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시험 속에 담긴 구속사적 의미
1. 들어가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공생애 사역을 본격적으로 개시하기 전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십니다. 이는 대속자가 되기 위해 죄인들과 동일시 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다시 말해 그의 백성들과 연합해서 저들의 죄를 대표적이고 대속적으로 담당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분이 자기 백성들의 죄책을 담당하시기 위해 자원해 회개에 이르는 요한의 세례를 받으심으로 스스로를 죄인들과 동일시 여기셨다는 사실입니다. 자신 안에 죄인 된 그의 백성들을 대표적으로 품으시고 저들의 죄를 속량코자 대신 죽기 위해서 말입니다. 즉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의 머리로서 세례받으심을 통해 그들과 하나가 되셨고 나아가 당신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의 백성들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속돼 새 생명을 얻을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이어서 광야로 나가셔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십니다. 이 일에 앞서 예수님의 수세사건 때 예수님 위에 충만하게 임재하셨던 성령께서 계속해서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십니다(마4:1). 마가는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내 모신지라"(막1:12)고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의 시험받으시는 사건이 동일한 성령님에 의해 주도된 의도적인 사건이었음을 시사합니다.
2. 펼치면서
그렇다면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에는 어떤 구속사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요. 왜 굳이 이런 마귀로부터의 시험을 받으셔야만 하셨을까요. 결국 마태를 비롯한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사단의 시험을 승리로 이끄신 사건을 기록하는 것을 통해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왕적 권세와 능력을 힘있게 발휘하심으로 사단의 공격을 원천적으로 봉쇄시키고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본격적으로 도래시키는 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궁극적인 목적 하에서 예수님이 받으신 첫 번째 시험 속에 담긴 구체적인 구속사적 의미를 살펴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의 성격에 대해 알아봅니다. 예수께서 받으신 시험을 이해하는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류의 시조인 첫 사람 아담이 당시 하나님 앞에 어떤 자격과 신분으로 서 있었는가에 대한 것이고, 다음으로는 구약의 광야교회로서 역사적 이스라엘이 받았던 40년간의 광야시험에 관한 것입니다.
우선 첫 번째 사실을 살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선악과 사건을 통해 시험 가운데 두셨습니다. 이 시험은 보상과 형벌이 대가와 조건으로 주어져 있는 일종의 율법적 행위언약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창2:16-17). 본 선악과 금령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아담과 그의 후손으로 하여금 이 시험을 통하여 선과 악을 구별하게 하시려는 데 있었습니다. 즉 순종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의의 단계로 올라감으로 궁극적으로 영생하는 삶을 누리게 하셔서 악과는 영원히 상관없는 영광의 자리에 이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만이 창1:28에서 복으로 언약하신 문화명령 속에 담긴 궁극적 목표인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아담의 후손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서 마침내 실현시킬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일에 아담은 불순종함으로 실패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허리에 속한 모든 인류 또한 아담과 더불어 실패에 동참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선악과 금령법을 어긴 형벌로서 죽음이 큰 권세로 온 인류 위에 역사하게 된 것입니다(롬5:12).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일과 관련해서, 둘째 아담의 신분과 자격으로 첫 사람 아담의 실패를 회복시키는 구원자의 사명을 수행하고자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죄에 대한 대속물이 되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롬5:14, 고전15:45, 막10:45).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기에 구원자로서 둘째 아담의 자격을 능히 취하실 수 있습니다. 이 자격을 취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심으로 세상 가운데로 들어오셨습니다. 따라서 무죄한 인성의 입장에서 첫 사람 아담의 실패를 회복하기 위해 적법한 자격자로서의 시험을 성령의 인도 하에 자원해서 받으시게 된 것입니다. 이 일에 만일 예수님이 아담의 후손들과도 같이 동일하게 죄가 있는 분이셨다면, 이는 구속자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기에 결코 구세주로의 대속적 사역을 담당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본질에서 하나님이시기에 아담의 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분으로서 구원자가 되시기에 합당한 자격을 가지신 유일한 분이 되십니다(행4:12, 히4:14-16, 벧전2:22, 고후5:21).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받으신 본 시험은 구약교회로서 역사적 이스라엘의 실패를 회복시키는 성격을 띠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교회의 자격(행7:38)을 가지고 광야에서 40년간 시험을 받았던 것입니다. 신8:2의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 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본문의 말씀으로 미루어 보건대 가데스바네아에서의 가나안 정탐사건(민13:1-2, 25-26)은 가나안을 진격하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진위를 가늠해 보는 하나님의 의도적인 시험의 성격을 띠고 주어진 사건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마치 이삭을 아브라함의 나이 백세에 약속의 자녀로 주시고는 다시 그를 번제로 하나님 앞에 바치라고 명령하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신실성을 시험하셨던 경우와 동일한 방식으로 말입니다(창22:1-2). 왜냐하면 가나안 정복은 오직 하나님과 그 분의 약속의 말씀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방식을 통해서만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일면 표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외견상으로는 사 백 여년 이상 노예집단과 방불한 종살이로 일관해 살아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잘 훈련되고 정비된 가나안 족속들의 삶의 모습은 자신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모든 면에서 우위를 점유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열 정탐꾼은 모든 사실을 외적으로만 판단해서 부정적으로 보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정복사건을 구속사적 관점과 신앙적 통찰력을 갖고 해석했습니다. 때문에 비록 현실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열세일지라도, 지금까지 불가능한 상황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과 인도하심으로 극복하게 하셔서 이곳 가데스까지 선히 인도해 주셨기에, 앞으로도 가나안 정복을 위한 성전(聖戰)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섭리적 손길로 친히 간섭해 주실 것임을 믿음으로 확신했던 것입니다. 오직 말씀을 의지하는 것으로 말미암는 승리에 대한 확신 말입니다. 이런 신앙적 확신은 열 정탐꾼이 이스라엘을 가나안 족속들과 비교해서 '메뚜기' 같다는 표현으로 비하한 반면(민13:33), 여호수아와 갈렙은 "저들은 우리 밥이다'라고 아예 무시한 지적 속에 잘 표현돼 있습니다(민14:9). 이렇게 현실적 상황을 극복하는 신앙자세는 시종일관하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을 생명의 도리와 신앙과 삶의 근간으로 붙잡고 살아가는 데서 나와지는 전인격적 신앙고백의 결과인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에 근거해서 결국 이스라엘은 열 정탐꾼의 보고에 동의한 나머지 가나안 정복의 직전에서 회귀해 급기야 광야에서의 40년 유랑의 생활에 접어들게 됩니다(민14:34).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의미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대가로 주어지는 언약적 심판의 일환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출애굽 2세대에 의해 40년이 마치는 날 다시 가나안 정복의 길이 허락되었기 때문입니다(신1:3). 지금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이 '광야'라고 하는 장소가 갖는 상징적 배경과 의미가 여기에 있으며, 동시에 '40'일이라고 하는 시험기간에 대한 상징적 의미 또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돼야 할 부분입니다. 이런 구속사적 계시사건의 연속선상에서 예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보냈던 40년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는 신명기 말씀에 의지하여 마귀의 시험에 대처하셨던 것입니다(신8:3, 16, 13).
이렇게 예수님은 구원자의 자격으로 자기 백성을 자신 안에 품으시고 저들을 대표해서 참 이스라엘의 머리가 되십니다. 구속 사역의 온전한 성취를 위해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옛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실패했던 것을 다시금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재현하심으로 참 이스라엘인 신약의 성도들 안에 회복시키려고 스스로 대표적으로 시험에 참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령의 주도적인 역사로 인해 사단의 시험을 승리로 이끄시는 한편, 사단을 이기는 권세를 동일한 성령의 내주하시는 역사를 통해 신약의 성도들에게 공급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미 마태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마2:15)라고 했던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을 아기 예수님의 출애굽사건에 적용시킴으로서 역사적 이스라엘의 예표적 출애굽사건이 예수님 안에서 그와 생명적으로 연합될 참 이스라엘인 성도들에게 실체로 성취된 것과 다를 바 없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제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죄로 인해 타락했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몸 된 교회에 연합하는 모든 성도가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새 이스라엘인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마귀로 말미암는 죄의 권세를 멸하시고(요일3:8) 친히 당신의 부활하신 생명을 그의 몸 된 교회공동체에게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구속사의 진행 속에서 해명해 본다면, 실패한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실패한 이스라엘을 거쳐서,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로소 하나님의 참 아들이시며 진정한 구원자로서 참 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아의 모습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3.마치면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의 성격은 이후 전개될 예수님의 메시아적 직무와 직결돼 있습니다. 이는 사단의 시험을 승리로 이끄심으로 아담의 실패와 역사적 이스라엘의 실패를 동시적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대속적 사역이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수행될 것임을 시사함에 다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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