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된 최초의 인간에게 주어진 첫 명령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범법시 주어질 형벌은 '정녕 죽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초의 인간들인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선물인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그 명령을 어겼다. 바울은 이 사건을 가리켜 한 사람의 범죄로 죄와 사망이 세상에서 왕노릇하게 되었다고 한다(롬5:12). 그런데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800-900여 년을 더 살다가 죽게 한다. 왜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은 즉시 주기 않았을까?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의 진정한 무엇인가?
본 연구에서는 하나님의 선언에 대한 문법적 해석 및 그 즉각성과 점진성을 고찰함으로 그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에덴동산에 각종 실과를 만드셨는데 거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과도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실과는 모두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여기서의 '죽음'을 신체적인 죽음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창세기 3장에 가서 곤경에 빠지고 만다. 아담과 하와가 그 열매를 따먹었으나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흑자는 이것을 미래로 생각하여, '죽을 것이다'라고 해석하였다. 즉 아담과 하와가 늙어 죽는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본문에서의 "정녕 죽으리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 개요적 고찰
1)문법적 해석
"…먹지 말라"는 것은 율법 중 십계명의 금지 명령과 같은 형태이다. 십계명에는 금지 명령 후 그 이유에 대한 절이 덧붙여지는데 여기는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부가절이 따라나온다. 이것에 대해 이런 형태는 히브리 율법의 독특한 한 표현법이라는 견해도 있으나(B.Gemser) 한편에서는 이것이 법적 본문들의 사형 선고에만 나타나는 형태는 아니라고 한다(C.Westermann). 율법적 형태는 호팔형 부정사를 사용하여 '그는 죽게 되리라'는 뜻이 되지만 여기서는 단순형 부정사를 사용하여 '너는 죽이리라'는 뜻이 된다.
만약 여기에 호팔형 부정사가 쓰였다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자체에 어떤 죽음에 이르는 성분을 갖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단순형 부정사에는 그런 의미가 포함되지 않으며, 구약성서에서 신이나 왕이 위험할 때 쓰이는 표현법이다(창20:7 삼상14:39 왕상2:37 왕하1:4 겔33:8)
2) 형벌의 즉각성
한편 이 tWmt; t/m(모트타무트)라는 표현은 '죽되 죽으리라' 또는 '죽어서 죽으리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칠십인역의 '그는 죽을 것이라' (qanavtw ajpoqane'isqe, 다나토 아호다네이스데)는 번역을 잘못한 것이다. 또 '너는 죽을 운명이 되리라'(Speiser)는 번역도 바르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날에'는 '그때에'로 번역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자들은 신체적 죽음이 곧바로 그들에게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때에'로 번역하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의도된 것은 위협된 형벌의 순간적 실행이다. '그날에'(!wyB, 배욤)는 행위의 신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은 먹는 것에 뒤따라 곧 죽음이 올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2. 죽음
1) 창3:4과 창2:17
우리는 위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은 '죽어서 죽으리라'는 뜻으로 '확실히 죽을 것'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어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죽으리라"고 하시고, 뱀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한다. 하나님과 뱀의 말도 서로 대립되어 있다. 한쪽이 진리이고 다른 한쪽은 비 진리이다. 인간에게 이것은 모두가 진리로 다가왔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로서 인간의 위치를 저버리면 죽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뱀은 인간이 자기 위치를 박차고 일어서면 하나님처럼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자기 위치를 떠나게 되면 자기를 무한히 확장시키고 그것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할 때 인간은 죽는다고 하신다.
2) 자연적 죽음
하나님께서는 창2:17에서 인간의 자연적 죽음을 말씀하셨는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본문은 즉각적 죽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인간의 자연사는 인간 타락 이후에 비로소 피조계에 들어온 징벌이다(롬5:12). 그것은 결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창2:17에 나타난 징벌의 신속성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의 자연사만을 범죄에 대한 형벌로 볼 수는 없다. 타락 이후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특히 하나님의 백서의 죽음은 '잠'으로 표현되며 하나님 또는 조상들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경우는 독특한 경우로서, 그들의 자연적 사망은 범죄에 대한 형벌이지만 부차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3) 죄인 된 인간의 신체적 죽음
타락 후 죄인 된 인간은 하나님의 벌로써 신체의 죽음을 경험한다. 인간은 죄인 된 존재이며 죄악 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죄인으로서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다가 하나님 없이 죽는다. 죄인인 인간에게 죽음은 죄의 대가이다. 그러므로 창2:17에서의 죽음은 한편으로 신체적 죽음이나 몸의 분해를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의 타락 후 그에게 내린 선고에서도 알 수 있다(창3:19).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자연적 인간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안과 삶의 무의미, 절망과 자기 모순 속에서 맞이하는 죄인 된 인간의 죽음을 뜻한다.
4)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
성경에서 죽음의 개념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한다. 창2:17에서 예고된 대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을 때 죽음, 곧 하나님과의 단절이 그 즉시로 일어났다. 이것은 영적이고 내적인 단절이다.
그러나 한편 구약에서는 영적 사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 삶의 원천은 하나님이사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생을 부여받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참된 삶을 살 수 있다. 반면에 죽음이란 이러한 관계의 파괴이고 단절이다. 뱀이 인간에게 약속한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오직 자기만을 추구하는 인간적 삶이다.
그것이 바로 죽음인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인간은 존재 근거를 상실하고 자기의 참된 존재를 찾아 방황하게 된다. 그런 인간의 삶은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난다. 참된 인간은 하나님과의 사귐 속에서 존재한다. 하나님 없는 인간은 죽은 것과 같다.
우리는 지금까지 창2:17을 중심으로 '죽음'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성경 적 의미의 죽음은 신체적 죽음뿐 아니라 영적 죽음을 말한다. 성경은 죽음을 '분리'로 정의한다. 인간 영혼과 육체의 분리, 인간과 하나님의 분리,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아담과 하와에게 매우 처절한 형벌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최초 인간이 범죄 한 후 맞이한 죽음은 하나님과의 단절이었다. 하나님께서 선고하신 대로 그들은 실과를 먹은 날에 곧바로 하나님과의 분리, 즉 죽음을 맞았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참된 삶을 영위하게 된다.
1. 죽음에 대한 이해
1) 죽음에 대한 일반적 이해
죽음에는 자연사와 사고사가 있다. 자연사는 예측이 가능한 불가항력적인 것이고 사고 사는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닥치는 것이다.
2) 죽음에 대한 의학적 이해
의학에 있어서 살아 있다는 것은 호흡하고 심장이 뛰고 뇌가 건강하며 신체기관의 세포들이 제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을 말한다. 의학적으로 죽음을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심장박동이 정지되는 심장사, 호흡이 정지되는 폐장사, 뇌가 기능을 정지하는 뇌사가 있다.
3) 죽음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
생물학이 말하는 죽음은 생명 현상의 중단을 말한다. 생물학적 죽음은 계통사와 개체사가 있다. 보통의 죽음은 개체 사를 의미하며 계통사는 생물의 한종이나 속이 멸절되는 것을 가리킨다. 또 개체 사는 자기 수명을 다하고 죽는 자연사, 환경의 영향으로 죽게 되는 사고사 그리고 호흡이 정지되고 맥박도 거의 느낄 수 없는 상태의 가사로 나뉜다.
4) 죽음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이해
프로이드는 생물인 인간이 그 속에 내제 되어 있는 본능의 충동에 의해서 생물 이전의 상태인 무생물로 돌아가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였다. 그의 제자 칼융은 죽음을 자기 실현의 한 과정으로 인식했다.
5) 죽음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
사회학적 죽음은 임종기의 환자나 노인에게 자주 발견되는데 곧 죽을 것이라는 불안과 절망감 때문에 살아 있으면서도 산 사람으로서의 생활이나 기능을 거절하려 드는 것을 말한다.
6) 죽음에 대한 철학적 이해
전통적으로 철학은 죽음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나 탐구를 하지 않았으나 19,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구의 실존 철학자들이 죽음의 문제를 구체적인 삶 속에서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 중에 하이데거가 있는데 그는 말하기를 죽음이란 미래에 언젠가 닥쳐올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삶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현존재의 구성 요소이기에 죽음을 도외시하고는 현존재로서의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 현존재로서의 인간을 이해랄 수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 현존재로서의 인간이란 죽음의 가능성을 '이미' 또는 '벌써'로 받아들이는 사람으로서 이런 자가 될 때 참인간이 되는 것이다.
2. 죽음에 대한 신학적 이해
1) 죽음에 대한 기본적 개념
육체적 죽음은 영혼과 몸의 분리이다. 이러한 죽음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창3:19), 잠자는 것(요11:11), 이 장막을 떠나는 것(벧후1:14), 침묵하는 것 (시115:17), 없어지는 것(약 4:14), 혼이 떠나는 것)(빌1:23)등으로 표현된다.
2) 육체적 죽음에 대한 신학적 정의들
① 하지(Hodge): 육체적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의 인격적 연합이 정지되어 육체는 그것의 화학적 요소들로서 분해되어 버리고 영혼은 그 창조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지정된 별도의 장소로 인도되어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다.
② 벌코프(L.Berkhof): 육체적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로 말미암은 육체적 생명의 종결이다. 육체적 죽음은 결코 멸절이 아니다.
③ 뵈트너(L.Baettner): 육체적 죽음이란 인간의 육체에서 영혼이 떠남으로 말미암아 육체의 기능이 정지되는 것이다.
3) 성도의 육체적 죽음의 의미
① 징계: 성도의 육체적 죽음은 결코 형벌이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완전 성화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실수하고 넘어져 범죄의 자리에 떨어진다. 따라서 여기에는 하나님의 징계가 따르게 되는데 죽음도 그 한 방편이다. 하나님은 그 죽음을 통하여 성도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그 영혼을 승화시키신다.
② 연단: 이는 아직도 죄의 오염 가운데서 살고 있는 성도들의 심령을 시련 속에서 깨끗케 하는 것을 뜻하는데 성도의 육체적 죽음도 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③ 자발적 고난: 성도가 하나님을 따르며 신앙 정절을 굳게 지켜 살아가려고 할 때는 환난과 핍박이 찾아든다. 이러한 현상의 절정에서 성도는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④ 하나님 나라의 비밀성: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 수 없듯이 인간의 비극적 죽음도 하나님의 섭리의 하나로서 완전히 규명하기 어려운 하나의 신비이다.
3. 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
유동식 교수는 그의 저술에서 한국인이 가지는 죽음에 대한 이해를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첫째, 한국인들은 자연인으로서 장수하기를 열망한다.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오복(五福)중에 장수는 그 첫째 가는 복이다. 둘째, 한국인은 사회인으로서 죽음보다 강한 것을 믿는다. 좁게는 가족 관계에서부터, 넓게는 사회와 민족의 관계에서 자기를 희생한 많은 위인들의 예는 죽음보다 강한 사랑과 의기심을 가진다. 셋째, 한국인들은 종교인으로서 변증법적 사생 관을 가진다. 인명은 하늘의 뜻에 달린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깊었고, 불교의 영향을 입어 윤회적 사생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죽음을 터부시하고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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