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이슬람을 믿던 사람이 이슬람을 떠날 경우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꼭 그런 것 만은 아닐 것이다. 지야 메랄의 부모는 지야가 이슬람을 떠나 기독교로 개종한 것을 알고 나서 의절을 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지야는 후에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부모가 “더 이상 너는 우리의 아들이 아니니 집에서 나가라”고 말하며, “네가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러우니 나가서 살다가 사고로 죽어버려라”고 악담을 하며 내쫓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영국의 라디오 방송인 라디오4에서는 한때 이슬람을 믿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쉬라즈 마헤르가 출연하여 “이슬람이 이슬람을 버릴 수 있는가 ”라는 제목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쉬라즈는 터키에서 태어나서 터키에서 자란 사람이다. 그러나 유학을 위해 영국으로 와 대학을 다니면서, 기독교로 개종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그렇게 열성 이슬람 신자는 아니지만, 이 이야기를 부모에게 하게 되면 오히려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개종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그가 터키로 잠시 돌아가 방학을 보내는 중, 터키의 모처에서 열린 크리스천 캠프에 부모 몰래 참석했다. 그러나 TV를 통해 이 캠프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 장면이 방영되었고, 그 동영상에서 그가 다른 신자들과 스파게티를 먹는 장면을 부모가 보게 되었다. 부모는 아들로부터 개종사실을 듣기도 전에 TV뉴스를 통해서 이를 알아버린 것이다. 부모의 생각은 간단했다. 악한 선교사들이 터키의 젊은 청년들을 세뇌시켰고, 자신의 아들은 그 희생자라는 것이다. 결국 부모는 아들을 다시 영국으로 돌려보내고 다시는 터키로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들이 영국에서 사고로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 후 그는 다시 터키로 돌아와 부모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 말고도 이런 경우를 경험한 사람들이 꽤 있다. 소피아(가명)도 그런 경우이다. 소피아는 파키스탄 출신으로 지금은 런던 동부에 살고 있다. 28세의 소피아는 자신도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로부터 많은 수모와 압력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셈 아가자리는 테헤란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는 지난 2002년 11월에 개종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기독교로 개종했을 뿐 아니라 이슬람과 이슬람 성직자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을 “마치 원숭이가 주인을 따르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이 그의 혐의를 악화시켰다. 그러나 그가 사형을 선고 받은 것에 항의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발생했다. 결국 그는 사형을 집행 당하는 대신 추방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압둘 라흐만도 배교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국제적인 압력 덕분에 처형되지 않고 살아남아 이탈리아로 망명한 케이스이다. 앞서 이야기한 소피아의 경우 부모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집에서 도망쳤다. 그러자 그녀의 모친을 소피아를 수소문했고 하필이면 소피아가 세례를 받던 날 현장에 나타났다. 어머니는 그녀가 세례를 받으려고 하자 물에서 그녀를 끌어내려고 난동을 피웠다. 상황은 우여곡절 끝에 종료되었지만, 그 후에도 소피아에 대한 가족의 압박은 계속되었다. 핸드폰으로는 오빠를 비롯한 가족들의 욕설 섞인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왔고, 어떤 때는 그녀가 나가는 교회를 불태우겠다고 협박했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겪는 이러한 압력은 문화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의 문화 안에서는 가족들 가운데 누군가가 이슬람을 떠나는 것은 최대의 불명예이고 치욕이기 때문에 이슬람을 떠난 가족들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 갖은 협박과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단지 문화적인 현상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러한 현상을 조금만 더 깊이 관찰해보면 그 배후에 배교자를 살해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교리와 신학적 체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신학적 체계와 교리, 그리고 문화를 그대로 적용함으로 해서 발생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특히 영국과 같은 타문화권에 살고 있는 이슬람 이민들이 이러한 원칙을 있는 그대로 적용할 경우 수습하기 힘든 문제가 발생한다.
지난 주, 소말리아에서는 영국인 교사인 다우드 하산 알리(64)가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부인인 마가렛 알리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남편은 “이슬람으로 태어난 자가 이슬람을 떠난 경우 죽여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어 평생을 살아왔다고 술회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무신론이나 불가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배교자와 마찬가지로 간주된다.
작년에 Policy Exchange라는 기관에 의해 행해진 여론 조사를 보면, 영국의 이슬람 신자들 가운데 1/3 가량이 배교를 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극단적 사고가 이슬람의 중심적 교리인지 아니면, 일부 극단주의자들만의 생각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이슬람권 밖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결론내리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이슬람에서 코란과 하디스가 같은 상황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코란에서는 배교자를 죽이라는 따위의 극단적인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하디스를 보면 두어 군데에서 극단주의자들의 논리를 뒷받침할 만한 내용들이 발견된다. 그런데 이슬람에서 하디스가 차지하는 위상은 좀 애매하다. 경전은 코란이지만, 하디스는 이슬람의 선지자들의 말을 모아 놓은 책으로써 경전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즉 경전은 아니지만 경전과도 비슷한 위상의 대접을 받는다고 할 수도 있고, 경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할 수 있는 애매한 책이다.
게다가 배교 문제를 다룬 하디스의 내용도 드러내놓고 노골적으로 배교자에 대한 처형을 명령한다고 하기 보다는 매우 은유적이고 애매한 표현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혹자들은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보기도 한다. 때문에 이슬람 내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온건파와 강경파 사이의 견해차는 크다. 한 학자는 하디스는 배반자를 사형에 처하라는 구절은 있어도 배교자를 사형에 처하라는 구절은 없다며 신중론을 펼친다. 그러나 배교자가 배반자가 아니라고 할수도 없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슬람에서는 배교자를 사형에 처한다고 생각은 이슬람에 대한 오해라는 주장이 이슬람의 일각에서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옥스퍼드 이슬람연구센터의 교수이기도 한 히샴 헬리어 박사는 이슬람의 전통율법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한 사람이다. 그는 배교자를 사형에 처하라는 율법은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한 율법이 제정된 데는 그 시대만의 독특한 특징과 시대적 이유가 있었으며, 지금 시대는 그러한 시대적 특징과 이유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사마 한사는 이슬람 임맘이지만,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인데 그는 여기서 좀 더 나가서 아예 배교자를 사형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코란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나는 이슬람에서 통용되는 배교에 대한 전통적인 율법은 코란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란과 하디스는 배교자에 대한 사형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구절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작년에 이집트의 최고위 이슬람학자인 알리 곰마도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배교자를 사형시키는 이슬람의 전통을 현대 사회에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이집트와 중동에서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그런데 배교자에 대한 이슬람의 태도는 시기적인 사회적 분위기와도 연동되어 조금씩 강경해지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한다.
9/11 테러 이후 범세계적으로 이슬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이슬람 내에서도 본능적인 방어 본능에 따른 결속력이 강화되고 있고, 이는 국제사회에서 이슬람 국가 간의 정치적 연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분위기가 이렇게 긴장되면 이슬람 내에서 배교자에 대한 증오심도 커지는 것이 당연하고 배교자들에 대한 사형을 지지하는 비율도 당연히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즉 이슬람 내부의 역학관계나 분위기, 이슬람과 이슬람 바깥과의 관계 등이 연동되어 조금씩 분위기는 바뀌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를 앞으로 되돌려서 배교자를 사형에 처하라는 구절은 없다 해도, 배신자를 처단하라는 구절은 있다면, 배교자가 배신자의 범주에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를 생각해 볼 차례이다. 이슬람에서 말하는 배신자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올해 초, 버밍검에서 열린 재판에서 이슬람 신자이기도 한 영국 군인을 납치해 참수살해하려고 모의한 일당에게 유죄가 선고되었다. 법정에서 피고들은 이 군인이 배신자이기 때문에 살해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그들은 이슬람 신자가 영국군에 입대한 것 자체가 이슬람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슬람권에서 배신자의 규정 역시 지역적, 시대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권에 살면서 그 나라의 군대에 입대하는 정도가 배신으로 간주된다면 이슬람을 배교하는 것이 배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는 무리가 때른다. 이슬람을 믿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한 개종자는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각기 다른 6개 나라 출신의 28명의 개종자들을 인터뷰하여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이 인터뷰를 토대로 현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이슬람 국가 가운데 배교를 법으로 금하고, 법으로 사형에 처하는 나라는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과거보다 이슬람권의 분위기가 마일드해 졌다고 보여 지지만, 이슬람권의 일반 민중들의 배교에 대한 감정은 오히려 강경해 지는 경향이 뚜렸했다고 분석했다. 또 법률적 규정과 관계없이 배교자들이 겪는 고통은 더 커졌으며 그 고통을 가하는 주체도 국가 뿐 아니라, 강경무장세력, 지역사회 주민 등으로 범위가 더 넓어 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