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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 이전의 바울

기쁨조미료25 2009. 6. 15. 12:16

 

부르심 이전의 바울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는 바울이 길리기아 다소에서 혈통으로는 유대인이면서 법적으로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로마 시민으로 태어났음을 알고 있다( 22: 3, 27-28).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다소라는 도시는 길리기아 지방의 수도였고, 희랍인과 동방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던 상업과 교육의 중심 도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희랍 철학이나 수사학을 깊이있게 정식으로 배운 것같지는 않다. 그에게서 희랍적 요소를 볼 수는 있으나 그것은 그 곳 회당 교육을 통해서 받은 영향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부모는 엄격한 유대교의 전통으로 교육하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70인역 구약 성경만이 아니라 희랍적인 다른 요소들도 배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그는 희브리인 중의 희브리인( 3: 5)으로 자부할만큼 철저히 유대 전통을 고수하며 살았다. 그는 당대의 석학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으면서 성장한 바리새인으로서( 22: 3) 흠이 없이 율법을 준수하였고 그 열심 또한 대단한 사람이었다( 3: 5-6).

 

따라서 그는 유대적 교육을 받았으나 동시에 희랍적 문화권에서 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역시 유대주의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는 비록 희랍어로 번역된 성경(LXX)을 주로 배우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기까지 그는 유대교 선교사(Jewish missionary)로 봉사하였으리라는 추측까지 하게 한다( 5: 11).

 

그의 모세의 율법과 조상들의 전승에 대한 열심은 그로 하여금 그 율법과 성전 의식을 침해하는 어떤 가르침이나 행위도 참을 수 없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의 눈에 바로 그런 반율법적으로 보이는 기독교 신자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율법에 대한 열심히 그로 하여금 교회의 박해자가 되게 한 것이다( 1: 13).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로서의 바울을 위하여 다른 하나의 준비를 시키셨다. 그것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희랍 문화 안에서의 성장과 로마 시민권이었다. 희랍 문화가 지배하던 당시의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로 쓰시기 위해서는 단순히 유대교에서 배운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 대한 이해와 열심만으로는 부족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희랍-로마 문화의 지배적인 영향 하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성장하고 교육을 받았었다. 그리고 당시의 정치적 지배국이었던 로마의 시민권까지도 가진 사람이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를 쓰시기 위하여 철저히 준비시키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원리는 오늘도 변함 없이 적용되어야 함은 당연한 논리라고 하겠다.

 

 

 

 

바울의 시대의 원시신앙전승

 

 

I. 시작하는 글

 

신약성서는 복음서들과 사도행전 이외에 요한계시록과 서신형태의 많은 문헌들을 포함하고있다. 신약성서의 설화체가 아닌 부분 중에서 거의 3/5이 바울의 저자 이름으로 시작되는 서신들이다. 이러한 숫자적 상황이 바울이 원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였다는 인상을 준다.

바울은 율법에 엄격하게 충실한 유대인이 였으며(3:6)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선조들의 하나님을 확신하였다.(15:8) 율법에 근거한 의에 따라서는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사람(3:6)이 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던 그가 회심을 체험하고 소명을 받게 되었다.(9:1-18; 22:4~16; 26:9~18)(1:12~16. 고전9:1 ; 15:8 3:6~7; 고후4:6)이러한 바울이 하나님께로 부름을 받고 서신을 기록함에 있어서 원시 기독교 신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예루살렘 안에는 팔레스티나 신앙공동체와 헬레니즘교회의 신앙공동체라는 큰 맥이 흐르고 있었다.

이러한 팔레스티나 신앙공동체의 교회와 헬레니즘의 신앙공동체의 교회 생성과 전승을 성종현교수의 신학총론을 텍스트로하여 살펴봄으로 바울의 기독론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II. 바울이전의 초대교회 신앙전승

 

예수의 부활사건이후 30년대 초부터 생성된 예루살렘원시교회가 바울이 50년대 그의 친서를 기록한 약20년사이에 원시 기독 공동체안에서 많은 전승들이 형성되어진다.

바울의 복음의 직접적계시성을 강조하고 있는 갈라디아서의 구절에도 불구하고 (1:11~12; 15~16.) 실재로 바울은 상당량의 초대 교회의 신앙전승을 전해 받았음이 분명하다.(고전 11:23 ;15:1~3 살전2:13 살후2:15; 3:6, 1:9; 12, 4:9, 6:17)

바울은 다메섹 사건이후 우선 단편적으로나마 다메섹 교회에서 그 뒤에는 예루살렘 원시 교회및 안다옥교회에서 전승을 접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III. 팔레스티니 교회전승과 헬레니즘 교회의 신앙전승

 

바울은 안디옥을 중심으로한 헬레니즘교회에 속한 사도로서 주로 안디옥 교회 신앙 전승을 인용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때때로 예루살렘에서부터 기원된 팔레스티나 교회의 전승을 인용하기도 한다. 모든 교회의 전승의 최초의 기원은 예루살렘 모()교회에 있다. 십자가의 사건의 충격으로 갈릴리로 뿔뿔이 흩어진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그 부활의 흥분과 감동 속에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여서 최초의 예수 제자 신앙공동체 즉 원시교회를 구성한다.

이 예루살렘 모 교회의 구성원은 주로 유대교 출신 기독교인들과 헬레니즘계 유대인 유대교인들로 구분된다.

이 팔레스티나 유대 기독인(Juden Christen)들은 히브리파 사람들이라 불리워 진다(6:1)

이들은 지역적으로 팔레스티나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했고 언어도 아람어를 사용했으며 유대교 율법 성전.및 회당전통에 대하여서는 보수적인 성향을 띠었던 기독교인들이었다.이들의 지도자 역할은 주님의 동생 야고보로 여겨진다.(2:12,15:13;21:18) 언어 출신지역 환경,율법관,성전제의관 기타 신앙관등의 차이로 헬라파 유대 기독교인들과 마찰을 빚기도한 이 히브리파 유대 기독교인들은 주후 62년경까지 예루살렘교회의 주도적인 구성원으로 활약한다.

이 최초의 예루살렘 모 교회는 스스로를 종말론적 참 이스라엘로 이해했고 자신들을 선택받은 성도라 불렀다.(15:25~26.13:20) 이 팔레스티나 신앙공동체에서 형성된 신앙전승중 대표적인것이 고린도전서 15:3~5의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의 부활 전승"과 로마서1:3~4 "그리스도의 신분에 대한 신앙전승"이다. 그밖에도 로마서 4:25, 데살로니가전서 4:15~17등의 본문이 팔레스티니 교회의 전승으로 인정받고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 구성된 헬레니즘계 기독공동체는 그들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스데반의 순교(7:55~60) 30년대 초에 벌써 예루살렘에서 박해받고 이방지역으로 흩어지게된다. 최초의 박해로 추방된 헬라파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안디옥교회가 세워지고 이 안디옥교회가 점차 이방 세계의 선교의 본거지로 발전하게 된다. 이 헬레니즘 기독 공동체의 최초의 지도자역활은 스데반이 했지만 그의 순교 후에 이 역할은 일곱 집사들을 거처 바나바로 넘겨진다.

이 헬라파 기독교 신앙공동체는 일찍부터 유대교 율법및 성전제의 중심 신앙전통으로부터 해방과 독립을 선언하고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복음을 전파했던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성향의 공동체였다.

이 교회는 활발한 이방선교를 통하여 유일하신 하나님(살전1:9~10) 창조주 하나님(4:24;14:15) 심판자 하나님(살전1:9~10)을 선포했고 죽은 자로부터의 그리스도의 부활과(10:9~10). 6:2) 그가 산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요 구원자로 오실 것을 선포했다(살전1:9~10)

이 헬레니즘 교회에서 형성된 대표적인 신앙전승은 바로 빌립보서 2:6~11 '그리스도의 찬미송'이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선재 사상을 바탕으로 발전된 기독론이 여기에서 형성되고 예수의 죽음에 대한 우주적 대속적 해석이 전승화한다(2:22,2:6~11,1:15~20, 1:4~5, 3:25; 4:25)

문학적 가통(Galtung)별로 보면 초대교회의 신앙전승들은

. 10:9; 5:8, 고전15:3~5 신앙고백문

.2:11, 10:9. 환호문

.살전1:9~10 케르그마 선포문

.1:3~4 고전8:6, 고전11:23~26 전례문

.2:6~11.딤전 3:16, 1:15~20

 

그리스도의 찬미송

.5:19~23, 3:18~4:1초대교회 권면문 이러한 초대교회의 단편적인 신앙고백 문들은 후에 사도신경과 같은 발전된 기독교 신앙고백문의 모체가 된다.

바울은 안디옥교회를 통하여 주로 헬레니즘 교회 신앙 전승을 물러 받았지만 안디옥교회가 예루살렘교회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음을 감안할 때 그가 상당량의 예루살렘 전승을 알고 있어으리라 여겨진다. 바울은 자신의 기독론과 잘 맞지 않는 팔레스티니 교회계 교회 공동체와 헬레니즘계교회 교회 공동체사이의 신앙고백에서의 일치를 도모하려고 했고 자신의 복음의 정당성과 그의 사도성을 인정받고자 하였다.

 

IV. 바울의 초기 전승

 

바울신학에 결정적 영향을 기친 요소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받은 계시였다 할지라도 그 사건만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 운동에 관하여 그가 지닌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 아니었다. 바울은 그 운동의 창시자도 아니었고 다만 그 운동의 선교적 노력들이 이미 시작된 이후에 그 운동에 참가 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초기 교회의 사도적 전승에 종속되어 있을 말해주는 대목이 많다. 그는 초기 교회의 케르그마(Kerygma) 전승 찬미가,신앙, 고백문, 신학적 용어 및 권유에 종속되어 있다. 원시 케르그마의 단편들이 바울의 편지 안에서 발견된다.(살전1:10; 1:3~4; 고전 152~7; 1:2~4; 2:16; 8:34;10:8~9) 그는 초기 교회 전례의 요소들을 그의 편지에 삽입했다. 예를 들면 성찬의 정식(고전 11:23~25)"아멘"(살전3:13; 6:18; 고전14:16; 고후1:20) "마라나타"(고전16:22) "아바 아버지"(4:6; 8:15)같은 기도들 영광송들(1:5; 4:20; 11:36; 16:27; 3:21) 찬미가들(2:6~11; 1:15~20; 5:14)...을 삽입시켰다."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고전12:3; 10:9), :"예수님은 그리스도십니다"(고전3:11)라는 그의 신앙 고백문들도 의심없이 초기 교회의 용법들이다.

실제로 바울은 상당한 양의 초대교회 신앙전승을 전해 받았음이 분명하다 (고전 11:23; 15:1~3; 살전2:13및 살후 2:15: 3:6; 1:9. 12 4:9; 6:17)유대교 랍비들의 전승 전문용어(Termimus technicus) qibbel min(...에게서 전해 받다) masar le(...에게 전해주다)에 해당하는 바울 전승의 전문용어 (전해 받다)및 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V. 바울의 그리스도론

 

바울의 사상 안에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역할이다. 바울의 신학중의 그리스도론은

 

A)선재(先在)하시는 아들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2:20; 3:26; 고후 1:19; 4:13) 혹은 "그분(즉 아버지)의 아들" (살전 1:10; 1:16; 4:4. 6; 고전1:9; 1:3,9; 5:10; 8:3, 29,32; 1:13)이라 부른다.'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유대세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때 그 칭호가 내포하는 지배적인 사상은 하나님께서 임무를 띄워 주신다는 것과 하나님의 소명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마태21:28~31) 아들 됨의 히브리적 개념이 신약성서가 그 칭호를 그리스도께 적용을 근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서 2:6을 통하여 "하나님과 동등"(to einai isa theo) 한 분으로 고백하고 있으며 그 외에 바울이 예수님을 '아들'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대목들은 단지 그분의 신적 선택과 그분의 아버지의 구속계획에의 완전한 헌신을 표명한다

바울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모든 기능적 구원론(functionai soteriology)을 초월하는 방식을 말하고 있다. 고전 15:24~25,28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Kyrios로서 통치하실 구원 계획의 끝장을 묘사한다. 그런데 그때에 "아들 자신"이신 그리스도께서도 만물을 당신의 발아래 두신 그분께 복종하실 것이다.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완수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보통으로 그리스도께 부여된 역할을 서술하는 기능적 의미로 사용하지만 대로는 그리스도의 기원과 그분의 아버지와 가지신 특수한 관계를 표명하기 위해서도 사용했다.

그 외에도 바울은 롬9:5에서만 예수님을 하나님(theos)이라고 부르고 있다 도 하나님께만 적용되는 영광송(doxological formula) 1:25; 고후11:31; 4:6)을 로마서 9:5에서는 예수님께 전용한다. 이처럼 하나님(theos)이라는 칭호를 드물게 예수님께 적용한 이유는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ho theos)은 성부를 가리키며(고전8:5~6)또 초기 교회가 예수님의 신성을 믿으면서도 성부를 가리키는 칭호(ho theos)를 그리스도에게 부여하기를 꺼리는 경향을 바울이 받았을 것이다. 삼위 일체의 교리는 후기에 발전한 것이다(2:13; 딤전3:16)

 

B) 주님(Kyrios)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에 비하여 '큐리오스'라는 칭호를 현저하게 더 자주 사용하는데 이것은 '큐리오스'가 바울의 작품안에서 예수의 출중한 칭호임을 말해준다.

큐리오스는 로마황제를 가장 높이는 칭호였다. 이 칭호는 우선 황제의 정치적이고 법적인 우위성을 가르치지만 도한 지중해 동부지방에서는 신성(神性)을 나타낸다.

바울은 '큐리오스'를 팔레스티나 교회의 전승에서 물러 받았고 (10:9 고전12:3신앙고백 문이 그것을 암시한다. 바울이전 예루살렘 팔레스티나 유대 기독교 공동체에는 사용했다

'큐리오스' 70인역에서 야훼께 독립적으로 사용되고 그 당시의 신들이나 통치자들에게 적용되었음을 감안할 때 바울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선교 노력을 할 때에 이상적인 칭호였음이 틀림없다.

바울이 예수께 '큐리오스' 칭호를 적용할 때 예수님이 영광스러이 부활하신 상태에서 인간들에게 현실적으로 지배권을 행사하신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옥중서신에있어서 '큐리오스이신 그리스도께서 우주적 역할을 하셔서 권세들과 능력들을 무장해제시킨것이다(2:15)교회의 단합이 성취되는 것도 그 큐리오스를 통해서이라는 것이다(4:5 2:21) 큐리오스는 그리스도교 신자 개별적으로도 관계가 있다. 바울은 자기 자신과 모든 개별적인 그리스도교 신자를 큐리오스이신 그리스도의 종(doulos)으로 간주한다.( 1:10; 1:1; 고전7:22)'큐리오스인 예수님께 메임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자는 아집(我執)에서 해방되고 타인들을 위하여 자유스럽게 된다 이 사실을 갈라디아서 4:7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W.G Kummel '큐리오스'를 주 그리스도에게 하는 신앙고백은 하나님 자신을 통하여 구원받았다는 확신의 표현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는 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포괄적인 의미에서 주 예수와의 만남을 통하여 변화된 그리스도의 실존을 뜻하며 도

 

""로서의 호칭을 부활하신 분으로부터 지상의 예수에게로 돌렸으며 그런 후에 선재 하신 분에게도 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인간 예수도 함께 생각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서 인간 예수와 부활하신 주님사이에 끊어지지 않는 통일성이 있다는 것이다.

 

VI. 초대교회의 평화 사상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2:14)이심을 고백한다. 로마서 3:25~26에서 바울이 인용한 원시 초대교회 신앙고백에서 예수의 대속적인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을 통하여 예수를 믿는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고백하고있다.

바울의 평화사상도 전적으로 기독론과 구원론에 그 뿌리를 근거하고있다. 예수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세상사이의 종말론적 '화해'가 이루어 졌다고 보고 따라서 예수를 "화해자"로 선포하고 (5:40; 고후5:18~21)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화해를 맺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하시고(3:22)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주신 (고후 5:18~19)'평화의 하나님'인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자기의 대속적인 고난과 피와 죽음으로써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모든 가로막힌 담을 헐고 원수 됨을 해소하신 하나님의 종말론적 "대화해 중재자" '평화'그 자체이다(2:14)

 

VII 마무리하는 말

 

사도바울은 일차적으로 다메섹 사건을 통해서 신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예루살렘에서 형성되어 내려오는 원시 교회 신앙공동체의 전승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선재 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큐리오스'를 통해서 바울의 신앙관을 더듬어 볼 수 있었으며.화해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옆으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가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속에서 평화의 나라를 일꾸어 나가야함이 우리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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