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별활동자료]/교회학교·교사·교육자료

출애굽기3장

기쁨조미료25 2009. 7. 4. 21:23

출애굽기 3장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애굽에서 약 400여 년 동안 거주하던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어느새 큰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민족 단위로 성장하고 있었다. 처음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할 때만 하더라도 70여명의 가족 단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후손들을 허다하게 많게 하심으로써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400여 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타민족의 영향력을 받지 않고 다분히 히브리적 문화를 보존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형성한 히브리적 문화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 언약에 참여한 백성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세상의 백성들과 구별하여 한 민족을 이루고 그 민족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구현되는 나라를 건설하실 것이라는 사상은 이 세상 어느 민족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사상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세상 민족들과는 유달리 다른 역사관과 인생관을 갖게 된 것도 이처럼 아브라함의 언약에 대한 신앙에서 나온 결과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의 언약을 수용하고 그 언약의 성취에 대하여 철저하게 신앙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후손들도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될 것에 대한 확실한 신앙을 고백할 수 있을 때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인정하신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학정에서 벗어나 애굽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나아가 그들이 애굽을 벗어나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된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점검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실을 확인하도록 인도하실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자신들이 존재하는 역사적인 사명 의식을 고취함으로써 가나안에 돌아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여야 할 것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모세의 은둔 기간 동안 바로의 압제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로의 손에서 구출하시기로 한 때가 바로의 압제가 극에 달하고 있다는 것과 일치한다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먹고사는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고 있을 정도의 저급한 수준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을 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이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 가나안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구원을 바란다는 것은 그들이 가나안에 돌아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이스라엘이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가나안에 돌아가 세워야 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1. 하나님께서 모세를 선택하신 목적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민족 공동체적인 사명 의식을 재삼 일깨워 주기 위해 모세를 부르셨다. 이때 모세는 미디안에서 양치는 목자로 40여 년을 보내고 있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으로 인도하여 그곳에서 친히 자신을 나타내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서의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 3:6)고 소개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스스로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인정하셨다면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조금도 거리낌이 없음을 인정하신 것과 같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친히 언약을 세우고 그 언약의 대상자들에 대하여 그처럼 즐겨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두려움이 앞섰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언약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의 후손들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겠다는 의지를 모세에게 명확하게 표시하셨다(출 3:7-8). 그리고 그 일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위임하셨다(출 3:9-10).

모세는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이스라엘의 구원 사역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출 3:11). 이스라엘 백성의 굳어진 마음을 자신의 언변과 능력으로서는 도무지 깨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모세로서는 동족들 앞에 설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 3:12-13)고 하시며 모세를 독려해 주셨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특별한 방법으로 세상에 보내시어 애굽의 궁정 학문을 다 습득하도록 하셨다.

모세는 아직도 그 옛날의 뼈저린 실패를 털어 버릴 수 없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선다는 확고한 증거를 하나님께 요구했다. 하나님은 모세의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매우 구체적으로 애굽에서 할 일을 소상히 알려주셨다(출 3:14-22).

 

2.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보여주신 계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그의 백성에게 나타내심으로써 하나님이신 것과 언약을 성취하는 여호와임을 증거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인간에게 보여 주심에 있어 먼저 창조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우주 만물과 자연 현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표시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하여 인식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죄로 인해 그 양심이 무디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경외하는 일이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당신의 백성에게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게 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실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죄로 오염된 자리에서 구원되었음을 인식하여 더 이상 죄 아래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바른 지식을 얻음으로써 진정한 자유인으로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자기 계시를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는 일에 유효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היהא רשׁא היהא)”(출3:14)고 자신을 계시하셨다. 이 말은 ‘나는 나 자신에 의해 증명될 것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오직 자신의 존재 목적을 위해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당신 외의 누구의 존재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 않으신다. 오직 자신만이 존재 이유이며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왜 존재하시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하여 스스로 대답하기 위해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기로 언약하셨고 그 약속을 성취해 나가는 분이시다. 그 언약은 처음 아담에게(창 3:15), 후에는 노아와 그의 식구들에게(창 9장) 그리고 나중에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어졌다(창 17장). 따라서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로 한 것은 하나님 스스로의 존재 목적에 따라 이스라엘을 구원한다는 사실을 모세에게 분명하게 계시하신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새나라를 건설하시겠다는 약속을 성취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단순히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민족적 존재 의식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고 있다는 서살을 통해 자신들이 건설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언약에 참여된 백성으로서 자신들의 인생을 새롭게 경영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참으로 자유를 얻은 백성이 추구할 진정한 삶의 자태이다. 바로의 종 된 자리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는 그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군가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비록 바로의 손에 잡혀 있지 않다 하더라도 사람은 평생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얽매여 있어야 한다.

 

바로의 손에 얽매여 있다 할지라도 그 안에 있는 동안만은 굶어 죽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사람은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생존에 대한 염려에서 벗어나 자신이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인생의 목적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이 먼저 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