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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흐전 전시회

기쁨조미료25 2007. 12. 9. 17:34

반고흐전

12월 6th, 2007

반고흐모처럼만의 일요일. 아침부터 모자(母子)를 달래고 달래 세식구가
어렵게 집을 나섰다.
네비게이션의 방향은 서울 -> 4대문 안 -> 정동…
사실 우리의 목적지는 따로 있었다. 바로,

서울시립미술관~

[불멸의 화가 반고흐전] 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바빠도 문화생활은 하고 살아야 한다!
빈센트 반고흐(1853-1890)는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화가일 것이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의 대표작 1-2개 정도는 알고 있고 어느 나라를 가봐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그의 작품들이 걸려있는 걸 볼 수 있다. (그것은 실은, 그가 살아 생전
그렸던 그림의 수가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그가 그린 작품들은 모두 900여 점.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네덜란드의 [반고흐 미술관]과 [크뢸러 밀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번에 이 두 곳으로부터 진품 유화작품 45점과 드로잉, 판화작품 22점이 오게 되었다.
이것은 1990년 [반고흐 미술관]에서 열린 작가 사망 100주기 전시 이후 최대규모라고 한다.

실은 그동안 다른 전시회에 실망한 적이 많아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더이상 국내 미술관 관람은
하지 않기로 했었다. (선전만 그럴 듯하게 할 뿐, 막상 가보면 별게 아닌 경우가 대부분.)
그런데 이번 전시 리스트 가운데 평소에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작품이 포함되 있어서 무리를 해서라도
극구 찾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장은 대만원이었다!
표를 사는데도 긴 줄을 서야하고, 막상 입장하기 위해서도 장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관람계획이 있다면 무조건 주중관람을 추천하는 바이다.) * 월요일은 휴무

어쨌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오래 지속됐던 문화적 허기를 채우며 마음 속이 든든해졌다.

기쁜 마음에 오늘 만난 작품들을 이곳에 되살려 본다.
혹시라도 앞으로 다녀올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는 Preview의 기회가, 다녀올 계획이 없는 분들에게는
Semi-view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슬픔

[슬픔] (1882)

2층 전시장을 들어서면 제일 처음 만나게 되는 석판화 작품!
(아내는 이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다… ^^)
고흐가 미술에 갓 입문할 당시의 습작이라 할 수 있다.

본래 전도사가 되기로 하였던 반고흐가 그 꿈을 접고 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1881년.
이후 그는 헤이그, 암스테르담 등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른바 ‘네덜란드시기’(1881-1885)라 불리는 최초의 활동기가 시작된 것이다.

베틀과

[베틀과 방직공] (1884)

고흐의 초기 화풍은 이처럼 무겁고 둔하였다!
(저 유명한 [감자먹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이후 고흐는 파리로 건너가 ‘인상파’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의 화풍에는 큰 변화가 온다.
이른바 ‘파리시기’(1886.3-1888.2)는 그래서 너무나 중요하다.

수레국화,

[수레국화, 데이지, 양귀비, 카네이션이 담긴 꽃병] (1886)

색이 확 바뀌지 않았는가?!

압생트가

[압생트가 담긴 잔과 물병] (1887)

‘압생트’는 당시 수많은 예술가들을 유혹한 ‘죽음의 술’이다.
100년 뒤의 예술가들이 환각제의 힘을 빌어 작품활동을 하게 되듯이, 당시 고흐, 드가, 랭보, 베를렌 등
많은 예술가들이 여기에 중독되어 있었다.

자화상

[자화상] (1887)

고흐의 자화상은 40여 개나 되는데 이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은 초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미완성의 느낌이긴 하지만 특유의 강렬한 붓터치가 완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그의 작품에서는
특유의 빗살무늬 붓자국들이 자주 등장한다.

가죽

[가죽 나막신 한켤레] (1888.3)

1882년 2월, 고흐는 파리생활을 때려치우고 먼 남쪽, 아를르 지방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야말로 미친듯이, 사람과 사물과 풍경들을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이른바 ‘아를르시기’(1888.2-1889.4)는 아마도 그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세인트

[세인트 마리의 바다풍경] (1888.6)

드디어 이곳에서, 반고흐의 풍경화가 완성되었다!

씨뿌리는

[씨뿌리는 사람] (1888.6)

이것은 밀레의 [씨뿌리는 사람] 을 베낀 것이다.
(고흐는 밀레와 들라크르와의 작품들을 자주 베꼈다.)
원작과는 전혀 다른, 고흐 특유의 전원풍경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노란집

[노란집] (1888.9)

이곳은 고흐 자신이 세들어 살았던 집이다.
저 유명한 [고흐의 방], [의자] 등의 작품에 등장하는 물건과 가구들이
이 집안에 실제 있었던 세간살이들이었다는 사실!

벌러덩

[벌러덩 누운 게] (1889.1)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 보게 된 이 동물은 ‘뒤러의 게’ 만큼이나 강렬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이 작품!!

우체부

[우체부 조셉 물랭의 초상] (1889.4)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온 것이다.
장터를 방불케 하는 인파와 불편한 감상 환경 속에서도 내가 만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이 그림을 직접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별로 유명하지 못한 작품일 수도 있지만
이 그림은 내게 최초로, 고흐의 예술세계를 생각하게 해 준 작품이다.

고흐가 누구인가?
불우한 일생을 짧게 살다간 ‘불꽃같은 예술혼’의 대명사 아닌가?

그는 너무나도 가난하고, 가진 것은 그림에 대한 열정밖에 없어 남들 다 하는 것처럼
‘모델’ 한명을 구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그가 맨날 그린 것은 정물 아니면 풍경 아니면 자기 얼굴.
어쩌다가 주변 사람 가운데 그의 모델이 돼주겠다고 나서주면
그는 너무나 감사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초상화를 그려주었을 것이다.

이 그림은 바로 그런 날들의 소산이다.

일개 시골마을 우체부에 불과한 서민의 모습을
절대왕정의 군주보다 더 위풍당당하게 그려놓은 화가의 마음!

이 그림이야말로 고흐의 예술혼을 대표하는 걸작이라 말하고 싶다.

고흐의 모든 작품은 ‘원화감상’이 매우 중요하다.
그 두툼한 질감과 붓터치가 풍기는 아우라(Aura)는 사진이나 복제품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다!

‘아를르시기’ 이후의 걸작들도 여러 점 만날 수 있다.

아이리스-붓꽃

[아이리스-붓꽃] (1890.5)

이 그림은 [반고흐 미술관]이 이번에 최초로 외부반출을 허락한 작품이라고 한다.
(즉, 암스테르담을 직접 가서 본 사람 외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 그림을 볼 수 없었다는..)
보험평가액만 1000억원 짜리라니 더욱 봐 줄만 하다!

사이프러스와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 (1890.5)

‘사이프러스’는 고흐의 분신처럼 느껴진다.
저렇게 밝고 황홀한 야경을 그릴 수 있는 마음이 경외롭다.

‘슬픔’으로 시작한 전시회는 다시 ‘슬픔’으로 끝난다.
다음은 메인 전시장의 마지막 그림…

슬픔에

[슬픔에 잠긴 노인] (1890.5)

‘사이프러스’는 고흐의 분신처럼 느껴진다.
저렇게 밝고 황홀한 야경을 그릴 수 있는 마음이 경외롭다.

‘슬픔’으로 시작한 전시회는 다시 ‘슬픔’으로 끝난다.
다음은 메인 전시장의 마지막 그림…

기쁜 체험이었다.
오늘을 길게 기억하고 싶다.
 

  전시개요는 다음과 같다.

. 기간 : 2007. 11. 24 ~ 2008. 3. 16  (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9시 (단 토, 일, 공휴일은 8시까지)
. 요금 : 성인 12,000원 / 청소년 10,000원 / 어린이 8,000원 (65세 이상, 7세 미만은 무료)

* 기타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고
http://www.vangogh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