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CP]/열방소식·기도

러시아 미전도종족

기쁨조미료25 2007. 11. 17. 01:44

1. Avar people 아바르족
상상 속이 아닌 현실 속에서 낙원 같은 곳이 있고 그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러시아 내 자치공화국인 다게스탄 공화국은 카스피해,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선을 대고 있다.  50마일만 더 나가면 험준하고 거대한 코카서스 산악지대가 있다.  이 산악지대는 해발고도로 보면 알프스의 두배나 되는 거대한 산이다.  장대하고 넓은 산악지형 안에 수많은 계곡과 폭포가 있고, 자연이 정해 준 경계를 따라  15개의 각기 다른 그룹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각기 다른 구역에 거주하고 있다.  마치 바벨탑 이후에 자연지형에 의해 그룹과 그룹 간의 교류가 차단되고 언어가 갈린 듯한 느낌을 준다.  이들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은 종족이 아바르족이다.  아바르족은 예수를 전혀 모른다.  그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창조자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예수영화를 보거나 성경을 읽은 적이 없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99.9 %는 이슬람 신자이다.  소련 통치 치하에서도 비교적 자치권이 유지는 되었으나 토지의 국유화는 피할 수 없었고 많은 주민들은 집단농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소련은 몰락했지만 그 여파는 여전히 남아 아직도 사회주의적인 경제시스템은 남아 있다.  그러나 상황은 서서히 바뀌고 있고 사유재산제도도 확대되어 가고 있다.  아바르족 사회에서도 많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여자는 15세쯤이면 결혼을 했으나 요즘은 그것도 많이 사라지고 있고 결혼연령도 늦어지고 있다.  여성들은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머리 장식을 하지만 현대 문화를 접한 많은 여성들은 이 전통을 무시하기 시작하고 있다.

2. Buryat people 부리야트족
"낙타는 자기 등의 혹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 결점을 알지 못한다."  이는 부리야트족의 속담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부리야트족은 인간의 부족한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선교사들은 부리야트족에 대해 많은 소망을 품고 접촉한다.  1818년 경 부리야트족을 위해 활동하던 선교사들이 있었다.  이들의 활동은 22년 간 계속되었다.  부리야트족도 복음에 상당히 긍정적으로 반응했고, 선교사들이나 부리야트족이나 부리야트어로 된 성경의 필요성을 함께 느꼈다.  그 결과 부리야트어 성경 번역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1840년 경에 중단되었다.  부리야트족 가운데는 4개의 하부 그룹으로 나뉜다.  몽골과 중국에 거주하는 부리야트족은 대개 티벳불교 신자들이다.  반면 러시아에는 42만 명의 부리야트인들은 러시아정교회의 신자이기는 하지만 중심축에는 끼지 못한 채 국외자처럼 맴돌고 있는 처지이다.  몽골이나 중국에 거주하는 부리야트족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러시아에 거주하는 부리야트인 역시 복음이 필요한 종족들이다.  다행히 부리야트족을 세계의 교회는 잊지 않았다.  몇 년 전, 필란드의 헬싱키에서는 부리야트족 선교를 위한 국제적인 컨퍼런스가 열리기도 했다.  17개의 기관들로부터 27 명의 선교관계자가 참석했다.  그들은 부리야트족에 대한 정보와 자료, 그리고 생각들을 심도 있게 나누고 부리야트족을 위해 함께 협력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이러한 연합의 힘을 모아 많은 기도가 부리야트족을 향해 전달되고 있는 중이다.

3. Chechens  체첸족
체첸인 기수들이 말을 탄 채 출발선에서 서 있다.  그들은 경마경기의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체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망자의 소유권을 말타기 경주를 통해 정하는 전통이 있다.  지금 그들은 말타기 경주를 통해 얼마 전 사망한 반군지도자의 장례집례권을 정하려고 하고 있다.  경주에서 이긴 쪽이 장례식을 주도하게 된다.  보통 이런 경주에 나서는 기수들은 십대청소년들로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하다.  체첸은 자신들의 독립문제를 놓고 러시아를 대상으로 10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소련이 붕괴되고 소련연방에 속했던 각 공화국들이 모두 독립하자 체첸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도 커졌다.  물론 최근 10년 간의 전쟁이 체첸인들이 독립을 놓고 러시아와 처음 맞선 것은아니다.  1790년 이후 지금까지 소련 및 러시아에 대한 크고 작은 무력독립투쟁은 간헐적으로 계속 있어 왔다.  물론 이같은 시도는 모두 좌절되었다.  어쨌든 오래 동안 전쟁을 수행해 오다보니 체첸에서는 전쟁과 관련 있는 스포츠들, 예를 들자면 사격이나 경마, 승마 등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체첸인들의 대부분은 13세기에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현재 체첸 사람들 가운데 확인된 기독교인은 10명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체첸에 복음을 전할 신실한 사역자들을 세우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선사시대에 이미 지금은 남부 러시아라고 불리는 코카서스 산악지대에 여러 종족들이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전략적인 요지의 역할을 해 왔다.  체첸족이 살고 있는 지역이 바로 이곳이다.  체첸족은 BC 6천 년이전부터 이곳에서 거주한 종족이다.  그러나 체첸족이 역사에 처음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이다.  체체니아는 모스크바로부터 약 1천 마일쯤 떨어져 있다.  체첸 사람들은 독립심이 강한 민족이어서 오랜 기간 동안 러시아의 통치에 저항해 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체첸족들의 고향인 체체니아는 여전히 러시아의 일부분으로 남아 있다.  체첸인은 여러 모로 러시아인들과는 다르지만, 특별히 음식 문화가 독특하다.  러시아인들은 매끼마다 빵을 먹지만 체첸인들은 감자와 파스타를 주식으로 삼는다.  더 중요한 차이는 그들의 종교이다.  체첸인들은 러시아와는 달리 오래 동안 이슬람교를 믿어왔다.  그들의 종교는 러시아인들에게 대항하는 그들의 상징적 정체성이다.

Chechen people 체첸족
당신이 만일 체첸 땅에서 살고 있다면 싸움과 전투를 질리도록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체첸공화국은 러시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려 150 년째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를 결코 용인할 수 없고 당연히 양측간에는 무력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1995-96년 사이에는 양측 간에 무려 21개월 간이나 전쟁이 벌어졌었고, 이는 1996년 8월에야 끝났다.  이 전쟁으로 인해 6만 명의 체첸인이 사망했고, 4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또 체첸의 경제는 파탄지경으로 몰려갔다.  96년 8월 러시아와 체첸은 잠시간의 휴전이 깨지고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 전투는 이웃의 다게스탄공화국으로까지 번졌다.  다게스탄공화국은 짜르시대에 러시아에 합병되었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역시 좋지는 않은 지여이다.  90 만 명 가량의 체첸인들은 러시아인들을 비롯한 다른 종족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러시아의 마피아'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은 것이다.  그들은 러시아를 대상으로 투쟁을 벌이는 와중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약탈, 납치 등 불법을 서슴없이 자행하여 악명이 높다.

체첸반군들은 다게스탄공화국과 가능하면 자신들의 영향력 안에 흡수해 보려고 있다.  때문에 때로는 다게스탄을 자극하기도하고 시비를 걸기도 한다.  몇 년 전, 체첸은 다게스탄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기독교인 교사인 허브 그레그를 납치해 체첸으로 데려온 일이 이었다.  그레그는 부인과 함께 다게스탄의 한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들은 다게스탄 측에 몸값을 요구하면서 협박을 위해 그레그의 손가락 하나를 절단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값은 지불되지 않았다.  결국 그레그는 러시아 내무부 소속 군인들이 구출작전을 개시하고 나서야 석방될 수 있었다.  그레그는 그래도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체첸은 최근에도 4명의 외국인들을 납치했다.  또 모스크바에서는 여러 건의 폭탄테러를 감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체첸인들은 자신들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잔인한 만행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  이들은 100 % 순니 이슬람 신자들이다. 지리적으로 러시아 남부의 거친 코카서스산 오지에 거주하고 있고, 그루지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이슬람을 철저하게 신봉하다보니 복음을 들고 이들 사회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체첸어로된 성경은 번역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완성은 되지 않았고, 이들의 언어로 된 예수 영화나 방송은 아직 없다.

4. Crimean Tatar people 크리미안 타타르족

"우리 가족들이 크리미아를 떠날 때 나는 아주 어린 소년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다른 이웃들과 함께 집과 마을을 떠나면서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애를 썼다.  우리는 소련의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당시 스탈린 정권은 우리가 나찌와 협력하고 있다고 믿었다.  중앙아시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많은 타타르인들이 죽었고, 어머니도 죽었다."  그러나 이미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이들에게는 이러한 비극도 잊을 수는 없겠지만 먼 옛날의 일이 되고 말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크리미안 타타르인이 12세기 무렵 동유럽까지 휩쓸다가 정착한 몽골인들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유럽에 900년 가까이 거주하면서 늘 차별을 당해 왔다.  그리고 워낙 많은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그들의 전통과 문화는 많이 퇴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는 그런대로 보존되어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 인근에 거주하는 크리미안 타타르인들 가운데서도 노령층은 그런대로 종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순니 이슬람을 믿으며 가족간의 유대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동족끼리만 결혼을 한다.

5. Jews 러시아의 유대인
KGB의 알렉산더 벨라예오는 그의 거의 전 생애를 반소련 강경주의자인 이츠자크 코간을 감시하는데 보낸 사람이다.  코간이 1986년에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비자를 발급받아 이스라엘로 영구이주하자 벨라례오는 KGB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KGB에서 보낸 평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과연 이 반 소련주의자라는 사람이 뭣이길래 자신이 평생 그의 동테를 감시하는데 보냈는지 회의가 느껴진 것이다.  그가 관찰한 "반소련주의자" 코간 그저 평범한 유대교 랍비일 뿐이었다.  소련 정부가 유대교의 풍습이라고 금지시킨 유대교의 전통 빵인 무교병을 몰래 굽는 것이 그가 관찰한 반소련행위의 전부였다.  또 감시의 눈을 피해 유대교 제사의식에 따라 닭이나 소를 죽이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그가 빵을 굽고 동물을 죽이는 일이 소련의 안보에 얼마나 심각한 위협요소였길래 자신이 평생 그를 감시해야 했는지,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진 것이다.  요즘은 유대인들이 무교병을 굽던 유교병을 굽던 아무도 시비를 하지 않는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약 60 만 명의 유대인들은 과거보다 훨씬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소련 당시의 정부의 철저한 박해에 굴복하여 유대교의 문화와 전통을 잃어 버리고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을 잃어 버린 것도 사실이다.  챠바드 루바비치운동은 최근 구 소련지역의 유대인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유대교 부흥운동이다.  이스라엘로 돌라갔던 코간도 이 운동을 지도하기 위해 다시 러시아로 돌아 왔다.  이 운동은 단순히 유대교 전통을 되살리는 차원을 넘어서 사람들의 유대인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을 되살리사는 운동이다.  그러나 이 같은 운동을 마땅치 않게 바라보는 러시아의 일부 세력들은 유대인들에게 테러나 폭탄공격 등을 가하고 있다.  코간도 테러를 당해 죽을 고비를 넘겼다.

6. Kalmyk people 칼미크족
라리사는 오두막 집의 담장에 기대어 아들이 보바를 안아 얼르고 있다.  보바는 영양부족으로 인한 시력 감퇴 증상을 겪고 있다.  그러고보니 보바가 우유 맛을 본지도 한달이 넘었다.  오늘 아침에는 빵을 물에 개서 먹였다.  그것이 보바가 하루 종일 먹은 것의 전부이다.  라리사는 말했다. "돈도 없지만, 돈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가게에 우유가 없다."  그러나 칼미크 자치공화국의 정부는 무려 3천만 달러라는 돈을 들여 대규모 위락시설단지를 건립하고 있다.  이 단지 않에는 디즈니랜드와 같은 놀이시설과 체스광인 대통령의 뜻에 따라 대규모 체스경기장이 들어설 것이고, 대통령은 전세계의 체스 플레이어들을 초청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공화국이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칼미크공화국은 러시아 내의 자치공화국이며 특이하게도 불교 공화국이다.  카스피해 인근에 위치한 이 공화국은 러시아 내의 모든 공화국 가운데 가장 가난해서 1인당 월평균소득이 6.70 달러에 불과하다.  국영 농장을 방문해 보면 이들이 얼마나 가난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은 이미 5년째 임금과 배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가축은 사료를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려 있고, 곡식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영양실조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계열의 선교기관이 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고, 교회도 몇개 세워졌고, 신자도 약간 있다.  이들에게 복음이 서서히 뿌리를 내리는듯 하다.

7. Komi people 코미족
선교사와 코미족 남성의 눈 앞에서 번갯불과 천둥이 연이어 내리쳤다.  하나님은 선교사에게 뭔가를 말씀하시고 싶은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선교사는 코미어 신약성경을 코미족 남성인 니콜라이에게 전해 주려던 참이다.  5년 전 한 선교사가 놀라운 보고서를 보내 왔다.  사냥과 물고기잡이를 주로 하는 이들 종족 그룹이 시베리아의 황량한 벌판에 두 곳에 나뉘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코미족은 외지의 바람에 심하게 시달리고 있다.  지금 그들은 인플레이션과 물부족, 알콜중동, 흡연, 그리고 실업 등의 문제로 시달리고 있다.  코미족을 복음화하기 위한 시도는 먼 옛날에도 있었다.  이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14세기에 러시아정교회 선교사가 이들을 찾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열정적이고 효과적으로 복음을 증거했지만,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코미족 교회는 소멸되었다.  지금 이들은 거의 대부분 샤머니즘을 따르는 반면 자신이 정교회 신자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 두 곳의 선교기관이 코미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들은 코미족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보급하며, 의약품을 지원하며 학교를 짓고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우물 개발을 통해 물부족도 해결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코미족 신자느 극소수이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레나(가명)라는 이름의 여성이 회심하고 헌신적으로 코미족 여성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8. Nogay people 노가이족

"밀어!  밀어!"  노가이족이 오타이(둥근 휠에 설치된 원형 움막)를 진흙에서 끄집어 내느라고 애를 쓰고 있다.  한참 만에 소까지 동원해서야 오타이를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가장인 에미르가 소리쳤다.  "훔두랄라.  알라신이 우리를 축복하셨다.  러시아에 사는 약 1만 명의 노가이족은 원래 루마니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유목을 하는 사람들을 블랙 노가이라고 부르고 농업을 하는 사람들을 화이트 노가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여행 방식은 두 가지이다.한 가정 단위로 움직이는 것을 오타르라고 하고, 여러 가정이 합쳐서 한 떼를 이루어 움직이는 방식을 아울이라고 한다.  이들이 이동하는 것은 1차적으로는 물을 얻기 위해서이고 보통 한 자리에서 몇 개월 정도 머무르다가 이동한다.  대부분 노가이족들은 자신들이 순니파 이슬람 신자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의 종교의식은 전통종교와 이슬람이 혼합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 언어로 번역된 신약성경은 나와 있지만 예수영화는 아직 없다.  노가이족 가운데 기독교인은 소수이다.

9. Tuvin people 투빈족

한 영화 비평가는 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는 한 종족에 대한 다큐 필름을 보면서 그 종족이 독특한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 필름 덕분에 세계인들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투빈족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목청발성이라고 부르는 특이한 노래 방식도 알게 될 것이다.  이 노래 방식이 놀라운 것은 한 사람이 동시에 높은 음과 낮은 음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투빈족의 인구는 20만 명 가량이다.  이들은 티벳불교를 믿으며 러시아와 몽골 국경 지대에 살고 있다.  그들의 문화를 보면 여성들은 대개 12 - 13세 사이에 결혼한다.  그러나 요즘은 법률적으로 18세가 넘어야만 결혼하게 되어 있다.  또 낙태와 이혼도 매우 흔하다.  투빈족의 가정의 안정을 위한 기도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세계는 투빈족을 모르고 있다가 이번 필름을 통해 비로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이들의 독특한 노래방식보다도 이들의 영혼을 돌보고 지키는데 더 관심이 있을 것이다.  다행히 투빈족 언어로 제작된 예수영화가 이미 나왔다.

10. Udegue people 우데게족

악령을 향해 소리를 낼 때 사용하는 작은 종이 달린 샤먼의 목에 거는 부적 거울과  빵 한 덩어리가 교사의 탁자 위에 얹어져 있다.  또 다른 여러 가지 물품들도 함께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우데게족 학생들은 신기한 눈초리로 그것을 보고 있다.  탁자 위에 놓인 물건들은 집에서도 본 것들이고, 어떤 것들은 처음 보는 것이다.  오늘은 순회교사의 자격으로 학교를 찾은 샤먼은 시베리아에서 지켜지는 여러 가지 전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빵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빵을 잘게 조각낸 후 자신과 함께 먹을 것을 지시하며 그것도 영들을 기쁘게 하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했다.  시베리아의 아무르강 주변에는 약 1,900 명의 우데게족이 살고 있다.  최근 러시아 극동지역에서는 옛 전통에 대한 붐이 갑작스럽게 일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전통이란 극동지역부터 베링해 그리고 과거에는 소련 땅이었던 알라스카에서 폭넓게 지켜지던 전통이었다.  1991년의 소련 붕괴 이후 경제에 큰 위기가 닥쳤고, 사람들은 전통에 몰입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감을 찾고자 했다.  전통적인 방식의 고기잡이와 사냥술이 유행하고, 심지어 병자들에게도 전통방식의 의료행위가 성행했다.  샤머니즘과 고대 제례의식이 부활하고 소련 통치 시절 완전히 소멸한 듯 보였던 전통종교의식도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