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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공동체의 사람들

기쁨조미료25 2012. 9. 5. 10:27

바울 공동체의 사람들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역사신학)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바울이 알고 있었거나 바울과 동역했던 이들로서 구체적으로 그 이름이 거명되는 이들은 약 80명에 이른다. 이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이자 바울공동체의 사람들, 곧 바울과 어떤 형식으로든지 관련된 이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으며, 어떤 신분의 사람들이었을까? 바울 공동체의 사람들이었던 이들의 인종, 신분, 성별이 함의하는 의의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바울 공동체의 인물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바울 공동체의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

1.1. 로마서 16장에 나타난 바울 주변의 사람들

   로마서는 흔히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즉 첫 부분(1:1-3:20)에서는 인간의 죄와 비참에 대하여, 두 번째 부분(3:21-11:36)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로마서의 세 번째 부분(12:1-16:27)에서는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그래서 로마서는 인간의 죄와 비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문제를 취급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Heidelberg Catechism, 1563)도 로마서에 기초하여 동일한 3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로마서에는 이런 기독교의 기본 교리와 삶에 대한 가르침 외에도 한 가지 중요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로마서 16장의 내용이다.
  로마서 16장은 일종의 추신(追伸)으로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문안인사인데, 다드(C. H. Dadd)를 비롯한 일분의 학자들은 매우 그럴듯한 근거를 가지고 로마서 16장은 본래 로마서의 일부가 아니라 에베소에 보내는 다른 편지의 일부였다고 주장한다. 즉 로마서 16장의 수신지가 본래 로마가 아니라 에베소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헤리 겜블(Harry Y. Gamble)이 분명하게 석명하고 있듯이 이 주장은 옳지 않다.

  어떤 점에서 로마서는 15장으로 끝맺고 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 점은 로마서 16장에 대한 그간의 상대적 무관심에서 잘 드러난다. 교부시대부터 로마서 16장은 하찮은 인사말 정도로 무시되어 왔고 신학자들의 주목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초기 기독교 공동체 구성원들의 사회적 신분의 문제 등 사회사적 관심이 일기시작하면서 로마서 16장은 신학적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 점에 새로운 빛을 던져준 인물은 호주의 고대사학자이자 로마사회사를 전공한 에드윈 저지(Edwin Judge)교수일 것이다. 그는 바울 주변의 인물들에 대한 사회사적 연구를 통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성격을 규명하려고 시도했는데, 그의 연구는 후대의 고대사학자와 신약학자들 혹은 고대 교회사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로마서 16장에는 바울이 알고 있거나 과거에 함께 일했던 26명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일일이 문안하고 있다. 여기서 두 사람을 더 말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고 있다. 그들이 “루포와 그 어머니”(16:13), 그리고 “네레오와 그 자매(16:15)이다. 로마서 16장의 추신은 단순히 문안의 인사만이 아니라, 저들에 대한 부가적 언급을 통해 초기 바울공동체에 속했던 사람들의 종족, 가족 배경, 직업, 사회적 신분과 지위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주고 있어, 소위 프로소포그래피(prosopography)의 기초가 된다.

  로마서 16장에 기록된 26명은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지닌 인종적 다양성(ethnic diversity)을 보여주고, 여러 신분의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적 다양성(social diversity)을 보여준다. 또 남자와 여자들로 구성된 성벽을 극복한 공동체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과 이방인, 자유인과 노예, 그리고 성별(gender)로는 남성과 여성이 다 함께 그리스도안의 한 가족이라는 사실(갈3:28)을 보여준다.
  로마에는 하나의 교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울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이나(고전1:2, 고후1:1,롬16:23), 겐그리아(롬16:1), 라오디게아(골4:16, 계1:11,3:14 참고), 그리고 데살로니가의 신자들(데전1:1, 데후1:1)을 말할 때와 마찬가지로 로마에서 그리스도인을 말할 때 하나의 교회회중(?κκλησ?α)만을 말하지 않는다. 로마서 16장을 보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다른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회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로마서 16장의 명단을 보면 로마교회의 교인들 가운데는 적지 않는 수의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섯 사람은 분명히 유대인의 후예이거나 유대교에서 개종한 이들인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다른 3사람, 안드로니고, 유니아(16:7), 헤로디온(16:11)이 그들이다. 이 다른 3사람을 바울은 ‘나의 동족’(my 'kinsmen', συγγενη?)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통해서 이들이 유대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26명의 명단을 보면 로마교회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노예(slave)도 있고, 노예로부터 해방된 이들(freed[wo]men)도 있었고, 자유인(free people)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다양한 사회적 신분의 사람이 혼재해 있었던 것이다.
  Peter Lampe에 의하면 암블리아, 헤로디온,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시, 네레오는 노예이거나 노예에서 해방된 이들이라고 추측한다. 또 마리아, 유니아와 율리아는 해방된 여성이거나 노예로부터 해방된 이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브리스가(Prisclla), 아굴라(Aquila), 우르바노(Urbanus), 루포(Rufus)는 노예적 배경의 인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우르바노를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다(롬16:3,9). 이렇게 볼 때 로마서 16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26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노예적 배경의 인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들 외에도 바울은 아리스도불로(16:10)와 나깃수(16:11)에게 속한 노예들에게도 문안하고 있음을 볼 때 다수의 노예들도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로마서 16장에 기록된 인물들을 성별로 구분하여 볼 때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롬1:7) 중에는 다수의 여성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즉 뵈뵈(Phoebe), 브리스가(Prisclla), 마리아(Mary), 드루배나(Tryphena), 드루보사(Tryphosa), 버시(Persis), 율리아(Julia)가 여성이었고, 그리고 유니아(Junia/Junias)도 여성이었을 것이다. 또 바울은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명하지 않으나, “루포와 그 어머니”(16:13), “네레오와 그 자매(16:15)라는 여성을 언급하고 있다.
  정리하여 보면, 로마서 16장에서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명하는 26명 가운데서 남성이 18명이 남성이고, 8명은 여성이다.

  로마서 16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26명의 인물들과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에게서 예시되듯이 이들의 이동성(mobility)과 이들의 이동과 이주가 초기 기독교회의 확산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위의 26명 중 4분지 3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동부지중해 지역에서 로마로 이주하였거나 동방지역에서 살았던 인물들이다. 예컨대, 에베네도(Epenetus)는 아시아에서 첫 개종자로서(롬16:5) 로마에 와 있었고, 안드로니고(Andronicus)와 유니아(Junias, Junia, 롬16:7)는 로마가 아닌 어떤 곳에서 바울과 함께 투옥된 일이 있었으나 로마에 와 있었다(롬16:7). 아마도 이들은 사마리아나 유다지방에 얼마간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아굴라(롬16:3)는 본래 본도출신이었고(행18:2), 뵈뵈(롬16:1-2)는 아가야지방의 항구도시인 겐그리아 출신이었다. 바울은 암블리아(Ampliatus, 롬16:8), 스다구(Stachys, 롬16:9), 버시(Persis, 롬16:12) 등에게 개인적인 문안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로마가 아닌 다른 곳, 아마도 동부지역에서 바울과 접촉하고 서로 알게 된 으로 볼 수 있다.
  바울 공동체의 인물들에 대해 깊이 연구한 Lampe는 로마에서 발견되는 비문이나 비명 등에 대한 비명학적(碑銘學的, epigraphic) 혹은 금석학적(金石學的) 연구를 통해 로마서 16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10여명의 이름은 로마에서는 아주 희귀한 이름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타지(아마도 헬라동부 Greek East)로부터 이주해 온 이들 일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이들이 스다구(Stachys, 롬16:9), 아벨레(Apelles, 롬16:10), 헤로디온(Herodion, 롬16:11), 버시(Persis, 롬16:12), 블레곤(Phlegon, 롬16:14), 바드로바(Patrobas, 롬16:14), 허마(Hermas, 롬16:14), 아순그리도(Asyncritus, 롬16:14), 빌롤로고(Philologus, 롬16:15), 올름바(Olympas, 롬16:15) 등 10명이다. 이상과 같은 바울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동과 이주가 기독교회의 신속한 확산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1.2. 서신서에 나타난 바울 공동체의 사람들

  이상에서는 로마서 16장에 한정하여 말했지만, 바울과 그의 동역자가 쓴 서신서들에 보면 로마서에서 언급된 30여명의 사람들을 포함하여 65명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이들은 바울의 동역자로서 혹은 바울의 대리인들로서 바울과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사도행전에서도 언급되고 있는데, 사도행전에는 이들 외에도 13명의 다른 이름들이 더 언급되어 있다. 그래서 복음서를 제외한 사도행전 이후의 (목회서신을 제외한) 바울서신에서 바울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거나 교제했던 이들은 약 80명에 달한다. 이들을 우리는 ‘바울공동체의 사람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었을까? 그리고 저들은 어떤 직업의 소유자들로서 바울과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었을까?
  이들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제시하는 이름 외에는 사회적 지위나 신분 등다른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이름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외의 인물에 대한 기록은 인물 확인의 중요한 자료(prosopographic evidence)가 되며, 바울 공동체의 사회적 신분을 헤아리는데도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그런데 호주의 저명한 고대사학자인 에드윈 저지(Edwin Judge)는 이 80명 가운데, 40여명은 바울의 선교활동을 후원한 것으로 추측하고, 이들은 “부유하고 교양 있는 사회적 엘리트들이었다.”고 했다. 다른 40여명은 직업과 관련하여 바울을 따르던 사람들로서 바울과 함께 여행하거나 선교하며 직접적으로 바울의 통제 하에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들 바울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미 에드윈 저지의 탁월한 논문이 있으므로 여기서 다시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 바울 공동체의 인물들

  이 글에서는 바울공동체에 속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다 언급할 수 없으므로 로마서 16장에 나오면 몇 사람에 대해서만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최근의 연구결과를 반영하면서 저들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었던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바울은 여러 인물들에 대해 문안하고 있으나 바울이 이들을 개인적으로 다 알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부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지 그 이름만을 듣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2.1. 뵈 뵈

  로마서 16장 서두에는 한 여성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그가 바로 고린도에서 인접한 겐그리아 교회의 ‘뵈뵈’(Phoebe)라는 여성이다. 이 여성은 어떤 여성이었을까? 뵈뵈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오직 단한 번 이곳에서(롬16:1-2)만 언급되는 인물인데, 그 이름의 뜻은 “순수함”이란 뜻이다. 우리가 이 여성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그가 고린도의 동쪽에 있는 도시인 겐그리아교회의 ‘일꾼’이라는 사실과 그가 바울과 여러 사람의 ‘보호자’가 되었다는 사실 뿐이다. 아마도 그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시(행18:18)에 만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한국의 간호사(看護史)에서 이 여성은 ‘간호사’로 지칭되고 있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은 그를 가리켜 “우리 자매 뵈뵈”(Phoebe or sister), 혹은 “겐그리아 교회의 일꾼”(servant)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일꾼’이란 디아코노스(δι?κονο?)인데, ‘집사’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칼빈은 이것을 사역자에 대한 칭호로 해석하여 집사라고 확정했다. 그러나 리델보스는 이를 집사직으로 확정할 수 있을까에 의문을 표시했다. 이 ‘일꾼’이라는 말이 빌립보서 1장 1절에서의 경우처럼 직책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도움을 주는 자’를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여성의 역할문제와 관련하여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뵈뵈가 어떤 여성이었던가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는 그가 “여러 사람과 바울의 ‘보호자’가 되었다”(롬16:2)는 바울의 언급이다. NIV에서는 이 부분이, “she has been a great help to many people, including me."로 번역되었지만 이것은 정확한 번역이라고 볼 수 없다. ‘보호자’라는 단어를 ‘도움’ 혹은 ‘도움을 주는 자’로 해석하여 뵈뵈에 대한 특별한 호칭을 일반화하여 그 의미를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역한글성경에서 ‘보호자’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는 프로스타티스(προστ?τι?, 남성의 경우는 προστ?τ??)인데, 문자적으로는 “....앞에 서다”는 뜻이지만 후견인(patroness, 남성의 경우는 Patron)이란 뜻이다. 그러면 후견인이란 무엇인가?
  이 개념을 정확하기 파악하기 위해서는 로마서가 기록될 당시의 로마사회의 후견인과 하속인 관계, 곧 Patron-Client 관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1세기 당시 로마사회에서 후견인이란 휘하의 사람들(client)의 법적, 경제적 후원을 담당하는 이들을 칭하는 표현이었다. 예컨대 노예를 소유한 주인은 노예의 법적, 경제적 후견인으로서의 역할을 했고, 비록 해방된 노예라 할지라도 후견인의 휘하에서 보호를 받았다. 또 어떤 사회 집단의 후견인은 그 사회 구성원들(social dependents)을 경제적으로 지원했는데, 이런 기능을 담당하는 이들을 프로스타티스라고 불렀다. 로마제국 하에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는 다수의 하층민들이 있었고, 동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 영향력 있는 소수의 지도력 하에 교회 공동체가 운영되고 있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에도 후견인(Patron)-가속(Client)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 한 예가 뵈뵈가 바울과 여러 사람들에게 ‘보호자,’ 곧 후견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이런 당시의 사회제도를 이해한다면 “바울과 여러 사람들의 ‘보호자’였던 뵈뵈의 신분과 직업을 헤아려 볼 수 있다. 뵈뵈는 독립적 부양능력을 지닌 여성으로서 바울의 여행 경비를 부담하는 등 제정적인 후원을 했을 뿐만 아니라 초기 바울 공동체의 여러 사람들의 사역을 위해 후원했던 여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뵈뵈는 바울의 요청으로 고린도에서 로마를 방문하고 로마서를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어느 정도 제산이 있었고, 사회적 신분이 높은 여성으로서 항구 도시 겐그리아 교회의 지도자들 중의 한 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로마서를 전달하기 위해 고린도에서 로마까지 먼 길을 여행했다는 것은 남편이 있었고, 남편과 같이 여행했던지 아니면 혼자 여행할 수 있는 고위 신분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를 과부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그는 바울의 사역을 후원했던 바울 공동체의 중심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2.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 공동체의 중요한 인물로서, 바울의 친근한 동역자였다. 이들에 대해서는 성경에 6번 언급되어 있다. 즉 사도행전 18:1-3, 18, 26, 로마서 16:3-5, 고린도전서 16:19, 그리고 디모데후서 4:19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언제나 이 부부가 함께 거명되고 있다는 점이고, 6번의 언급 중 4번은 아내인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남편 아굴라 보다 먼저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행18:18, 26, 롬16:3, 딤후4:19). 이 점은 부인 브리스길라가 남편 아굴라 보다 가족관계에서나 교회 공동체에서 더 중요한 인물이었음을 암시한다.
  ‘아굴라’ 라는 라틴어 이름은 ‘독수리’라는 뜻으로서 당시 사회에서 흔한 이름이었다. 그는 본도 출신의 유대인으로서(행18:2), 직업은 바울과 동일한 장막 만드는 자였다. 이것이 후일 바울과의 교제를 더욱 친밀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행18:3). 분명하게 알 수는 없으나 그는 유대인 노예였으나 자유인이 되었고, 로마의 시민권자인 브리스길라와 결혼한 것으로 추측된다. ‘브리스길라’(Πρ?σκιλλα)는 ‘브리스가’(Πρισκα?)의 축소형 표기인데, 둘 다 로마식(라틴어식) 이름으로서 그 뜻은 ‘존경할만한 이’ 라는 뜻이다. 종족에 대해 알 수 없으나 유대인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다. 본도 출신인 아굴라가 로마에서 거주하다가 아내와 같이 고린도로 옮겨갔고, 다시 에베소로 이주하였다. 그 후 다시 로마로 이주하였고, 그 후에는 또 다시 에베소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소아시아 북부지역인 본도(Pontus) 출신인 아굴라가 어떻게 로마에 가서 살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이는 로마의 어떤 집안의 노예로 있다가 자유를 얻지 않았을까 라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이곳에서 결혼하여 살다가 49년 경 고린도로 이주하였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69-c.140)는「클라우디우스의 생애」(Life of Claudius)에서 “유대인들이 크레스투스(Chrestus)의 선동으로 계속 문제를 일으키므로 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다”(Iudaeos impulsore Chresto assidue tumultuantes Roma expulit)고 기록하고 있는데, 49년경으로 추측되는 이 때의 유대인 추방령에 의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도 로마를 떠나 고린도로 이주하였다.
  바로 고린도에서 이들은 바울을 만나게 된다. 이 때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바울에 의해 회개했다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바울을 만났을 당시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바울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곧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고, 복음을 위해 일하게 된다.
  이들은 바울을 따라 겐그리아를 거쳐(행18:18) 에베소로 갔다(행18:18-19).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라는 학식이 깊고 성경에 능한 사람(행18:24)을 만나게 되는데, 그에게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고 해설할 만큼 성장해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자신의 집을 교회처소로 제공한 것 같다. 자기의 집이 가정교회였던 것이다(고전 16:19). 바울이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때,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고....”라고 한 것을 보면 고린도전서가 기록될 때까지 에베소에 남아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이들 부부의 집에 기거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 부부는 바울을 위해서 모든 편의와 봉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롬16:4).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다시 로마로 돌아간 것이 확실하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바울이 3차전도 여행 중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이들 부부는 로마에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이들 부부에 대해서도 문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안의 인사가 로마서 16:3-5절의 내용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이곳에서도 자기의 집을 가정교회로 제공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롬16:5).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비교적 안정된 중류층 이상의 부부로서 바울과 그 동역자들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자신의 최후의 서신을 마감하는 결론 부분(딤후4:19)에서 다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문안하는 것을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로 다시 옮겨갔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들은 바울의 동역자로서 교제가 깊던 것을 알 수 있다. 즉 브리스기라와 아굴라 부부는 1) 신약에 나타난 가장 아름다운 부부로서 복음을 위해 함께 동역하였고, 2) 가는 곳 마다 자기 가정을 교회로 제공할 만큼 헌신된 인물로서, 3) 바울과 그 동역자들에게 선대하고 지원하되, 생명의 위협까지도 감내했던 바울 공동체의 중심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2.3.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로마서 16장에 언급된 또 한 쌍의 바울 공동체의 인물은 안드로니고(Andronichus)와 유니아(Junia)이다. 이들 역시 성경에서는 오직 로마서 16장 7절에서만 언급되는 인물이지만 그들도 바울공동체의 초기 인물로 판단된다. 이들에 대한 로마서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이 본문에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같이 언급되고 있음을 볼 때 이들은 부부였을 가능성도 있으나, 두 사람 다 남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은 자신과 관련 있는 이들에게 문안하면서 두 사람을 짝을 이루어 동시에 언급하는 경우가 몇 번 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16:3), 빌롤로고와 율리아(16:15)의 경우, 전자는 남자, 후자는 여자로서 부부였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울르바노와 스다구(16:9)는 다 남자였고, 드루배나와 드루보사(16:12)의 경우는 둘 다 여성이었다. 따라서 바울이 두 사람을 동시에 짝을 이루어 언급한다고 해서 반드시 부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안드로니고는 헬라식 남자의 이름이지만, 유니아는 남성(?ουν?α?)인지 여성(?ουν?α)인지 분명치 않고, 이 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유니아는 로마인들에게 흔한 여성의 이름이었고, 따라서 여성으로 보는 주장도 있다. 이럴 경우 이 두 사람은 부부였을 것이다. 반대로 유니아스(Junias)라고 한다면 이는 남성의 이름으로 안드로니고와는 부부가 아니라 비슷한 길를 갔던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의 이름으로 유니아스는 흔치 않는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허메(Hermas, 16:14), 바드로바(Patrobas, 16:14), 올름바(Olympas, 16:15)와 마찬가지로 로마서 16장에 언급된 남자의 이름으로는 좀 색다르다.
  로마서 16장 7절에는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 대한 4가지 정보가 언급되어 있다. 첫째는, 바울의 인척이었다는 사실, 둘째는 바울과 함께 투옥된 사실이 있다는 점, 셋째, 사도들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았다는 사실, 네째, 바울 보다 먼저 신앙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들이 바울 보다 먼저 신앙을 가졌다는 점에서 초창기 예루살렘 교회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헬라파 유대인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어쩌면 로마교회의 창립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로마교회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여러 가지 역사적 기록과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그 기원이나 연원을 짐작해 볼 수밖에 없는데, 사도행전 2장 10절에 보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든 사람가운데는 로마로부터 온 사람들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이”있었다. 이들은 유일한 유럽인들로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신앙을 갇게 되고 로마로 돌아가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글개역성경에서 이들은, “사도들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았다”고 번역되어 있으나, 이 부분의 헬라어 ο?τιν?? ε?σιν ?π?σημοι ?ν το?? ?ποστ?λοι? 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한글역처럼 사도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는 의미도 가능하고, 사도들 중에서 유명하다는 의미도 된다(those of mark among the Apostles). KJV(noted among the apostles)나 NIV는 후자의 번역을 따르고 있고 다수의 학자가 이 견해를 지지한다. 사도는 광의의 개념과 협의의 개념이 있는데 광의의 개념에서 그리고 전도자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이들을 사도라고 호칭한 것으로 보인다(고후8:23, 빌2:25). 이들이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고, 믿음과 봉사에서 현저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언제 바울과 함께 투옥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점을 문자적으로 받아드리기는 어렵다. 사실 바울은 빌립보에서의 경우처럼(고후11:23) 장기간 투옥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동시에 바울과 같이 투옥되었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바울은 아리스다고와 에바브라를 자기와 “같이 갇힌자”(골4:10, 몬23)라고 말했으나 사실 그들과 같이 투옥된 일은 없다. 그래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도 복음을 위해 고난의 여정을 갔던 점을 상기시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 한 가지, 바울이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를 가리켜, “내 친척이라”(το??  συγγενε?? μου)고 하고 있으나 로마서 9장 3절 등에서 보는 바처럼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 인척(kinsmen)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동족’혹은 ‘동향인’(fellow-countrymen)이라는 의미로 쓴 것으로 보인다(롬16:10, 21참고). 우리말로 친척으로 번역된 헬라어 순게네스라는 단어는 11절의,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와 21절, “나의 친척 누기오와....”에서도 사용되고 있어 로마서 16장에서만 3번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가 인적 관계에서 친척을 말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동향인의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바울의 동향인으로서 바울 보다 앞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분으로서 복음을 위해 투옥되기까지 했던 전력을 지닌 이로서 사도들에게 잘 아려진 바울의 동역자였고 바울 공동체의 초창기 인물이었을 것이다.      

2.4. 암블리아, 우르바노

  바울 공동체의 또 한 사람의 인물 암블리아(Ampliatus)는 성경에서 단 한번, 로마서 16장 8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에 대한 다른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 단지 바울이 그를 가리켜,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므로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통해 그의 신분은 대략 추측할 수 있다. 첫째 이 이름은 라틴식 이름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흔히 암블리아스(?μπι??)는 암블리아토스(?μπλι?το?)의 축약형으로 보는데, 이 이름은 매우 흔한 로마 노예들의 이름이었다는 점이다. 이 이름은 고대 비문에서나 로마제국의 공식 문서 속에 노예이름으로 자주 거명되고 있다. 그는 동방지역 어디에선가 바울을 알게 되어 믿음을 갖게 되었고, 로마에 와서 사고 있던 노예 신분의 사람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로마서 16장 9절의 우르바노(Urbanus)의 경우도 라틴식 이름의 노예신분의 그리스도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의 이름이 노예들에게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 본래부터 로마인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그에 대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은 노예이거나 해방된 노예로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바울의 사역을 돕거나 후원했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바울 공동체의 사람들 중에는 노예이거나 해방된 노예(freed man)들이 적지 않았다. “쓸만한 놈”이란 의미의 오네시모는 가장 흔한 노예이름으로서 그가 노예였다는 사실은 빌레몬서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고, 고린도에서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고린도교회의 현황을 전해주었던 ‘글로에의 집’ 사람들(hoi Chlo?s, 고전1:11)도 노예이거나 자유인이 된 사람들, 혹은 두 가지 모두의 경우의 사람들이었다. 또 루포(롬16:9), 빌롤로고(롬16:15), 에바브로 디도(빌2:25), 그리고 유두고(행20:9) 등도 노예들이었다. 나깃수(롬16:11)는 해방된 노예였다. 특히 로마서 16장의 더디오(22절), 구아도(23절)도 분명히 노예들이었다. ‘더디오’라는 말은 라틴어로 세 째라는 뜻이고, ‘구아도’는 넷째라는 뜻인데, 첫째라는 이름의 ‘프리모,’ 둘째라는 의미의 ‘세군도’와 함께 노예들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노예들에게는 별도의 이름을 주지 않고 첫째 놈(프림), 셋째 놈(더니오) 하듯이 서수로 이름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초기 바울의 공동체 속에는 이처럼 하층 신분의 사람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후에 언급할 중산층 혹은 상류층의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동역하였던 것이다. 초기 바울 공동체는 에드윈 저지교수의 주장과 같이 비록 하층구룹이 다수를 차지한다 하더라도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혼재해 있는 혼합된 공동체(mixed community)였다. 암블리아나 우르바노도 이 바울 공동체의 사람들이었다. 비록 사회적 신분은 미약했으나 복음 안에서 사회적 신분의 장벽은 해소되었고, 복음을 위해 주 안에서 동역자로 일했다. 그러했기에 바울은 이들을 ‘주안에서’ 복음을 위해 함께 일했던 ‘우리의 동역자’라고 호칭하고 있다.

2.5. 루 포

  바울 공동체의 인물 중 루포(Ruphus)는 특별히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그 관련성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루포에 대해서는 성경에 두 번 언급되어 있는데, 마가복음 15장 21절과 로마서 16장 13절이 그것이다. 마가복음의 기록자 마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마가복음은 구레네인 시몬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라고 밝히고 있다(15:21). 그렇다면 루포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자, 알렉산더의 형제인 샘이다. 그런데 마가복음이 로마에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이 책이 기록될 당시 이미 루포와 알렉산더는 로마 교회 공동체에서 널리 알려진 인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구레네 사몬을 말하면서 그의 아들의 이름을 거명하고 있다. 비록 그의 이름은 노예들에게 흔한 이름이었지만 그를 노예였다고 볼 근거는 빈약하다.
  또 바울은 로마서 16장 13절에서 루포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여기서 루포를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 ”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이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chosen of God, 엡1:4)이었다는 점을 말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특별히 부름 받은 특출한(eminent) 인물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문맥에서 바울이 그를 가리켜, ‘주 안에서’(엔 큐리오, ?ν Κυρ??)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특출하다”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요이. 1. 벧전2:6) 위의 두 성경의 기사를 통해서 볼 때 루포는 로마교회의 중요한 인물로 활동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이 본문에서 루포의 어머니, 곧 구레네 사람 시몬의 부인을 “내 어머니”라고까지 말하는데, 웨인 믹스(Wayne A. Meek)는 이는 루포의 어머니가 바울의 후원자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여기서 말하는 ‘후원자’(prostatis)라는 말은 이미 뵈뵈에 대한 항에서 설명했지만 바울의 페이트론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즉 그녀는 바울을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여행경비를 부담하는 등 바울의 후견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루포의 어머니는 안디옥교회에서부터 바울을 자신의 아들처럼 보살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도 바울의 사역을 위해 후견인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은 로마에 와 있기에 바울은 그에 대해 애정어린 인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2.6. 에라스도

  바울 공동체의 인물 중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를 알 수 있는 몇 사람이 있다. 예컨대, 로마서 16장 23절의 가이오가 그 경우이다(고전1:14). 바울을 고린도에 살고 있는 그를 가리켜, “나와 온 교회 식주인....”이라고 말하는데, 그는 바울만이 아니라 고린도에 있는 신앙공동체의 회원들이 같이 모일 수 있는 상당히 넓은 주택을 소유한 자였고, 상당한 재산을 소유한 자였을 것으로 짐작된다(Theissen, 1974, 25). 또 그리스보는 회당장이었다(행18:8, 고전 1:14). 그는 회당의 유지비용, 그리고 회당 건물까지도 소유하고 있는 재산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에라스도(Erastus)에 대해서는 보다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는 정보가 있다. 바울은 오직 에라스도에 대해서는 기독교 공동체에서 차지하고 있는 역할만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 그의 공식적인 지위를 언급하고 있다. 그의 공식적인 직함은 고린도시 재무관(ho oikonomos t?s pole?s)이지만, 이 직함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다. ‘재무’로 번역되는 ‘오이코노모스’는 보통 ‘청직이’(steward)로 번역되는데(눅12:42, 고전4:2, 갈4:2 등)누가복음 16장 1절과 로마서 16장에서는 ‘재무’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헬라어에서 말하는 ‘이 시의 재무관’(ho oikonomos t?s pole?s)이라는 직함에 해당하는 공식적인 라틴어 명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오랜 논쟁이 있어왔다. 어떤 이들은 이 용어가 시의회의 고위직 간부를 칭했다고 해석하는가 하면 어떤 학자들은 보잘 것 없는 회개직원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른 이들은 시가 주관하는 노예, 곧 관노(官奴)였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재무관’이라는 그리이스 이름의 이 직함은 그리이스 시대와 로마 시대 여러 묘비명, 특히 소아시아에 있는 묘비명에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묘비명에 이 직함이 나타난다는 것은 공공재산을 관리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던 고위관직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관노였을 것이라고 웨인 믹스(W. Meeks)는 해석하고 있다. 티이센은 에라스도는 로마시대 재무관(quaestor)에 상응하는 직책으로서, 당시 시의 명예로운 직책(cursus honorum)이었을 것으로 해석한다. 즉 에라스도는 로마시민권자로서 자유인이며, 당당한 재산의 소유자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에라스도가 관노였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다. 바울이 에라스도를 언급하면서 특히 “이 성의 재무”(city's director of public works)라고 지칭하는 것을 보면 이 직함의 중요성을 암시해 준다. 만일 이 직함이 별것 아닌 것이라면 바울이 특별히 에라스도의 이 직함으로 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에라스도는 그 직함의 정확한 역할은 다소 불분명하더라도 아마도 상업 활동을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하였던 고린도시의 자유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고린도교회의 신자로서 바울의 동역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에라스도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19장 22절에서,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라고 언급하고 있고, 딤후 4장 20절에서는,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에라스도가 로마서에서 말하는 에라스도와 동일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에라스도는 바울과 함게 여행했고 함께 사역했던 바울의 동역자였음이 분명하다.  

원본 : http://blog.naver.com/holyhillch/60067192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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