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막9:14-29절),
글쓴이: 박봉웅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막9:14-29절, 40.233.394장. 예수님께서 세 제자들과 함께 변화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아홉 제자들은 그 산아래 있었는데 서기관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 제자들을 둘러싸고 힐난을 합니다. 예수님이 내려 오셔서 무슨 일인가 물어 보았더니 그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다름이 아니고 제게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이 있는데 귀신에게 잡히면 넘어가고 거품을 품으며 기절을 합니다. 이 아이를 고쳐달라고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찾아 왔더니 선생님의 제자들이 이 아이를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혹 무엇을 할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이 아이를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예수님께 또한 허다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듣고 목격하였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들의 병만은 어려서부터 시작되었고 또 그 동안 치료하려고 많이 힘도 썼으나 백약이 무효한 난치의 병임을 생각할 때에 예수의 능력이 아무리 위대한들 이것까지도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믿는 자에게 불능이 없거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라고 책하셨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가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큰 소리로 외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날 이러한 반신반의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 현대의 교회에도 허다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주여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시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여주여 하면서도 그 내심인즉 의혹과, 불 신앙으로 장식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입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 얻을 것이 아니요 오직 믿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거니와 믿는 자에게는 모든 일이 합동하여 유익하게 됩니다. 1.믿음 안에는 생명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신념이 아닙니다. 생명력입니 다. 예수님은 눅17:5-6절에서 믿음을 겨자씨로 비유했습니다. 아무리 겨자씨가 작다고 할지라도 생명만 자라나는 것처럼 믿음도 산 믿음만 가진다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시각적 신앙이라면 하나는 생명력 있는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 시각적인 신앙과 머리로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력 있는 신앙만 갖는 다면 기적은 일어나고야 맙니다. 벧전5: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려라"고 했습니다. 잠16:3절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너희가 믿음이 있는가를 살펴보라"(고후13:5)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요4:42절).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마16:16).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요20:28). 2.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참 믿음만 갖는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 다고 하셨습니다. 태양의 위대함은 어두운 밤을 내쫓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두꺼운 강철을 뚫는 강인한 힘에 있습니다. 신앙의 위대한 힘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 나타납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홍해에 직면했을 때 나타났습니다. "다니엘"의 위대한 믿음은 사자굴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베드로"의 신앙은 십자가를 거꾸로 질 때 나타났습니다. 쇠고랑을 차고 포로로 끌려가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 믿음의 선지자들을 기억하십시오. 맨주먹으로 로마를 정복한 믿음의 사람들 불꽃 튀는 화염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믿음은 죽은 자를 일으킵니다. 믿음만 갖는다면 가난도 물러갑니다. 믿음만 있다면 홍해는 갈라지고 여리고 성도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생각하고 예수의 일만 생각해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의 음성만 들어도 죽는 자가 일어납니다. 반면 믿음이 떨어지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하나님보다 더 사람을 의지하고 세상 것만 바라보고 생각하게 됩니다. 능력이 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28절에서 제자들은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합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영안이 어두워집니다. 외식과 형식만 차리게 됩니다. 외식은 말만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입니다. 사람에게만 보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를 본받지 말고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마23:3). 화를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8:23-27절에 보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던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큰 놀(파도)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매 파선 위기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태연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주님을 깨우면서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호소하매 예수께서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하시며 바다와 바람을 꾸짖으신 대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3.믿음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도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을 받은 확신이 없기 때문이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믿음만 있다면 우리들의 모든 문제는 해결되며 문제가 해결됨으로 더욱 확고한 믿음 안에 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약5: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고 했습니다. 약5:16절에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믿음은 계속 성장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기적을 창조해서 풍성한 삶을 살게 해줍니다. 우리들의 삶이 불안한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요, 우리들의 삶이 권태로운 것은 믿음이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작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앉은뱅이를 일으킵니다. 소경의 눈도 뜨게 합니다. 죽은 자는 살아나고 문제는 해결되며, 질병과 가난은 물러가 축복의 시온의 대로가 열리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따라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크게 믿으면 크게 이루어지고 큰 축복이 임합니다. 작게 믿으면 작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왕 믿으려면 크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큰 믿음을 가진 자에게 큰 축복이 이루어집니다. 4.믿음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부르시고 일을 맡기실 때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자세로 다섯 번이나 핑계를 댔습니다. 그중 출3:11절에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핑계를 대며 할 수 없다는 모세를 향하여,하나님은 노를 발하시며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나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할 수 없다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므로 할 수 있다는 신앙을 갖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약한 자입니다. 상한 갈대입니다. 참으로 무능한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요 승리의 비결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나는 할 수 없다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눈을 들고 믿음의 주시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5.믿음 안에는 소망과 인내가 있는 것입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이제 주님의 응답을 기 다립니다. 그것은 가능에 대한 응답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실로 흥분의 순간입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는 이 아버지의 용단적인 신앙고백은, 여기에서 끝날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 아이 아버지의 가슴속에는 1)그 누가 꺾을 수 없는 강한 기대가 계속되는 순간입니다. 2)주께서 도와 주고 말 것이라고 하는 정열적인 신념만이 불타고 있는 순간입니다. 3)의심을 용납할 수 없는 성취를 맛보는 순간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기다리는 인내입니다. 소망의 인내입니다. 결코 후퇴를 모르는 기다림이올시다. 그렇습니다. 크고 좋고 아름다운 꿈을 가진 사람은 머뭇거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언제든지 세상이 깜짝 놀라는 용단의 걸음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그 용단의 걸음을 걷는 사람들은 실패를 인정할 줄 모릅니다. 후퇴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유는 저들에게는 소망의 인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좋은 꿈을 가지고 좋은 용단을 내린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낭패와 실망이 더해 오는 것입니다. 이유는 많이 보고 많이 가졌고 많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온갖 경우들의 고난 속에서도 강한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의 낭패에서도 또 일어날 기회를 붙잡고 마는 것입니다. 얼핏보기에는 실패처럼 보이고 낭패처럼 보이는 바로 그 순간이 재기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6.믿음이 있기를 요구한 것입니다. 눅17:5절에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 없 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니" 했습니다. 본문은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기를 간청했을 때 제자에게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마음 속에 믿음의 힘이 연약함을 절실히 느끼고, 주님께 믿음을 더하여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믿음을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신 대로 과연 현대는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요구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이 말은 비단 제자들의 간청만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절박한 요구이기도 합니다. 이 간청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믿는 자의 믿음이 겨자씨의 한 알만큼 있다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겨지라 해도 순종하였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17:20절에는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만능을 곧 믿음의 능력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능력 있는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1)미온적 믿음에서 뜨거운 믿음이 요구됩니다. 계3:15절에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 미온적 신앙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2)죽은 믿음에서 산 믿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약2:17절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이란 생명체이므로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은 썩은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믿음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자라고 할 처지도 못된 것입니다.(계3:1절). 7.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믿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1)믿음은 대상자를 아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안다는 것이 믿음의 첫 요소입니다. 대상을 잘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예수를 아니 믿는 것은 그가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나의 구주인 것을 알면 아니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은 그가 바로 시인했기 때문입니다. 마16:16-17절에 보면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했습니다. 2)믿음은 믿음의 대상을 알았으면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고 구주로 믿는다고 하면 그 다음은 주님께 모든 것을 신뢰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믿는다면 그분께 사업도 맡기고 자녀도 맡기고 삶 전체 일생까지 그에게 맡겨 버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3)믿음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완전히 믿어 왔으면 이제는 무조건 순종입니다. 8.말씀을 정리합니다. 눅17:5절에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 고 했습니다. 종교인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믿음입니다. 특별히 우리 기독교의 성도들은 살아 있어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믿어야 하겠습니다. 역사가 나타나는 데 수반이 되는 믿음을 얻기 위해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드리라고 하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매미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는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이 도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일 상 생활에서 믿음의 생활을 해야합니다. 교회에서는 거룩거룩 하는데 자기가 생활하는 동네에서는 손가락질 받는 치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라면 그 기도를 들으시겠는가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일상 생활이 기도가 되어서 생활 전도가 되어야 합니다. 저 가정을 보니까, 신앙 생활해야 하겠다고 하는 신앙고백이 나와야합니다. 저 가정이 출석하는 교회로 나가야 하겠다는 소문이 퍼질 때 교회는 부흥되며 영광은 하나님께서 받게 됩니다. 생활전도의 모범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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