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4:13)
이 말씀은 과장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내용이 복음의 일꾼임을 자처하는 우리의 실재와 판이하게
다른 이유는, 바울이 표현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자신이 '세상의 더러운 것'과 '찌꺼기'가
되지 않으려고 피하며 몸을 사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육체에 채우는 것'의 증거
입니다. 베드로는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말했습니다.(벧전4:12)
우리가 시험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이유는 겁을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욕의 수렁을 피해
그 밖에서만 머물려 하며 "나는 머리를 숙일 수 없어. 나는 굽히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관심과 욕망에만 마음을 쏟기 때문입니다. 사실 원한다면 꼭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가스로
구원받는 길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은' 사람으로 기대하시지
않도록 그 부르심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선포되기만 한다면 나는 세상의 더러운것으로
취급받아도 괜찮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종은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를 위해서라면 순교도 기꺼이 감당
합니다. 도덕적인 사람은 모욕을 당하거나, 부도덕한 일을 보거나, 배신을 당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일을
보면 거부하며 돌아서게 되고, 절망에 빠지며 상처를 준 사람에게 마음을 닫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속의 진리가 신비한 이유는 제 아무리 악하고 역겨운 사람도 그분의 사랑의 끝에 다다를 수는 없다는
것 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택하신 것은 자신을 얼마나 훌륭하게 만드실수 있는지 보여 주시려 함이 아니라
"그 아들을 내속에 나타내시기"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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