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어머니의 표상 -양사언의 어머니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거나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아마도 이 시조의 보급은 그 작자와 함께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이 유명한 시조는 봉래 양사언이 지은 것이다. 양사언이라고
하면 조선 명종 때에 문과에 급제해서 대동승을 거쳐 삼등, 함흥, 평창,
강릉의 지방관을 역임한 후 회양 군수, 철원 군수를 지낸 분이다.
말하자면 봉래는 '태산이...'로 볼진대 당대의 문명을 떨쳤음직한 시객이랄
수도 있겠으나, 그러나 그보다는 40년 동안 각 고을을 돌아다니며 선정을
베푼 지방 관리라는 게 맞을 것이다.
한때 유명한 점쟁이 남사고한테서 점술 공부도 한 모양인데, 그래서
그런지 양사언은 뒷날에 임진왜란을 예언하였다 해서 또 그 방면의
대가쯤으로 존경을 받기까지 하였다.
그야 어쨌든 천의무봉하고 기발한 시재와 해서, 초서에 다 같이 명필이던
그 양사언은 누구의 영향을 받아서 그처럼 대성할 수 있었는지 그의
출생에 얽힌 일화를 더듬어 보면서 이야기 해 보기로 한다.
양사언의 아버지 양민은 한량이었다.
양민이 전라도 영광 사또로 재직하고 있을 때다.
풍채가 좋고 호기 또한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아 부임지마다 그럴 듯한
일화를 남겨 놓고는 하던 양민 사또--.
신관 사또가 영광으로 부임하는 초행길은 그 기세가 대단하였다. 풍류를
좋아하고 겸해서 술잔을 마다하지 않는 양민 사또의 성품으로 보아
머지않아 또다시 그럴싸한 이야깃거리가 생겨날 것이므로 사또를 호위하는
관속들은 신바람이 절로 났다.
마침 계절은 청명, 한식도 지나고 3월 중순.
사또의 행차를 맞는 시골 길가에는 듬성듬성 꽃들이 피어 있고, 산과
들에는 파릇파릇 푸른 싹이 돋아나는 호시절.
한양성을 벗어나 동작강을 건너고 남태령 고개를 넘어서는 양 사또의
마음에도 어느새 푸른 꿈이 돋아나고 있는 터라 행차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쉬이―, 사또 행차이시다. 길 비켜라―."
관졸들이 길가에 있는 개미새끼까지 쫒을 기세로 사또 행찻길을
트여가자 양민 사또는 문득 초라한 주막집을 발견하고는,
"여봐라, 발을 멈추고 주막에 들여라―."
냅다 소리치는 것이었다.
주막이 나설 때마다 그 곳 술맛을 즐기고 아름다운 절경이 눈에 뜨일
때마다 가마를 멈추고 시 한 수를 읊어대는 양민 사또의 늑장으로 머나먼
영광행은 아득하기만 했다.
하루 종일을 그렇게 술과 풍류로 떠나자니까 이튿날 새벽이면 심한
갈증으로 선잠을 깨게 마련이었다.
"물.....술국을 달라."
사또는 헛소리처럼 관졸들에게 외쳐댔으나 관졸들은 이미 깊은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모르고 코를 드르렁거릴 뿐이었다.
영광땅이 지척인 어느 주막잡에서 묵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술국.....물......"
그러나 사또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은 채 행차는 떠났다.
아침을 거른 채 가마 위에 올라탄 양민 사또는 배가 몹시 고팠다.
하나 웬일이지 길가에는 요기를 하고 떠날 만한 주막도 없었다.
참다 못한 양민 사또, 주위를 돌아보면서 호령이다.
"누가 저 미가에 들어가 밥 한술 마련해 올 자 없느냐?"
체면이고 뭐고가 없었다.
"밥이라굽쇼, 사또?"
"오냐, 술이 아니고 밥이니라."
"알아 모시겠나이다, 사또."
관속은 민가로 달려갔다.
그러나 마을은 텅텅 비어 있었다. 농사철이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들로 나간 것이었다.
이리 뛰고 절 닫지만 좀처럼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이거 이러다간
큰일이었다.
"누구 아무도 없느냐?"
골목에 서서 냅다 소리 지르자 어느 집 사립문이 열리면서 마침 집을
지키던 열서너 살짜리 졔집아이가 뛰어나왔다.
"옳지, 너 같은면 밥이야 짓겠지, 얘 여기서 밥 한 그릇 지을 수 없겠냐?"
관속이 말하자 계집아이는,
"밥이라뇨, 누가 잡숫고 갈 밥인데요?"
"다름이 아니라, 신관 사또 행차가 지금 이리루 지나가시는데 간밤에
약줒잔이 높으셔서 아침 진지를 걸르셨지 뭐냐."
"그런데요."
"해서 주막도 없고 민가에서라두 아침을 시벼 먹으려고 이렇게
들어왔는데 사람이 없구나."
"바쁜 농사철이라 모두 들에 나갔어요. 그런 사정이사라면 소녀가 사또
진지를 지어 올리겠습니다."
"네가 말이냐?"
"왜요. 진지에 돌이라도 들어갈까봐서 염려되시옵니까? 그런 염려라면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허 맹랑한 것. 좋다, 만일 진지에 돌이 들어가는 날엔 이내 볼기짝이
남아 나지 않을 터이니 알아서 지으렷다."
"암은요, 만일 실수가 있다면 소녀가 대신 볼기를 맞을 터이니 마음 푹
놓으세요."
"그럼......."
"네, 곧 시작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13세의 소녀는 관속에게,
"사또께서 노상에서 진지를 드심은 고을 백서의 수치가 아닌가 합니다.
누추하나마 저의 집에 듭시어 잡수심이 어떠할지요?"
관속은 그 소리에 내심 무릎을 쳤다.
'어허....나이도 어린 것이 고런 소견이 들 줄이야.'
"암 그래야지. 그 참 어린 것이...."
관속은 연방 혀를 내두르며 양민 사또가 가마를 내리고 쉬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찌 되었느냐?"
양민 사또는 달려온 관속이 채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묻는다.
"예..... 아침 진지를 시켜 놓고 왔사옵니다. 어서 민가로 듭시오, 사또....."
"민가로?"
"예--."
"그 달갑지 않은 걸음이로구나. 신관 사또가 민폐를 끼치더란 소문이
나면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거든."
사또는 그런 게 질색이었다.
"하오나 사또, 저쪽 계집아이가 말하기를, 사또께서 노상에서 진지를
드시게 할 수 없다며 자기 집으로 오랍십니다."
"호오--."
일말의 호기심이 일면서 양민 사또는 소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오륙 칸 초가.
비록 초가이기는 해도 소녀의 집은 비질이 잘 되어 있어 보기에도
깨끗했다.
소녀는 신관 사또 양민과 그 수행원들을 따로따로 들게 하고 별로
서두르는 법 없이 밥을 짓기 시작했다.
먼저 소녀는 이남박을 들고 토방으로 들어가서 쌀을 꺼낸 다음 우물가로
향했다.
안방에서는 신관 사또가, 그리고 책방으로부터 육방 관속들은 나머지
방에서 모두 자기 한 몸을 주시하는 줄도 모르고 소녀는 찬찬히 쌀을
일었다. 소녀는 그것을 부엌으로 가지고 가 솥에 넣고는 불을 때었다.
이러한 순서가 여느 아낙네들이 하는 그것과 다를 것이 없건만 그녀는
불을 때는 데 봉당이나 방으로 재티 하나 날지 않게 조심조심 때고 있었다.
밥이 다 된 뒤에도 먼저 신관 사또의 상부터 차려 올리고 담음에는
관속들의 상을 차리는데, 무엇 하나 서두름이 없고 실수가 없이 차근차근히
차려 올리는 것이었다.
이 모양을 끝까지 지켜보면서 시장끼를 채운 신관 사또 양민은 슬그머니
그 소녀를 불러 올려 말을 시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먼 발치에서 보아도 영리하고 숙성한 소녀인 듯했고 상 심부름, 물
심부름, 하는 맵시가 또한 귀히 살 만했기 때문이었다.
"허어--. 네 나이, 올해 몇이냐?"
사또는 조금도 시골스러워 보이지 않는 소녀에게 실눈을 뜨고 넌지시
물어본다.
"예, 올해 열세 살이옵니다."
나직하고 다소곳이 대답하는 품이 여간 귀엽지가 않다.
"그랴, 네 아비는 누구이며 어미는 어디 갔기에 보이지 않느냐?"
"예, 아비는 본관에 매인 몸이라 일찍 출타하였고, 제 어미는 들일을 하러
나갔나이다."
열세 살짜리 소녀의 말이라기보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아낙의
말처럼 정연한 솜씨에 사또는 놀랐다.
신임 영광 사또는 소매 속에서 청선·홍선의 두 자루 부채를 꺼내
들었다. 소녀에게 무엇인가 고마움을 표해야겠다고 느낀 것이다.
"이 두 부채는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이니 받아라."
사또가 내민 두 자루 부채를 받아야 좋을지, 받지 않아야 좋을지 잘
몰라서 망설이는 소녀에게 농을 걸어 보고 싶어진 것이다.
"자 어서 받으렴. 이는 내게 너에게 채단 대신으로 주는 것이니....."
"?"
소녀는 놀랐다.
'사또께서 내게 채단을 내리시다니.'
소녀는 급히 윗방으로 건너가 장속을 뒤져 홍보를 꺼내 든다.
'옳지, 이것을 깔고 채단을 받아야지.'
채단이라면 혼인 때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미리 보내는 청색, 홍색 등의
치마 저고릿감이 아닌가. 치마 저고릿감 대신 사또는 지금 청색과 홍색의
부채 두 자루를 내리시겠다니 빈 손으로 받을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홍보를 깔아 놓고 소녀는,
"사또 여기다 채단을 내려놓으소서." 했다.
"아니, 이 홍보는 무엇인고?"
"채단이란 예폐로, 예는 폐백에 바치는 것이 제일 중한 일인줄 압니다.
어찌 이 귀한 채단을 맨손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딴엔 그렇구나.
소녀의 말에 사또는 물론이고 그 장면을 기웃거리던 관속들이 일제히
놀라는 기색이었다.
홍보 위에 두 자루의 부채가 놓여졌다.
소녀는 그 홍보를 소중하게 싸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영광 사또는 행차를 재촉하여 부임지로 떠났다.
세월은 흘렀다.
양민 영광 사또는 정무에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이따금 절경을 찾아
풍류로 하루 해를 보내기를 잊지 않았다.
어느 날 영광 관아에 사또를 뵙자고 달려온 노인이 있었다.
양민은 노인을 불러들이고,
"네가 나를 만나러 온 까닭이 무엇이냐?"
하고 묻는다.
"예, 예--."
노인은 연방 허리를 굽신거리면서,
"사또께옵서 한 삼년 전에 어느 동리를 지나시다가 뉘집 계집아이에게
아침 진지를 지어 잡숫고 오신 적이 있사옵니까?"
하고 묻는다.
사또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고 무릎을 쳤다.
"그렇지, 암..... 그런 일이 있었구말구."
"그래 그 계집아이의 얼굴도 분명 기억하구 계신지요?"
"암!"
"계집아이가 어떻게 생겼더이까, 사또?"
"그걸 왜 내가 모르겠나. 계집아이의 영리함이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것인데."
"듣자하니 그 때 사또께오서는 그 계집아이에게 무슨 물건을
주셨다던데요?"
사또는 여기서 잠시 삼 년 전의 일을 상기하는 듯하더니,
"옳거니, 내 그때 계집아이를 귀히 여겨 색선을 상으로 준일이 있었거니."
"그럼 틀림없는 일이로군요?"
노인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이 한숨을 몰아쉬었다.
"아니, 그런데 자네는 어찌하여 그 계집아이 일을 나에게 와서 묻는고?"
사또는 진정 그것이 궁금해서 묻는다.
"다름이 아니오라, 사또께서 색선을 선물로 주셨다는 그 계집아이가
소인의 여식이옵니다."
"자네 딸이라구?"
"예--."
"그런데?"
"그 계집아이는 지금 나이 열여섯이옵니다. 시집갈 나이입죠. 하오나
아무리 소인이 시집을 보내려 하여도 딸년은 한사코 시집을 안 가겠다
뿌리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째서 뿌리칠까?"
"이미 사또한테서 채단을 받아 놓았으니 다른 데로는 시집가지 않겠다
이거 올습니다."
"허어."
"소인이 달래어 보아도 막무가내, 매로 다스려 보아도 사또께 향한
일편 단심은 변함이 없더라 이거 올습니다."
"허허허, 그러렷다!"
"자네 딸의 정성이 그처럼 지극하거늘 내 어찌 모르는 체할 수 있겠느냐.
마땅히 택일하여 아내로 맞을 터이니 그리 알라."
이리하여 양민 사또는 삼년 전에 아침 한 끼 얻어먹은 소녀를 첩으로
들어앉혔다.
얼마 뒤 양민의 정실은 죽고 첩이 정실처럼 들어앉아 크낙한 살림을
맡게 되었다.
소녀는, 아니 이제는 사언, 사기 두형제의 어머니가 된 부인은 전처
소생의 사준까지를 돌보면서 대소사를 다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는 적서의 차이가 심하던 때다.
자라날수록 양사언, 양사기는 물론 이들의 형뻘되는 사준 삼형제의
재주는 참으로 뛰어났다.
봉제사 빈객의 예절에 바르고 가훈이 엄한 터에 양민의 아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그 중에서도 부모에서 낳은 두 아들 사언, 사기 형제의 머리위에
띄어진 서자의 너울을 벗겨 보자는 것이 그녀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풍채가 당당하고 시재가 넘쳐 흐르는 사언 형제는 주위로부터, 혹은
친척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그러나 서자는 한스런 신분임을 어쩌랴.
때마침 양민이 죽게 되자 집안은 또다시 장례 문제로 분분했다.
양사언의 어머니는 습렴의 절차를 모두 보살핀 끝에 성복날이 오자,
기어코 그녀의 한스런 마음을 털어놓았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고 양사준, 사언, 사기, 삼형제(상제)도 모였다.
오늘 성복을 당하여 집안 친척들이 모두 모이고 상제들이 다모인
자리에서 내가 평생 소원하던 말을 얘기할 터이니 들어주겠소?"
이렇게 묻는 부인의 눈에서는 어느새 참으려 해도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듣고 있던 맏상제 사준이,
"서모, 서모가 우리 집안에 들어와서 평생을 아버님 뜻에 어긋남이 없이
가사를 돌보시고 우리를 키워 왔으니 섬모는 누가 뭐래도 나의 어머니요,
또 우리 삼형제의 어머니십니다. 무슨 소원이신지 말씀하세요."
양사언의 어머니는 지극한 눈으로 본실의 아들을 바라보다가,
"그럼 말하리다."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첩이 양씨 가문에 들어와서 두 아들을 낳았으나 우리 나라 풍습은 내
아들이 자라남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슬프기만 하오. 아들이 재주 있고
풍채 비록 남다르다 하나 서자의 너울은 벗을 길이 없구려."
여기서 잠시 말을 끊었다가 양사언의 어머니는 다시 말을 이었다.
"첩이 또한 이 다음에 누 위에 흙을 쓰고 죽는 날에도 우리 큰 아드님은
석달 복밖에 입지 않을 터이요, 이리되면 그때 가서 내가 낳은 두 아들이
서자 소리를 면키 어려운 것 아니겠소? 그러니 내가 지금 영감님의
성복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복제가 혼동하여 남들은 모를 터이니....."
"서모 그게 무슨 말씀이오?"
사준이 꾸짖듯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그러나 이미 각오가 되어 있는 양사언의 어머니는 본실 아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지 않았다.
"내 이미 마음을 다잡아먹은 몸, 무엇을 주저하리까마는 내가 죽은 뒤
사언, 사기 두 형제한테 서자란 말로 부르지 않겠다 약속하면 죽어서도
기꺼이 영감님 곁에 누울 수 있으련만....."
말을 잇다 말고 양사언의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치 못해 얼굴을
땅바닥에 묻고 어깨를 들먹였다.
가족들과 세 아들은 숙연한 채 말이 없었다. 그것은 부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무언의 답례였다.
이때 양사언의 어머니는 고개를 들고 품속에 감추어 두었던 칼을
꺼내어 땅바닥에 폭삭 엎어졌다.
"어머니....."
세 아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부인을 일으켜세웠을 땐 이미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였다.
"태산이 높다하되....."
로 문명을 날린 양사언의 출세 뒤에는 이렇듯 그 어머니의 보살핌과
남다른 사랑이 자양분으로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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