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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기쁨조미료25 2008. 3. 29. 00:25

A.성막(聖幕)

 

    성막을 공부해야하는 이유

신구약 성경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공이며 모든 내용의 촛점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아주 세밀하게 상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막을 모르면 구약을 조감할 수 없으며, 구약을 모르면 신약을 이해할 수 없게되고 결국 우리의 신앙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초심자일수록 이 성막부분은 생략하고 넘어 가는 수가 많고 설령 읽는다 하더라도 그 뜻을 잘 모르는체 넘어가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구약의 모든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이제는 그 효력이 상실된 옛날 구약시대의 볼품없는 구조물을 무엇 때문에 바쁜 현대인이 공부해야 하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심지어 신앙 생활을 오래했다는 사람들 중에도 성막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는 분들도 있고, 알더라도 막연히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동안 사용했던 이동하기 편리한 조립식 임시 예배당 건물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막은 꼭 알아야만 합니다. 거기에 숨겨진 영적 내용과 정신들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의 핵심내용들로서 바른 신앙생활의 길잡이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성막제도에 관해 소흘했던 이스라엘을 향하여 질책하신 하나님의 섭섭한 마음을 잠시 생각해 보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는 성막제도가 주어진지 약700년이 흘러간 시점에서 선지자 아모스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암5:25)

    이 말씀은 바로 나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40년이라는 세월은 사람의 일생중 정상적으로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에 해당됩니다. 성경은 세상을 광야라고 말하며 이 시대를 광야교회시대라고도 말합니다. 이 광야길을 가면서 때로는 야곱처럼 야심을 이루기 위해, 아니면 호구지책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네가 네 생각을 따라 바쁘게 살아가는 그 삶의 현장에서 진실된 마음으로 스스로를 산 제물로 바치며 나에게 참된 예배를 한 번이라도 드린적이 있느냐?" 이렇게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섭섭하게 여기신 심정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성막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10가지로 추려서 살펴 봅니다.

    성막(聖幕;tabernacle)
    문자 그대로의 뜻은 "거룩한 천막(또는 장막)"이라는 뜻이다. 광야를 행진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식양(式樣;Specification)에 따라 조립과 분해를 쉽게할 수 있고 이동이 용이하도록 만든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로서, 그곳에서 계시를 받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했기 때문에 구별하여 거룩한 천막, 즉 성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성막의 제도는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세밀하게 상징해 주고 있는데, 그 재료와 모양과 위치와 제사방법등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아주 섬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성막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하나님의 허락하에(하나님께서 먼저 명하신 것이 아니라 다윗의 요청을 받으시고 허락하신 것이다) 솔로몬에 의해 한 장소에 고정된 호화로운 건물로 대체되며 이때부터 이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르게 된다. 구약에 모형으로 주어진 성전의 본래의 뜻이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된 후에는 건물에서 사람으로 개념이 승화하게 된다. 즉 성전의 원형이신 예수를 그스도로 영접한 성도들의 몸이 성전이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신앙정서가 아직까지 예배당 건물을 성전이라고 여기면서 건물과 시설과 설비에 과다하게 투자하는 모습은 속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성전된 사람에게 있지 예배당 건물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담의 원죄 이후 그 누구도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앞에 자연인 상태로 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위임된 제사장들만이 희생 제물의 피를 의지하여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희생제물이시요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성취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더 이상 제사장과 같은 인간의 중보자가 없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의(稱義:의롭다고 인정해 주다)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앞에 서게 되었습니다(벧전2:4-5). 즉 예수께서 아담의 원죄와 모든 인간의 자범죄(自犯罪:사람마다 살면서 스스로 범하는 죄)로 요청된 죄의 저주를 다 채우고 우리에게 의인의 신분을 주신 것입니다. 죄아래서 종노릇하던 우리를 속량(贖良:값을 치르고 노예를 자유인으로 해방시켜 주는 것)하시고 자유인이 되도록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이상 죄인의 신분이 아니며 하나님앞에 누구나 담대히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개신교의 만인제사장주의(萬人祭司長主義)입니다(벧전2:9). 제사장들은 사역(使役:남을 써서 일을 시킴)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仲保:둘 사이에 들어 일을 주선하는 사람)사역을 예표했고 그들이 입은 예복 또한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세밀하게 예표하고 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바로 믿을 수 있게 됩니다

    구약의 중심 주제는 오실 예수이고, 신약의 중심 주제는 오신 예수와 다시 오실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신구약의 중심 주제는 예수입니다. 역사를 영어로 HISTORY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HIS+STORY=그(예수)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중 언약 백성들과 관련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으로나 아니면 선지자들을 통한 간접적인 예언등으로 반드시 사전에 알려 주십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어떤 사건이 갑작스레 전개된다면 언약백성들이 믿음으로 대비할 수가 없을 것이며 또한 세상은 그것이 역사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섭리와 전혀 상관없이 우연히 발생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신구약 성경의 주인공으로서 구속사역을 담당하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 세상에 오시고 죄 아래서 신음하는 인생들을 구원하실 우주적 사건 즉, 구원의 대역사를 사전에 알리지 않고 전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신앙의 상식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예표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체계적이며 영적이며 또한 상징적인 제도가 바로 성막제도인 것입니다. 성막제도는 한 마디로 언약의 주체자가 되신 하나님께서 전 인류를 향하여 선포하신 사랑과 공의의 관한 내용들입니다. 이 제도와 그것에 관련된 규례들을 통해 우리들은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씩 깨닫고 영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여기서 말하는 성경이란 구약을 의미합니다.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요5:46-47). 모세의 글을 믿어야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모세 5경이 예수 이해의 첫 단추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 5경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성막과 그에 관련된 규례들입니다. 어느 학자가 말하기를 '구약의 성막을 확대해 놓은 것이 신약의 예수요, 신약의 예수의 생애를 축소시킨 것이 성막이다' 라고 했습니다. 성막의 내용 전부가 예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몸이 찢어지실 때 성막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 사건을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 라고 성막과 예수를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막 공부는 곧 예수의 구원사역에 관한 공부인 것입니다.


        3. 성경에서 50장이 성막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에서 13장, 레위기에서 18장, 민수기에서 13장, 신명기에서 2장, 히브리서에서 4장, 모두 50장이 성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등장하는 성막 이야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을 모르면 성경에서 많은 부분을 알 수 없게 됩니다. 천지창조가 겨우 11장이 할애되었을 뿐입니다. 성막은 천지창조 보다 4배 이상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야기도 겨우 14장일 뿐입니다. 성경에서 단일 주제로 최대로 많은 비중을 둔 것이 성막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막을 공부해야 합니다.


        4. 성막은 죄인의 구원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은 죄인들에게 너무도 귀한 곳입니다. 도무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없고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의 신비가 숨겨져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서 죄인을 만나주시는 장소입니다.
    (2)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장소입니다.
    (3) 하나님께서 죄인들과 말씀하시는 장소입니다.
    (4) 하나님께서 죄인을 받아 주시는 장소입니다.
    (5)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장소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이르리라"(출25:22)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 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1:4)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1:7)
    이 같이 성막은 죄인이 용서받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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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성령이 인도하시는 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모든 과정에서 인간적인 민주주의의 방법, 즉 다수결에 의해 모든 것을 결정하고 가나안땅을 향해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십중팔구 도중에서 애굽으로 다시 회귀하였을 것이다. 통과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토착민과의 전쟁과 밤낮으로 일교차가 심한 사막의 더위나 추위에 시달리는 문제를 차치(且置:내버려 두고 문제 삼지 않음)하고서라도 먼저 2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식량과 식수가 해결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무리가 광야에서 40년간을 지나는 동안 굶어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친히 그들의 손을 잡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은 구경도 하지 못했던 하늘의 양식-만나를 40여년 간이나 날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먹여 주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화막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구름이 성막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 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것에서 친히 보았더라" (출40:34-38)
    성막시대의 구름기동과 불기둥의 역사는 오늘날 성령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성령님께서는 광야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날 교회시대에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성도들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1) 출발을 알려 주십니다.
    "구름이 성막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 하였으며"(출40:36-37)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 생활하면서 '자! 이제는 그만 가자. 여기서 오래 머물렀으니...'라는 식으로 자유롭게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약2,000명 되는 천부장 회의에서 떠날 날자를 다수결로 정한 것도 아닙니다. 또한 12명의 족장회의에서 타협을 본 것도 아닙니다. 교회라는 하나님의 공동체는 민주화되면 안됩니다. 복음화되어야 합니다. 좀 더 쉬고 싶어도 구름기둥이 떠오르면 가야했습니다 . 좀 더 가고 싶어도 구름기둥이 머물면 멈추어야 했습니다. 과거는 구름기둥이 출발신호 였지만 지금은 성령께서 출발신호를 주고 계십니다.
    안디옥교회에서 성령님은 바울과 바나바로 하여금 해외선교를 하라고 출발신호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에 순종하였습니다(행13:1-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고 야심의 사나이 야곱에게는 '벧엘로 올라가라'고 출발신호를 주셨습니다. 성막시대에는 구름기둥이 출발신호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소아시아 7교회에게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시며 늘 성령께서 출발신호를 주셨던 것입니다.

    (2) 방향을 잡아 주십니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출40:38)
    특히 불확실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진로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합니다. 잘못 선택한 결과로 엄청난 고통을 받는 경우를 자주 보게되고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리 갈가 저리갈까 도무지 고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디로 갈까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구름기둥이 가는 곳으로 방향을 잡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면 안 좋은 길 같았어도 나중에 지나놓고 보면 가장 안전한 길이었습니다. 홍해쪽으로 가는 길은 너무도 먼길 같았으나 너무도 안전한 길이었습니다. 그리로 갔기에 애굽군대는 다 죽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다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생명의 은혜를 풍성하게 체험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만약 가자는 길로 직접 갔더라면 애굽군대는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잡아 노예로 끌고 갔을 것입니다. 지금은 성령께서 방향을 주십니다. 바울이 아시아로 복음전도가는 것을 막았습니다(행16:6). 그리고 빌립보로 방향을 틀어 주셨습니다
    "사람이 계힉을 세울지라도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잠16:19)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16:3)

    (3) 안전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시더니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 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 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출14:18-20)

    인간적인 안목으로 볼 때 이 때의 위기는 절대절명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앞에는 흉흉한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뒤에는 완전무장한 세계 최강의 군대가 추격해 오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400년간이나 노예 생활에 길들여진 200만명에 달하는 오합지졸로는 도무지 대안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그런 막다른 상황이었습니다.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던 그 순간그들은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도 세상 살다보면 외통수에 몰릴 때가 있습니다. 동서남북 사방이 막혀 갈 곳이 없는 사면초가의 상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방이 다 막혔더라도 위로 난 길, 하나님께로 나갈 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이 길로 나아가 부르짖을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나갈 안전한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가 포기하는 것은 큰 죄가 됩니다. 인간이 실패로 끝나는 그 순간이 하나님의 성공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6. 신앙생활의 전체를 한 눈으로 볼수 있습니다

    문에서 구원론을, 번제단에서 죄론과 보혈론을 배울 수 있습니다. 등대에서 사명론을, 떡상에서 축복론과 헌신의 생활을, 분향단에서 기도론을, 법궤에서 부활론 천국론 계시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 전체요 성경의 전체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완벽한 모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막 공부는 균형잡힌 믿음의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7. 가장 좋은 모형입니다

    아담이 입었던 가죽 옷은 구원의 모형이고, 노아의 방주는 교회의 모형이며, 모리아산에 번제로 바쳐지는 이삭은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통과한 홍해는 세례의 모형이고, 광야에서 생수를 낸 반석 또한 예수의 모형이며, 광야에서 높이쳐든 구리뱀은 십자가의 모형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영적이고 가장 체계적이며 가장 완벽한 모형은 바로 성막입니다. 그래서 성막을 공부해야만 합니다.

       8. 복받는 길을 정확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생을 겪다가 죽은 후에 천국와서 편안히 쉬기를 바라시는 그런 분이 절대로 아니십니다. 모든 인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복을 준비하고 그 복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기를 원하시며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성막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순종하고 따를 때 이 복을 아낌없이 누리도록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신5:2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시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아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6:22-27)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이 땅 위에서부터 참된 복을 누리다가 천국 오기를 원하십니다.

  •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하신 일은 복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잘 누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2:27-28)
  • 세상의 조상 노아에게
    온 인류가 홍수로 다 멸망 당하고 노아의 가정만 남았습니다. 홍수 후에 노아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9:1)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장차 그 혈통을 통해 메시아가 이 땅 위에 오시게 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12:2)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선택하시고는 꼭 복을 약속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복되게 살지 못 하는 것은 하나님 책임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입니다.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복 받을 짓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조건부 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라. 그리하면 ...하리라'와 같이 조건이 붙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그 역(逆)도 성립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을 순종치 않았던 이스라엘민족 역사에서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막을 공부하게 되면 복을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또 그 복을 찾는 비결에 대하여 배우게 됩니다. 용서받는 길이 번제단 안에 숨어 있고, 은총을 얻는 길이 물두멍에 들어 있고, 응답을 받는 비결이 분향단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막을 공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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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영혼의 종합진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질병은 병원에서 진단하여 고치게 됩니다. 그러나 영혼의 질병은 성막에서 말씀으로 고치게 됩니다. 무슨 병인지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병입니다. 성막을 문부터 법궤까지 공부하면 영혼이 어디가 병들었는지 종합진단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1) 뜰문 앞에서
  •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유일한 구주로 고백하고 있는가?
  • (2) 번제단 앞에서
  • 나의 죄는 무엇인가?
  • 나의 죄를 예수 피로 속죄함받은 것을 확실히 믿는가?
  • 그리고 용서 받은 의인이라는 확신이 있는가?
  • (3) 물두멍앞에서
  • 나는 죄를 버린 후 성결된 생활을 하고 있는가?
  • 중생하고 지은 죄의 사슬을 끊었는가, 버리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죄는 없는가?
  • (4) 등대앞에서
  • 나는 빛된 생활을 하고 있는가?
  • 나는 사명에 충실하고 있는가?
  • (5) 떡상앞에서
  • 나는 헌신의 생활을 하고 있는가?
  • 나는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영의 양식으로 삼고 있는가?
  • (6) 분향단앞에서
  • 나는 기도를 중단하는 죄를 범하지 않았는가?
  •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가?
  • (7) 법궤앞에서
  • 나는 주님을 통하여 부활할 것을 믿고 있는가?
  • 나는 말씀속에서 살려고 애쓰고 있는가?
  • 나는 죽은 나무에서도 싹이 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확실히 믿는가?
  • 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만나와 같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있는가?


  •     10. 하나님의 일꾼이 됩니다

    자식은 부모를 머리로 공경하지만 부모는 자식을 가슴으로 사랑합니다. 아는 것 보다 행하는 것이 힘들다라고 말할 때 안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믿음은 차가운 머리로 판단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믿고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 안에는 행함이 본래적으로 내재되어 있습니다. 위선은 차가운 가슴과 뜨거운 머리에서 나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 믿음이 아직 온전히 성숙하지 못했기 문입니다. 결국 차가운 머리로 바로 알고 바로 깨달아 가슴이 뜨거워지면 행함은 자연히 뒤 따라 오는 것입니다. 나무가 성장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같은 바른 믿음이 가슴에 자리잡으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히게 마련입니다. 어설프게 예수를 알았던 베드로는 예수를 저주하며 부인하며 배반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아 뜨거운 가슴으로 예수를 분명히 안 다음부터 베드로는 예수께 인생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아가야 파트리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을 때까지 그는 충성을 다 하였던 것입니다. 성막은 예수를 너무도 분명히 명시하여 주기에 하나님의 일꾼이 되게 합니다. 바른 믿음을 가슴에 품으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어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위의 10가지 사항을 현대의 성도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더욱 압축하면 성막은 다음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 성막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 성막은 성도를 상징합니다.




  •     성막의 의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성막(tabernacle)은 중요한 의의를 지닙니다. 성막이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백성중에 임재하여 계심, 또는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신 곳을 상징하는 처소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되고 하나님께서는 늘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언약의 구체적인 증거이고 상징물이었습니다. 한편 성막은 전반적으로 성소뜰, 성소와 지성소 순으로 구분되어 거기 접근하는 자의 자격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반 백성들은 오직 자신의 죄를 대속할 희생제물을 가지고만 성막에 나아갈 수 있었으며 그 희생제사도 일반 백성과 똑같은 죄인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특별히 당신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로 허락한 제사장들에 의해서만 집전되었습니다.

    이러한 성막의 구조와 거기서 집전된 제사의식은 죄인된 백성과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는 엄연한 단절이 있으며 이는 오직 인간의 죄 고백과 희생대속의 피로만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성막의 구조와 각종 의식은 죄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단 절 및 그 단절을 연결하기 위한 구속의 법의 엄정함을 보여 주며 동시에 비록 그런 제한이 있음에도 성막이 주어진 것 자체에는 인간의 죄를 해결해 주시고 관계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준다 하겠습니다. 또한 이러한 성막은 예표론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과
  • 죄인의 사죄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의 유일한 길인 희생제물의 대속의 피가 요청되는 원리에 의해 집전되는 성막에서의 제사의식과
  • 그 의식에 사용되는 그 안의 모든 기구들은 모두 자신의 구속사역을 통하여 죄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회복시켜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과 관련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히8:5,6)
  • 또한 성막제도를 통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의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으며 인간의 지혜나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고전2:4,5,1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루어 바치고자 하는 업적이나 실적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몸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지성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실 믿음의 성전이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임재하시고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는 도구로 우리를 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본질은 행위(doing:공로)가 아니라 상태(being:인간 됨됨이)입니다.


        성막세미나 동영상 보기

  • 성막세미나(1) - 성막이란 무엇인가?
  • 성막세미나(2) - 성막의 영적이해
  •  

    B.성막(聖幕)의 구조

     

        성막 입체 모형도



        성막 동영상


    새창으로 크게 보기


        성막 평면도


     

    구약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는데 성막의 모든 기구들 또한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모습들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막을 보면 외형적으로는 아무것도 흠모 할 것이 없으나 성막안의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가면 사방은 금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성소 건축비용으로 드린 금은 성소의 세겔대로 이십 구 달란트와 칠백 삼십 세겔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 29달란트 730세겔을 kg단위로 환산하면 약1톤이 되며 이를 돈으로 환산(2004년 10월현재 순금 도매 1돈[3.75g] 시세인 64,200원을 기준)하면 약168억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이 외형적으로 볼 때에는 아무 흠모 할 것이 없는 볼품없는 덮개로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초림시 이 땅위에 사람으로 오셨던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 본 성막의 의미이며, 좀더 세분하여 삼위 하나님의 구속사역적인 측면에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지성소 : 성부하나님의 사역을 상징(성막전체의 넓이는 약 315평이나, 지성소는 약6평 정도임)
  • 성 소 : 위의 그림에서와 같이 성소에는 떡상과 등대 그리고 지성소 바로 앞에 분향단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는 모두 기름을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성소는 성령하나님의 사역을 상징합니다.
  • 성막뜰 : 번제단이 있는 성막뜰은 죄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곳으로서 세상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성자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합니다.
  •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구속사역 완수로 이제 더 이상 건물로서의 성전개념은 없어졌으나 이 성막제도에 담긴 정신은 성전된 성도들이 이어받아 더욱 아름답고 온전한 성전을 이루도록 힘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막의 7대기구

    번호 기구(위그림) 상징적 의미 관련성구
    1   뜰 문()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   출27:16;39:40;요10:7,9
    2   번제단(#6)   제사장과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출27:1-8; 39:39; 히4:14-15; 9:12-14,26
    3   물두멍(#5)   생명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출30:18-21; 39:39; 요7:37-44
    4   진설병상(#3)   생명의 떡이되신 예수 그리스도   출25:23-30; 39:36; 요6:48,50,55
    5   등 대(#4)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출25:31-39; 39:37; 요1:9; 8:12; 9:5
    6   분향단(#2)   중보 기도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출30:1-10; 39:38; 롬8:34; 계8:3-4
    7   법 궤(#1)   생명의 말씀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출25:10-22; 39:35; 요1:1,2,14

    ☞ 진설병(陳設餠)이란 잔치나 제사 때, 법식에 따라서 상위에 벌여 차려놓은 떡(餠=떡병) 또는 빵을 말한다.


    [ 성막을 중심으로 광야에서 야영하는 이슬라엘 백성들의 모습 ]
    멀리 시내산이 보이며, 성막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기둥(밤에는 불기둥)이 나타나 있다.

     

    C.법궤(法櫃)

        법궤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찌며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찌며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찌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25:10-22)

    [계시의 말씀에 따른 법궤의 제작]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며 정금으로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만들었으며,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에 달았으니 곧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 궤를 메게 하였으며,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었으니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며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양편에 쳐서 만들었으되, 한 그룹은 이편 끝에, 한 그룹은 저편 끝에 곧 속죄소와 한 덩이로 그 양편에 만들었으니 그룹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였더라. (출37:1-9)

    [용어풀이]
  • 법궤(法櫃):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을 담은 상자 (명칭 : 법궤라는 호칭대신 언약궤, 증거궤, 하나님의 궤라고도 한다)
  • 조각목: 주로 중동지방에 있는 사막이나 광야에서 자라는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으로서 가볍고 견고하며 내구성이 강하다.히브리어로는 싯딤나무라고 한다. [조각목(*角木)의 '조'라는 글자는 흰백(白)자 밑에 일곱칠(七)를 사용하나 컴퓨터에서 지원되지 않는 글자이다]
  • 규빗(Cubit):옛적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던 길이의 단위로서 성인 남자의 팔꿈치에서 펼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 대략 45.6Cm에 해당함. (사람마다 팔의 길이가 다를 수 있으므로 1규빗을 약 45Cm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음)
  • 증거판(證據板):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시고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

  • 속죄소(贖罪所):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죄를 贖(속:빚 갚기 위해 바치는 재물이나 노동/대가를 지불하고 빚을 갚는 것)하는 장소라는 뜻. 정금으로 장이 2.5규빗(114Cm), 광이 1.5규빗(68.4Cm) 되게 만들고, 금으로 그룹 둘을 쳐서 만들어 속죄소 양 끝에 세워 날개로 속죄소를 덮게 한다. 속죄소는 언약궤의 뚜껑의 두 그룹 천사 사이 부분을 말하며 이 곳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시는 장소로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 속죄소는 어원적 의미로 보아 뚜겅 밑에 있는 상자안에 하나님의 공의의 상징인 십계명의 두 돌판이 들어 있어 마땅히 저주와 심판을 받아야 할 인간의 죄악를 덮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은총에 대한 예표라고 할 수 있다. 속죄소의 다른 이름이 시은좌(施恩座 : 은혜를 베푸는 자리)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속죄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을 뿐만아니라 대속죄일에 속죄를 상징하는 피를 뿌리는 장소이기도 했다(레16:14-17) 이러한 의미에서 속죄소는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신 십자가를 상징한다(골1:20)
    그런데 성막에 사용되는 주요 기구들은 조각목으로 만들어 그 위에 정금을 입혔으나 법궤에 덮히는 속죄소(뚜껑과 두 그룹천사)는 조각목을 사용하여 만들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따로 따로 제작하여 서로 붙인 것이 아니고 금 한덩어리를 쳐서 일체(一體)로 만들었다(출37:8)
  • 그룹(Cherubim):천사의 한 계급. 에덴 동산의 수호자로도 언급되어 있으며 사자,황소,사람과 천사의 얼굴등을 하고 있다. 언약궤의 속죄소 양쪽 끝에 금으로 만든 두 그룹이 날개로 속죄소를 덮고 얼굴은 마주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고 있다.
  •     법궤모형 사진

    [사진1] [사진2]
    [사진설명]
    사진1,2가 모두 법궤의 모형 사진이다. [사진2]는 인터넷상에서 가장 많이 볼수 있는 것이기는 하나 천사의 날개부분 처리가 좀 어색한 것이 흠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진1]이 한결 더 이해하기 쉽다. 두 천사가 날개를 펴서 법궤 뚜껑부분을 덮으며 두손을 모은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다. 두 천사 사이의 공간(뚜껑표면 포함)을 속죄소(시은좌)라고 말한다. 두개의 채(손잡이)는 법궤를 운반할 때 어깨에 매는 운반용 손잡이다(수레에 실으면 안되고 사람이 반드시 어깨에 매고 운반해야 함).


    [사진3]

    [사진4]
    [사진설명]
    [사진3] 법궤가 안치된 지성소(至聖所:지극히 거룩한 곳)에 대제사장이 1년에 1회차 들어가 제사를 집례하는 광경(지성소 안쪽에서 성소쪽을 향하여 본 그림)
    [사진4] 법궤를 해체한 모습 (법궤 상자 안에는 하나님께서 친수로 쓰신 십계명의 두 돌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는데, 십계명 두 돌판은 성부 하나님을, 만나는 생명의 떡이신 성자 예수님을,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권능으로 임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사진5] 법궤의 뚜껑을 눕혀 놓은 모습
    ☜ [사진5]
    [참고]
    한국교회에서 전통적으로 가르쳐 온 성막에 관한 내용중 일부가 오류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이 지적중 법궤와 법궤가 안치된 지성소에 관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성막을 오래 동안 연구한 강문호목사의 지적임)

    1. 히브리서 9장 7절을 근거로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 7월10일 대속죄일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으나 여기서 말하는 1차는 한 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한번의(1회차) 특정절기에 한하여 여러차례 들어 갔다는 뜻이라고 함 [① 향을 뿌리러 들어감, ② 대제사장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송아지 피를 가지고 들어감, ③ 대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위하여 염소피를 가지고 들어감, ④ 청소를 하고 향로를 가지고 나오기 위해 들어감]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히9:6-7)
     
    2. 이것도 대제사장에게 적용되는 것이며, 특별대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모세는 7월 10일을 제외한 일년 364일 동안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들어 갈 수 있었음. 따라서 모세5경중 성막이 건축된 이후에 나타나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이라는 말씀은 지성소안에서 계시되었으므로 그때마다 모세는 지성소에 들어 갔음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애굽기 25:22)

    3. 또한 법궤 안에는 십계명 두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 - 이 세 가지를 넣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며 오직 십계명 두 돌판만 넣게 되어 있으나 고핫자손들이 일시적으로 이 세가지를 넣었다는 견해임. 즉, 지금은 그 행방이 묘연한 상태인 법궤는 BC1445년에 제작되어 AD70년 예루살렘성전 소실과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인데 이 기간은 약 1515년간에 이르며 이 기간중 대략 30-40년 간만 세가지를 모두 넣었고, 그 나머지 기간동안 법궤에는 오직 십계명 두 돌판만 들어가 있었다는 견해.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그룹들이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채가 긴고로 채 끝이 내전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곳에 있으며,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왕상8:6-9)

        법궤의 영적 의미 : 성도들의 믿음을 상징 ☞ 법궤관련 동영상 [보기]

    구분 법 궤 영 적 의 미
    재료 조각목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상징(요1:14,4:6-7)
    정금(正金)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상징(요10:30,골2:9)
    부분 금테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을 상징(눅2:52)
    그리스도의 동행을 상징하는듯함(마28:20)
    십계명돌비 하나님의 속성인 공의와 사랑을 증거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요1:14,14:9-11)
    만나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요6:33-58)
    아론의싹난지팡이 부활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요11:25)
    속죄소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케하시는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를 상징(롬3:25,골1:20-21)
    그룹 하나님을 보좌하며 그분의 영광을 지키는 영적존재(겔9:3,10:1-4)

    언약궤,법궤,증거궤,하나님의 궤라고도 한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나타내는 십계명 두돌판과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만나와 성령의 권능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다. 이것은 성막이나 성전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궤를 이동할 때는 반드시 제사장이나 레위지파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이동해야 하며 수레에 싣지 못하였고, 일반인들이 궤에 손을 데거나(삼하6:7) 구경하려고 드려다보면(삼상6:19) 즉사하였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간 이 궤를 중심으로 생활하였으며 행진할 때도 이 궤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각 지파가 배치되어 행진하였다. 또한 이것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의 인도로 요단강을 마른 땅 처럼 건널때와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때에도 참여 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 패배후에 이 언약궤 앞에서 인도했으며, 그 결과 승리했다. 엘리사 시대에는 법궤가 실로에 있는 성막에 있었다(삼상3:3) 블렛셋사람들은 그 법궤를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아 보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하여 재앙이 있게되자 예의를 갖추어 돌려보냈다(삼상5:1-6:15). 다윗은 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갔다(삼하6:1,대상13:13). 첫번째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그 법궤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증거가 없으며, 지금까지 그 행방이 묘연하다.

    영어 성경에 법궤를 'Ark'라고 했다. 'Ark'라는 말은 구약 성경에 세 번 나오는데,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도 'Ark'라고 되어 있고, 출애굽기 2장에 나오는 모세를 담은 갈 상자도 'Ark'라고 되어 있다. 노아의 시대에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시려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던 장소는 안팎으로 역청이 칠해진 방주였다. 그리고 바로가 모든 히브리 사내아이들을 죽이려고 했을 때,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숨겨 키우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서 나일 강에 버려야 했는데, 아이를 담은 상자는 역청을 칠한 갈상자였다. ('모세'라는 이름의 뜻은 '건져냄', 곧 '구원'이라는 의미이다). 왜 법궤를 'Ark'라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Ark'들의 공통점은 구원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궤는 볼품없는 조각목으로 만든 상자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거하실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외형적으로 볼 때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전혀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시는 중보자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법궤를 메고 전쟁터로 나아가서 승리하였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사단과의 어떠한 싸움에서도 이긴다. 다시 말하지만, 노아의 방주나 모세의 갈 상자와 같이 법궤는 아름다은 모양이 없는 나무 상자에 불과하지만, 구원의 주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시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 법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구원을 이루실 때 속죄소에서 이루어지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성소 뜰에 있는 제단에 나아가서 양을 잡아 피를 제단뿔에 바라서 그들의 죄를 속하였다. 7월 10일 대속죄일에는 성소 바깥뜰에 있는 제단이 아닌 지성소에 대제사장 아론이 들어가 온 백성들의 죄를 사했다. 대제사장 아론은 1년에 한 차례씩 먼저 자기 죄를 속하고 난 뒤에, 이스라엘 모든 회중의 죄를 위하여 그 제물의 피를 가지고 속죄소까지 들어가서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리고 하나님께 기도드림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의 사함을 받았던 것이다.
     
    D.분향단(焚香壇)
        분향단 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너는 분향할 단을 만들찌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장이 일 규빗, 광이 일 규빗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고는 이 규빗으로 하며 그 뿔을 그것과 연하게 하고 단 상면과 전후좌우면과 뿔을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를찌며 금테 아래 양편에 금고리 둘을 만들되 곧 그 양편에 만들찌니 이는 단을 메는 채를 꿸 곳이며 그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찌며 또 저녁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찌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찌며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아론이 일년 일차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년 일차씩 대대로 속죄할찌니라 이 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출30:17-21)

    [계시의 말씀에 따른 분향단의 제작]
    그가 또 조각목으로 분향할 단을 만들었으니 장이 일 규빗이요 광이 일 규빗이라 네모 반듯하고 고는 이 규빗이며 그 뿔들이 단과 연하였으며, 단 상면과 전후 좌우면과 그 뿔을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둘렀고 그 테 아래 양편에 금고리 둘을 만들었으되 곧 그 양편에 만들어 단을 메는 채를 꿰게 하였으며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거룩한 관유와 향품으로 정결한 향을 만들었으되 향을 만드는 법대로 하였더라.(출37:25-29)

    [용어풀이]
  • 분향단(焚香壇) : 불로 향을 피우는 제단
  •     분향단 이미지

    분향단의 제원 (諸元)
    구 분 내 용
    별칭 향단(대상28:18),금단(왕상7:48),금향단(출40:5)
    재료 조각목으로 만들고 순금을 입힘
    크기 가로,세로=각각45.6Cm(1규빗), 높이=91.2Cm(2규빗)
    부속물 향담는 그릇, 향
    배정위치 성소의 지성소휘장 바로 앞 중앙에 위치(출30:6)
    용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향을 피우기 위한 제단(출30:7-8)
    영적의미 분향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함(계5:8)


        분향단의 영적 의미 :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

    구분 부분명칭 영 적 의 미
    재료 조각목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상징(요1:14,4:6-7)
    정금(正金)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상징(요10:30,골2:9)
    부분 그리스도의 능력상징(마8:23027;롬8:35)
    금테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을 상징(눅2:52)
    그리스도의 동행을 상징하는듯함(마28:20)
    그리스도의 중보기도 상징(롬8:34,계8:3-5)
    등대의 등불 규례에 따르면 제사장은 매일 저녁 해가 질 때에 성소 내에 있는 등대에 등불을 켜야 했고, 아침 해가 뜨면 등불을 끄고 심지를 다듬으며 저녁에 태울 등대의 기름을 보충해야 했다(출27:20-21). 따라서 제사장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번은 성소에 들어가야 했는데 이 때 분향단의 향도 함께 살라야 했다.
    그런데 성경에서 향은 주로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한다(계5:8). 따라서 이 규례는 성도들이 매일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향을 피울 때 조심해야 할 점을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셨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향을 피우되 다른 향, 즉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방법(출30:34-38)대로 만들지 않은 일반향을 피워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기도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즉, 육체의 정욕을 따라서 기도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약4:3).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들의 기도는 물질적인 또는 입신양명에 대한 것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는 곧 우리의 신앙이 세상적인 기복사상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기도의 본래 의미는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복 자체가 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바라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은 보너스로 뒤따라 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이 진정 감사해야 할 기도 제목중의 하나는 우리들의 어리석은 기도를 응답해 주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의 모든 기도가 즉시 그리고 우리의 육신의 바램 그대로 모두 응답되었다면 우리들은 지금쯤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우상을 열심히 섬기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분향단을 지성소 휘장 바로 앞 성소에 둔 것은 성도가 기도를 통해 날마다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나누어야 할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대제사장으로 하여금 일년에 한 차례씩 분향단 뿔에 속죄의 피를 바르도록 한 규례이다. 이는 성도의 기도가 거룩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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