여 무슬림 주석가들은 예수가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성을 지니지 않은 유한한 인간임을 표현해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호칭들은 기독교에서처럼 구원론적인 메시아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고유명사로 받아들여져 사용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특별히 꾸란에서 마리아의 아들 예수로 언급된 부분과 관련하여 살펴볼 것은, 이슬람에서 예수의 수태고지를 기독교에서처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꾸란에서는 이러한 수태고지가 예수의 신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창조된 한 인간으로서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수태고지에 의한 예수의 탄생이 예수가 다른 선지자들과 달리 신성을 소유하는 특별한 자로 이해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의 탄생은 아담의 탄생기사와 비교되는데 무슬림주석가들은 아담이 부모 없이 ‘있으라’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선지자로서 예수보다 아담의 탄생이 더 우월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꾸란에서 표현되고 있는 예수의 생애 가운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예수가 이적을 행하였다는 것이다. 예수의 기적은 예수가 태어나면서부터 이야기를 하였다는 것과 진흙으로 새로 만들고, 눈먼 자와 병든 자를 고쳤다는 것, 죽은 자를 살린 기사에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기적 기사는 예수가 신성을 가지고 자신의 의지로 행하였다고 해석되지 않고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기적을 행하였다고 해석된다. , 예수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이 계시한 것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이 지시하신 기적을 행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꾸란 학자들은 예수에 관하여 꾸란에 언급되고 있는 종(Abdu), 예언자(Nabi), 사도(Rasul)라는 어휘에 초점을 맞추어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담…노아…아브라함…모세…예수에서 무함마드에 이르기까지 꾸란에 언급된 선지자 25명 모두를 인성을 가진 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했듯이 예수는 무함마드와 같이 경전을 계시 받은 선지자 라술(Rasul)로서 이슬람의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표현되어있다. 더욱이 일부 무슬림 주석가들은 예수가 가져온 기쁜 소식은 아흐맏 즉, 무함마드의 도래를 언급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2. 하나님의 아들 예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하였음을 그들 신학과 신앙의 삶속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이러한 고백을 하는 것을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왜곡과 도전으로 이해하고 있다. 특별히 꾸란 112에서는 “일러 가로되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낳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아니했나니 그 분과 대등한 자 세상에 없도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들을 가지지도 않았으며, 하나님의 신성의 어떠한 부분도 공유되거나, 그에 대적할 어떠한 존재가 없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서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들 즉 자녀를 가졌다는 것은, 당시 아랍의 다신교적 배경에서 해석된다면 하나님이 당시의 다신교적 세계관에 존재했던 다른 신들과 차별성을 가질 수 없는 즉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고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슬림들은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유일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대표적인 꾸란 주석가인 Yusuf Ali는 아들을 낳는 것은 인간의 동물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로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욕구로부터 자유로우시며, 따라서 이러한 행위와 하나님을 관련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예수를 통해 계시했다는 고백은 무슬림들에게 유일신 하나님의 신성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러한 무슬림들의 태도는 초기 무슬림 공동체에서는 다신교적 신관으로부터 하나님의 유일성을 명확히 증명하려는 시도였으나 점차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거부로 표현되었다. 꾸란에서는 직접적으로 이러한 거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알라 하나님이 곧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라고 말하는 자들은 분명 불신자들이라. … 알 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천국을 금지하시고 지옥을 그들의 거주지로 두시니 그들에게는 구원자가 없노라.(꾸란 5:72). 【… 메시아가 알라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는 자들에게 … 알라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이라. …】(꾸란 9:30).

 

■ 예수의 수난-대체 수난설

많은 무슬림 주석가와 해석가들은 꾸란 4:157-158에 근거하여 예수의 죽음에 대해 기독교의 이해와는 다른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도다 라고 그들이 말하도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었느니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에게

지식이 없음이며 단지 추측을 따르는 것이어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 그를 오르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권능과 지혜로 충만하심이라.

 

이 수라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예수가 수난당하지 않았다면 즉, 하나님의 간섭에 의해서 수난당하지 않았다면 ‘누가 수난을 당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질문은 “셔비라 라훔”(shubbiha lahum)" -“그렇게 보이다”, “유사하게 보이다”. “가장되어 보이다”라는 표현에 근거하여 무슬림 학자들의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무슬림 학자 Al-Baidawi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몰려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에게 그가 예수를 하늘로 들어 올릴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자 예수는 제자들 중에 하나가 자원하여 예수 대신에 죽음을 당하였다고 주장한다. Al-Baidawi는 하나님이 개입하여 다른 사람에게 예수의 형상을 입혀 수난 받게 한 것이 꾸란 4:157-158에 언급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왜 하나님이 무고한 사람을 수난 당하게 하였는가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이에 대해 무슬림 해석가들은 예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대신 죽이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러한 행위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예수를 대신해서 가롯유다 또는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갔던 사람이 대신해서 죽임을 당하였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무슬림 역사학자 Ibn Kathir는 예수의 대체 수난설을 주장하면서 좀 더 역사적, 사회적 기록에 근거한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는 안식일 저녁에 12 혹은 17명의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예수는 그의 수난에 대하여 알고 있었으며, 그 제자들 중 지원하는 자로서 예수와 유사한 이가 예수를 대신하기로 계획하였고, 예수를 잡으러 온 유대인들은 이 제자를 데리고 가 그가 수난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를 데리고 간 시각이 안식일 저녁이라 유대인들은 그를 식별하지 못하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더욱 흥미 있는 주장은 Robinson의 가설에 있다. 그는 두 가지의 대표적인 가설을 주장하고 있는데, Robinson에 의하면 예수가 하늘로 승천한 후 유대인 권력자들은 유대인들의 반란에 대비해서 누군가를 예수를 대신해서 수난 당하게 했다고 한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이 예수를 닮은 누군가를 수난 당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를 잡으러온 타이터스 또는 예수의 제자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주장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에 의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 없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수난 당했다는 십자가의 사건을 무슬림들이 인정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크래그에 의하면 예수가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사실 즉, 그가 선지자됨의 신빙성(credibility)과 진정성(authenticity)을 위해서 예수는 모욕과 실제적인 죽음에서 구원되어야 했다고 한다. 만일 그가 정말로 고통을 당하고 죽었다면, 하나님이 그를 버린 것이고, 그의 지위는 완전히 부인된 것으로 이해되어져야만 한다. 예수는 무함마드처럼 그들의 보호자인 하나님이, 그들의 적대자들보다 더 훌륭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십자가에서 구원되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무슬림들은 자기 자신의 죄를 누군가 대신해 용서 받는 것을 그들의 신앙에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슬람의 속죄론은 기독교와는 달리 죄지은 자 자신이 회개와 참회를 통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유일신 하나님께 귀의함으로써 구원될 수 있다고 전한다. 따라서 어떤 중간자가 그들의 죄를 대신해서 속죄를 한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크래그는 이러한 사실은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십자가 사건에 대한 무슬림들의 뿌리 깊은 부정은 비록 예수가 십자가 위에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가 우리들의 죄를 짊어지고 우리의 용서를 구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음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그와 같은 믿음은 부도덕한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슬림들에게 예수의 수난은 “구원론적으로 일어날 필요가 없었으며, 신론이나 기독론의 입장에서 볼 때 일어나지 말아야 했으며, 따라서 역사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주장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독교의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활동한다. 그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인간들에게 도움을 베풀기 위해 자신을 계시한다. 그리고 그의 계시들은 철저히 그의 자유에 의존한다. 그는 인간과 함께 역사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무슬림의 하나님은 이런 모험을 감행하고자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역사 밖에 머문다. 꾸란에 의하면 그는 권세와 권위에 있어서 유일한 분으로서, 창조자이며 입법자이며 심판자로서 인정되고 예배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에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계시가 더 이상 인정되지 않는다. 결국 기독교를 특징짓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신앙고백은 이슬람 움마와 갈리는 분기점이 된다. ,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신앙적 이해에서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하여도)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두 종교 간의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그 하나님의 계시가 두 종교 안에서 가지는 독특성으로 인해서 수세기를 거쳐 존재해온 그들 종교의 이름 즉 기독교, 이슬람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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