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파키스탄 총선을 앞두고 유세를 하던 중 27일 자살폭탄 테러로 사망한 베나지르 부토(54) 전 총리는 과거 두차례나 총리직을 지낸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이었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여성 파워의 상징이기도 했던 부토 여사는 지난 10월 8년간의 긴 해외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후 총선을 앞두고 국내 정치활동을 막 재개한 상태였다.
야당인 파키스탄인민당(PPP)을 이끌고 있는 부토는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대정부 투쟁으로 신변에 적지않은 위협을 받아왔다.
부토는 지난 1953년 6월 파키스탄 남부 항구도시인 카라치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파키스탄 대통령과 총리를 지낸 줄피카르 알리 부토였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비교정치학을 전공했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다. 유학을 마친 부토는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그녀를 맞은 것은 아버지의 투옥과 사형집행, 그리고 오랜 가택연금 등 '가시밭 길'이었다.
1984년 가택연금에서 풀려나면서 영국 런던으로 돌아갔던 부토는 아버지가 창당한 PPP의 당수로 정치판에 뛰어들었으며, 이후 귀국해 아버지를 사형한 군부 독재자 무하마드 지아 울-하크에 맞서기도 했다.
부토는 지아 울-하크 사망한 뒤인 1988년 총선에서 PPP가 승리하면서 35세에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 그러나 자신이 주도하는 정부가 부패 혐의를 받으면서 이듬해 첫번째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심기일전한 부토는 1993년 다시 총리에 취임했지만 이번에는 당시 대통령인 파루크 레가리의 부패 스캔들로 3년만에 중도 하차했고, 이어 1999년 자발적으로 해외 망명길에 올랐다.
부토는 망명 후에도 오명에 시달려야 했다. 불법자금 세탁, 전투기 구매비리 등 부토의 부패상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스위스, 폴란드, 프랑스, 이란, 두바이 등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부토는 결국 작년 1월 인터폴의 적색수배 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됐다.
부토는 파키스탄의 여권신장과 여성복지 향상에 앞장섰으나 이런 정치역정으로 인해 실제로 이뤄놓은 성과는 미미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특히 집권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했으며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는데도 영향력을 행사한 게 오점으로 남아 있다.
부토의 정치 복귀는 올해 10월 무샤라프 대통령과의 권력분점 협상이 계기가 됐다.
대법원장 해임 이후 거센 퇴진운동으로 궁지에 몰린 무샤라프는 PPP 당수인 부토와의 권력분점을 통한 정권연장 시나리오를 택했다. 총선에서 부토의 PPP가 승리할 경우 권력을 부토와 분점한다는 계획을 짜놓은 무샤라프는 부패혐의로 고발된 부토를 사면, 귀국길을 열어줬다.
부토는 지난 10월18일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8년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이날 그녀를 태운 차량이 남부 카라치 시내를 통과할 때 차량 폭발사건이 발생하면서 100명 이상이 사망, 그녀의 귀국길을 피로 물들였다. 부토의 친미 성향이 알-카에다나 탈레반의 반발을 부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부토는 귀국 후 정부의 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집회를 강행하려다 정부로부터 가택연금을 당하기도 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정국의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부토는 과거 정치적 숙적이었던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와의 연대 의사를 천명하는 등 반(反) 무샤라프 투쟁을 밀고나갔다.
부토는 최근 내년 1월 총선에 참가하기로 입장을 정하고 샤리프 전 총리와 총선 공동대응체제를 구축했다.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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