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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카니스탄의 피로즈코히종족

기쁨조미료25 2008. 1. 30. 00:14
기도정보
아프가니스탄의 피로즈코히(Firozkohi)

[IMAGE] 피로즈코히족은 아프가니스탄의 중부 산악 지대에 사는 규모가 작은 종족이다. 피로즈코히족은 좀 더 크게는 차르 아이마크(Char Aimaq) 종족 집단에 속한다. 차르 아이마크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북부 지방에 흩어져 있다. 피로즈코히라는 이름은 "피루즈쿠(firuzkuh)"라는 단어에서 온 것인데 피루즈쿠는 "청록색의 산(mountain of turquoise)"이라는 뜻이다. 피로츠코히 사람들은 파르시(Farsi)라고 불리는 페르시아어계에 속하는 언어와 투르크(Aimaq)어의 어휘를 함께 사용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르 아이마크족은 이동하게 되었고 쪼개셔서 흩어지고 다른 다양한 정부들과 연합하게 되었다. 피로즈코히족은 험한 산악 지대를 따라 정처없이 거니는 준유목 종족이다.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세계적으로 무역길로 알려진 곳이다. 다양한 종족집단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차르 아이마크족은 혼합된 문화유산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몽골인들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징기스칸 병사의 후손임을 강조한다. 차르 아이마크족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항해 활동적으로 싸웠으며, 이후 계속된 내전에도 참여하였다.

삶의 모습

피로즈코히족이 한때는 완벽하게 유목민족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특정한 계정 동안에만 이동하는 준유목민이 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있었던 가뭄과 침식으로 인해, 많은 피로즈코히 사람들이 농부가 되었다. 이들은 밀, 포도, 쌀, 보리, 귀리, 멜론, 야채 등을 키운다. 농사 일에 구식의 괭이와 나무로 만든 쟁기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로즈코히 문화에서는 농사가 여전히 주된 활동이 아닌 부차적인 활동으로 인식된다. 한 사람의 재산은 그가 가진 가축의 규모로 결정된다.

피로즈코히족은 고기, 어유, 지방, 치즈 등을 공급하는데 자신들의 가축에 의존한다. 텐트를 만드는 데에도 역시 동물의 가죽이 사용된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조차도 봄과 여름에는 자신들의 텐트로 나가서 생활한다. 아이마크 부족들의 일부는 도시에서 생활하며 농사짓는 동안에 벽돌로 지은 오두막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피로즈코히족은 주로 원형이며, 지붕이 둥글고, 이동 가능한 "천막집(yurt)"에서 생활한다.

피로즈코히 사회는 남성 중심적인 부계사회이다. 사회에서 가족이 가장 중요한 단위이다. 한 남성, 그의 부모, 그의 아내 혹은 아내들, 그의 자녀들이 한 가족을 이룬다. 어린 소녀가 결혼하게 되면, 그녀는 남편의 직계가족의 일부로 여겨진다. 피로즈코히족의 종족적 일체감은 가족과 씨족에 기초한다.

피로즈코히 여성들은 가축떼 지키는 것을 돕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들의 기본적인 일은 카페트를 짜는 일이다. 각 부족 혹은 마을마다 각기 자신들만의 독특한 패턴이 있다. 이 패턴은 어머니에게서 딸로 전수된다. 여성들은 좋은 모직 카페트를 만들기 위해 휴대용 직조기계를 사용한다. 음식을 마련할 재원은 약한 편이며, 카페트를 만들어 번 돈이 피로즈코히 사람들이 생존하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가축, 현금과 함께 카페트 역시 결혼 지참금으로 사용된다.

신앙

사실상 피로즈코히족은 수니파(정통파) 이슬람교를 믿는 하나피테(Hanafite) 이슬람교도들이다. 이들은 이슬람교에서 하나피(Hanafi)가 가장 순결하다고 믿는다. 이들의 이슬람에 대한 강한 믿음은 종종 기독교를 "순수성을 잃은 일신교(corrupted monotheism)"라고 비웃게 한다. 그러나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코란에도 있는 구약의 이야기에 익숙하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영적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한다.

필요로 하는 것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자유의 전사들"에게 군수품을 제공하였다. 후에 아프가니스탄이 정치적 내전에 휘말리면서 인권은 유린되었고 이러한 군수품 제공은 끊겼다. 전 아프가니스탄이 소련과의 전쟁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많은 마을이 파괴되고 음식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안전한 마실 물을 구하기 어려우며, 전쟁은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피로즈코히족이 거처를 이동하고 넓게 퍼져 있어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현재 한 선교단체가 이 피로즈코히족을 위해 사역하고 있다; 그러나 피로즈코히족 가운데 신자로 알려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기도가 이들을 복음의 빛 가운데로 나아오게 하는 중요한 한 걸음이다.

기도제목

  • 전쟁으로 피폐한 이 사람들의 삶이 회복되도록
  • 피로즈코히(아이마크,Aimaq)어로 성경이 번역되도록
  • 크리스챤 의료팀이 피로즈코히족 가운데 가서 사역하며 실제적으로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기회가 열리도록
  • 피로즈코히족을 묶고 있는 영적 권세들과 힘들을 파하고 승리하도록
  • 중보기도를 통하여 어두움의 영을 깨뜨릴 기도팀이 일어나도록
  • 피로즈코히족을 위한 기독교 방송매체가 속히 생겨나도록
  • 하나님께서 이 소중한 사람들에게 꿈과 환상을 통하여 당신 스스로를 나타내시도록
  • 피로즈코히 가운데 견고한 지역교회가 세워지도록
[지도]

참고:
이란의 잠쉬디; 아프가니스탄의 잠쉬디; 아프가니스탄의 타이마니;
이란의 테이무르; 아프가니스탄의 테이무르;
아프가니스탄의 아이마크 하자라.


통계
세계복음화 리서치센터의 최근 보고

종족

  • 종족명: 피로즈코히
  • 국가: 아프가니스탄
  • 언어: 피로즈코히어 (Aimaq)
  • 인구: (1990) 135,400
    (1995) 181,300
    (2000) 240,100
  • 최대 종교: 이슬람교 (하나피) 100%
  • 기독교인: 0%
  • 등록교인: 0
  • 자기언어의 성경: 없음
  • 자기언어의 영화 "예수": 없음
  • 자기언어의 기독교 방송매체: 없음
  • 이 종족을 위한 선교단체: 1
  • 복음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 9,100 (5%) 현지 기독교인에 의한 경우: 0 (0%)
    외지인에 의한 경우: 9,100 (5%)
  •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 172,200 (95%)
소속국가
  • 국가: 아프가니스탄
  • 인구: (1990) 15,044,500
    (1995) 20,140,500
    (2000) 26,673,600
  • 주요 종족 (인구순): 파탄 48.5%
    아프가니 타직 (17.9%
    하자라 8.1%
    남부 우즈벡 (8%)
    페르시아인 (3.3%)
  • 주요 종교: 이슬람교 99.4%
    힌두교 0.4%
    기독교 0.1%
  • 교파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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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분포]

아프가니스탄은 65만㎢의 면적에 21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지난 79년 당시 소련군 침공 때부터 시작된 20여년의 내전과 최근 4년간의 가뭄으로 그나마 있던 산업 시설과 도시가 완전히 돌더미로 변했고, 300만명이 유엔의 구호 식량에 의지하지만 여전히 매년 100만명이 기아에 허덕인다. 5세 이하 유아 사망률은 25%, 평균 수명은 44세에 불과하다.

거의 유일한 산업은 아편 재배로, 이를 막기 위해 미국 정부는 2001년 5월까지만 해도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4300만달러의 원조를 승인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번에 지구상 최빈국가 신세로서,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의 공격을 한 몸에 맞게 됐다.

아프가니스탄은 중앙 아시아의 요충지에 위치해 역사상 수많은 외침에 시달렸지만, 동시에 이들 ‘침략군들의 무덤’이 돼 왔다. 전국토가 요새라고 할 만한 험준한 지형과 가혹한 날씨, 아프간인들의 처절한 보복 정신 덕분이다. 인도의 무굴 제국과 몽고·영국·러시아 모두 아프간 전사들을 굴복시키는 데 실패했다. 기원전 500년 무렵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이 정복했지만 끝없는 반란에 시달렸고, 기원전 329년 이 지역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기간도 3년에 불과했다. 영국은 1839년 빅토리아 여왕 시절 꼭두각시 왕을 세우는 데 성공했지만, 3년 뒤 4500명의 영국군과 1만2000명의 군 가족 중 간신히 1명만 살아 남는 대패를 당하고 물러났다. 79년엔 당시 소련군이 침공했다가 무려 5만명의 병력을 잃고 88년 철수했고, 결국 전체 소련 체제의 붕괴를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90% 이상을 지배하는 이슬람교 원리주의자들인 탈레반 정부가 부상하기까지에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이 컸다. CIA는 소련군 침공 기간에 스팅어 미사일·바주카포 등 모두 17억달러어치의 화력을 탈레반 등 아프간 내 각종 저항세력(무자헤딘)들에게 제공했고, 탈레반은 이후 내전을 통해서 아프간 장악에 성공했다. 탈레반은 96년 9월 수도 카불을 점령한 이래, 오랜 내전이 초래한 무질서와 부패에 염증을 낸 아프간 국민들의 초기 지지를 받으면서 급부상했다. 미국은 또 무자헤딘 지원을 통해서 이슬람의 ‘지하드(성전)’를 되살렸다. 이제 이 지하드는 부패한 걸프 지역의 왕정들과 뉴욕·워싱턴 등지를 겨냥하는 빈 라덴 같은 아프간 내 테러집단들에 이어진 것이다. (조선일보 01/09/17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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